조은서가 서둘러 집에 돌아가 보니 설리는 과연 기운이 없어 보였다.사료도 별로 먹지 않았고, 평소 좋아하는 간식과 장난감도 구미가 안 당기는 모양이었다.심정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하였다.“아픈 건 아니겠지... 내가 들어가서 옷 입고 나올 테니 병원에 한번 같이 가보자. 이러다 큰일 생기겠어.”설리를 품에 안고 잠깐 고민을 하던 조은서는 그녀한테 말했다.“아버지도 편찮으신데, 집에 아무도 없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저 혼자 갔다 올게요... 어머니, 제 생각인데 집에 간병인 한 분 모시면 어때요? 그럼 어머니도 좀 여유시간이 생길 텐데요.”“알았어. 너 밤길 조심해서 갔다 와.”심정희도 조승철이 시름이 안 놓였던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조은서가 집을 나설 무렵, 조승철이 방에서 걸어 나와 설리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리고 문이 닫히자 심정희를 보며 짓궂게 한마디 했다.“평소에는 칠색 팔색을 하더니만. 아프다니까 누구보다도 더 걱정하는구먼.”심정희는 주방에 들어가 컵에 물을 따라놓고 약을 건네주며 심드렁하게 받아쳤다.“당신도 똑같잖아. 나 말할 처지나 돼?”말문이 막힌 조승철은 싱글벙글하며 웃었다.......정누리 동물병원.병원 안에서 의사는 한창 설리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고, 조은서는 설리한테서 한시라도 눈을 떼지 않았다. 설리도 그녀를 매우 의지하는지 그녀의 손바닥에 머리를 올려놓고는 끙끙하며 큰 눈망울로 조은서만 쳐다보고 있었다.그때 병원 현관 유리문이 열리며 누가 들어오자, 동물병원 프런트 직원이 놀랍게 소리를 질렀다.“유 대표님!”유... 대표님?설마 하며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니 틀림없이 유선우였다.늦은 밤에 급히 달려왔는지, 옷도 대충 걸치고 나온 것 같았다. 검은색 셔츠에 검정 바지, 겉엔 검정 패딩... 옷걸이가 받쳐주니 뭘 걸쳐도 패션이었다.그는 조은서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약간 숨이 찬 목소리로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여기 회원가입 할 때 내 번호로 되어있었어. 네가 접수하자마자 문자를 받았거든.
말하고 나서 그는 운전석이 있는 차 문으로 내려 펫샵에 들어갔다.5분도 안 돼, 유선우는 강아지 기저귀 한 팩을 들고 나와 트렁크에 실었다. 차에 다시 올라타서 그는 설리의 머리를 만지며 조은서한테 얘기했다.“스몰로 샀어. 돌아가서 해줘.”네, 하며 대답하고 조은서는 창밖으로 시선을 향했다.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 유선우는 잔잔하게 말을 걸어왔다.“성진그룹 사모님한테서 들었는데, 네가 가게를 할거라며?... 혹시, 돈 필요해서 그래? 모자라면 말해, 나한테.”담담한 말투 속에 가진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타인을 장악하고 있다는 그런 자신감도.듣기 거북했다. 말이 곱게 나갈 리 없었다.“선우 씨, 내 일에 참견하지 말아요!”“네가 걱정됐을 뿐이야.”마침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어 그는 골목에 차를 세웠다.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살살 녹아드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치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녹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우리가 아무리 이혼했다 해도, 여전히 가족이야. 은서야, 널 가족처럼 걱정하고 보살피고 싶어. 그래도 안 되겠어?”그의 말과 목소리와 표정들은 세상 다정했다. 이러한 전 남편이 어디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하지만 그와 같이 살아온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이 남자로 인해 너무 많은 실망과 상처만 떠안았다. 이것 역시 다 남자들의 얕은 수작이자, 그녀의 맘을 잠시 달래보려는 또 하나의 작전임을 알고 있다.“선우 씨, 우리 둘 사이의 제일 적절한 관계는 아무 관계도 아닌 거예요.”그의 호의건, 작전이건 그녀는 모두 거절할 셈이었다.차갑게 벽을 치는 그녀의 손을 그가 뜨거운 큰 손바닥으로 눌렀다.차 안은 어두컴컴하여 서로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만, 서로 시선이 맞닿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둘의 눈은 똑같이 빛이 났지만, 그중 하나는 상처로 물든 물기 머금은 눈이었고, 다른 하나는 갖고 싶다는 욕망만 잔뜩 들어찬 눈이었다.그녀의 손을 꼭 다잡은 큰 손은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공간이 넉넉한 차임에도 불
집에 돌아오니 심정희는 자지 않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설리의 상황을 얘기하니 심정희는 입을 딱 벌리며 놀라 하였다.“강아지한테도 그런 게 오는구나...”기저귀 포장을 뜯어 설리한테 착용해 줬다. 사이즈가 딱 맞았다.강아지한테 자존감이 있는지는 몰라도, 팬티형 기저귀를 착용하니 설리는 물도 마시고 사료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조은서의 품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불을 끄고 조은서도 잠을 청했다. 힘든 밤이었다.왠지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이 거의 되어서야 희미하게 잠이 들었다.......이틀 후, 조은서는 임지혜와 같이 서미연이 소개한 가게를 보러 갔는데, 확실히 그녀 말대로 흠잡을 데 없는 좋은 가게라 조은서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그리하여 서미연을 통해 로이드 빌딩의 건물주 현덕배와 약속을 잡았다.서미연은 미리 조은서한테 귀띔을 해주었다.“그 건물주 현 사장은 데릴사위인데, 자존심이 강해요. 그러니까, 그쪽 방면에서만 말조심하면 다른 건 별문제 없을 거예요. 사람이 원래 좋으신 분이니까.”그녀의 말을 듣고 조은서는 한시름을 놓고, 소개시켜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이 가게가 너무 욕심나 조은서는 현덕배와의 약속 장소를 최고급 비즈니스 레스토랑으로 정했고, 가격도 시세의 5%나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현덕배 사장도 그 조건이 꽤 흡족할 만했고, 계약에 동의하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조은서의 곁에 앉아 열성스레 찻물을 따르는 임지혜를 보고는 하려던 말을 잠시 삼켰다.그는 임지혜를 알고 있었다.예전에 모델이었던 것도, 차준호와 몇 년 동안 사귀다가 그가 다른 부잣집 여자랑 약혼하며 그녀를 찬 것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그 약혼녀가 임지혜한테 장애를 입힌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현덕배는 마침 이런 스타일에 환장을 하는 호색광이었다. 특히 가까이에서 보니 속이 더 근질근질해졌다.그 후 술이 몇 잔 들어간 그는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임지혜는 그의 나쁜 손을 쳐내며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하지만
서미연은 마흔이 넘었지만, 마치 세월을 비껴간 듯, 미모와 여성스러운 자태는 여전하였다. 특히 아몬드형의 눈매로 눈빛을 지그시 던질 때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요즘 밖에 애인이 생긴 이성철은 서미연과의 잠자리가 한동안 뜸했었다. 하지만 거울을 마주하고 그를 힐끔 쳐다보는 모습이 요염하게만 느껴져, 그는 저도 몰래 다가가서 아내의 허리를 감싸안고 성급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남편의 외도를 잘 알고 있는 서미연은 그의 손길이 반갑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손등을 툭 치며 가볍게 나무랐다.“왜 그래요, 대낮부터. 집에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그리고 나... 그거 와서 안 돼요.”좋다 만 이성철은 바로 아무 핑계나 대고 떠났다. 회사에 일이 있다고는 하였으나, 서미연은 그가 애인을 찾아가서 욕구를 풀러 갔다는 걸 알고 있다.......조은서는 서미연의 선물을 임지혜한테 전달했다.선물도 선물이지만, 서미연한테서 충분한 존중을 받았다는 점에서 임지혜는 더 감동하였다. 그 후 그녀는 요즘에 현덕배가 스토커처럼 자주 눈앞에 나타나 치근덕댄다는 얘기를 조은서한테 했다. 심한 행위는 없었지만, 그녀의 거처 앞에 자주 나타나 귀찮게 하는 걸 대처하는 것도 엄연한 에너지 소비였다.조은서는 생각을 한참 고르더니 한마디 뱉었다. “미친놈, 그런 것들은 한번 혼쭐이 제대로 나야 하는데.”임지혜는 조은서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 그녀의 뒷이야기를 기다렸다.조은서는 한동안 임지혜를 빤히 쳐다만 보았다. 진짜 무슨 궁리가 있긴 한 건지.“나한테 그 자식이 다신 수작 못 부리게 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잘 되면 매장 계약도 따낼 수 있을 거야. 근데 좀... 험할 수 있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떡할래?”조은서는 끝내 입을 열었다.“은서야, 난 뭐든지 해!”임지혜가 조은서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러자 조은서는 가까이 가서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현덕배 와이프가 엄청 성깔 있대. 그런데 또 일 처리는 되게 시원스럽다는 얘기가 있어. 어
유선우는 그녀들이 자취를 완전히 감출 때까지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어둑한 차 안에서 그는 공들여 재단 된 슈트 차림으로 천연가죽 좌석에 몸을 맡기고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항상 서늘하고 차갑기만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넘쳐흐르는 귀티를 감출 수 없는 그였다.기사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 물었다.“대표님, 별장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그것에 대답하려고 하는 타이밍에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어머니였다.유선우는 마디가 선명한 긴 손가락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무표정으로 귓가에 가져다 댔다. 말투는 역시나 서늘했다.“무슨 일이에요?”......유씨 집안 저택.화려한 가운으로 몸을 두른 함은숙은 지금 럭셔리한 이태리 패브릭 소파에 앉아 손에 사진 몇 장을 쥐고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그 사진에는 유선우와 조은서가 차 안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너 이젠 이혼했는데, 아직도 은서랑 이렇게 가깝게 지내니?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우리 집과 연을 맺으려는 명문가 영애들이 이걸 알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겠니?”함은숙이 못마땅한 듯 아들을 꾸짖었다.이쪽에서 유선우는 자세를 바꿔 앉으며 말이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꾸지람을 아들이 잘 받아들이고 있다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했다.“난 그 영애들 중에서 지우가 제일 맘에 든다. 집안, 학벌, 얼굴,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있어야지. 은서보다는 백배 나아... 너 뭘 그렇게 망설여? 너도 알 거 아니야, 한 그룹의 대표가 부인이 없다는 게 말이 돼?!”유선우는 피곤하다는 듯 눈두덩이를 누르며 말투는 여느 때보다도 더 차가워졌다.“그 여자들한테 아무 느낌 없어요.”“그리고 내가 말했죠. 내 사생활에 끼어들지 말라고요.”화가 치민 함은숙은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난 네 엄마야! 너 정말... 하, 네가 조은서한테 아무리 잘해봤자 뭘 어쩌겠니? 걔 고집 만만찮아, 그리고 너한테 맘이 진작에 식었어, 너랑 재혼 할 일은 절대 없을 거란 말이야...”이런 모자간의 대화를
밤이 점점 깊어져 갈수록 유선우는 마음이 축축하게 적셔지는 것 같았다.......로이드 빌딩 입구 옆의 이 600평 남짓한 가게는 이 건물의 제일 알짜배기 위치에 있다. 네모반듯한 구조라 디저트 가게로 쓰기에도 매우 적합하였다.내부 인테리어가 한창 진행 중인데 의뢰한 사무소가 비싸기로 유명하고 또 그만큼 칭찬도 자자하여 완공된 모습을 매우 기대해 볼 만하였다.임지혜와 조은서는 함께 곳곳을 살펴보고 있었다.한창 계산기를 두드리던 임지혜가 감탄이 나왔다.“1년 임대료가 4억이고, 인테리어비용이 10억. 와... 우리 언제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거야?”벽을 가볍게 만지며 조은서가 대답했다.“이 가게로 돈 버는 거 아니야. 그냥 보여주는 거지. 우리 브랜드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가맹하게 하는 거야. 나중에 다른 체인점이 생기면 이렇게 좋은 가게는 필요 없어. 이렇게 클 필요도 없고. 그땐 원가가 많이 줄 거야. 하지만 품질은 반드시 보장해야 해. 그건 우리가 꼭 관리해 줘야 하고.”임지혜는 알 듯 모를 듯 음, 하며 대답했다. 장사에 관해 그녀는 완전 문외한이었다.둘이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는 택시가 한 대 멈춰 섰다.이순영은 커다란 자단목 액세서리 상자를 손에 들고 택시에 내렸다.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손주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코끝이 찡했다.그리고 속으로 유선우를 원망했다.남편 노릇을 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혼까지 하게 되고, 이왕 이혼했으면 돈이라도 넉넉히 쥐여줄 것이지, 어찌했으면 여자 혼자 바깥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저 고생인가 하면서 말이다.아무래도 어제저녁에 덜 때렸지 싶었다.이순영을 본 조은서는 너무 갑작스러워 어리둥절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걸어 나가 이순영을 부축했다.“할머니,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그러자 이순영이 조은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네가 아직도 나한테 말하지 않는구나, 말을 안 해! 어제 선우한테서 다 들었다. 너희 둘 이혼했다면서. 그놈이 대체 무슨 짓을
유선우가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6시 반쯤이었다.이순영은 가게 문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임지혜가 사준 핫도그를 먹고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는 유선우를 보고 이 핫도그가 맛있다 하며 유선우를 보고 핫도그 가게를 차리라 했다.유선우는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유선우는 차 문을 닫고 어르신 옆으로 다가가 웅크리고 앉아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병원에서 뛰쳐나온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찾고 있는지 알아요? 결국엔 여기서 어린아이처럼 길거리에 앉아서 핫도그를 드시고 있군요.”유선우는 이렇게 말하면서 할머니의 핫도그를 가로챘다.할머니는 언짢아하며 다시 핫도그를 뺏어오며 말했다.“난 내 손자며느리를 보러 왔어!”“...”조은서는 말이 없었다.유선우도 잠깐 조용히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조은서 앞에 걸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 너무 멀리 서있지 않았으나 이혼한 부부 사이라 아무래도 좀 서먹서먹했다.조은서는 액세서리 보관함을 유선우한테 건네며 말했다.“할머니가 가져온 거예요, 다시 가져가세요.”하지만 유선우는 받지 않았다.유선우는 그윽한 눈길로 조은서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 안에는 조은서가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유선우가 입을 열었다.“그냥 갖고 있어! 할머니의 마음이잖아.”조은서는 그래도 다시 유선우한테 건네주며 말했다.“불편해요.”“그럼 어쩌면 안 불편해?”유선우는 조은서가 거의 자신의 품에 안길 정도로 액세서리 보관함과 조은서를 함께 꽉 사로잡으며 말했다. 조은서가 고개를 드니 유선우의 그윽한 눈길이 한눈에 들어왔고 유선우는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은서야 나한테 알려줘, 어쩌면 안 불편한 거야? ”할머니는 이러는 그들을 보다가 핫도그 한입에 체할 뻔했다.‘아주 영화를 찍고 있네!’임지혜가 생각에 잠겼다....마침내, 할머니는 차에 올랐다.차에 오를 때 할머니는 또 참지 못하고 유선우한테 잔소리했다.“은서를 좋아하면 다시 그 사람을 되돌려 오란 말이야! 건달
다음날, 조은서는 YS 그룹에 다녀왔다. 그녀는 진유라에게 물건을 건네주며 전해 달라고 하자 진유라는 머뭇거리면서 물었다.“아니면 대표님과 얘기해 보시겠어요? 요 며칠, 계속 사모님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던데.”조은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이미 이혼했는데요 뭐. 그럴 필요 없어요!”그리고 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진유라는 멀어져 가는 조은서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은서는 이젠 정말 손을 놓은 것 같았다.잠시 후 진유라는 맨 위층으로 올라와 유선우에게 물건을 건네주었다. 유선우는 부드럽게 상자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전해 달라고 한 말은 없어?”진유라는 고개를 저었다.“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그러자 유선우는 덤덤하게 말했다.“알았어. 나가봐.”진유라가 떠난 후 유선우는 계속 상자를 쓰다듬었다. 이혼 후 그는 조은서에게 잘못을 인정해 보기도 하고 아부도 떨어보고 선물도 주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조은서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를 잊었다!하지만 유선우는 그러지 못했다.조은서가 떠날 때 유선우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만약 이렇게 미치도록 그녀를 그리워할 줄 알았더라면 유선우는 이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은서와의 결혼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만약에라는 단어가 없다. 그들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을 돌이킬 수 없다!유선우는 가죽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손으로 불빛을 가렸다...너무 눈부셨다!...조은서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지냈다. 보름 후면 조은혁의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그녀의 가게 인테리어도 곧 완성될 것이고 임지혜는 그녀에게 미슐랭 셰프 세 명을 소개해 주었으며 시용 기간이 끝난 후 조은서는 아주 맘에 들어 했다.모든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토요일 저녁, 서미연 집에서 연회가 열린다. 서미연과 조은서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 조은서를 먼저 초대하여 음식 테스트를 시켰다. 조은서는 맛을 본 후 아주 훌륭하다고 평가했다.서미연은 개량 한복을 입었으며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