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예상대로, 신호연은 이날 밤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덩달아 나도 온 밤을 뒤척이며 잠에 들 수 없었다.새벽에 이미연이 계획 성공이라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이번에 증거를 확실히 잡았다고 했다.내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뒤엉켰다. 한순간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비록 모든 게 내 계획대로 순리롭게 진행되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이 순리로움이 무엇을 암시하는 건지 모르겠다.나는 집안을 치우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서도 신호연을 보지 못했다. 이제서야 깨달은 것 같다. 내가 이 판을 짜지 않았더라도, 신호연은 이미 점차 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는 것을...나는 재차 나를 일깨웠다. 활을 쏘는 데 화살촉이 없다 해도 싸움은 계속 이어 나가야 하는 법이다. 도중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건 이미 돌아갈 길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이어서, 나는 서강훈더러 그에게 전화하라고 시켰다. 천우 그룹 쪽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고 지금은 두 곳만 결정됐고 신흥과 다른 한 개 회사는 아직도 소식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달하라고 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분명 회사로 달려올 것이다. 신호연은 야심이 엄청난 사람으로서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같은 시각, 실시간 검색어에는 이미 몇 장의 사진이 풀렸다. 제목은 ‘J 회사 사장 추정, 모 여성과 모텔에서 잡혀... 싸우던 여성 중상으로 병원에 실려 가...’였다.사진은 또렷하지 않았지만, 모자이크 처리로 봐서는 발가벗은 장면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싸운 흔적이 담긴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신연아가 뒤에서 힘 좀 쓴 모양이었다.진후빌딩 로비에는 이미 기자들이 쫙 깔려있었다.한 시간 후, 신호연이 몸을 사리며 회사에 나타났다.나는 시간을 재며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핸드폰을 들고 노발대발하며 신호연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신호연이 풀이 죽은 채로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엔 서강훈이 서 있었다. 아마 서강훈이 이미 나의 지시대로 할 소임을 모두 한 것 같았다
나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걸 예상하지 못했던지라 너무 놀랐다.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신호연의 얼굴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재빨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그 사람 도혜선 내연남이야!”예상 밖으로 빠른 신호연의 눈치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여보, 제발 나 좀 믿어줘. 마지막으로 나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줘!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천우 그룹과의 프로젝트를 따내는 것이잖아. 이런 작은 일에 목매다가는 프로젝트도 놓칠 수 있다니까. 당신이 직접 두 손으로 세운 신흥 건재잖아. 그런 신흥 건재가 더 크게 발전할 기회를 당신도 놓치기 싫잖아. 남편인 내가 실수할 때 당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지!”신호연은 나를 꼭 끌어안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내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신호연의 가장 비겁한 점을 말하자면 바로 내 약점이 무엇인지 꿰뚫고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신호연을 밀어내고는 천천히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나는 맘속으로 되뇌이면서 자신을 경고했다.‘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뎌서는 안 돼.’신호연이 지금까지 신연아를 너무 철저히 보호하고 있는 탓에 아무런 약점도 잡을 수 없었다.나는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이번 일에 관한 모든 기사를 다 찾아보았다. 확실히 놓친 점이 있었다. 바로 목격자의 신원이 잘 보호되어 공개되지 않은 것이었다.나는 이미연을 시켜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기사 댓글 창에는 목격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댓글이 달렸다.보잘것없어 보이는 댓글 하나가 수많은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조회수는 순식간에 상승했고 관련 기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도 부단히 많아졌다. 이게 바로 구경꾼들이 가지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신호연이 바로 과한 호기심에 피해를 보게 될 고양이었다.신호연 사무실에서 제때 나왔기에 다행이지 아니면 기사를 본 직원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
신호연은 말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감이 없다는 듯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손에 있던 주방일을 계속하면서 예전처럼 주동적으로 신호연을 위해 해결책을 내주지 않았다. 피해자인 내가 신호연을 위해 해결책을 찾아준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바로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은 동시에 멈칫했다.신호연이 걸어가서 문을 열어보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이미연이었다.이미연은 있는 힘껏 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신호연을 비난했다.“신호연, 넌 진짜 사람이 아니야! 널 뭐라고 욕하면 내 속이 시원할까, 한심한 자식!”신호연은 이미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연은 예전부터 성격이 털털했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면서 사는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미연과 내가 절친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신호연은 이미연의 이런 행위가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신호연은 고개를 숙이고는 잘 보이기 위해 성심성의껏 반성하는 모습을 드러냈다.“내가 너한테 몇 번이고 경고했잖아, 주의하라고, 밖에서 이 여자 저 여자 건들며 다니지 말라고! 지금 경고할 때마다 네가 나한테 한 다짐이 다 진심이 아니었다는 거잖아!”이미연은 화를 내면서 끝없이 신호연을 비난했다. 날 위해 화풀이해 주려는 의도가 선명했다.“넌 지아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지아가 너 따라 이 먼 서울까지 올라와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오로지 너만 바라보며 사는데 넌 그런 짓 할 때 지아가 속상해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니?”“...미안해.”신호연은 머리를 숙이고는 눈치를 보며 사과했다.“눈이 먼 것도 아닌데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녀. 지아가 네가 밖에서 만난 그 여자들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데!”“한지아, 너도 너무 해. 이런 큰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나한테 연락조차 안 할 수 있어? 지금 서울에 퍼지고 퍼진 게 신호연이 바람피웠다는 소문인데 이걸 어떻게 참아? 한지아, 날 절친으로 생각하는 거 맞아?”이미연의 예상치 못한 행
주문한 배달 음식을 받은 후 이미연은 집주인처럼 얼른 와서 밥 먹으라고 나와 신호연을 재촉했다.“빨리 와서 밥 먹어.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챙겨 먹어야지. 한국인은 밥심인 거 몰라? 배부터 채우고 생각해. 그리고 한지아, 지금 네 꼴을 봐봐. 사람이 나뭇가지처럼 말라 있잖아.”이미연은 내가 속을 엄청 많이 태워 몰골이 말이라는 티를 팍팍 냈다.신호연은 나를 힐끔 보더니 음식을 짚어 내 밥그릇에 담아줬다.“신호연, 더 큰 피해를 보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일을 수습할 방법을 찾아. 지금 지아뿐만 아니라 너희 회사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 그렇다고 회사가 망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이미연은 정확히 신호연의 약점을 명중했다.“이런 여론이 퍼지기 시작하면 항상 회사에도 영향이 가는 법이야. 신흥 건재가 얼마나 힘겹게 세워지고 또 너희가 신흥 건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지 다 봐온 사람으로서 하는 충고야.”“나도 생각했었어, 하지만...”신호연은 더는 참지 못하고 나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지아가 속상해할까 봐 얘기 못 했어.”“어휴... 쓸데없는 변명은 그만하고 얼른 말이나 해. 지아가 속상해하는 걸 걱정하면서 바람을 피워?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바람을 피지 말았어야지.”이미연은 신호연을 향해 팩폭을 했다.신호연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검은 물감처럼 어두워졌고 어금니를 깨물면서 화를 참고 있는 듯했다. 이를 깨문 힘이 얼마나 컸는지 안면 근육이 다 일그러졌다.“지아도 나랑 말하지 않아서 너희 회사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 아니, 한지아...너 입에 자물쇠라도 걸어뒀어? 내가 네 절친이 맞긴 해? 어쩌면 나랑 한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이미연은 불만을 토로했다.“아무튼, 이 시국에 제일 급하고 제일 중요한 건 이번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하는 거야.”이미연은 신호연을 보면서 물었다.“신호연, 네 생각도 한번 말해봐.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우리도 빨리 해결책을 생각해 내야지! 아무리
이미연이 내 쪽을 한번 힐긋 쳐다보자 나는 그녀를 보며 눈을 깜빡이었다. “지아야, 너도 너무 화내지는 마! 이미 일은 이렇게 됐고... 함께 이겨내 나가자.” 그녀가 따뜻하고 친절한 말투로 나를 위로하자 나의 눈시울이 붉어져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서강훈에게 카톡을 보내고 한 번 더 세수를 마친 뒤 다시 나갔다. “너희가 말해줘. 나 어떻게 할까? 나... 진짜 뻔뻔하게 할 거야.”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눈물이 또 흘러나왔다.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신호연의 전화가 울렸다. 깜짝 놀란 그는 재빨리 누구인지 확인한 후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안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가 바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차갑게 말을 뱉어냈다. “알았어!”전화를 끊은 뒤 그는 고개를 푹 떨구고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자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는 이미연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잠시 후 신호연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급하게 말을 꺼냈다. “나 잠깐 처리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 이미연, 지아 좀 챙겨줘.”“뭐 하러 가는데?” 나는 일부러 살짝 불쾌한 말투로 물어봤다.“걱정하지 마. 금방 올 거야! 응?”그는 나를 달래고는 급하게 뒤 돌아 나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나는 얼른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음만 들려 올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이미연은 귓속말로 소곤소곤 물어보았다. “쟤 얘기도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디를 가는 거야? 설마 이렇게 그냥 가는 건 아니겠지?”“걱정하지 마. 내가 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둔게 있으니까.” 나는 다 계획이 있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누군가 내 전화를 받았고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하는 대화 모두 다 녹음해 줘요!”이미연은 입을 딱 벌리고 물었다. “... 한지아, 설... 설마 이거 다 네가
그녀는 ‘쾅’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녀는 정말 흉악한 모습을하고는 나에게 소리쳤다. “한지아씨, 정말 자유로워 보이네요. 한가하게 여기서 남을 부려 먹으면서 사모님 행세나 부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나는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때 서강훈이 들어오면서 그녀를 말렸다. “아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 해결하면 안 돼요? 보는 눈이 이렇게나 많은데... 회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요!”“무슨 영향을 끼친다고 그래? 저 사람이 그런 걸 무서워할 거 같아? 쟤가 뭔데?” 신연아는 입이 정말 거칠었다.나는 유리창 너머로 거실 사무실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나는 서강훈에게 말했다. “저들을 조기퇴근 시켜버려요. 지금 당장!”서강훈은 서둘러 나가 구경하는 직원들을 해산시켰다. 그들은 모두 마지못해 꾸물대며 사무실을 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2시간 미리 퇴근시키는 게 아니라 20분만 앞당겨도 부리나케 사무실을 나가던 사람들이였는데...나는 여유롭게 앉아서 신연아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계속 말해봐. 아까 한 말들 계속 말해보라고.”눈치가 빠른 서강훈은 만일에 대비해 우리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신연아는 도대체 무슨 소문을 들은 건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너 진짜 내 앞에서 가식 작작 떨어. 이렇게 큰 사달이 났는데 넌 그냥 손 뻗어서 돈만 가지면 다야? 혹시 네가 수작 부린 건 아니야? 도대체 우리 오빠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나는 이제야 그녀가 왜 화났는지, 무엇을 보고 그렇게 달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방금 입금된 저축금 때문이었다.“너도 사태가 심각하다는걸 아나 봐? 그럼 도대체 이 사태는 누가 냈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히 그녀에게 되물었다. “사태가 아무리 심각해진다 해도 이건 우리 부부 사이의 일이야. 네가 뭔데 그리 급해해?”나는 여전히 의자에 평온하게 앉아
“됐어! 다들 조용히 해!” 신호연은 또 나를 향해 소리쳤다.“너 또 쟤 편드는 거지? 넌 정말 오빠로 딱 맞아. 맨날 자기 품 안에 숨겨주고, 사사건건 쟤가 하라는 대로 하고... 나는 쟤가 네 여동생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야. 딱 보니까 쟤가 네 아내네. 쟤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잖아!”“한지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언제쯤이면 좀 철이 들고 관건적인 일을 위해 고려할거야?” 신호연은 순간 얼굴색이 변했고 나를 세게 밀쳐냈다. 이에 나는 살짝 비틀거렸고 그걸 본 서강훈이 깜짝 놀라서 나를 붙잡아 주었다. “지아누님...”나는 다시 똑바로 서서 신호연을 바라보았다.“오빠, 오빠도 봤지? 쟤는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자기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니까... 언제 한 번이라도 오빠를 걱정해 준 적이 있어?”신연아는 신호연의 뒤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한지아, 기억해. 신흥은 우리 신씨 가문의 회사라. 법인은 신호연이고 당신이랑 아무 상관이 없다고. 오늘 이후 신 씨 가문의 회사 빼앗을 꿈도 꾸지 마. 당신이 창시자라고? 풉.”“신호연, 이거 네 뜻이야? 응?” 나는 신호연을 바라봤다.신호연의 얼굴색은 누렇게 변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어금니를 꾹 깨물고 나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애써 눈물을 참았다.“신호연. 만약에 쟤 말대로 네가 정말로 배은망덕하고 흉악무도한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내가 하는 말 똑바로 들어. 내가 처음에 신흥을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 난 다 기억하고 있어. 나보고 지금 또 신흥을 하나 더 세워라 해도 난 똑같이 세울 수 있어. 나는 걔가 네 여동생이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관심없어. 다시 한번 내 앞에서 떠들어 대면 네 여동생이 절대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결과를 보게 될거야!”그러고는 지금도 신호연 뒤에 붙어서 의기양양해하는 신연아를 보며 말했다. “신연아,너도 잘 들어. 날 너무 얕잡아 보지마. 신호연 아직 내 남자야, 네가 그렇게 급해봤자 소용이 없어! 네가 어떤 물건이든 어떤 사람이든 가지고 싶거든 나라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산들로 에워싸여 있고, 강줄기가 굽이굽이 흘러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여기는 어디예요?” 나는 조심히 물어봤다.“도원경이에요.” 그의 굵은 목소리 톤은 매우 매력적이고 인상 깊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사람이 곁에 있어 나는 안정감을 찾은 것 같았다. 나의 심장이 속도를 더해 가며 가쁘게 뛰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혼이 쏙 빠진 것처럼 자아가 없어지는 것 같고 무조건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최근에 나의 삶은 평범한 것 같지만, 위태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곧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한테서 버림받게 될 여인인데, 그 와중에 또 다른 사람한테서 의문의 감정이 들다니 정말 염치가 없다. 눈에 들어온 건 끔찍하리만치 잘생긴 얼굴이었다. 시선을 확 잡아챌 정도의 날렵한 얼굴 옆선과 강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사람을 현혹한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는 틀림없이 바보같이 멍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내 얼굴의 잔 머리카락을 살며시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살이 더 빠진 것 같네요. 너무 마르면 저녁에 사람들이 귀신이라고 착각하겠어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손을 피해 아무 일 없듯이 가뿐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여신은 몸무게가 백을 넘어서지 않는데요! 나름대로 여신관리법이에요.”내 말에 나 자신도 소름이 돋았다. ‘여신 소리하고 있네. 주제 파악도 잘 못 하는 상황에...’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곳의 공기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여기 너무 아름다워요!”먼저 전망대에 올라가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서울에 몇 년이나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예전의 저는 바보와 같이 남을 위해서만 힘들게 살아왔는데,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