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작은 고양이처럼 그녀의 가슴에 순하게 기대어 있었다. 작은 손바닥을 그녀 앞에 올려놓은 모습이 꽤 힘이 있어 보였다.온지유는 아이의 손을 살짝 떼어 내려 했지만 그 순간 아이가 나직이 말했다.“심장 소리가 정말 편안해요...”그러면서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종군 기자로 활동한 지난 5년 동안 온지유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이 아이만큼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아이는 부드럽고 애틋한 목소리로 그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온지유는 아이를 안은 채 밖으로 나왔다. 예상치 못하게 모래바람이 몰아쳤지만 다행히 빠르게 화국 군용 차량에 올랐다.“대사관까지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알겠습니다.”운전병은 온지유의 목에 걸린 기자증을 눈여겨보았다. 특히 그녀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차는 대사관까지 40분을 달려 도착했고 온지유는 아이를 안은 채 대사관으로 들어섰다. 전담 직원을 찾아가 아이를 맡기려 했으나 아이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괜찮아. 이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우리를 집으로 돌아가게 해줄 거고 네 엄마 아빠를 찾는 것도 도와주실 거야.”온지유는 부드럽게 아이를 달랬다.말하지 않아도 이 아이 역시 부모와 헤어진 것이 분명했다.어쩌면 부모가 이미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대사관에 데려가 직원이 아이의 신상을 등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그러나 아이는 온지유의 뒤로 몸을 숨기며 그녀와 직원이 아무리 달래도 앞에 나와 말하려 하지 않았다.직원은 고민 끝에 말했다.“아이가 말도 잘 안 하고 자꾸 당신에게만 의지하는데 혹시 며칠만 아이를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이쪽 전투가 몇 가지 이유로 며칠간 멈출 예정입니다. 그동안 아이를 잘 돌봐 주세요. 제가 전문 인력을 불러오겠습니다.”온지유는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아이가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그녀는 아이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반짝이는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촉촉한 눈물이 고여 있
남자아이의 머리카락은 들쭉날쭉하게 자라 있었다. 전쟁만 나지 않았고 부모와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아주 행복한 아이였을 것이다.온지유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넌 이름이 뭐야? 대사관에 남기 싫었던 건 혹시 부모님 때문이야?”남자아이는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말했다.“부모님을 본 적이 없어요...”아이의 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서글픔이 가득 배어 있었다.온지유는 지난 5년 동안 S국에 머물며 작은 내란에서 대규모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봐 왔다. 이 아이가 부모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그가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가 곁에 없었다는 의미였다.“그럼... 이름이 없는 거야?”온지유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이에게 물을 한 잔 따라주고 그의 눈높이에 맞춰 다시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었다.아이는 물을 받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속상해하는 아이 같았다.온지유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아이 역시 상처가 깊은 아이였다.하지만 전쟁 속에서 자란 아이 중에 마음이 건강한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노인을 대상으로 한 특집을 만들어 각국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면 휴전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온지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름이 없다면 내가 이름을 지어줄까?”처음에는 아이가 입고 있는 흰 셔츠와 귀여운 외모를 보고 화국의 부유한 집 아이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아이의 옷은 어쩌면 쓰레기 더미에서 건진 것처럼 보였다.부모를 본 적이 없다는 걸 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와 헤어졌거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일지도 몰랐다.“제 이름은 별이예요.”“별이?”아이가 천천히 대답했고 온지유는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의 부모님도 네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거야. 당분간은 내 곁에 머물다가 대사관으로 데려다줄게. 하지만
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구마를 받았다. 별이는 천천히 한입 베어 물었고 온지유가 물을 한 잔 떠오면서 말했다.“부족하면 더 줄 테니까 많이 먹어.”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온지유는 피식 웃었다. 별이는 말하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별이를 계속 지켜보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천막 안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합을 뜻하는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깜짝 놀란 온지유는 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때, 온지유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고작 5살 된 아이가 고구마를 내려놓고 바른 자세로 서서 경례 자세를 취한 것이었다. 온지유는 군의 규칙에 익숙해진 어린아이가 군인의 아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별이가 만약 열사의 유자녀라면 고향이 아닌 이곳에서 지내게 할 수 없었다.“별이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별이는 군인도 아닌데 어떻게 경례하는 것을 배운 거야? 누가 가르쳐주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온지유는 별이 앞에 쭈그려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이는 온지유를 빤히 쳐다보더니 쭈뼛거리다가 천천히 대답했다.“할아버지예요.”별이의 말에 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고 할아버지를 잃고 나서 먼지투성이가 된 채로 밖에서 떠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잠깐 여기서 쉬고 있어. 나갔다가 곧 돌아올 테니까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말고 이곳에서 기다려야 해.”온지유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지유는 곧바로 대사관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대사관의 담당자한테 오늘 알게 된 것을 말했다.“저한테 데려가라고 했던 아이한테 물었더니 이름이 별이래요. 부모님을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방금 집합 호각 소리를 들었을 때 군인처럼 바른 자세로 서서 경례하더라고요. 몸에 밴 것처럼 호각 소리를 듣자마자 경례했고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거래요. 군인의 아이라면 제대로 조사해서 아이가 좋은 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줄 수 있잖아요.”대사관에서 별이가 군인의 아이인지 조사하면 금방 결과
온지유는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줬고 음식과 생활용품을 전달했다. 온지유가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것은 부대에 있는 모두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별이는 온지유의 손을 꼭 잡았고 긴장했는지 작은 손에 땀이 났다.“별이야, 옷이 마음에 들어? 이것도 한 번 봐봐.”온지유는 새로 산 옷을 두 벌 꺼내서 보여주었다. 전쟁 때문에 하얀 옷을 입으면 쉽게 더러워졌기에 여러 색깔이 섞인 옷을 사주었다. 시장이 멀어서 더 많은 것을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며칠 후에 별이를 대사관에 데려다주고 별이의 신분이 밝혀지면 그때 별이에게 다른 것을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다.별이는 붉어진 두 눈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고 옷에는 관심이 없었다. 온지유는 별이를 꼭 안아주면서 다독였다.“별이야, 이곳은 우리 화국 군인들이 지내는 곳이라 안전해. 다른 나라 군인처럼 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내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두려워하지 마. 자, 새 옷을 한 번 입어볼까?”온지유의 말에 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온지유는 별이를 안아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앞으로는 천막 앞에서 날 기다리지 마. 천막을 나오면 위험하니까 무슨 소리가 나면 침대거나 책상 아래에 숨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오면 안 돼. 알겠지?”화국은 백 년 전처럼 나약하지 않았고 강해진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와 겨룰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나라들이 힘을 모아 화국을 상대한다면 형세가 기울게 될 것이다.욕심으로 가득 찬 다른 나라들은 언제든지 화국을 공격할 수 있었고 습격을 받으면 별이를 지킬 수 없었기에 어디에 숨어야 할지 알려주어야 했다. 별이는 온지유의 손을 꽉 붙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 온지유를 못 보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다. 별이는 말수가 적었고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했지만 어쩐지 온지유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온지유의 품에 안겨서 온지유의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를 들으면
“온 기자님.”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온지유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군복을 입고 있는 부대의 군인이 천막 앞에 서 있었다. 온지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무슨 일 있어요?”“Y 국에서 물자를 지원했는데 온 기자님이 직접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알겠어요.”5년 동안 온지유가 어디에 있든 Y 국에서는 물자를 지원했고 신무열과 법로 대신 다른 사람이 물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매달 계좌에 거액의 돈이 들어왔다. Y 국에서 지원해 준 물자로 가난한 백성을 살릴 수 있었고 군인에게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기에 온지유는 거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무열과 법로를 만나지 않아도 되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온지유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아줌마가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줘.”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지유는 말하려고 하지 않는 별이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만약 대사관에서 이 아이를 온지유에게 맡긴다면 인명진을 불러서 별이와 만나게 할 생각이었다. 어린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자폐증 증상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자폐증이 맞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온지유는 군인과 함께 물자를 받으러 갔고 물자 리스트에 사인하려고 했다.“지유야.”갑자기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온지유는 고개를 번뜩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하얀 셔츠를 입고 미소를 지은 채 온지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5년 전처럼 여전히 우아하고 다정한 신무열이었다. 신무열이 Y 국을 통치하고 있었기에 내부의 전란을 다스리고 나라를 통일시켰다. 그러면서 화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면서 물자를 지원했다. 온지유는 다 알고 있었지만 신무열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무열이 직접 물자를 가져온 것을 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신무열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온지유가 먼저 물었다.“무슨 일로 오셨어요?”온지유는 물자 리스트에 사인하고는 같이 온 군인에게 전하면서 말했다.“먼저 가서 체크하세요.
“너도 종군 기자를 해서 알고 있겠지만 노석명은 죽지 않았어. 그 욕심 가득한 놈이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 그래서 너의 도움이 필요해.”신무열은 심호흡하고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온지유는 멈칫하더니 물었다.“내가 뭘 도와주면 되나요?”신무열이 직접 물자를 가지고 찾아왔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어야 했다.“노승아가 신분을 위장해서 나를 찾아왔잖아. 그것 때문에 노석명이 하마터면 Y 국의 통치권을 손에 넣을 뻔했어. 네가 Y 국에 오면 노석명도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올 거야.”신무열은 말하면서 온지유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온지유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듣고 있다가 생각에 잠겼다. 신무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온지유를 보면서 거절당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온지유는 흔쾌히 동의했다.“그래요. 무열 씨랑 같이 갈게요.”온지유와 여이현이 Y 국에 있을 때, 온지유가 노승아한테 잡혀갔을 때 신무열이 나서서 온지유를 보호해 주었다. 그래서 신무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오늘 같이 가자.”신무열이 다급히 말했다.“며칠 기다려주면 안 돼요?”온지유는 곧바로 같이 떠날 수 있었지만 별이를 곁에 두고 갑자기 떠날 수 없었다. 신무열은 육감적으로 온지유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신무열이 입술을 깨물더니 한참 후에야 물었다.“무슨 일 있어?”신무열은 온지유의 발목을 잡는 사람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때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대사관에서 맡긴 아이가 있는데, 세 날 정도 돌봐줘야 해요.”온지유가 솔직하게 말하자 신무열은 깜짝 놀랐다. 온지유는 5년 동안 종군 기자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인을 도와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 사람들이 온지유를 보살이라고 불렀다.“그럼 세 날 뒤에 데리러 올게.”“알겠어요.”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날 동안 온지유는 기사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별이는 곁에서 울지도 않고 징징대지도 않았다. 별이가 너무 조용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