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유선우의 어머니 함은숙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함은숙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한 옷차림이었고 반짝이는 장신구를 온몸에 휘감았다.유선우는 손끝으로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 조용히 함은숙을 바라보았다.함은숙은 문 앞에 서서, 아들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사진 한 장에 시선을 옮겼다. 함은숙은 유선우의 엄마로서 유선우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함은숙은 따라오는 도우미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장씨 아주머니, 밖에서 기다리세요.”장숙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급히 나가며 문을 닫았다. 닫힌 문짝을 보고 함은숙은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젊은 시절 겪었던 남편의 배신과 불륜 때문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도 함은숙의 얼굴은 약간 까칠해 보였다. 그녀는 날이 선 눈빛으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도우미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은서가 허구한 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도 모자라 너랑 부부 싸움을 크게 해서 병원까지 오게 됐다면서? 유선우, 정신 차려. YS 그룹 작은 사모님으로서 이런 행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유선우의 눈빛에도 날이 서 있었다. 함은숙의 불평이 끝나자, 유선우가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왜 직접 혼내지 않으세요? 찔려서 그래요? 찔려서 감히 은서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할수 없으신 거죠? 어머니도 은서가 유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욕심도 관심도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신 거죠... 안 그래요?”말을 마치고 유선우는 사진 한 장을 함은숙 앞으로 내던져졌다. 함은숙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차갑게 웃었다.“이제 알게 된 거야? 그래서 마음이 아프기라도 한 건가? 어찌 됐든 간에 조은서는 지금 우리 유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야. 지켜야 할 품위라는 게 있단 말이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삼류 망나니들과 어울리면 우리 유씨 가문의 위신이 서지 않을 거다!”유선우는 입술
최고급 VIP 병실이었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가 유선우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 조은서가 베개에 엎드려 있는 사진을 보았다.함은숙의 말이 유선우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결혼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밤마다 그 아이를 노리개처럼 갖고 논 건 너 아니니? 그 아이가 예뻐서인가? 아니면 억눌렀던 너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인가...”유선우는 함은숙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 사진이야말로 가장 좋은 증거였다. 결혼 생활 3년 내내, 유선우는 조은서를 미워하면서도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다. 조은서를 3년 동안 괴롭힌 사람은 바로 유선우 자신이었다.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유선우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비 오는 밤,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별장으로 들어섰다.차가 멈춘 뒤에도 와이퍼는 계속해서 작동했다. 차 앞에 있는 금빛 여신 마크가 빗속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유선우는 하얀 셔츠를 입고 운전석에 타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도 눈이 부셨지만 도우미들도 모두 잠든 깊은 밤이라 아무도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2층을 보니, 소등된 상태였다.유선우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비속에 고요한 별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왜 집에 돌아왔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빨리 조은서를 만나고 싶었다.유선우는 심지어 지난 3년이 꿈이기를 바랐다. 당장이라도 위층으로 올라가서 조은서의 귀에 대고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조은서에게 그녀의 인생을 돌려주고 싶었다.유선우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와보니 조은서의 털끝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 죄악인 것 같았다.새벽 4시, 유선우는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들어갔고 방안은 매우 조용했다. 가을밤의 비는 기온을 최저로 낮추었고, 달랑 셔츠 하나 입은 유선우는 온몸이 오싹하고 추웠다.2층 안방은 오히려 따뜻했다.조은서는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곤히 잠들
유선우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깨어났을 때, 그는 조은서를 꼭 껴안고 있었고, 그녀의 몸에 있는 실크 잠옷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의 드러난 한쪽 어깨는 새벽녘의 한줄기 희미한 빛에 의해 은은한 윤기가 돌았다.그녀가 아직 그의 품속에 있다!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니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며 마음이 편해졌다.그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오전에는 회사에 중요한 입찰 회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일어나 간단히 씻고 옷을 가라 입은 후 넥타이를 매면서 침실로 걸어가는데, 조은서는 이미 깨어나 침대 머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녀는 눈을 들어 그의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다.몇 초 후, 그녀는 어젯밤의 일이 생각난 것 같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선우 씨, 사실이 어떻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 저도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우린 이제 앞을 내다봐야죠.”아침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췄다.그녀는 매우 이성적으로 말을 내뱉었다.“어젯밤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요.”유선우는 그에 아무 대꾸 하지 않고 그저 큰 침대를 향해 한 걸음 걸어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넥타이 좀 매줄래? 아무리 해도 잘 안되네.”마지막 몇 글자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이 순간이 그의 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몇 안 되는 따뜻한 장면이라서 그런가...의외로 조은서는 거절하지 않고, 예전처럼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넥타이를 매주었고, 그는 그녀가 매기 편하도록 몸을 기울여 낮췄다.그렇게 그들 둘은 서로의 숨결이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고 콧김이 짧고 급하게, 또 따뜻하게 서로의 얼굴에 떨어졌다.조은서는 손재주가 좋아 넥타이를 매우 보기 좋게 매듭지었다.그녀는 시선을 위로 올려, 또 조금 전의 일을 꺼내려 했다.“선우 씨, 우리...”그러나 그때 유선우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쉽사리 감싸 쥐었고, 그는 고개를 숙여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조은서는 아무래도 임지혜가 걱정되어 그녀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임지혜는 먼저 도착해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은서가 차를 몰고 오는 것을 목격했다.조은서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턱을 쳐들고 물었다.“왜 직접 운전했어? 너희 부잣집 사모님들은 다 기사가 있는 거 아니야?”조은서는 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앞으로는 운전해서 다닐 거야.”이 말이 나오자 임지혜는 그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정말 이혼할 거야? 나 요즘 유선우를 보니 꽤 널 잘 챙기던데.”조은서는 그런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아, 정색하고 임지혜한테 물었다.“너랑 차준호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혜는 멋쩍은 웃음 지어 보이며 머리카락을 뒤로 쓸며 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나랑 그 사람은 무슨 일이 더 있겠어. 그냥 남자 여자 사이 다 그러루한 얘기 아니야? 누굴 떠난다고 못 살 것도 아니고.”조은서는 말이 없었다.그러자 임지혜는 참지 못하고 아예 솔직하게 털어놨다.“얘기했잖아, 그 사람이 내 목줄을 틀어쥐고 안 놓는다니까. 나랑 그 사람이 완전히 틀어지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 은서야, 난 있지,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완전히 타락한 거지 뭐!”조은서는 이 말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임지혜는 마치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녔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녀도 임지혜가 차준호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다만 지금 차준호한테 약혼녀가 있으니, 그녀도 마음이 괴로워 애써 개의치 않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조은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10억 원.임지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은서가 유선우의 돈을 쉽게 받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럼 이 돈은... 조은서가 집 판 돈?.자신이 어떻게 이 돈을 가지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도 아니지.그러나 조은서는 그녀의 손을 누르며 약간 단단한 소리로 그녀한테 말했다.“내가 널 먹여 살릴게!”“내
조은서는 별장으로 돌아왔다.하얀색 마세라티가 멈추자마자, 고용인이 차 문을 다급하게 열어주며 매우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사모님, 방금 집에 사람이 왔는데 귀한 물건을 잔뜩 보내왔어요.”고용인은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주인님이 보낸 걸 겁니다.”고용인은 온전히 조은서를 위해 기뻐했다. 조은서가 끝내 참고 견뎌 좋은 날이 온 것 같아서 말이다.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결혼이 조은서한테 얼마나 잔인하고 숨 막히고 억울한지.조은서는 나무라지 않고 싱긋 웃었다.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거실에는 명품 브랜드의 정교한 박스가 가득 쌓여 있었고, 그것들은 각양각색이었다.귀한 옷, 진귀한 보석, 여자들이 좋아하는 하이힐... 심지어 엊그제 파리 런웨이 할 때 나왔던 맞춤 드레스까지 있었다.사치스럽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이때 유선우가 소리 없이 걸어 들어와 그녀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으며 부드럽게 물었다.“마음에 들어?”조은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그녀는 상자를 살짝 열었는데, 안에는 큐빅 새틴 소재의 하이힐이 매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예뻤다, 유선우의 취향에 감탄할 만큼.조은서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런 걸 안 좋아하는 여자도 있어요? 선우 씨, 이건 제게 주는 보상인가요?”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유선우도 당연히 그걸 알아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돌리며 안아서 소파 팔걸이 위에 앉혀놓고, 그도 바짝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몸을 그녀 다리 사이로 끼워 넣어 매우 부끄러운 자세를 취했다.그리고 빳빳한 양복바지의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둔 채 그녀와 몸을 살짝살짝 비볐다.조은서도 당연히 느낌이 있었다.그녀의 미간은 느슨하게 풀렸고, 유선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키스하려고 했다. 그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우 관능적으로 들렸다.“은서야, 우리도 즐거울 때가 있었어, 그렇지?”“그거 할 때 말이에요?”조은서는 몸을 뒤로 젖
말을 마친 유선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유선우가 조은서와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이유가 전부 그녀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유선우는 온전히 조은서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두 사람 역시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과는 그런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진심으로 원했다. 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의 말을 더는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유선우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백아현을 만나러 가려던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안 내려가?”유선우는 자기가 백아현을 만나러 가든 가지 않든 조은서는 전혀 관심 없어 하는 것을 알아챘다.유선우는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은서는 더 이상 유선우를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백아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백아현의 병세는 점점 더 위중해졌다. 그녀는 김춘희도 모르게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간호사에게 유선우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접대실에서 아주 오래 기다렸다.백아현은 접대실에서 위층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들을 수 있었다. 2층에는 유선우와 조은서만 있었기에, 그 소리는 분명히 두 사람이 낸 것일 수밖에 없었다.백아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자기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저녁 이맘때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선우 씨는 조은서와 잠자리를 갖는 건가...’마침 홀 문이 열리고 유선우가 들어왔다.백아현은 유선우의 하얀 셔츠 깃에 립스틱 자국이 묻은 것을 발견하고 얼굴이 핏기를 잃은 것처럼 창백해진 채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으로 유선우를 바라보며 비명에 가까운 애원을 했다.“선우 씨, 제발 부탁할게요. 저는 해외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B시에 남아서 치료받고 싶어요. 조은서 씨를 대신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고요.”유선우는 백아현을 데리고 온 의료진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했다. 조용해진 뒤에야 유선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 뜻이고 은
백아현을 떠나보내고 유선우는 2층 안방으로 올라갔다. 조은서에게 내려가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려고 했다.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밥 한 끼 함께 먹지 못했다. 유선우는 앞으로도 조은서와 잘 지내고 싶었다.침실 문을 열자, 그가 조은서에게 줬던 선물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구석에 쌓여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이 조은서에게 버림받은 것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에 유선우가 조은서를 어떻게 대했으면, 조은서도 똑같이 그런 방식으로 유선우를 대할 수 있었다.옷방에서 짐 싸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오자, 유선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조은서가 캐리어를 들고 짐을 싸고 있었다. 캐리어는 이미 옷, 액세서리와 그녀가 평소 쓰던 물건들로 가득 찼다.유선우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유선우는 조은서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작은 소파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윽한 눈으로 조은서를 보며 말했다.“어디 가려고?”조은서는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는 유선우를 올려다보면서 유선우가 꽤 자기를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조은서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뻗어 유선우의 미간을 살짝 밀며 말했다.“잘 다독이고 온 거예요?”유선우는 화가 났다. 그는 조은서의 손을 붙잡고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한 뒤 퉁명스럽게 말했다.“해외로 내보낼 거야. 해외에서 치료받게 할거야.”조은서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좋네요, 이젠 해외에 숨겨두고 만나려나 보네요?”유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내 말을 곡해하지 말아줘.”조은서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곡해요? 선우 씨, 선우 씨가 그 여자의 먼 친척이라도 돼요? 친구조차 아닌데 왜 계속 그 여자가 치료받을 수 있게 도우려는 건데요? 왜 계속 그 여자의 병상 앞을 맴도는 거냐고요... 둘이 몰래 껴안고 그렇게 다정하게 굴어놓고 인제 와서 저보고 곡해라지 말라는 거예요?”조은서가 사진 한 장을 유선우의 가슴에 밀었다. 유선우는 눈살
고용인은 다급하게 말했다.“맞아요! 짐들도 사모님이 직접 챙기셨어요!”“정말 제멋대로야!”유선우는 이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올랐는데 위층에 도착하고 시간을 보니 아직 기상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침대에 다시 누웠는데 베갯머리에서는 아직 조은서의 은은한 체향이 남아있어 그 향기는 유선우의 혼을 쏙 빼놓는 것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의 체향을 좋아했다.항상 깨끗하고 은은한 바디워시의 향기를 머금은 냄새였다. 하여 매번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에 머리를 파묻고 그녀와 바싹 붙어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유선우는 조금 견디기 버거웠다.씻고 옷을 갈아입을 때, 유선우는 조은서의 몸이 여리여리해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수요가 너무 큰 탓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조은서한테서 전화 한 통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조은서는 정말 자신을 냉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 했다....점심때 조은서는 H 시의 공항에 도착했다. H 시의 현장에 문제가 생겨서 협조할 사람이 필요한데 임도영이 혼자서 버거워서 조은서한테 한번 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조은서는 먼저 현장으로 갔다. 그녀는 책임자와 소통하여 초보적인 협상을 진행한 후 호텔로 가서 입주했다.H 시의 월드 호텔 싱글 스위트룸.조은서는 짐을 풀고 임도영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이 진행된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도영 선배,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 사람들이랑 초보적으로 협상을 마쳤어요. 아마도 좋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임도영은 아주 기뻐했다.“제가 제대로 된 분한테 부탁했네요! 역시 은서 씨가 나서면 다 해결되네요. 정말 큰 도움을 줬습니다.”조은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두 사람은 얘기를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서야 조은서는 배가 고픈 느낌이 들어 시간을 봤는데 벌써 저녁 5시였다.통으로 된 유리 밖에는 하늘이 황혼에 물들어가 아주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