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임하민은 추태를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참으며 진별이와도 작별인사를 했다.진별이는 통 크게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를 임하민에게 나누어주었다.그에 임하민은 나지막하게 말했다.“고마워.”임하민의 말을 듣고 난 진별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밥을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밥을 잘 먹어야 빨리 커서 엄마를 지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아서....저택을 나가자 푸르른 잔디와 그 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이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는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도 하나 있었는데 유이준은 그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서른 살 남짓한 나이의 남자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잘생겨 보였다.그런 유이준을 오래도록 원해왔던 임하민은 오늘에서야 모든 건 저의 짝사랑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유이준도, 유 씨 집안사람들도 자신이라면 치를 떨지만 그냥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뿐이었다.임하민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걸 명확하게 알게 된 지금은 관계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인 것 같았다.임하민이 다가가자 마침 담배를 다 피운 유이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시작했다.“내가 하는 말이 너한테 상처가 될 걸 알지만 그래도 이런 건 확실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나 사실 너 좋아한 적 없어. 그때 너한테 헤어지자고 한 건 별이 때문만은 아니야. 나 은영 씨 좋아해, 그게 아니면 내 조건에 이렇게 오랜 시간 혼자인 게 말이 안 되잖아. 진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겠지.”달빛이 드리워진 임하민의 표정은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어두워져 있었다.“그럼 나는 지금까지 은영 씨 대타였던 거네, 그저 네가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임하민의 말에 돌아오는 게 유이준의 침묵이라 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아파왔다.한동안의 정적 끝에 유이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미안해, 전에는 내가 남녀 사이의 거리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은영 씨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 앞으로는 우리 거리를 좀 두자.”임하민의 감정이 격해지자 유이준은 기사더러 그녀를 데려다주라고 하고는 흰색 차
샤워를 마친 진안영은 젖은 머리를 닦아내고 베란다에 서서 불어오는 밤바람을 만끽했다.진별이가 유이준 집에 가 있으니 전과 달리 자유시간이 많아져서 그 시간에서 카페도 가고 진안영과 함께 쇼핑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하지만 진은영은 딱 거기까지였다.임하민 일이 있고 나서 진은영은 생각이 이리도 다른 사람끼리 함께 있어 봐야 부딪치기만 할 것 같아 유이준과 확실히 선을 긋고 원망을 떨쳐버리고 자신도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그래서 2, 3개월 동안 둘 사이에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었다.진은영이 이런 상황에 만족하고 있을 때 진안영과 조진범이 그에게 남자를 하나 소개해줬는데 유능한 디자이너에 성격도 좋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26으로 진은영보다는 한참 어린 나이였다.진은영은 저런 남자를 만나는 건 어린 애한테 못 할 짓인 것 같아 망설였는데 진안영이 남자는 집안도 좋은데 심지어 막내라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회사의 지분 15%만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자꾸 진은영을 부추겼다.진안영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던 진은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을 훑어보았다. 도대체 어디가 매력적이라서 젊고 조건 좋은 남자가 저에게 흔들리는 것인지 진은영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그때 진은영의 눈에 슬랙스를 입은 채로 검은색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유이준이 들어왔다.어두운 밤하늘과 대비되게 유난히 하얗고 맑은 피부를 가진 유이준이었다.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그가 뱉어낸 담배 연기를 헤집어놓았고 유이준의 머리칼도 바람에 따라 흩날렸다.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모습에 진은영은 저도 몰래 유이준을 주시하고 있었고 때마침 고개를 든 유이준은 그런 진은영과 눈을 맞추었다.유이준은 손을 귓가에 가져다 대며 진은영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지만 진은영은 고개를 저으며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화도 못 하고 그저 유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런 진은영의 뜻을 알아차린 유이준도 아직은 자신에게 다가올 준비가 채 되지 않은 그녀를 다그치지 않고 마
화려한 룸 안에는 두세 명의 손님뿐이었는데 유이준이 그중 하나였다.진안영은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 아까부터 돌아다니고 있었고 알아주는 아내 바보인 조진범은 그녀가 힘들까 봐 걱정스레 바라보며 도와주고 있었고 와 있던 남자 손님 셋은 앉아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그때 진은영이 마침 안으로 들어오자 한 사람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마침 사람 하나가 모자랐는데 은영 씨도 같이해요.”그 말에 유이준이 들고 있던 카드를 내려놓자 그 사람은 빠르게 호칭을 바꾸어보았다.“진 대표님?”그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팔꿈치로 그를 치며 눈치를 주었다.“형수님이라고 불러야지.”그에 유이준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한마디 했다.“재미없어.”그런데 조진범이 또 눈치 없이 진은영에게 머그잔을 건네주며 유이준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말을 꺼냈다.“호칭은 똑바로 해야지, 우리 처형 남자친구 있어, 26살 된 미소년이라고.”조진범이 유이준 들으라고 그러는 걸 알기에 잘못한 것도 없었던 진은영은 굳이 해명을 하지 않고 그의 손에서 머그잔을 받아들며 고맙다는 말만 했다.그에 유이준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조진범을 보고 있었고 조진범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럼 잘 놀다가.”조진범이 나가자 진은영을 바라보고 있던 유이준의 자신의 옆자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진은영더러 앉으라고 했다.진은영도 거절하지 않고 앉았는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능수능란하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보니 유이준은 또 뭐가 불만인지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은영의 상대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유이준, 오늘 우리 술만 마시는 건데 왜 혼자서 질투를 하고 있어. 그러다가 은영 씨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기라도 하면 아주 오늘 상 엎는 거 아니야?”그에 유이준은 낮은 음성으로 차분하게 대꾸했다.“안 올까 봐 이러는 거야.”어이없는 대답에 진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유이준 씨, 내 일이 당신이랑 아무 상관없어요.”“그래요?”카드를 내고 진은영을 바라보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진은영은 계속 손을 씻으며 담담히 말했다.“이준 씨 생각은 안 나더라고요. 계속 나이 얘기하는 거 보니까 이준 씨도 나이에 신경이 많이 쓰이나 봐요. 왜요, 몸이 안 따라줘서 이제는 돈으로 사야 해요?”유이준은 계속 담배를 피우며 여전히 못된 말만 내뱉는 진은영에 고개를 저었다.연하가 저런 여자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아니면 그놈 앞에서는 저런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유이준의 기분은 순식간에 나빠졌다.유이준은 자신과 진은영 사이에 아이가 있으니 소유욕이 더 불타올라 진은영이 결혼을 몇 번을 한대도 그녀는 자신의 여자이고 그녀와 자신만이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했다.조명은 어두웠고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어 유이준은 진은영의 몸매에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원피스는 옆이 조금 트여있었고 총 6개의 금색 단추가 달려있는 우아하면서도 섹시하기까지 한 옷이었다.그런데 조진범의 생일파티를 위해 이렇게까지 차려입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잡친 유이준은 팔을 뻗어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미간을 찌푸리는 진은영에 유이준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답했다.“나쁜 짓 하는 거예요.”빠르게 진은영을 세면대에 앉힌 유이준은 진득한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부터 몸 곳곳을 훑어보며 마지막으로 하얀 그녀의 다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인 진은영은 햇빛을 싫어해 다리가 하얗다 못해 빛이 나고 있었다.그 탄력 있는 허벅지가 눈에 들어오자 아까 룸에서부터 간질거렸던 유이준은 더는 참지 못하고 진은영의 다리를 주무르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옷은 왜 이렇게 야하게 입었어요, 아까 방에서 다들 은영 씨 다리만 보고 있었어요.”“이준 씨 말고 그렇게 변태 같은 사람은 없을걸요?”“정말 남자를 모르네요.”유이준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진은영은 물론 아무 의도도 없었겠지만
밖에 나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은 유이준은 진은영을 데리고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그녀의 입술을 마음껏 탐했다.작은 감각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숨결을 나누다가 마침내 멈춘 유이준은 여전히 진은영과 이마를 맞붙인 채로 물었다.“왜 나 안 밀쳐내요? 나 싫어하잖아요.”일부러 괜찮은 척하지만 유이준과 몇 년이나 만난 진은영은 그도 자신의 남자 문제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저번에 유이준이 박준식과의 관계에 대해 오해할 때는 화가 나서 부정도 안 했는데 오늘에는 다른 사람이 그 이야기를 술안주 삼으니 진은영은 유이준에게 만큼이라도 제대로 해명을 해주고 싶어 그의 팔뚝을 잡으며 말했다.“나도 다른 남자랑 한 적 없었어요.”...그 말이 너무나도 기뻤던 유이준은 진은영을 꽉 껴안더니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허리를 지분거리며 뜨거운 숨결을 담아 말했다.“왜 진작 얘기 안 했어요? 저번에 얘기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도 않았을 텐데.”마치 먹잇감을 탐내는 늑대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하는 유이준에 그가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눈치챘지만 진은영은 오늘만은 그에게 따라주고 싶었다.유이준의 성격으로 아까 그 일을 참아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고 또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진은영을 감싸주기까지 했기에 보호받고 싶어 하는 여자 중 한 명인 진은영 또한 그런 유이준의 행동에 기분이 묘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이준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바로 연하남과 연락을 끊으라고 질투 난 남자처럼 졸라댔다.“걔랑은 시작도 안 했어요.”그에 진은영은 벽에 기댄 채로 유이준을 올려다보며 말했지만 그는 믿지 못하고 진은영의 핸드폰으로 직접 연하남에게 문자까지 보내고 나서야 진은영을 데리고 나갔다.목적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진은영도 굳이 묻지 않았다.뜨거운 여름날 밤, 진은영도 한 번쯤은 호르몬에 지배된 밤을 느껴보고 싶었다....차에 올라탄 뒤 진은영은 유이준이 저를 호텔이나 집으로 데려갈 줄 알았지만 차는 예상외로
진은영은 모든 걸 다 잊고 유이준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그때 갑자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유이준은 서둘러 진은영은 안아 차에 앉혔다.비가 스쳐 지나간 유리 때문에 그걸 사이 두고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얼굴이 다 모호해졌지만 진은영의 목에 걸린 반지만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흔들거리고 있었다....한편 유이준이 나가버린 룸 안에서는 아인이 조진범의 팔뚝에 매달리며 애원하고 있었다.“오빠, 부탁해요... 제발 이준 오빠한테 말 좀 잘해줘요. 내가 어떻게 은영 씨 난처하라고 일부러 그랬겠어요? 난 다 이준 오빠 걱정돼서 그런 건데...”조진범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밀쳐내고 말했다.“형이 너한테 손 안 댄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회사 가면 정리 제대로 하고 나가, 내가 그런 말을 했어도 형이 그냥 안 넘어갈 텐데 넌 어쩌자고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해.”“난 너 못 도와줘, 돕고 싶지도 않고.”“은영 씨 내 처형이야.”“나랑 형은 너 참아준 걸로 이미 할 만큼 했으니까 당장 나가!”...아인이 나가고 나서도 룸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조씨 집안과 유씨 집안을 동시에 건드렸으니 앞으로 이곳에서 아인이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다들 유이준과 조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심기를 거스른 아인의 사업을 선뜻 도와줄 수는 없는 처지였다.앞으로 그녀는 매일 접대를 하고 술을 마셔도 제대로 된 계약 하나 건지지 못할 건 당연한 일이었다.진은영의 동생이 조씨 집안에 시집가고 그녀 자신은 유씨 집안의 아이를 낳아주기까지 했는데 그런 사람의 사생활을 술안주 삼았으니 무사하길 바라는 게 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건 말건 조우현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조씨 집안 차남이어서 조은혁이 그에게 회사를 맡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자원을 제공해주어 지금은 직원만 2000명 거느리고 있는 회사의 대표로서 성현준과 함께 인수합병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성현준은 재혼한 뒤에 아내와 해외로
밤이 깊어지자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도 하나둘 꺼져갔다.이 늦은 시각에 검은 벤 하나가 라운지 앞에 멈춰서더니 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는데 그 중심에는 순백의 드레스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낸 젊고 예쁜 여자가 하나 있었다.그 다리는 조우현도 안아본 적이 있는 다리였다.불타는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때는 저 다리를 잡고 온 밤을 움직였었는데.역시 그 여자는 조우현의 전 여자친구, 아니 사랑으로 사기를 친 유설이었다.유설은 자신이 원하던 대로 돈도 얻고 연예인도 되었지만 조우현은 2억을 대가로 다시는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기에 여기저기서 청순한 척하는 여자의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왔다....유설을 너무나도 뚫어지게 쳐다보는 조우현에게 직원이 다가오더니 주의를 주며 말했다.“사진은 찍으시면 안 돼요.”매니저가 조우현의 핸드폰을 확인하려 하자 소란스러운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유설은 오랜만에 다시 보는, 이미 성숙한 남자가 되어버린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얼굴에 넋이 나간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조우현.”하지만 유설이라는 대스타의 매니저로 살아온 여자는 유설의 말도 못 듣고 거리낌 없이 조우현의 핸드폰을 확인하려 했고 유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조우현은 또 순순히 핸드폰을 내주었다.비밀번호도 없어 바로 드래그를 해보니 보이는 그의 바탕화면에는 한 여자가 젖은 머리로 호텔 방에 누워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야시시한 그 사진에 매니저는 우쭐대며 말했다.“딱 봐도 이상한 사람이네, 이런 사진을...”하지만 곧바로 매니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 이유는 바로 사진 속의 여자가 4년 전, 18살쯤 된 유설이었기 때문이다.여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든 조우현은 바로 유설 앞까지 걸어가더니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을 텐데. 왜, 또 돈 필요해서 몸이라도 팔러 왔어?”창백해진 얼굴의 유설은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입이 선뜻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를 도우려던 매니저도 조우현의
원래 조진범과 진안영은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조우현에게 발생한 일 때문에 부득이하게 조씨 가문 저택으로 향해야 했다. 조진범은 주차를 마치고 옆에 있는 진안영을 보며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조금 있다 네가 가서 우현이랑 얘기 나눠. 걔가 지금까지 크면서 여자 친구도 몇 못 사귀어봐서 아마 많이 속상해할 거야.” “네.” 진안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련님께서는 아직 완벽하게 잊지 못한 것 같아요.” 조진범은 운전대에 두 손을 다 올려놓고 있다 진안영의 말에 피식 웃더니 말했다. “정말 그렇다고 해도 걔는 인정하지 안 할 거야. 이 일은 걔들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자. 이젠 우현이도 마냥 어린애는 아니잖아.” 짤막한 대화를 마친 부부는 이내 차에서 내렸다. 부부가 탄 차의 앞에 자신의 차를 세웠던 조우현도 마침 차에서 내리자 진아현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직 1살 반밖에 되지 않은 진아현이 휘청거리며 조우현에게 다가가자 그는 허리를 숙여 조카를 안을 준비를 했다. 진아현은 삼촌의 품에 안겨 얼굴을 마구 비비며 조우현의 목을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뒤에서 걸어오던 조진범과 진안영이 보이자 진아현은 냉큼 내려와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조진범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딸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고 그렇게 모인 몇 사람은 다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진안영은 준비한 케이크를 꺼내 조심조심 자르더니 제일 먼저 조은혁 부부와 진아현에게 건네줬고 조진범은 제일 마지막에 줬다. 애초에 달콤한 디저트나 케이크를 별로 즐겨 먹지 않는 조진범이지만 날이 날인만큼 몇 입 먹고는 옆에 있는 진아현을 챙기기 시작했다. 조은혁은 다정다감한 아빠가 돼버린 조진범을 흐뭇하게 쳐다보다 작은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우현은 케이크를 빠른 속도로 먹어 치우고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고 조진범은 그런 조우현을 발견하고는 진안영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준비라도 한 듯 진안영은 과일 한 접시를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