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박수혁은 소은정과 함께 누워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한 상태였다.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놓칠 수야 없지.소은정이 눈을 뜨자 박수혁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실렸다.“굿모닝 자기야.”순간 흠칫하던 소은정이 샤샤샥 뒤로 물러났다.뭐야? 꿈이 아니었어?“자기는 개뿔!”벌떡 일어선 소은정이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그래. 꿈일 리가 없지. 내가 이딴 꿈을 꿀 리가 없으니까. 내가 박수혁이랑 한 침대에서 밤을 보냈다고?한편, 팔베게를 해주던 박수혁은 허전해진 자신의 품을 아쉽다는 눈빛으로 내려다 보았다.소은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록 술을 마시긴 했지만 분명 필름이 끊기진 않았었다. 집으로 들어와 약도 챙겨먹고 샤워까지 하고 잘 때까지만 해도 박수혁은 없었는데... 도대체 언제 나타난 거야!“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소은정의 굳은 얼굴에 박수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약 사가지고 왔더니 안 보이더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찾았는데 여기 있더라...”박수혁이 소은정의 팔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소은정은 질색하며 뒤로 몸을 뺐다.“여긴 내 오피스텔이잖아. 당신이 어떻게 들어온 거야!”소은정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와중에 옷차림을 확인한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소은정에게 박수혁은 잊어야만 하는 남자일 뿐, 두 사람에게 함께 맞는 아름다운 아침 같은 건 존재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소은정의 반응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박수혁이 해명을 시작했다.“문 안 닫았었어, 너.”순간 할말을 잃은 소은정이었다.어제 문을 안 닫았었나? 순간,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조금 식는 느낌이었지만 소은정은 질타를 이어나갔다.“정상적인 남자라면 그런 상황에서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을 거야. 이건 상식이라고.”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길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 좋아하는 여자가 아파하고 있는데 그대로 가버릴 남자가 몇 명이나 되나.”하, 입만 살아서는.
”3년”, 소은정 입에서 “3년”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박수혁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그가 아무리 잘해줘도 그 단어만 나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으니까.3년 동안 소은정에게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 지금의 박수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 한번 준 적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부질없는 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씩 박수혁은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억지로 헌혈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한번이라도 소은정의 마음을 보듬어줬더라면 이런 결말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박수혁의 잘생긴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나한테 상처주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면서.”한발 앞으로 다가선 박수혁은 깊은 눈동자로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네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부담스러운 눈빛에 한발 뒤로 물러선 소은정이 팔짱을 낀 채 비아냥댔다.“어떡하지? 당신이 하는 일이라면 난 다 싫은데?”단호하게 돌아선 소은정은 서랍장에서 돈뭉치를 꺼냈다.“자, 어쨌든 함께 하룻밤을 보냈으니까... 값은 치러야겠지?”억지로 박수혁의 주머니에 돈다발을 넣어준 소은정은 주방으로 향했다.순간 박수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뭐야 이 돈은? 내가 호스트도 아니고!처음 느끼는 모욕감에 숨까지 가빠졌지만 그 상대가 소은정이라 딱히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박수혁은 분노를 꾹꾹 누르며 다가갔다.“뭘 이렇게 많이 줘. 나 그렇게 비싼 남자 아닌데?”소은정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나도 알아. 남은 건 팁이니까 받아둬.”하, 진정하자, 박수혁...이때 거실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고 소은정이 다가갔다.“여보세요?”“나예요.”익숙한 목소리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전동하 대표님?”전동하 대표가 이 번호는 어떻게 안 거지?한편, 전동하라는 이름에 박수혁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머릿속에 무시무시하고 추잡한 온갖
하지만 곧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친구로서 그 정도는 물을 수 있잖아? 아, 혹시 어젯밤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남자친구한테 해명이라도 해줘야 하나?”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그녀가 아는 박수혁이라면 지금쯤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그녀를 향해 욕이라도 퍼부어줬을 텐데.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 사람이 너무 많이 변하면 죽는다던데...“아니, 그럴 필요 없어.”박수혁은 이를 악물었다.침착, 침착해야 해...겨우 이성을 유지하며 박수혁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난 네 모든 선택을 존중해. 하지만 난 네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뭐, 일단은 두 사람 사귄다니까 축복은 해주겠지만... 내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는 박수혁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이 말투... 왠지 익숙한데?이때 박수혁이 말을 이어갔다.“너랑 나, 사적으로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공적으로는 얽혀있는 일들이 많잖아. 남자친구가 괜찮대?”말끝마다 남자친구, 남자친구. 귀에 거슬렸지만 굳이 수정해 주고 싶진 않았다.차라리 이대로 오해를 하는 게 그녀에게도 박수혁에게도 나을지도.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던 소은정은 그제야 방금 전 묘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박우혁!방금 전 박수혁이 했던 말들 쫑파티에서 박우혁이 했던 말과 거의 비슷했으니까.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당신이랑 우혁이... 가족이긴 하네. 닮았어.”뜬금없는 말에 의아하던 박수혁은 곧 그 말에 숨은 뜻을 눈치챘다.뭐야? 지금 날 우혁이 그 자식이랑 비교하는 거야? 내 연기가 부족했나? 충분히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그 양아치랑 비교하지 말아줄래?말을 마친 박수혁이 발걸음을 옮겼다.“난 바로 회사로 갈 거야. 데려다줄까?”“아니, 괜찮아.”고개를 끄덕인 박수혁이 소은정의 집을 나서고 거실은 드디어 조용해졌다.혼자 남은 소은정은 바로 기사에게 전화를
박수혁의 질문에 잔뜩 흥분한 이한석의 목소리가 살짝 수그러들었다.“아직 사인은 안 하셨지만 동의는 하셨습니다.”저번 사건을 통해 박수혁은 태한그룹을 완전히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그 어느 주주도 감히 박수혁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 대가 역시 참혹했다. 지금 박수혁은 박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뒷배를 잃은 상태.그렇게 손주를 아끼던 회장님이셨는데 어쩌다...제삼자인 이한석마저 이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이었다.그를 이 자리에 앉힌 장본인이 다시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기분이 어떨지 이한석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비록 다른 사람이 보기엔 박수혁은 가족에게까지 가차없는 냉혈한 그 자체일 테지만 오랫 동안 박수혁을 모셔온 이한석은 알고 있었다. 박수혁은 단 한 순간도 박대한을 진심으로 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걸.박수혁은 그저 박대한이 더 이상 태한그룹의 남은 세력을 이용해 소은정에게 상처를 주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하지만 박대한은 달랐다.박대한은 태한그룹의 지분을 생판 남에게 넘겨주려고 했었다. 지분이 집안 사람에게 남아있는 한, 언젠가 박수혁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뭐, 결과적으로 박대한의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했지만.“대표님.”이한석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말해.”“저희 쪽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이한석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비수처럼 꽂히는 박수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며 이한석이 침묵을 이어갔다.“어쨌든 한 가족이시잖아요. 회장님도 지금 당장은 화가 너무 나셔서 그러시는 걸 거예요. 다른 가족분들도 겉으로는 뭐라고 못하시지만 뒤에서는 다들 대표님 욕을 하실 겁니다.”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박수혁은 자신을 직접 기른 스승이자 어른의 등에 칼을 꽂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언젠가 박수혁이 위기에 빠진다면 유일하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가족들 중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가족들 사이에는
SC그룹.이른 아침 초대장을 받은 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최근 큰 피바람이 불었던 태한그룹에서 갑자기 파티라니...게다가 금박이 박힌 초대장을 보아하니 창립 기념일보다 더 성대하게 준비한 듯 싶었다.뭐지?어딘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디가 이상하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소은정이 망설이던 그때, 아버지 소찬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네 오빠 여자친구랑 같이 집에 왔어. 오늘 일찍 퇴근해.”엥? 이렇게 빨리? 아직 휴가는 며칠 남았을 텐데.뭐, 소은정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회사를 혼자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며칠 동안 잠까지 설친 소은정이었으니까.“네. 지금 바로 갈게요.”그 부담감에서 해방된 기분에 소은정은 날아갈 듯했다.그러고 보니, 한시연도 같이 왔다고 했지? 두 사람 정말...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가?친구인 한유라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인연이라는 게 본디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소은정으로서는 소은호, 한시연 커플을 축복하는 수밖에 없었다.소은정이 집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집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오늘 오랜만에 집이 북적북적 하네요. 은호 도련님이 처음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셔서 회장님께서 많이 기쁘신가 봅니다.”“아저씨도 기뻐 보이시는데요?”“그럼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분이니까요. 이대로 혼자 사시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입니다.”살짝 상기된 집사 아저씨의 표정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집으로 들어간 소은정의 시야에 소찬식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은호, 한시연의 모습이 들어왔다.연애란, 사랑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항상 차갑기만 하던 소은호를 저렇게 웃게 만들다니.“아빠, 저 왔어요. 오빠, 선배, 재밌게 놀았어?”“이리 와. 자, 네 미래의 새언니가 준비한 선물 좀 봐봐.”소은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던 한시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사실 너희 오빠가 그 동안 너 수고했다고 특별히 고른 거니까 부담갖지 말고 가져.
”크흠.”이때 소찬식이 헛기침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시연아, 너랑 은호 아주 오랫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라 들었어. 우리 은호가 좋아하는 아이니 인품이니 다른 건 걱정되지 않아.”소은정, 소은해가 고개를 끄덕였다.“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그런데 해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두 사람 결혼하면 신혼 생활은 어디서 할 생각이야?”소찬식이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기도 했다.한시연이 과거에 소은호를 찼고 그 사실이 소은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 괜히 트집 잡고 싶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게다가 소은호는 소찬식에게 또 다른 의미로 각별한 자식이었다.첫 아이이자 장남.처음 해보는 아버지 노릇에 장남이라는 이유로 소은호는 유난히 엄하게 키웠었다. 물론 소은호는 그런 그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훌륭하게 커주었지만 왠지 그 사실이 소찬식은 마음에 걸렸다.비록 이상할만치 화목하지만 소씨 집안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 쉽게 사람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한시연이 이해한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은호 씨랑 다시 만나기로 한 뒤로 해외 회사는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대부분 업무는 이미 국내로 시장을 옮긴 상태입니다. 물론 결혼 때문에 제 커리어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저 나름대로 가정에 충실할 생각이에요.”한시연의 대답에 만족한 듯 소찬식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그래. 나도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재벌가 며느리라고 사회생활은 전부 그만두고 남편 뒷바라지만 시키는 건 구시대적인 편견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은호는 워낙 혼자서도 잘하는 애니까.”“네. 은호 씨도 은정 아가씨 능력에 대해 항상 칭찬하던 걸요. 강단있는 성격이라고요.”한시연의 말에 소찬식이 껄껄 웃었다. “하하, 강단은. 그저 애들 장난이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한편, 한시연의 말에 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힐끗 바라
”평소에 태한그룹에서 파티를 열 때면 항상 이한석 비서가 먼저 연락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이름도 처음 듣는 팀장이었어.”소은정이 왠지 이상함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했다.소은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전동하가 보낸 문자 알림 메시지였다.“내일 오후 태한그룹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열리잖아요. 파트너가 필요한데 같이 갈래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태한그룹 파티에 전동하를 초대했다고?이상하다는 느낌이 더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다.사실 전동하 정도의 유명 투자자가 그룹 파티에 초대를 받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동하를 철천지 원수 보듯 하는 박수혁이 전동하를 초대했을 리가 없다.그러니 이 파티는 박수혁이 기획한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알겠어요.”일단 가보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겠지. 웬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에 기대감이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소은정의 묘한 미소에 소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미 가기로 한 것 같은데 내가 같이 가줄까?”“됐어. 파트너도 찾았고 요즘 출근도 안 하겠다 언니랑 같이 좋은 시간 보내.”싱긋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한 마디 덧붙였다.“아, 회사 근처에 있는 그 오피스텔, 나 팔고 싶어.”외출할 때마다 박수혁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소은정의 말에 소은호가 장난스레 물었다.“왜? 돈 부족해?”“그건 아니고. 그냥 좀 싫증나서.”“그럼 그냥 다른 곳으로 옮겨. 어차피 네 명의로 된 부동산이 거기 하나도 아니고. 아무데나 골라서 살면 되잖아.”돈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왜 부동산을 처분하려 하는 거지?동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소은호였다.에휴, 오빠가 뭘 알아. 평생 일만 한 사람이.하지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 않아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한 뒤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두 사람 결혼은 언제 할 거야?”“내일 파트너는 누구로 정했어?”서로에게 질문을 한 소은호, 소은정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이른
하지만 박수혁의 타박에 주눅 들 강서진이 아니었다.“그럼 얼른 차에서 내려. 파트너로서 같이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이 형 좀 봐라? 지금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는 저 늑대 같은 남자들이 안 보이는 거야?강서진의 말에 잠깐 망설이던 박수혁이 차에서 내리던 그때, 강서진이 그의 팔을 잡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아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내 옆에 있어.”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팔을 뿌리친 박수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했다.그리고 나란히 선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전동하, 소은정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남선녀라는 단어가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전동하 저 자식까지 초대한 거야? 하, 할아버지...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박대한이 소은정을 초대한 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오늘 이 파티는 박수혁을 망가트리기 위한 박대한의 마지막 발악일 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하지만... 박대한은 박수혁의 생각보다 훨씬 더 독하고 교활했다.사랑의 라이벌인 전동하 앞에서 무너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박수혁에게는 사형 선고이겠지...역시, 박대한은 박수혁을 가장 잘 아는 사람답게 완벽하게 박수혁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고 있었다.한편, 강서진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지만 친손자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욕이라도 하려다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박수혁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휴, 됐다...결국 강서진, 박수혁은 소은정과 전동하가 팔짱을 낀 채 들어가는 걸 멍허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우리도 이만 내리자.”강서진 역시 이번 파티의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박수혁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박수혁의 친구로서 무슨 일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