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씨 일가에서 소은정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까지 보냈다는 말에 이한석도 혀를 내둘렀었다.전세기를 한번 띄우는 데 드는 돈도 돈이지만 구청에서 허가를 내준 것만 해도 SC그룹의 기부금 또한 결코 적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그럼에도 인터넷에 SC그룹에 관한 기사 한 줄 찾아볼 수 없는 건 그쪽에서 일부러 이 사실을 누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이한석의 대답에 침묵하던 박수혁이 고개를 들었다.그의 손목에 걸린 은색 시계가 박수혁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듯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내가 물은 건 SC그룹이 아니라 은정이야.”그제야 흠칫하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오 집사가 가보았는데 많이 다치신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미 퇴원하셨답니다.”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박수혁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하, 결국 못 숨기겠네. 하긴, 숨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결국 알게 되실 거야.두 눈을 질끈 감은 이한석이 대답했다.“그리고...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소은정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가 사귀고 있다고 합니다.”역시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박수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순식간에 사무실 온도가 3 섭씨도 쯤은 내려간 것 같은 기분에 이한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어느새 호흡까지 거칠어진 박수혁이 이를 갈았다.“그런데 왜... 바로 보고하지 않은 거지?”박수혁의 질문에 망설이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도대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만...”이한석의 대답과 함께 박수혁이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전부 뒤엎었다.파일더미와 함께 고가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윽, 역시... 이러실 줄 알았어... 이제부터 전쟁인 건가?“이렇게 중요한 일을 숨겨?”정말 화가 난 건지 눈까지 빨개진 박수혁의 모습에 이한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책상을 다 쓸어버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책상 다리를 쾅 걷어찼다.고개를 든 박수혁이 단 일말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혐오 섞인 얼굴로 손은하를 훑어보던 박수혁은 한 발 뒤로 물러서더니 바로 돌아섰다.하지만 손은하가 다시 한발 다가섰다.“박 대표님,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들어갔다 가시죠.”손은하의 손끝이 박수혁의 소매를 스치려했지만 박수혁은 마치 쓰레기라도 잡는 듯 팔을 홱 뽑아냈다.“손은하 씨, 연예계 생활 똑바로 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요.”박수혁의 차가운 경고에 손은하의 머리를 자리잡았던 추잡한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성큼성큼 멀어지는 박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손은하가 아쉽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됐어. 어차피 소은해가 있으니까!”오피스텔에서 나온 박수혁은 소은정의 본가로 달려가다 갓길에 끼익 차를 세웠다.소은정의 그 맑은 눈동자를 보면, 진실을 정말 알게 되면 진짜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박수혁의 집.소은정이 없는 집은 유난히 차갑고 휑하게 느껴졌다. 코트를 아무렇게나 소파에 벗어둔 박수혁은 털썩 주저앉아 마음을 눅잦혔다.터벅터벅이때 2층에서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대표님, 오셨어요?”오한진 특유의 깐족거리는 목소리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오 집사가 왜 아직도 집에 있는 거죠?”박수혁의 질문에 오한진이 머리를 긁적였다.“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 당연히 여기 있어야죠...”내가 박 대표님 집사인데 어딜 가라는 거지?“은정이 연애하는 거... 나한테 숨겼던데요? 오 집사 아이디어죠?”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라고 병문안까지 보냈는데 감쪽같이 날 속여?박수혁의 차가운 표정에 오한진의 얼굴이 바로 창백해지더니 조심스레 다가갔다.“대표님, 한석이 너무 꾸짖지 마세요. 한석이 걔 성격 아시죠? 걔는 감히 대표님 속일 생각도 못해요!”오한진의 설명에도 박수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오한진은 말을 이어갔다.“제가... 제가 숨기라고 한 거 맞습니다. 어차피 이미 사귀게 된 거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때 말씀드리려고...”“시간이 더 지나면? 어느 정도로 지나면?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 뒤
지금 당장이라도 오한진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오한진의 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이 자식을 정말 계속 믿는 게 맞는 걸까...망설이던 박수혁이 차가운 눈동자로 오한진을 훑어보았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일단 한석이부터 다시 불러들이시죠.”하, 이 자식이 이제 나랑 딜까지 하려고 해?박수혁의 언짢은 표정을 눈채친 걸까? 오한진이 대답했다.“솔직히 은정 대표님... 대표님보다 한석이한테 훨씬 더 친절하게 말씀하시잖아요...”또 한번의 팩폭에 박수혁이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냥 두 분 사이에서 말만 전하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한참 뒤에야 박수혁이 코웃음과 함께 말했다.“그래. 대신 벌로 올해 보너스는 없는 거야. 얼른 다시 돌아오라고 해.”“역시. 대표님이 가장 착하십니다!”박수혁의 비수 같은 눈빛에 오한진은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었다.등은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고 다리에는 힘이 풀려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아마 1초만 늦었더라면 바로 밑천이 드러났을지도?한석아, 이번에는 형이 너 살린 거다!소파에서 일어서서 2층으로 올라가던 박수혁이 멈칫했다.“이 비서처럼 잘리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이한석의 능력과 충성도는 분명 대단했지만 이 바닥에서 대체할 수 없는 인재란 존재하지 않는 법.태한그룹에 그런 사람은 항상 넘쳐났으니까.하지만 오랫 동안 함께 일했으니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만은 사실.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불편해질 테니 계속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잠시 후, 오한진이 떨리는 손으로 이한석에게 전화를 걸고 이한석은 사무실 개인 용품을 담은 수납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수혁이 방금 전 조사한 사실을 박수혁에게 전송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다시 한번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 져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한편, 무표정한 얼굴로 문자를 바라보던 박수혁은 바로 첨부한 파일을 클릭했다.하지만
원래 함께 오기로 한 전동하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혼자 참석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이때 신한그룹 회장이 다가왔다.“소은정 대표님, 와주셨네요. 정말 영광입니다.”싱긋 미소 짓던 소은정이 들고 있던 선물 상자를 회장의 뒤에 서 있는 비서에게 넘겼다.“아닙니다.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상자를 힐끗 바라본 신한그룹 회장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고가인 한정판 여성 시계... 안면도 없는 딸을 위해 10억이 넘는 시계를 선물하다니...파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거물급 인사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오늘 모신 분들이 워낙 많아 제대로 모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신한 대표의 미안한 듯한 미소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은정 대표님은 제가 모시도록 하죠.”고개를 돌리니 윤시라가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화려한 레드 드레스를 입은 윤시라는 풍만한 가슴 노출은 물론 옆트임까지 시원하게 나있어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흰 다리가 아찔하게 드러났다.섹시를 넘어 왠지 천박하게 보이는 옷차림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던 그때 신한그룹 회장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소개를 시작했다.“소 대표님, 이쪽은 새로 취임한 저희 회사 CEO 윤시라 씨입니다. 전에는 신포그룹에서 일하던 인재였는데 제가 바로 스카우트해 왔죠. 그럼 소은정 대표님은 시라 씨가 모시도록 해요.”말을 마친 신한그룹 대표는 바로 다음 손님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윤시라를 훑어보던 소은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CEO라...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이에 윤시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대표님 덕분에 신포그룹에서 나오고 이런 좋은 일이 생겼네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그 말이 맞나봐요.”윤시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은정을 향해 와인잔을 들었다.이제 신포그룹 직원이 아니니 박수혁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SC그룹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소은정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생
아니, 안 궁금한데...솔직히 파트너고 뭐고 윤시라와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이런 귀찮은 여자가 들러붙을 줄 알았으면 그냥 안 오는 거였는데...“관심없는데요?”소은정의 시큰둥한 대답에 윤시라가 머리를 넘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전동하 대표님도 파티에 오시는 거 모르세요?”전동하의 이름에 소은정이 발걸음을 멈추었다.“설마 지금 그쪽 파트너가 전동하 대표라는 건가요?”“네. 실망하셨나요? 이제 곧 올 텐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시죠?”돈으로도 싸움으로도 밀린다면 기분이라도 더럽게 만들고 싶은 윤시라가 대충 지어낸 거짓말이었다.그래. 당장 화를 내. 내 머리채라도 잡으라고!한편 소은정은 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그러게요. 정말 놀랍네요.”방금 전까지 함께 입장을 못해 미안하다던 남자가 네 파트너라고? 잠시 후에 동하 씨가 정말 나타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짐짓 부끄러운 듯 교태를 부리던 윤시라가 말을 이어갔다.“대표님을 좋다고 하는 남자가 어디 한둘인가요? 한 명 정도는 저한테 내주셔도 괜찮으시죠? 사실 신포그룹에서 나오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전 대표님 덕분이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답니다. 뭐랄까... 전생에 몸과 마음이 하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다 맞는달까요? 전 대표님 응원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소은정이 그토록 무시하는 그녀가 남자를 빼앗아 갔다는 사실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무나 기대됐다.어서 화내... 실망해... 분노하라고.하지만 말도 안 되는 윤시라의 “소설”에 소은정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윤시라가 왜 웃냐고 물으려던 그때 소은정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저었다.돌아선 윤시라의 눈동자에 전동하의 모습이 들어왔다.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기업가가 아닌 학자나 시인에 가까운 모습에 잠깐 넋을 잃었던 윤시라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거짓말이 들통나게 생겼잖아? 어쩔 수 없지 뭐.윤시라가 섹시한 미소와 함께 전동하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윤
아니야. 저 정도로 젠틀한 분이시면 대충 넘어가 주실 거야...윤시라가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찾아내려던 그때 소은정이 바로 전동하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고 카톡을 열어보았다.역시나 윤시라의 연락처는 저장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소은정이 고개를 돌리자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은정 씨가 거드니까 그날 추가는 했지만 바로 지웠어요. 뭐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도 없고요.”순간 윤시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사실 전동하가 그녀를 삭제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친구 추가 요청을 보내도 받아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더 짜증이 났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얄팍한 거짓말이 전부 들통나고 윤시라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휴대폰을 전동하에게 돌려준 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윤시라 씨. 망상도 병이에요. 원한다면 제가 잘 아는 정신과 의사 소개해 드릴게요.”윤시라가 뭐라고 또 반박하려던 그때, 소은정은 더 이상 그녀와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돌아섰다.그러자 윤시라는 바로 타깃을 전동하에게로 돌렸다.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던 윤시라가 묘한 눈빛을 보냈다.“소은정 대표님 왜 저렇게 화가 나신 거죠? 제가 또 뭘 잘못한 건가요? 사실... 저번에 있었던 일 제대로 사과드리려고 한 건데...”하지만 전동하는 바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연기는 그만하죠. 부끄럽지도 않습니까?”그가 도착하기 전 윤시라가 어떤 말로 소은정을 도발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오늘 같은 날 얼굴을 붉히지 않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하지만 전동하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보고서도 가만히 넘어갈 정도로 성인군자가 아니었다.그의 젠틀함은 친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것뿐. 여러 번이나 선을 넘어오는 윤시라에게는 친절함을 베풀 의미가 없었으니까.말을 마친 전동하는 수치심으로 빨갛게 물든 윤시라만을 남겨둔 채 소은정의 그림자를 찾기 시작했다.혼
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은정 씨만 좋다면 난 뭐든 다 좋아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이 화끈해졌다.사람들 다 보는데 부끄럽게...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전동하에게 쑥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사람을 죽여도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럼요. 은정 씨가 살인을 할 정도라면... 기꺼이 공범이 될게요!”은정 씨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거예요. 그게 감옥이라고 해도.소은정이 전동하를 향해 눈을 흘겼지만 마음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소은정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같이 가줄까요?”전동하의 질문에 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내가 뭐 세살배기 애인 줄 알아요?”“그럼... 내가 세살짜리 애라고 치죠 뭐.”단 한시도 은정 씨 옆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왠지 난처해졌다.평소에 가깝게 지내서 망정이지 파티내내 꼭 붙어있는 두 사람을 보면 분명 누군가 의심할 게 분명했다.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야.소은정은 따라오지 말라고 전동하에게 단단히 경고한 뒤에야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로 들어가기 위해 코너를 돌던 그때 소은정은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와 부딪히고 만다.고개를 드니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10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치맛자락을 정리하던 여자가 욕설을 내뱉고 소은정이 먼저 다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괜찮아요?”상대가 갑자기 나타난 상황이라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럴 때는 먼저 사과하는 게 상책이니까.소은정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여자는 그녀가 입은 드레스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아마 같은 톤의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인거같다.게다가 여자의 드레스는 귀여운 공주풍에 타이트한 스타일이라 몸매의 단점을 제대로 부각시키는 반면 소은정의 롱드레스는 주인과 한몸처럼 어우러지고 있었다.소은정의 늘씬한 몸매를 훑어보던 여자가 소은정을
파티에서 같은 컬러 드레스를 입는 건 서로가 난처해질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다.게다가 신한그룹 딸 신지연은 오늘 파티의 주인공, 자칫하면 소은정이 시선을 빼앗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소문이 돌 수도 있었다.하지만 우연히 신지연과 소은정이 먼저 마주쳤고 윤시라의 얄팍한 수단을 바로 눈치챈 신지연이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윤시라, 정말 멍청하다니까. 저런 머리로 어떻게 신한그룹 한국지사 지사장 후보였는지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소은정이 고개를 젓던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고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훌쩍이는 윤시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전 정말 좋은 마음에서...”윤시라 역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은정을 발견했다.하, 다 들은 거야?하지만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신지연이 던진 화병이 윤시라의 등을 명중했다. 그리고 곧 신지연이 달려들더니 윤시라의 머리채를 콱 낚아챘다.어우, 저쪽도 한 성격 하네.“하, 지금 아빠한테 고자질하러 가는 거야?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감히 우리 아빠를 꼬셔?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멍투성이인 얼굴로도 우리 아빠 마음에 들 수 있을까?”신지연은 욕설을 내뱉으며 윤시라의 배를 걷어찼다.머리채를 잡힌 윤시라가 발버둥을 쳤지만 민첩성도 힘 세기도 신지연에게 확연히 밀리는 상황이라 아무 의미없는 반항일 뿐이었다.윤시라의 처참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일방적인 구타는 한동안 이어졌다. 잠시 후 그제야 분이 풀리는지 신지연은 윤시라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손을 툭툭 털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든 신지연 역시 소은정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소은정을 스쳐지났다.나름 대형사고를 치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에 소은정도 혀를 내둘렀다.방안이 다시 조용해지고 소은정은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내뱉는 윤시라에게 다가갔다.“솔직히 일부러 보려고 그런 건 아닌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뭔데요?”“상간녀 노릇도 중독되나 봐요?”그녀가 아는 바에 따르면 신한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