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온 전화에 너무 당황스러웠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거절 버튼을 누르려고 했으나 손이 미끄러져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 배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 통화 첫마디가 불평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나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늦다고? 안 받으려고 했거든!내가 대답이 없자 배현우는 계속해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무... 무슨일?” 나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자신 없는 듯 낮은 소리로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요.” 배현우는 예민한 말투로 계속 묻고 있었다.“그러면 기분이 좋아야 할까요?” 인제야 연락해 놓고 내가 연락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드리길 바라냐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었다.“왜 여태껏 전화 한 통이 없어요. 내가 귀국한 걸 알고 있었잖아요!” 배현우는 오히려 당연한 듯 나에게 불평을 토로했다. 배현우의 뻔뻔한 태도에 기분이 좀 상했다. “귀국하신 분이 휴대전화에 뜬 부재중 전화는 못 보셨나 보네요. 항상 본인만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드릴까요? 이혼녀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지만, 본인 주제는 잘 알고 있더든요.”말을 내뱉는 순간 내 표현이 너무 과했다는 걸 느꼈다. 무의식 속에 혀를 깨물었고 진한 피비린내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다시 얘기하려는 순간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 선 채로 휴대전화만 뚫어지게 바라봤다.무슨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흐렸다! 개였다! 날씨도 이것보다는 덜하겠네! 전화는 항상 먼저 끊고 말이야!손에 있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팽개쳐 버리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대체 뭐냐고? 항상 사람 마음을 헤집어 놓고 본인만 끊으면 다냐고!이틀 뒤, 장영식은 터벅터벅 걸으며 회사로 들어왔다. 내 눈앞의 사람이 장영식임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수염도 며칠 깎지 않았는지 지저분했고 얼굴도 햇볕에 꺼멓게 타 있었다.“영식
오늘 저녁 우리 집은 그야말로 명절 분위기였다. 이곳으로 이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보낸 즐거운 시간이었다. 부모님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도 정말 오랜만이다. 저녁 내내 우리 모두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아빠는 맥주 한 캔까지 원샸했다. 혹시나 많이 취하셨을까 봐 걱정됐지만 아빠는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 거실로 자리를 옮겨 과일까지 함께 즐기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눴다. 시간이 늦어지자, 장영식은 집으로 가려고 준비했고 나는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자청했다. 장영식의 집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집을 나와 같이 걷고 있는데 장영식이 먼저 말을 건넸다. “배가 너무 부른데 좀 걷지 않을래? 유빈이 얘기 좀 해봐.”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골드 빌리지 대문을 나와 가로등 불빛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유빈이의 일에 대해 전부 얘기했다. 장영식이 회사에 들어온 이상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 파트너로서 회사 일에 대해 숨길 이유가 없다. 한참 얘기하며 걷고 있는데 외투 주머니에 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나보다 먼저 벨 소리를 들은 장영식이 나에게 알려줘서야 내 벨 소리임을 알았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배현우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나는 벨 소리를 끊어 버리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하던 얘기를 이어갔다. 회사 일에 대해 우리는 생각이 통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얘기가 항상 길어진다.이때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렸고 장영식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전화 안 받아?”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배현우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는 왜 또 안 받아요? 나와 연락 안 할 거예요?”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어딘데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뒷좌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오더니 배현우가 성난 목소리로 나를 행해 외쳤다. “타요!”갑자기 나타난 배현우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차 옆으로 두 발짝 걸어갔다.
배현우와 탄 차는 또 리조트를 향했다. 리조트에 도착한 후 배현우는 혼자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갔다. 미행은 본인이 해 놓고 오히려 화를 내는 이 상황에 너무 어이가 없었다.기사 아저씨도 같이 따라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지아 아가씨!”나는 차에서 내려 기사 아저씨를 바라봤다. 기사 아저씨는 저 멀리 걷고 있는 배현우를 보며 나에게 말했다. “도련님이 일주일 내내 쉬지도 못했는데 일 끝나자마자 아가씨 만나려고 평택에서 급히 올라온거예요. 아직 저녁도 못 드셨는데 아가씨가...”“빨리 따라와요!”배현우의 성난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 아저씨는 하던 얘기를 멈췄지만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이 남은 듯 나를 계속 쳐다봤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배현우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왜 갑자기 화를 냈는지도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빠른 걸음으로 배현우 뒤를 따랐다. 그제야 배현우의 차가운 뒷모습도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듯했다. 현관으로 들어간 배현우는 외투를 벗어 손에 쥔 채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나도 뒤따라갔다. 배현우는 손에 쥔 외투를 소파에 던진 후 안지 않고 오히려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멈춰 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걷다가 배현우 가슴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배현우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나를 소파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뒤로 넘어지면서 소파에 누웠고 배현우는 내 위로 덮쳤다. 순간 배현우는 내 얼굴을 향해 거친 키스를 퍼부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들이닥친 그의 입술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배현우의 키스는 거칠었고 화가 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한참 후에야 배현우는 천천히 입술을 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나 보고 싶었어요? 말해봐요.”그의 거침없는 모습에 나는 민망하여 눈을 피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나는 화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녁 좀 준비해 줄게요. 배고프죠?”“말해 봐요.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에 앉은 배현우 얼굴에는 뭔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는 듯했다.배현우는 내가 건넨 국과 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빨라진 젓가락 속도로 봐서는 배가 여간 고픈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나는 배현우 옆을 지켰다. 턱을 괴고 앉아 배현우의 동작 하나부터 순간의 표정까지 전부 눈에 담고 있었다. 배현우의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가끔 찡긋거리는 눈썹까지 모두 나를 빠져들게 했다.배현우는 식사하면서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봤다.“실컷 봐요. 아직도 부족하죠?” 배현우는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를 보며 말했다. 밥상의 요리들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하네요.”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건 요리하는 사람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에요!”설거지하려고 일어나자, 배현우는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밖에 나가 좀 걸어요. 다른 사람이랑 그만큼 오래 있었으면 나랑도 그만큼 같이 걸어야 해요.”열 살 아이보다 유치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려요? 현우 씨랑 한 것들 그 사람이랑은 아직 하지 않았어요.”“하기만 해봐요!” 배현우는 화가 난 듯 쏘아붙였다. 질투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는 배현우를 꼭 끌어안았다. 배현우는 손으로 내 양볼을 감싸더니 내 입술을 꼭 깨물며 말한다. “경고하는데 지아 씨의 소유권은 나에게만 있어요. 알겠죠?”“악... 아퍼... 혹시 개띠세요?” 나는 깨물린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배현우를 밀쳤다. “아프지 않으면 기억 못 할까 봐요.” 배현우는 입술을 가린 내 손을 잡고 내리며 깨물린 자리를 한참 보더니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아직도 아파요?”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아프죠!”배현우는 씻고 나서 남색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실크 잠옷은 배현우의 훤칠함을 더 돋보이게 했고 날 위해 준비한 짙은 파란색 긴 치마와 커플 잠옷임을 알 수 있었다.
배현우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 내가 을이라는 느낌을 더 짙게 한다. 갑과 을이 된 것 같은 상황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내 불안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배현우 눈을 피했고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배현우에 대한 마음이 좋아하는 감정 이상이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배현우라는 늪에 내가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함정이다.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큰 함정에 빠져있다. 그러나 배현우는 의외로 확실했다. 캄캄한 바다에서도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타수처럼 배현우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전부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나는 배현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배현우의 좋아한다는 표현이 그저 듣기 좋게 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배현우의 좋아한다는 표현이 진심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배현우의 신분, 위치, 외모, 나이... 이 모든 게 나와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이제 막 4살인 딸도 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실패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여자든 배현우 옆에 있고 싶어 할 것이다. 배현우 옆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현우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내 마음과 몸, 그리고 머릿속까지 모두 배현우를 생각하고 있었다.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배현우 곁을 떠나 마음 정리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상처받을 사람도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내 전화를 안 받은 진짜 이유는, 나를 피하려고 그런 거죠?” 배현우는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나도 모르게 두 발짝 뒤로 물러나 그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정원 내부를 비추는 불빛이 배현우 얼굴을 밝게 비췄다.“맞아요. 피한 거예요. 더 이상 현우 씨에게 빠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요. 왜냐면... 누가 봐도 내가 아주 부족해요. 어쩌면 나 혼자 김칫국물 마시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현우 씨는 전혀 생각도 없
한참 지나서야 배현우는 나를 꼭 껴안은 팔을 내렸고 내 귀에 쐐기 박듯 얘기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도 말아요!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예요. 두 번 다시 얘기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알겠죠?”나는 배현우를 멍하니 바라볼 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배현우는 내 눈물을 닦아 주고는 나와 다시 깍지를 끼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에 올라갔다. 옥상은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처럼 주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옆 벤치에 와인과 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배현우는 와인 한 잔을 따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마셔봐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나는 배현우의 늠름한 모습과 잘생긴 얼굴에 홀린 듯 와인을 꿀꺽꿀꺽 마셨다. 다 마시고 나니 진짜 배현우 말대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배현우는 난간 옆으로 나를 이끌었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정월 대보름처럼 큰 달이 걸려있었고 우리 둘만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배현우는 등 뒤에서 나를 꼭 안은 채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을 비워요. 저기 저 크고 둥근 달처럼 깨끗하게. 그리고 모든 걸 나에게 맡겨요.”배현우는 나를 품에 껴안으며 얘기했다. “강가에서 지아 씨를 처음 구할 때부터 다짐했어요. 지아 씨를 꼭 지키겠다고. 우리 뒤돌아보지 말고 이제 앞만 봐요.”“이게 내 마음이에요.” 배현우는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아무 말 없이 배현우 품에 안겼다. 고개를 드니 달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이날 밤, 우리는 리조트에서 달을 감상하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나는 배현우의 품에 안겨 술에 취해 천천히 잠들었다.잠에서 깼을 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 휴대전화부터 찾았다. 그러나 배현우의 굵은 팔이 나를 다시 침대로 잡아당겼다.“오늘만큼은 휴가 냈다고 생각해요.”배현우 품은 따뜻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와 연락이 안 돼서 급해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점심이 돼서야 우리
이해월은 사무실 문 앞에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요. 우리 회사에 온 이상 다 고객이죠.”이해월은 멋쩍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게 왠지 불안하네요.”“어차피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어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어요.” 나는 덤덤한 태도로 계속 말했다. “스스로 찾아온 고객인데 돌려보내면 안 되죠. 들어오시라고 해요.”“알겠습니다. 그럼, 모시고 오겠습니다. 대표님! 긴장하지 마세요.” 이해월은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해월은 우리 회사에 정말 필요한 직원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월이 양대수를 데려왔다. 30대를 훨씬 넘어 40대처럼 보이는 느끼한 아저씨가 사무실로 들어왔고 나를 향해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한 대표님. 안녕하세요.”“양 주임님.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나는 책상 앞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고객 접대용 소파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양대수는 연신 인사를 하며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드디어 한 대표님을 뵙네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업을 크게 하고 계신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나는 양대수의 아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양 주임님. 정보가 잘 못 된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업계에서는 다 알고 있을 텐데요? 우리 회사 곧 문 닫기 직전입니다. 양 주임님이 말씀하신 큰 사업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양대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잘못된 정보라니요. 한 대표님 너무 겸손하십니다.”나는 정색해서 다시 물었다. “양 주임님.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신 이유가...?”“아... 네!" 양대수는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정색하며 말한다. “제가 온 이유는요. 한 대표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최근 형원그룹에서 담당한 복층 건물이 이슈가 있어 준공이 늦어지다 보니 메인 구역은 전부 완성되었는데 몇 동의 복층 건물만 아직 안 돼서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가격을 더 높게 불렀다. 무슨 목적으로 왔든 이렇게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나는 나의 의사를 전달하고는 양대수의 표정을 한번 살펴보았다.양대수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바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한 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도 형원 그룹 아시잖아요. 서울에서 꽤 잘나가는 회사로서 상품의 질에 대한 추구는 엄청 납니다. 저는 전적으로 우리 대표님 말을 따르겠습니다! 다 이유가 있으시겠죠.”양대수의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자신이 생겨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린 신흥을 방금 인수 했고, 전에 저와 신호연이 이혼 문제 때문에 살짝 삐끗했던지라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란 말이죠. 그 때문에 우린 모든 고객을 정말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고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론 그쪽도 저를 심사하고 감시해야하겠지만, 우리 쪽에서는... 지금 협력하는 기초로 예산의 30%를 선불로 내는 걸 조건으로 걸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진중하게 그에게 말을 꺼냈다.하지만 이 조건들은 내가 들어도 너무했다. 하... 너무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원한다면 하는거고 원하지 않다면 그냥 이 일은 없었던 거로 하면 됐다.양대수는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분명 속으로 이렇게 염치가 없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이번엔 양대수도 정말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 아, 한 대표님! 우리 이럽시다! 서로 딱 한 발짝씩만 양보해요. 사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좋게 좋게 가는 거죠!”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설계도를 보여주면 우리가 그에 맞춰서 가격을 제시할게요. 어때요? 이러면 그냥 아무 근거 없이 흥정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 양 실장님이 보기엔 어떠신가요?”양대수는 듣고는 희망이라도 생긴 듯 얼른 말했다. “어휴! 너무 좋죠! 역시 우리 한 대표님이 머리가 잘 돌아가네요!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