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용경호는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그의 선의는 완전히 오해당한 셈이었고, 무슨 말을 해도 그녀에게는 전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억울했다.지금껏 이렇게 까다로운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홍혜주도 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아 바로 성재민에게 물었다.“아까 당신이 말했잖아요, 지유 씨를 볼 수 있다고. 어차피 지금 다리가 이렇게 된 이상 도망갈 수도 없고 죄가 있다고 해도 확정되기 전까지는 감옥에 갈 일 없잖아요. 그리고 나도 조사에 협조하고 있으니 합리적인 요구는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그저 지유 씨를 잠깐 보고 싶을 뿐이라고요!”성재민이 용경호에게 말했다.“너무 까다롭게 굴지 마시지 말입니다. 대장님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배려해 줄 건 해줘야 합니다.”용경호는 홍혜주에게 편견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마지못해 말했다.“알았어.”그들이 그렇게 양보하는 걸 보자 홍혜주도 마음을 가라앉혔다.조직을 떠났지만 이 세상에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해 줄 사람은 몇 없었다.그녀가 걱정하고 마음 쓰는 사람은 오직 그들뿐이었다.홍혜주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었다.절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사람을 해치거나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홍혜주는 목발을 짚으며 그들과 함께 온지유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그때, 여이현은 온지유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홍혜주는 온지유를 한 번 바라보더니 물었다.“인명진은 어디 있어요?”여이현은 홍혜주를 한번 쳐다봤다.용경호가 먼저 말했다.“대장님, 이 여자가 꼭 와야 한다고 말을 듣지 않아서요. 사모님의 상태를 걱정해 왔습니다.”그는 홍혜주를 위해 변명하고 있었다.그녀의 정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여이현은 침착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흉터남의 소굴에서 홍혜주의 도움 없이는 온지유가 무사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그리고 홍혜주와 인명진의 관계도 이미 알고 있었다.“인명진 씨는 실험실로 돌아갔어요.”“너희들은 나가 있어.”여이현이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용경호와 성재민은 병실을 떠
여이현은 홍혜주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자신이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홍혜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죽을지도 모르고, 감옥에 갈 수도 있겠죠. 이미 내 운명은 받아들였어요. 난 좋은 사람도 아니었으니까요.”“공을 세워 죄를 씻을 기회가 있다면요?”홍혜주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정말 그런 기회가 있어요?”여이현은 그녀에게 말했다.“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나 공을 세워 죄를 갚을 기회가 주어져요.”이 말을 듣고 홍혜주의 눈에는 잠시 실망이 비쳤다.“나에겐 그런 기회가 없겠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싸우고 설치는 것 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데.”여이현은 그녀에게 말했다.“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어요. 상처가 회복되면 사람들을 구하러 가세요.”홍혜주는 여이현을 바라보았다.여이현의 말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그녀에게 다가왔다.자신의 인생에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도 사람들을 구할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세상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고 느꼈다.홍혜주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녀도 인정받고 싶었다.여이현은 병실을 나왔다. 용경호와 성재민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말했다.“홍혜주 씨를 병실로 데려다줘.”“제가요?”용경호는 자신을 가리켰다.“너는 나와 감옥에 가고.”여이현이 성재민에게 말했다.“알겠습니다!”그들이 병원을 떠나자 용경호는 마치 자신이 소외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어서 나 좀 부축해요!”홍혜주는 용경호에게 말했다.용경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대장님의 명령을 잊은 거예요? 어서 부축하세요!”홍혜주는 손을 내밀었다. 그를 곤란하게 할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용경호는 명령을 어길 수 없어 마지못해 그녀를 부축했다.홍혜주는 만족스러운 듯했다....여이현과 성재민은 함께 감옥에 도착했다.여이현을 보자 감옥의 간수들이 공손하게 말했다.“대장님!”이 감옥은 섬에 위치해 있었고 규모도 매우
흉터남은 웃으며 말했다.“침착한 거 보니까 노석명에게서 해독제를 얻은 모양이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노석명이 진짜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 리 없잖아.”그는 여이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당신,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 않나?”쿵!여이현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커다란 소리가 울렸고 그의 차가운 눈빛이 흉터남을 향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대답해!”흉터남은 여이현의 붉어진 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해독제를 받지 못했군.”여이현의 팔에는 혈관이 도드라졌고, 그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듯했다. 손마디에서 소리가 났다.흉터남은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듯 별다른 저항 없이 입을 열었다.“법로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나도 노석명도 그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지.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그리고 노석명과 내가 원수라거나 그런 건 없었어. 그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지. 노석명이 내 이익을 건드리려고 했고, 난 그걸로 그를 위협했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난 지금 이렇게 죄수 신세를 지게 된 거야.”그는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위협?”여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가운 눈으로 물었다.“뭘 더 알고 있죠?”그 말을 듣고 흉터남은 일부러 말을 아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옆에 놓인 물을 집어 들었다.잔을 입에 가까이 대자 여이현의 눈빛이 변했다. 의심이 들었는지 흉터남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움직이지 마!”흉터남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이 감옥은 네 사람들로 가득하잖아. 내가 여기서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물도 이미 확인했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흉터남은 갑자기 목이 막힌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잔 속의 물은 무색무취였지만 그는 이미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그걸 마셨어?”여이현은 그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흉터남은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그조차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감옥에 들어왔을 때부터 누군가 자신
이 사건은 감옥의 명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이었고 감옥장으로서 그의 자리도 위험해질 것이 분명했다.“대장님, 제 부주의였습니다...”여이현은 그 말을 듣고서도 앞에 있는 교도관을 바라보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그의 눈은 붉게 변했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교도관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그 충격은 매우 강력했다.교도관은 그 자리에서 바닥에 쓰러져 기침을 했다.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다.그러나 여이현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다시 끌어올리며 말했다.“조직이 보낸 놈이냐?”교도관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내 임무는 끝났어.”그의 표정은 마치 세뇌된 사람처럼 신성한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임무를 완수했으니 그의 삶도 완전한 결말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노석명이야, 아니면 법로야? 그 사람들이 숨기려는 게 뭐지?”여이현이 날카롭게 물었다.“모르지.”교도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내 임무는 그 사람을 죽이는 것뿐이었어!”그의 비열한 모습에 여이현의 눈에는 더 큰 분노가 깃들었다. 분노는 마치 홍수처럼 폭발했고 주먹으로 교도관을 세게 두 대 때렸다.교도관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다.그러나 여이현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피를 본 그는 더욱 폭주했고 교도관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다시 발로 차기 시작했다.그는 그를 죽일 기세로 계속해서 공격했다.“대장님!”그의 부하들은 그가 위험해 보이자 다급히 달려와 말리기 시작했다.“이러다 진짜 사람 죽습니다!”“비켜!”여이현은 그들을 거칠게 밀쳐내며 붉은 눈으로 미친 듯이 쏘아봤다.누구도 감히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그의 힘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두 사람이 말려도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었다.감옥장은 그 모습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고 그저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그가 화를 자신에게 돌릴까 두려웠다.“어서 대장님을 붙잡아!”결국 다섯 명
여이현은 단호하게 말했다.“사소한 단서라도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알겠습니다, 대표님.”여이현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긴장했다.흉터남이 죽었으니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온지유가 깨어나고, 그녀는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해독제를 받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저 헛된 희망에 그쳤을 뿐이었다.그래도 이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법로가 내린 독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지금도 여전히 머리가 아파왔다.“지유 씨.”온지유가 고개를 들자 지선율, 장다희, 그리고 백지희가 병실로 들어와 있었다.온지유는 약간 놀라며 웃었다.“다들 어쩌다 같이 온 거예요?”“전화가 안 돼서 우리가 엄청 걱정했어. 결국 여 대표님한테 연락했지. 병원에 있다고 해서 다 같이 왔어. 몸은 괜찮아?”백지희가 말했다.그녀는 온지유를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였기에 온지유의 전화가 안 통할 때는 바로 여이현에게 연락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온지유의 상태를 몰랐지만 백지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큰 일은 아니야. 이제 괜찮아졌어.”온지유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모두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해요.”지선율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지유 씨 요즘 너무 무리한 거 아니에요? 임신 중인데 조심해야죠. 입원까지 하면 어떡해요.”장다희는 방금 일이 끝나서 함께 온 것이었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여 대표님이랑은 화해한 거예요?”백지희는 온지유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녀의 사생활이었기에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친구라 하더라도 너무 깊게 끼어들지 않으려는 배려였다.온지유는 간략하게 대답했다.“네, 그런 셈이죠.”장다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너무 잘됐네요.”지선율은 옆에서 과일을 깎으며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잘된 거라고요? 난 그렇게 쉽게 용서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날 노승아 편을 들었던 건 잊을 수
지선율은 거부감이 들었다.“됐어요, 연애는 너무 귀찮은 것 같아요.”그녀는 연애를 해 본 적 없었다. 애초에 연애가 귀찮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여초, 여중, 여고, 여대의 루트를 밟은 그녀는 남자와 접촉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연애할 생각이 없거니와, 남자를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쪽쪽이 너무 귀여워요.”온지유는 선물 받은 것을 구경하며 말했다.“고마워요. 아기를 위해 신경 써줘서.”“고맙긴요. 저희를 요정 대모 정도로 생각해 주면 돼요.”“연예인에, 감독에, 작가에, 예술가까지... 굳이 노력할 필요 없이 평생 요정 대모만 믿고 살아도 될 것 같은데요?”백지희는 장난으로 말했다.“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다이아몬드 수저 물려줄 아버지만 있으면 됐지.”“그러면 안 돼. 난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지 않을 거야. 나쁜 버릇이라도 들면 내가 죽어서도 관 뚜껑 열어 던지고 튀어나올 수가 있어.”그녀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온지유를 바라봤다. 그녀가 왜 이런 비유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온지유도 단어 선택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금방 말을 이었다.“장난이야. 신경 쓰지 마. 애는 내가 잘 가르쳐야지.”“놀랐잖아요, 지유 씨!”지선율은 가슴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잘난 아버지도 좋지만 잘난 어머니도 있잖아요. 우리 지유 씨 이제 유명해질 일만 남았어요. 그리고 또 좋은 소식 있어요. 우리 작품 대상 후보가 됐어요!”온지유는 눈을 반짝였다.“정말요?”“그럼요!”지선율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우리 다희 씨 여우주연상 받을지도 몰라요. 정말 너무 기대돼요.”“다행이네요.”온지유는 진심으로 기뻤다.“지유 씨도 시상식에 와야 해요. 감독 겸 투자자니까, 자리를 비우면 안 되죠!”“시상식이 언제예요?”“다음 달이요. 저희 결전의 날이죠.”지선율은 온지유의 볼에 마구 뽀뽀를 해댔다. 엄청 상기된 모습이었다.백지희도 똑같이 기뻤다.“노력이 헛되지 않았네. 우리 온 감독님 축하해.”“아니야
온지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이현이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이 달랐다.“아들한테 너무 한 거 아니에요?”여이현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입꼬리를 올렸다.“인성에 문제 있는 애로 키우면 장가는 어떻게 가겠어? 장가갔다고 해도 남의 집 귀한 딸을 고생시키면 안 되지.”이 말은 온지유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이 미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피해줬다.병실 문이 닫힌 다음 온지유는 다소 원망하는 말투로 탓했다.“이현 씨가 그런 생각도 할 줄 아네요? 근데 저랑 결혼했을 때는 왜 그랬어요? 이현 씨 입에서 나온 말 같지가 않네요.”여이현은 그녀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볐다.“내가 잘못했어. 내가 했던 잘못이니까 우리 애는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후회를 남기면 안 되니까.”“이현 씨 후회하고 있어요?”여이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너무 늦게 정신 차린 건 후회돼. 근데 너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해.”온지유는 과거를 떠올려봤다. 참 다사다난했다.여이현이 그녀를 사랑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여호산은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두 사람을 억지로 묶어놓지 않았을까?그녀는 진작 여이현을 사랑했다. 그래서 혼인이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감정을 제치고 궁금한 것이 또 있었다. 그녀와 여이현은 중학교 때 처음 만난 것이 아니다. 또 여이현은 그녀를 구해준 적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왜 여이현과 같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그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을까?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여이현은 잠깐 있다가 나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회사 일도 있고 부대 일도 있어서 전보다 훨씬 바빠졌다.온지유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사명과 신념을 따르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영웅으로 나라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그녀는 여이현이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병실에서 그녀는 오늘 받은 선물들을 정리했다. 아이의 탄생을
백지희는 온지유를 꼭 끌어안았다. 온지유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다. 세월이 지나자,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온지유는 하루 종일 병실에 있는 것이 싫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입원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백지희와 함께 산책하기로 했다.“너 지유니?”두 사람이 걷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와서 물었다. 그녀도 온지유를 제대로 알아본 것이 맞는지 확실치 않은 모양이었다.온지유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얼굴은 꽤 익숙했다. 그러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한참 망설였다. 그러자 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나 잊었어? 그렇게 많이 변했나... 우리 고등학교 때 같이 앉았었잖아. 수업 끝나고 수다 떤 적도 있고, 기억 안 나?”“미안한데 기억이 잘 안 나네. 혹시 이름이...?”“나 유다은이야. 진짜 기억 안 나? 아무튼 이렇게 만나서 반갑네.”유다은은 아주 활기찼다.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도 보기 좋았다.“이게 몇 년 만이야. 너 임신했어? 얼굴은 그대로네. 전이랑 똑같이 예뻐.”유다은은 온지유의 외모를 항상 부러워했다. 반에서도 그녀는 모두가 인정하는 퀸카였다. 지금도 그녀의 얼굴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풍성한 머리카락도, 조각 같은 몸매와 얼굴도 여전했다.고등학교 동창이라면 온지유도 관심이 갔다. 유다은의 말을 들으면서 살짝 떠오르는 기억도 있었다.“알겠다. 우리 같아 앉아서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도 했었는데, 맞지?”“맞아! 나 빠순이였잖아. 책상에 우리 오빠들 사진으로 가득했었지.”“그래!”온지유가 떠올린 것을 보고 유다은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폴짝 뛰었다.“졸업하면서 연락처 못 받아서 내가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 그렇게 친하게 지냈는데 졸업 후에는 말 한마디 못 했어. 나만 친하다고 생각한 건가 싶었어. 너 갑자기 말수도 적어지고 그래서 나 꽤 놀랐었다?”고등학교 때는 모두 단순했다. 서로 음해하고 모함할 것도 없다. 지금의 생활보다는 훨씬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