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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작가: 류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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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이현은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지른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온지유는 급히 아이들을 끌어안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 얘들아. 아저씨는 호랑이가 아니야.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야. 방금 너희들에게 물품도 보내줬잖아. 눈물 그치자, 우는 아이는 선물 못 받는다?”

아이들은 금세 눈물을 그치고 말했다.

“안 울어요. 우린 용감하니까 울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여이현을 보면 또 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참으려 해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여이현은 온지유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이를 대하는 온지유는 흐르는 샘물처럼 부드러웠다.

헛기침을 두 번 하고 여이현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은 조금 전 일로 경계하며 온지유의 뒤로 숨었다.

여이현은 얼굴을 굳혔다. 이렇게 겁이 많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너희들 빨리 돌아가.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호랑이가 잡으러 간다!”

아이들은 그 말에 단숨에 뛰어 돌아갔다.

온지유는 그 뒤를 따라갔다.

여이현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온지유는 꾸밈없이 자연스러웠다. 긴장한 상태를 유지할 필요도 없었고, 진심으로 다정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온지유의 색다른 모습을 엿본 듯한 기분에 여이현도 진심으로 웃음을 지었다.

여이현은 기사를 보며 물었다.

“제 얼굴이 무섭게 생겼나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기사도 멍하니 있다고 말했다.

“대표님이 무서울 리가요. 절 키워 준 부모님과도 같으신데 고마울 뿐이죠.”

여이현은 아이들이 왜 자신을 무서워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도 곧 아이들의 뒤를 따라 보육원으로 들어섰다.

“호랑이가 왔다!”

여이현이 들어서자, 아이들이 경계하며 외쳤다.

원장이 보고 급히 제지했다.

“호랑이라니, 좋으신 분인데! 입을 것 먹을 것을 이렇게나 많이 보내주셨는데 빨리 감사해야지!”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이들은 말을 잘 들었다.

여이현은 이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아저씨라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온지유는 누나였다. 온지유보다 두 배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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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저흰 이만 돌아가 볼게요.”온지유가 말했다.“네, 또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원장이 대답했다.여이현은 아이들을 보며 돌아서기 전에 다시 한번 물었다.“우릴 어떻게 불러야 한댔지?”“형, 누나요!”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형과 누나가 아니면 또 뭐로 불러야 한댔지?”“삼촌이랑 이모!”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열 번을 넘게 가르쳤으니 말이다.기억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걸지도 모른다. 얼굴에는 미소가 띠어있었다.“이모, 삼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온지유가 놀라서 물었다.“얘들아, 그게 무슨 소리야?”“아까 삼촌이 그랬어요. 이모는 삼촌이랑 결혼했다고. 그러니까 족보가 꼬이지 않게 형과 누나라고 부르든지, 이모 삼촌으로 부르라고요. 어쨌든 하나는 누나, 다른 하나는 삼촌이면 안 된대요.”아이들이 사실대로 말했다.온지유는 할 말을 잃었다.여이현이 뭘 그렇게 신경 쓰고 있었는지 몰랐었는데.이것이었구나.하지만 왜 둘 사이가 부부라는 것을 말하고 다니는 걸까?온지유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지유 씨, 아직 젊으셔서 결혼을 한지도 몰랐네요. 여 대표님같이 사업을 지지해 주는 남편이 계시니 지유 씨도 꼭 행복하실 거예요.”“전...”온지유는 둘 사이는 이미 부부관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장이 바로 말을 이었다.“대표님처럼 아내의 일을 지지해 주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인터뷰한다는 말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을 준비해 주신다니. 저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겠다고까지 했다니까요. 지유 씨를 알게 되어서 다음 생까지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원장은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듣기 좋은 말은 이미 여러 번 말했다. 모두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이지만 정말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두 사람이 백년해로하시길 빕니다.”두 사람이 영원히 사랑하기를 원장은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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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동떨어진 곳이라 내리면 몇 시간은 걸어야 시내로 나올 수 있어. 기분으로 고집부리지 마.”여이현은 차창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온지유는 길을 보고 확실히 여기서는 몇 시간을 흙길 위를 걸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야생동물이 나타날지도 몰랐다.안전을 위해 온지유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때와 시간을 가리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방송국 앞에 차를 세우고 여이현은 간판을 보며 물었다.“여기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던데.”“그래요?”온지유가 한마디 대답했다.여이현이 깊은 눈동자로 온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네가 오지 않은 거지?”온지유는 자신이 거절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여 대표님을 인터뷰하는 일은 아직 제게 들어오지 않아요. 들어간 지 열흘도 안 되는데, 아직 제가 할 수 있는 건 글 몇 자 적는 것 뿐이에요.”여이현은 그 말을 일단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온지유의 말을 존중하기 위해서일 뿐이었지만 말이다.잠시 생각하던 여이현이 또 물었다.“날 인터뷰하면 너에게도 꽤 유리하지 않은가?”온지유는 말없이 의문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뜻인 걸까? 온지유를 돕기라도 하겠다는 건가?하지만 그는 자기 일에 바쁘니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때, 온지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지유야.”온지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나민우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나민우? 여긴 왜 왔어?”나민우는 차 문을 닫고 말했다.“회사를 옮겼다는 말을 듣고 잘 적응하고 있나 보러 왔는데. 잘 지내나 보네?”나민우는 시선을 여이현에게 돌리며 말했다.“우연이네요, 대표님도 계셨군요.”여이현은 나민우를 보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만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 대표님, 여기서 만난 건 우연이 아닐 것 같은데요.”“맞아요, 온지유씨를 보러왔습니다. 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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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민우는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온지유도 경악을 금치 못해 여이현을 바라봤다.혼인 증명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여이현은 겹겹이 싸인 것을 벗기고 서류를 꺼냈다.나민우에게 더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말했다.“저와 온지유의 증명서입니다. 보이시죠?”나민우는 눈빛이 짙어졌다.여이현의 눈길에서 자기의 것이 아닌 자신감을 느꼈다.아직 온지유와의 관계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기쁘기라도 한 듯했다.그러나 계약 결혼이었다면 이혼이 반가워야 하는 것 아닌가?처음에는 여이현이 남자로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온지유가 자기 아내라고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은 그가 유치하기 그지없다고 처음으로 느꼈다.누가 혼인 증명서를 층층이 감싸서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꺼내 보이기까지 한단 말인가.“여 대표님, 어차피 이혼은 하셔야지 않습니까.”나민우가 무덤덤하게 말했다.그러나 여이현이 반박했다.“누구 마음대로요?”나민우는 생각에 잠겼다. 이 상태를 보아하니 여이현은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다.“제 마음대로요.”온지유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이현을 쏘아보며 말했다.“이혼 하겠다고 처음부터 계속 말하지 않았나요? 혼인 증명 서류가 있더라도 앞으로는 이혼 증명 서류를 들고 다니게 해드리죠.”나민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온지유를 바라보았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손안에 든 서류를 꼿꼿하게 펴 들고 말했다.“결혼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소꿉장난이 아니야. 지금 이게 놀음 거리 같아?”온지유는 더더욱 여이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지금 혼인을 장난으로 여기는 건 다름 아닌 여이현 아닌가. 이 혼인 관계에서 온지유는 하루라도 아내로서의 행복을 느낀 적이 없었다,말해도 이미 소용없다.온지유는 이미 그의 아내로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가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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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민우는 곁에 놓여있던 술을 들고 들이켰다.그는 늘 이성적이었다.온지유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친구 관계를 유지해 왔다.온지유를 좋아한다고 인정한 날에도, 술을 먹고 그 기운에 취해 말이 나온 것이었다.하지만, 이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었다.나민우는 온지유가 여이현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온지유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었다.나민우는 시종 여이현처럼 대범하게 나가지 못했다.사랑받는 사람은 자신감이 생기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는 온지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여이현이 부러웠다.나민우는 쓴웃음을 삼키며 잔에 술을 더 붓고 한입에 들이켰다.손 옆에 놓인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진동했다.나민우는 곁눈으로 힐긋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받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술을 마실 뿐이었다.온지유는 자리를 뜨고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근처에 빈 택시가 없는지 앱을 켜 확인해 보니 대기 순번이 30을 넘어가고 있었다.차를 타려면 아직도 30분은 더 기다려야 할 듯했다.여이현이 쫓아 온 것을 본 온지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여이현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이 시간에는 차를 탈 수 없음을 눈치챘다.기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차에 탄 여이현은 온지유의 뒤에 따라붙었다.그는 차창을 열고 외쳤다.“타, 데려다줄게.”온지유는 뒤돌아보지 않았다.“필요 없어요.”여이현은 잘 알고 있었다.“여기서 집까지 차로 20분밖에 안 걸려. 걸으려면 1시간은 넘게 걸리잖아.”“이미 차 불렀어요.”“지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차를 불러. 거짓말하지 말고 빨리 타.”“신경 끄세요!”온지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여이현에 짜증이 났다.여이현은 그대로 클락션을 울렸다.길가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그에 또 2번을 연속으로 울렸다.“안 타면 뒤에서 따라가면서 계속 울릴 거야.”여이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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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이현은 주변을 빙 둘러봤다. 그의 침실보다도 작은 집안에는 온지유의 물건만 놓여 있었다.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늘 집 안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래도 현관에 놓여 있는 복슬복슬한 토끼 슬리퍼는 약간 놀라웠다.온지유는 어색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거두며 물었다.“다 봤어요?”여이현은 두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소파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여기서 지내는 거 괜찮아?”“네.”“가구도 모자란 집인데 괜찮긴. 도우미랑 같이 살다가 이런 데서 산다는 게 말이 돼? 어차피 당분간 이혼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냥 내 집에 돌아가자.”“아직도 이혼하겠다는 말이 장난 같아요? 저는 싸우고 가출한 게 아니에요!”온지유는 그가 이런 식으로 달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이혼 얘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꺼낸 것이 아니었다.“다 봤으면 나가요. 저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요.”“남편이 아내 집에 있는 게 뭐가 문제야? 자꾸 그러면 동네방네 소문 내 버릴 거야.”“도대체 뭘 원하는 건데요?”온지유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이제 와서 여이현이 고집을 부릴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반대로 여이현은 다리를 꼬고 앉으며 덤덤하게 눈썹을 튕겼다.“뭐 딱히 원하는 게 있는 건 아니고, 분가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내가 여기에서 지내면 분가 안 해도 되는 건가? 편안한 생활도 지겹던 참인데, 가끔 평범하게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여이현 씨!”온지유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현 씨는 이런 곳에서 지내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침대도 일인용이에요. 당장 내 집에서 나가요!”“내가 못 지낸다고 어떻게 확신해? 그 말을 들으니 더 증명해 보이고 싶네.”말을 마친 그는 곧장 온지유의 침실로 향했다. 소녀다운 분위기로 꾸며진 침실에는 핑크색으로 가득했다. 참대에는 토끼 인형도 놓여 있었다.그와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그가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온지유는 어쩐지 나체를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어떻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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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407화

    “...”온지유는 직접적으로 대답하기를 포기하고 말을 돌렸다.“여기엔 이현 씨 물건을 놓을 자리가 없어요.”여이현은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찬장을 열어봤다. 그 속에는 자그마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여기 두면 되겠네. 난 아무래도 괜찮아. 배 비서!”“네!”배진호는 눈치 빠르게 여이현의 옷을 걸기 시작했다. 0.1초라도 고민하면 일자리를 잃는 것처럼 말이다.온지유는 자신들의 관계가 변한 것 같으면서도 안 변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이혼하지도, 선을 긋지도 않았다. 반대로 여이현은 자꾸만 더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다.정리를 끝낸 배진호는 뒤로 물러났다. 온지유가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여이현이 먼저 말했다.“아까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지? 우리 뭐라도 좀 먹을까?”울분이 치밀어 올랐던 온지유는 밥 먹고 싶은 기분이 전혀 없었다.“배 안 고파요.”“그래도 먹어야지. 애는 배가 고프대.”여이현은 그녀가 심술부리며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저는 주로 직접 해 먹어요. 이현 씨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거예요.”“내가 해줄게.”여이현이 말했다. 그리고 온지유의 깜짝 놀란 표정을 무시한 채 옷소매를 위로 올리며 주방으로 걸어갔다.장은 배진호가 이미 봐왔다. 배진호가 남겨둔 봉투 안에는 야채와 통닭이 있었다. 아직은 무슨 요리를 하려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이현 씨가... 요리를? 손질까지 필요한 거라면 못할 것 같은데.’그녀는 딱히 말리지 않았다. 여이현이 스스로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던 것이다.그녀가 꿀물이라도 타 마시려고 꿀을 들어 올리자 배진호가 쏜살같이 다가왔다.“제가 할게요, 사모님.”“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요.”“그건 회사에 있을 때의 얘기죠. 사석에서는 당연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배진호는 진지하게 말하며 꿀물을 타기 시작했다. 태도는 여이현을 대할 때와 똑같이 공손했다.온지유는 배진호가 타 준 꿀물을 받아서 들고 소파에 앉았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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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지유는 여이현에게서 신경을 끄고 몸을 돌리려고 했다. 이 순간 여이현이 몸을 돌리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말했다.“거의 다 되어가고 있어. 배고파?”온지유는 발걸음을 멈추고 여이현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원하는 건 이현 씨가 빨리 나가는 것밖에 없어요.”“10분이면 돼.”여이현은 당당하게 동문서답했다. 그리고 온지유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 다시 몸을 돌려 요리에 집중했다.10분 후, 그는 뜨끈뜨끈한 삼계탕을 들고나왔다.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고 손을 닦은 그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다 됐어. 이제 와서 먹어.”온지유는 말없이 그가 두 시간 동안 준비한 삼계탕을 바라봤다.‘임산부에게 좋은 음식이라니... 누가 보면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인 줄 알겠어.’온지유는 조용히 걸어가서 그의 앞에 앉았다. 그가 뚜껑을 열자 모락모락 김과 함께 고기와 약재의 향기가 퍼졌다.“꽤 훌륭해 보이지?”여이현은 자신의 작품이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좁은 집안에 마주 앉아 있자니 다정한 신혼부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아까 임산부한테 좋은 음식이라는 글을 봤어요.”여이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는 누구나 할 줄 알았다. 간장계란밥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삼계탕처럼 제대로 된 음식은 그도 처음이었다.“내가 떠줄게.”그는 닭다리와 국물을 그릇에 덜어줬다. 얼마 전 아이를 지우라고 요구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다정한 모습이었다.온지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요?”여이현은 잠깐 멈칫하며 그녀의 배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릇을 건네줬다. 그러나 온지유는 전혀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저는 이걸 먹을 수 없어요. 아이를 원하지 않는 이현 씨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요.”여이현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온지유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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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만에 권다솔은 많은 일을 해냈다.그녀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업무 태도는 이미 팀장의 인정을 받았다.“내일 고객을 만나러 가는데 지연 씨도 같이 가죠.”“네? 제가 정말 가도 되나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이전에 그녀는 여이현의 비서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보니 혼자서도 충분히 고객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하지만 회사에 들어온 지 겨우 일주일 만에 아직 수습 기간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고객을 만날 기회를 준 걸 봐서는 팀장이 그녀를 얼마나 인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물론이죠. 지연 씨의 업무 능력을 지켜본 결과 저보다 더 뛰어난 것 같은데요. 고객을 만나는 건 당연히 가능하죠.”팀장은 그녀를 전적으로 믿었다.고객을 만나기 전에는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했다. 팀장은 프로젝트 자료를 모두 그녀에게 메일로 보내 주었다.권다솔은 그렇게 오랜만에 메일을 열게 되었다.팀장이 보낸 파일 외에 배진호가 보낸 메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삭제하려 했지만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메일을 열어버렸다.이미 열린 김에 그가 무슨 말을 보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다가 마지막 부분을 보게 되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날 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 배진호란 말인가?그럼 남태건이 했던 말은 또 무슨 뜻이지?권다솔은 배진호를 차단 목록에서 해제하려는 순간 아빠가 전화를 걸어와 그녀를 사무실로 호출했다.문을 열자마자 화가 잔뜩 난 권용민의 얼굴이 보였다.“아빠,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권다솔은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진정하세요. 저녁에 제가 맛있는 음식을 해줄게요.”“나랑 네 엄마가 전에 정말 어리석었어. 어린애한테 속아서 완전 농락당했지 뭐니. 네가 그 녀석이랑 엮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이었을 거야.”남태건 얘기만 나오면 권용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이름조차 부르고 싶지 않았다. 권다솔이 의아해하자 그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91화

    그녀는 단순히 남태건을 비웃은 게 아니라 자신마저 비웃었다.정말로 몇 번이나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다.“신뢰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거예요. 이제 그만 가세요. 부모님께 무릎을 꿇는 건 괜찮지만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아니에요.”“권다솔!”남태건은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그는 손에 힘을 가했다. 혹시라도 손을 놓는 순간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어서 돌아가요. 앞으로 태건 씨만의 인생을 사세요. 저도 제 인생을 살 거예요. 이미 말했잖아요. 우리 둘은 친구조차 될 수 없다고.”권다솔은 아예 외투를 벗어버렸다.남태건의 손에는 외투만 남아 있었고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그는 그녀가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김영은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하려던 말을 애써 삼켜버린 채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집에 돌아온 권다솔은 부모님께 아까 얘기는 하지 않고 곧바로 회사 얘기를 꺼냈다.“아빠, 엄마. 오늘 오후부터 바로 회사로 가서 일하고 싶어요. 직책은 정해 놓으셨어요?”“굳이 이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 이틀 정도 푹 쉬어라.”비록 권용민은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막상 그녀가 출근하려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아직 회사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라면 자유롭게 놀 수 있었지만 정식으로 출근하게 되면 다른 직원들처럼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고 함부로 결근할 수 없는 생활이 될 터였다.“아빠 머리에도 이제 흰머리가 있네요.”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흰머리를 뽑아주었다.권용민은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몇 가닥뿐이야. 나도 거울 보면서 봤어. 내 나이에 흰머리 있는 건 정상이지.”“관리를 잘하면 아빠 나이엔 여전히 까만 머리를 유지할 수 있어요. 제가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언제까지 아빠 엄마의 보호 아래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제가 아빠 엄마를 돌볼 때예요.”그녀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권다솔의 강력한 요청에 권용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90화

    “병이 있는 사람이 치료를 받는 건 생명을 연장하려는 거고 병이 없는 사람이 치료를 받는 건 장수하는 사람이 목을 매달겠다는 거나 다름없지. 그냥 속이려고 한 말이야.”정미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자식은 결국 부모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지.’그는 원래 배진호가 이미 의료비를 납부했다고 말하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돈을 냈건 안 냈건 그녀가 병이 없는 이상 제대로 된 환자처럼 치료를 받을 리 없었다.그리고 배진호에게 의료비를 환불하면 명백히 어떤 속임수가 있다는 걸 드러내는 꼴이었다.고민 끝에 그는 묘안을 생각해 냈다.“이렇게 할까? 매일 약을 가져다줄 테니 먹지 말고 수액도 맞지 마. 그럼 혹시라도 네 아들이 물어보면 우리 둘 다 곤란하지 않을 거야.”“그래, 네 말대로 할게. 역시 의사라 그런지 머리가 참 좋네.”그녀는 자신에게 큰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비행기에서 내린 뒤 권다솔은 바로 집으로 향했다. 남태건은 평소처럼 손에 크고 작은 선물을 들고 그녀의 부모님께 극진히 대하고 있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예전과 달리 그에게 예의를 갖췄지만 거리감을 유지하며 말했다.“태건아, 우리한테 이런 거 줄 필요 없어.”“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돈이 꽤 들었을 텐데 우린 답례로 줄 것도 없으니 그냥 안 받는 게 낫단다.”남태건은 말에 숨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들은 지금 그를 전혀 반기지 않았고 자주 만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결혼 얘기는 더더욱 바라지 않는 듯했다.그가 더 애써 만회하려 하면 할수록 김영은은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그만 돌아가.”“제가 뭐가 부족한지 말씀만 해주세요. 다 고치겠습니다. 제발 이렇게 단번에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남태건은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너무 갑작스러운 나머지 둘은 깜짝 놀란 채 그를 일으키려 했다.하지만 남태건은 끝까지 무릎을 꿇고 꼼짝하지 않았다.“만약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저를 쫓아내신다면 계속 무릎 꿇고 있을 겁니다.”“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9화

    정미진은 순간 당황했다.그동안 배진호가 모든 걸 양보했던 이유는 그녀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만약 그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크게 소란을 피울 것이고 결국 권다솔과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이런 가능성을 떠올리자 정미진은 두 눈이 깜깜해졌다.“진호야, 엄마 말 좀 들어봐.”“사실이 이렇게 뻔히 드러났는데 뭘 더 설명하시겠다는 거예요? 나이도 있으신 분이 어찌 이렇게 어린애처럼 구세요?”배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이런 걸로 농담하면 안 되죠.”의료 기록에는 명확히 병명이 적혀 있었고 게다가 이미 전문가와 상담한 후였다.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되는 병이었다.지금 수술을 받으면 완치 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지만 조금만 더 늦추면 수술해도 병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그는 정미진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내가 이러는 것도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네가 내 속을 좀 덜 썩이면 이렇게까지 거짓말할 필요도 없잖니.”정미진은 더 이상 변명이 통하지 않자 모성애라는 명분을 내세워 배진호를 압박하려 했다.장황하게 이유를 늘어놓으며 말했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소리를 지르거나 격하게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병상 앞에 서서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엄마가 원하던 건 전부 이루셨잖아요. 이젠 제발 말 좀 들으세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치료받으세요.”그제야 정미진은 깨달았다.그는 그녀가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그녀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몰랐다.‘그거면 됐지!’그녀는 계속해서 이 핑계로 배진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할 수 있었다.정미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그럼 권다솔과 이혼해. 네가 이혼 서류를 엄마 앞에 가져오는 날부터 엄만 치료받을게.”“이미 이혼 절차는 끝냈어요. 지금은 이혼 숙려 기간일 뿐이에요.”배진호는 차분히 설명했다.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해야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화를 내면 몸을 전혀 돌보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눈앞에 이혼 서류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8화

    “도대체 누가 밖에서 헛소문을 퍼뜨린 거야! 진짜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거니?”김영은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 그녀는 소문을 퍼뜨린 계정을 찾아내면 꼭 고소해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불난 집에 부채질한 거겠죠. 전 누구 소행인지 알 것 같은데요.”권다솔은 이미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과연 그 사람 말고 누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권용민은 다급하게 물었다.“누군데? 아빠한테 말해봐. 가만두지 않겠어.”“남태건이요.”권다솔은 덤덤하게 내뱉었다.순간 전화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믿기 어렵다는 눈빛이었다.남태건은 평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고 권다솔에게도 진심으로 대했으며 둘을 친부모처럼 공경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뒤에서 꾸밀 수 있단 말인가?권다솔 역시 부모님이 쉽게 믿지 않을 걸 알았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다.“태건 씨는 늘 저와 결혼하고 싶어 했어요. 우리 집 문을 한참이나 두드리면서 이웃들까지 다 소란스럽게 만들었고 제가 거절하자 엄마, 아빠를 찾아갔잖아요. 지금은 엄마, 아빠까지 거절했으니 극단적인 행동을 벌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죠.”“그런데, 다솔아, 우리한테 증거가 없잖아. 증거도 없이 태건이를 탓하는 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그녀의 어머니는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남태건을 오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만약 정말로 남태건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지금까지 꾸며낸 이미지로 그들을 속여 왔다는 뜻이었다.그런 사람을 딸에게 소개하려 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결국 권용민이 결정을 내렸다.“좋아. 다솔이 넌 밖에서 편히 놀다가 돌아와. 엄마랑 아빠가 조사해 볼게. 만약 정말로 태건이의 소행이라면 앞으로 우리 집 근처에도 못 오게 할 거야.”“아니에요. 저도 티켓 끊고 바로 돌아갈게요. 엄마, 아빠가 제 일 때문에 계속 신경 쓰시는 게 너무 죄송해요. 밖에서 논다고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거예요.”그녀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7화

    배진호는 이 시간에 잠들지 않았다.그는 이미 조사 자료를 손에 넣은 채 한 장 한 장 넘겨 보고 있었다.마지막까지 다 보고 난 그는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어머니의 수술은 가짜였지만 병은 진짜였다. 그의 어머니는 현재 폐암 초기 상태였고 심장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게다가 두 병이 함께 겹친 상황이라 치료하기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이런 상황인데도 어머니는 수술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계속해서 권다솔과 헤어지라고 압박하고 있었다.배진호는 내일 어머니와 진지하게 이야기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잠 자기 전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남태건이 이 시간에 보낸 도발적인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그 순간, 배진호는 온몸의 혈액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남태건과 권다솔이 결혼한다고?이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면 틀림없이 사실일 것이다.하지만 이게 권다솔 본인의 뜻인지 아니면 그녀의 부모님께서 결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아마도 전자일 가능성이 컸다. 권다솔의 부모님은 딸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들이다. 만약 그녀가 원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강제로 결혼 시킬 리 없었다.‘왜 이런 일은 항상 나한테만 일어나는 거지?’그는 권다솔을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그녀의 결혼을 망칠 수도 없었다. 이제 두 사람은 정말 인연이 아닌 것 같았다. 그만 집착을 버리고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잠들기 전, 배진호는 권다솔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메일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난 술집에서의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어. 네가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내 이름을 부르던 그 순간을. 다솔아, 네가 정말 날 싫어한다면 이 메일을 삭제해 줘. 앞으론 더 이상 널 방해하지 않을게. 하지만 언제든 네가 날 찾고 싶다면 난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야.”배진호는 권다솔이 메일을 확인하는 습관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메일을 발견할 때쯤이면 아마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일 것이다.어쩌면 그녀는 이 메일을 평생 보지 않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6화

    남태건은 그들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결말이란 결국 이런 것이었다.그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남태건은 자신이 권다솔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결혼 후에는 매일 밤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만약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셋이 함께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이다.그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부모님의 결혼 생활보다 훨씬 더 행복하리라 확신했다.“제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마세요. 오늘 두 분을 부른 이유는 단지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며칠 안에 양가 부모님이 만나서 함께 식사할 테니 저의 체면을 깎지 말아 주세요.”말을 마친 남태건은 몸을 돌려 떠났다.그는 더 이상 부모와 할 이야기가 없었다.이후 그는 권용민에게 연락해 식사 날짜를 논의하려 했다. 그러나 권용민은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하네. 우리 다솔이가 여행을 떠나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네. 식사 약속은 다음에 다시 잡도록 하지.”그는 권용만의 말 속에서 거절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다음에 다시 논의하자는 한마디는 구체적인 날짜를 말하지 않았기에 즉 식사 약속을 잡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아버님, 다솔이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양가 부모님께서 먼저 만나도 되지 않겠습니까?”그러나 남태건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이미 자신의 부모님께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 약속이 무산된다면 그의 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그러나 권용만운 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겼다.“태건아, 양가의 만남은 중요한 일이라 서두를 필요 없어. 다솔이가 돌아오면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자. 이런 일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네.”남태건은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그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권다솔이 그를 피하려고 멀리 떠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마저 이전처럼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권다솔, 모든 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5화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시점도 너무 절묘했다. 설마 아픈 척하는 건가?이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배진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그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진호의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났다.아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의사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내 아들 앞에서 꼭 내 병이 심각한 것처럼 말해줘야 해. 안 그러면 걔 마음이 여전히 그 여자한테 기울어 있을 거야.”“걱정 마. 동창끼리 네 계획을 망치기라도 하겠어?”의사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내가 다 맡을 테니 신경 쓰지 마. 그런데 사실 나도 부탁이 하나 있는데 우리 아들이 유학을 가야 하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거든. 좀 도와줄 수 있어? 올해 보너스 나오면 바로 갚을게.”정미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흔쾌히 승낙했다.어차피 그녀는 돈에 쪼들리지 않았으니.배진호가 비서로 일할 때부터 매달 월급 일부를 그녀에게 보내왔고 이후 그가 회사를 차려 독립하면서 더 많은 돈을 보내왔다.그녀는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면서 이제는 좋은 며느리를 얻는 데만 집착하고 있었다.“돈은 천천히 갚아도 돼. 여유가 생기면 갚아. 동창 사이인데 내가 너를 믿지 않겠어?”그녀의 말에 의사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을 나선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사람이 참 복에 겨워 사는 줄 모르네. 배진호 같은 아들에, 그토록 훌륭한 며느리까지 얻었는데 뭐가 불만이야? 게다가 그 집안의 돈은 몇 대가 써도 부족함이 없는데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가 있나? 나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 그냥 일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술이나 한잔하면서 낚시도 하고 가끔은 카드놀이도 하면서 살겠지. 생각만 해도 얼마나 여유롭겠어?”하지만 그는 정미진이 아니었고 방관자로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다음 날 아침, 권다솔은 간단히 짐을 챙긴 후 캐리어를 끌고 여행사로 향했다.그곳에는 대형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모든 인원이 모이자 운전기사는 공항으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384화

    지금 그의 모습이 헌신짝이랑 다를 게 뭐가 있지?권다솔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배진호는 전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석규리를 등진 채 그녀를 무시했다.석규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한 통의 메시지를 보낸 뒤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아 배진호의 어머니가 직접 나타났다.정미진을 본 순간 배진호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엄마! 몸도 안 좋으신데, 게다가 이제 막 수술을 끝내셨잖아요. 퇴원하시면 어떡해요?”“내가 와서 다행이지! 아니면 네가 여기서 얼마나 더 멍청하게 서 있었을지 몰라. 진호야, 엄마가 곧 죽게 생겼는데 너 정말 엄마를 좀 편하게 보내줄 수 없는 거니?”정미진은 배진호의 이마를 꾹 눌러가며 안타까워했다.권다솔의 가정환경이 조금이라도 평범했다면 돈으로 해결했을 것이다.하지만 권다솔은 권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정미진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권씨 가문까지 닿을 수 없었기에 결국 배진호에게만 압박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엄마가 부탁할게. 죽기 전에 몇 날이라도 좀 조용히 지낼 수 있게 해줘. 더 이상 문제 일으키지 말고 권다솔과 깨끗이 끝내. 네가 꼭 여기에 남아 있겠다면 엄마도 너랑 같이 있을 거야.”정미진은 외투를 벗어 석규리의 손에 건넸다.그녀는 안에 얇은 옷만 입고 있었다.석규리가 옷을 다시 정미진의 어깨에 덮어주려고 했지만 정미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엄마가 아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탓에 내 아들이 한밤중에 여기서 바람 맞고 있잖아. 나만 병실에서 잘 먹고 편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엄마, 정말 제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멈추시겠어요?”배진호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없어진 채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역시나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진호야, 엄마는 네가 무릎 꿇으라고 이러는 게 아니야. 엄마가 원하는 건 네가 권다솔과 완전히 끝내는 거야. 이게 엄마의 마지막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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