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회의실에 남은 주주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박대한과 함께 일할 때는 아직 여러 체계들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던 때. 허위 계약서를 통해 뒷주머니를 채우는 건 어찌 보면 업계의 관례나 마찬가지였고 정과 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대한도 그저 못 본 척 이를 용인했었다.하지만 박수혁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로는 모든 게 달라졌다. 비록 과거의 잘못을 추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허위 계약으로 더 이상 돈을 횡령할 수는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돈줄과 실권을 잃은 몇몇 주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그로 인해 박대한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그런데 그때의 증거들을 박수혁이 가지고 있을 줄이야.공금 횡령은 징역살이를 해야 할 정도로 큰 문제, 주주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털어서 먼지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뭇 주주들이 그 동안 저지른 비리는 셀 수도 없을 정도, 자리보전도 힘들어진 상황에서 줄 타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그제야 주주들은 모든 걸 깨달았다. 왜 박수혁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그토록 담담했는지 말이다.박수혁 이 자식, 우리 약점을 전부 붙잡고 있었던 거였어!박수혁이 회의실을 나서자 마음이 급해진 주주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박 대표가 그 증거들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회장님, 이 사실들 진짜로 파기 시작하면 회장님도 책임을 피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냥 여기서 없던 일로 하시는 게...”“그러니까요. 저희 나이도 있고 이제 그만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됐습니다. 전 따로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박수혁, 박대한의 싸움 때문에 괜한 피해를 입게 될까 걱정된 주주들은 하나둘씩 회의실을 나섰다.아무리 친척이라지만 방계이니 한 다리 건너 친척이나 마찬가지. 괜히 욕심내다 가지고 있는 걸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떤 이들은 해명을 하기 위해 박수혁의 사무실로 가기도 했지만 만남 요청은 전부 거절당하고 말았다.한편 회의실.박대한은 시벌개진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
이한석은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을 마쳤다.몇 초 동안 침묵하던 박대한이 이한석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만약 내가 사인을 안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박 회장의 질문에 이한석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증거는 바로 검찰로 넘어가게 될 테고 회장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박씨 가문과 태한그룹의 기둥이 흔들리게 되겠죠.”최후통첩과도 같은 박수혁의 결정에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박대한은 결국 천천히 펜을 들었다.이 사퇴서에 사인을 하지 않아 정말 검찰 조사로 이어진다면 그를 지지했던 주주들의 호의는 화가 되어 다시 그에게 돌아올 것이다.박수혁, 정말 호랑이가 되었구나......대표 사무실, 박수혁이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다. 아침내내 하늘을 어둡게 만들던 먹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살이 그의 차가운 얼굴을 비추었다.잠시 후, 이한석이 노크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오더니 사인을 마친 사퇴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대표님, 사인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으시다더군요. 주주들에 관한 증거들 원본 파일로 넘겨달라십니다.”“그래. 전부 드려. 내가 지시한 일은? 끝냈어?”예상했다는 듯 박수혁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이대로 파일을 넘긴다면 증거가 파괴될 게 분명했지만 박수혁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그제야 박수혁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래.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해서 움직여.”“아, 그리고... 사모님과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표님을 만나고 싶으시다는데...”“아니. 안 만날 거니까 그렇게 전해.”이한석의 말을 끊은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린 박수혁은 다시 마음이 착잡해졌다. 평범한 가족과 같은 화목함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정마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아들을 끌어내기 위해 거짓말까지 불사하지 않는 어머니라니... 이런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곁을 지키는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소은정의 저택.소은해가 김하늘과 소은정을 위해 사과를 깎아주고 김하늘과 소은정은 소파에 앉아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그리고 주방에서 소찬식은 오늘 낚은 물고기들을 조리하고 있었다.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그때,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역시나 기사를 확인한 김하늘도 입을 열었다.“며칠 전까지 태한그룹 주인이 바뀌는 거 아닌가 말이 많더니 박 회장이 사퇴했네?”비록 한 마디 말로 깔끔하게 결론만 정리된 기사였지만 그 한 마디가 이루어질 때까지 얼마나 처참한 전쟁이 있었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한편 소은정은 박예리 사건이 일단락된 후 박대한의 사주였음이 밝혀지고 나서 이 일의 책임은 끝까지 추궁하겠다고 했던 박수혁의 말을 떠올렸다.그때까지만 해도 가족인 박대한에게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딱히 개의치 않았었다. 그리고 오늘, 기사를 확인한 순간, 소은정은 알 수 있었다. 이 기사가 바로 박수혁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임을.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반면 소은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어차피 태한그룹 실세는 박수혁이었잖아?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거겠지 뭐.”그의 말에 김하늘도 고개를 끄덕였다.“소문에 박수혁이 운영하는 회사가 태한그룹뿐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어요.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두 사람의 대화에 소찬식도 소파에 앉았지만 소은정은 별말없이 아빠한테 차를 건넸다.“사실 그 영감탱이 난 진작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박수혁도 마음에 안 들지만 이번만큼은 잘했네.”소찬식이 쌤통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듣기론 이사회에서 박수혁 엄마에 여동생까지 나서서 박수혁을 끌어내리려고 했다던데... 참 그렇게 보면 박수혁 그 자식도 불쌍한 사람이라니까...”아버지의 말에 소은해가 대답했다.“그러게요. 박수혁은 가족한테도 가차없는 사람이잖아요. 다들 겉으로는 대표님 대표님 하면서 모셔도 뒤에서는 온갖 욕 다한다고 하더라고요...”쓸데없는 가식
이때 소찬식이 고개를 갸웃했다.“시연이가 누구야?”연예계에 워낙 오래 몸을 담아서일까 이런 가십에 특히 예민한 소은해가 바로 대답했다.“형의 첫사랑이자 현 여자친구죠. 은정이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여자랄까요?”시연이라는 이름에 김하늘도 뭔가 떠오른 듯 말을 이어갔다.“은정이 1년 선배였나? 은호 오빠랑 사귀었는데 갑자기 출국했었잖아요?”김하늘의 말에 소은해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부모님이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났었거든. 거의 도망치 듯 해외로 나간 거지. 그런데 한시연 그 여자 보통은 아니더라? 형한테 부탁할 만도 한데 해외로 나가서 혼자힘으로 창업에 성공했잖아. 하여간 독해... 독해... 그리고 그 동안 연애 한 번도 안했대. 형도 그렇고 그 여자도 그렇고 은근 순정파라니까.”웬만한 미니시리즈 못지 않은 스토리에 소은해는 혀를 내둘렀다.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소찬식이 의심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직접 알아본 거야?”“그럼요. 우리 형의 연애사는 완전 희귀템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집안 맏며느리가 될 사람인데... 제대로 알아봐야죠. 한시연 그 여자가 귀국했다는 소문 듣자마자 바로 알아봤죠.”의기양양한 소은해의 모습에 소찬식이 꿀밤을 때렸다.“네가 뭔데 형 연애사에 간섭이야! 동생 자리가 그런 걸 알면 여자들이 들러붙겠냐고! 정말 멍청하다니까!”아버지의 호통에 소은해는 억울하다는 표정과 함께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 그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그리고 이 일은 아빠가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제가 대신 해드렸으면 고맙다고 하셔야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게다가 소은정과 김하늘마저 아버지 편을 들기 시작했다.“오빠 같은 사람이 아무 여자를 만나겠어? 오빠도 참...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그러니까요!”가족들은 몰라도 김하늘마저 그의 편을 들지 않으니 억울할 따름이었다.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2층으로 올라가고 김하늘도 그 뒤를 따랐다.“은정아, 너희 가족들은
한편, 소은정의 답장에 충격을 받은 박수혁은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뭐? 늙은 남자?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작성했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박수혁은 아예 오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오한진은 지금 휴가 중이라 집으로 돌아갔지만 지금만큼은 희한하게 오한진의 조언이라도 받고 싶었다.어두운 밤, 차가운 밤공기가 왠지 박수혁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잠시 후, 서재 문을 열고 들어온 오한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늦은 시간까지 야근 중인 듯한 박수혁 주위로 담배연기가 스모그처럼 끝도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방으로 들어온 오한진이 부랴부랴 창문부터 열었다.어휴, 하마터면 자동경보기가 울릴 뻔했네. 내일 기사 탑면에 태한그룹 박수혁 대표 자살시도? 이런 기사가 올라갈 뻔했다고!!“대표님, 왜 그러세요?”처음 보는 박수혁의 처량한 모습에 왠지 부성애가 차오르는 오한진이었다.“늙은 남자?”담배 연기에 쩔은 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뜬금없는 말에 오한진은 의아할 따름이었다.곧이어 박수혁이 오한진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그제야 두 사람의 대화를 확인한 오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어휴, 늙은 남자라니... 은정 대표님도 참... 우리 남자들도 나이에 은근 민감하다구욧! 하지만 박대한이 배신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 절망한 듯한 박수혁의 모습에 왠지 어이가 없기도 했다.“대표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대표님 하나도 안 늙어 보이세요. 최강 동안이시라고요! 은정 대표님도 지금쯤 후회하고 계실 겁니다.”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이 고개를 들었다.내가 지금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차가운 박수혁의 눈동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그리고 은정 대표님은 어린 애들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 아니세요. 그랬다면 애초에 왜 대표님을 좋아하셨겠어요! 일단 외적으로는 대표님이 은정 대표님의 이상형인 게 확실해요. 지금 은정 대표님은 어떻게든 대표님이 마음을 접길 바라시니까 일부러 이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시는 거라고요! 이럴
다음 날.소은정은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출발하려던 그때 마침 전동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전동하는 치고 빠질 때를 잘 아는 남자였다. 저번 날 집에서 소은정을 놀라게 한 뒤로 전동하는 연락도 하지 않고 굳이 찾아오지도 않았었다.“은정 씨, 오후에 같이 쇼핑이나 할래요?”전동하의 뜬금없는 제안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새로 찾은 취미예요?”그리고 다음 순간, 맑은 전동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저번에 악어 때문에 은정 씨가 깜짝 놀랐었잖아요. 마이크가 그 사실을 알고 많이 속상해 했어요. 쇼핑몰 하나를 통째로 사서라도 제대로 사과하라고 저한테 신신당부 하던데요?”“푸흡...!”결국 소은정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역시 어린애들은 단순하다니까.“괜찮아요. 동심 세계를 이해하기엔 제가 너무 커버렸나 봐요. 다음 번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야겠어요.”“네, 그렇게 해요. 그래도 마이크의 부탁이니 들어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언제 시간 나면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쇼핑이나 영화 보기도 괜찮고요.”어차피 인사치레일 뿐이라고 생각한 소은정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그래요.”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고 약속장소인 골프 클럽으로 향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맑은 공기를 맡으니 기분도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오늘 만나야 할 클라이언트는 몇 년 전부터 거래를 튼 40대 사업가, 장건우. 평범한 외모이긴 했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이었다.소은호 대신 나온 자리, 상대도 소은정이 나온 걸 보고는 흠칫하다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소은정 씨...? 맞으시죠?”“네. 처음 뵙습니다. 장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이때 우연준이 한 마디 덧붙였다.“SC그룹 소은정 대표님이십니다.”그제야 자신이 실례했음을 눈치챈 장건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아 죄송합니다. 소은정 대표님. 소 대표님이 나오시는 줄 알았으면 약속장소를 다른 곳으로 잡을 걸 그랬어요. 골프 좋아하세요?”“괜찮습니다. 잘
소은정이 바로 제안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장건우 또한 알고 있었는지라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렇기 합니다만 원래 가격대로 진행한다면 저희 쪽에서 입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SC그룹이 생산하는 의료기계 부품은 전부 그룹 내부 공장을 이용하고 계시다죠? 그쪽 업무를 저희한테 넘겨주신다면 원가를 좀 낮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하, 이게 진짜 목적이었어?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스타일이네?의료기기 스마트 칩은 워낙 기술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SC그룹 내부 공장에서 직접 생산, 조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비밀유지 계약서까지 체결한 상황, 외부 업체에 넘기면 핵심 기술력을 스스로 유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핵심 경쟁력을 내줄 수는 없지...소은정은 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장 대표님, 이렇게 하시죠. 저희가 함께 일한 지도 꽤 되었고 앞으로 계약은 5년 단위로 체결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가격을 2배로 인상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윈윈 아닐까요?”소은정도 아무 준비 없이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니었다. 원자재 값이 올랐다는 장건우의 말은 사실, 원래 가격을 유지한다면 장건우의 공장은 몇 년 못 버티고 파산을 맞게 될 것이다. 소은호 또한 일단 장건우가 원하는대로 들어주는 게 장기적으로 더 나을 것이라 분부했던 터라 자신만만하게 2배라는 가격을 제시한 것이었다.하지만 장건우의 표정에는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그가 더 관심을 가지는 건 의료기기 조립이었으니까.게다가 소은정 이 여자, 들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은 성격이다...그래도 가격이 2배까지 올라간 건 기대 이상의 결과 장건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좋습니다. 시원시원하시네요. 그럼 지금 바로 계약 다시 체결할까요?”장건우의 말에 고개를 든 소은정이 우연준을 바라보고 우연준이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잠깐의 침묵이 감돌던 그때, 고개를 든 소은정의 시야에 익숙한 누군가가 들어왔다.하지만 딱히 개의치 않았다. 골프 클럽에서 비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우아한 자태로 의자에 앉은 소은정이 여유로운 얼굴로 물었다.이런 일이 있을 때는 경찰을 먼저 찾는 게 당연지사,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걸까?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더 조급해진 걸까? 양예영은 부랴부랴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사진 속 양예영은 스무살 남짓해 보이는 앳된 모습,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었다.“이 아이예요. 올해 6살이고요. 장건우는... 어린애들을 학대하는 변태 같은 남자예요. 저 짐승 같은 자식한테 제 딸... 죽을지도 모른다고요.”그제야 소은정은 뭔가 이상한 걸 느껴졌다.“설마... 장건우 아이에요?”소은정의 질문에 흠칫하던 양예영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장 대표가 제 스폰서였어요. 가지고 놀다 얼마 안 돼서 저는 결국 버러졌고요. 아이는 제가 장건우 몰래 낳은 거예요. 그런데 장건우 저 자식 보기엔 멀쩡해도 심각한 변태예요. 아동 학대 패티쉬가 있다고요! 평소 장 대표... 고아원으로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고 그러죠? 사실은 거기 있는 애들 괴롭히러 가는 거예요.”또다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뒤적거리던 양예영은 장건우가 온몸이 멍투성인 아이를 안은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을 찾아 소은정에게 보여주었다.순간, 소은정은 장건우라는 인간이 역겹게 느껴졌다.양예영은 여전히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장건우는 제 약점을 쥐고 있어요... 웬만한 경찰들도 이미 장건우한테 매수된 상태고요... 제가 믿을 사람은 은정 씨뿐이에요. 제발... 제발 제 아이 좀 구해 주세요...”절박한 양예영의 모습에 소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예영은 프로 배우, 정말 믿어도 되나 싶었다.계약서 양식을 준비해 다가오던 우연준도 양예영을 보고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계약서입니다. 확인해 보시죠...”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뭔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장건우 대표 좀 막아줘요.”갑작스러운 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