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가까이 살고 싶어서 여기로 정한 거라는 뜻이 적나라하게 담긴 전동하의 말에 순간 흠칫하던 소은정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 집... 은해 오빠가 받은 첫 출연료로 사준 거예요. 그 뒤로 집값이 많이 오르긴 했죠. 앞으로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해서 절대 쉽게 안 팔 거예요. 그쪽에 사는 사람들 전부 돈이 부족한 사람들도 아니고.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팔 리가 없죠.”부동산 얘기가 나오자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S시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S시 부동산 업계가 다시 되살아날 거라 확신하는 소은정이었다.한편, 그런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고개를 저었다.이 여자 내 마음을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역시 부동산 상황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전동하의 감탄 어린 눈빛에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돈 되는 일에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편이랍니다.”지문으로 문을 연 전동하가 그녀를 안내했다.“자, 들어가시죠.”전동하의 취향이 그대로 담긴 집이었다. 웬만한 가구는 AI 기능을 사용해 왠지 SF 영화에 나오는 미래지향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주인을 인식한 인공지능이 바로 인사를 건넸다.“집으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동시에 현관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있던 슬리퍼가 드러났다.타이트한 드레스에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있는 소은정은 허리를 숙여 슬리퍼를 갈아신을 생각에 왠지 귀찮아져 현관에서 내부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그런데 이때 전동하가 허리를 숙이더니 부드러운 손길로 소은정의 부츠를 벗기고 슬리퍼를 신겨주었다.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세 오빠에게 이런 대접을 항상 받아오긴 했지만 그 상대가 전동하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자, 안으로 들어와 봐요.”그래. 전동하 대표가 이상한 짓을 할 사람도 아니고. 밖에 기사도 있으니까 여차하면 소리 지르지 뭐.그제야 소은정은 깊은 숨을 내쉰 뒤 안으로 들어갔다.깔끔한 화이트 톤 가구와 정연하게 배치된 물건들이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전동하는 어색하게 웃더니 바로 문을 닫아 그녀의 시선을 차단했다.“사실... 저도 은정 씨가 놀랄까 봐 선물하는 거 반대했었는데 마이크가 굳이 서프라이즈 선물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소은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서프라이즈긴 하네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그렇지...”그저 심장 질환은 없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소은정이었다. 잔뜩 겁 먹은 그녀를 살짝 안아주던 전동하가 그녀의 팔목을 끌고 거실로 향했다.“윌리엄, 따뜻한 물 한 잔만 줘.”은정 씨 진짜 많이 놀랐나 보네. 내가 괜한 욕심에 실수했나...전동하의 지령과 함께 1m 50 남짓의 하얀 로봇 집사가 다가와 소은정에게 물을 건넸다.“사랑하는 은정님, 물 마시세요...”이 호칭은 또 뭐야?소은정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고개를 좌우로 갸웃하던 로봇이 다시 한번 반복했다.“네. 사랑하는 은정님, 물 마시세요.”뭐야 날 알아 보는 건가?이때 전동하가 물컵을 받아들고 다시 지령을 내렸다.“수고했어. 이만 가봐.”로봇이 스르륵 자리를 뜨고 소은정은 사랑하는 은정님이라는 호칭을 다시 되새겼다.“아까 그 로봇... 뭐예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얼굴까지 붉혔다.“그게... 로봇 시스템에 제 친구들 정보를 입력했는데.... 닉네임이 조금 잘못된 것 같네요.”저도 모르게 윌리엄에게 소은정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이었다.물론 로봇은 두 사람의 사이를 짐작할 만큼의 지능도 눈치도 없으니 입력한 바를 그대로 읊어냈고 그 결과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씁쓸함이 밀려왔지만 전동하는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언젠가... 은정 씨도 마음을 돌릴 거야.한편, 단숨에 물을 다 마신 소은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시간도 늦었고 이제 그만 가볼게요. 그리고 아까 그 선물은... 도저히 못 받을 것 같아요. 마이크가 섭섭해 하진 않겠죠?”소은정은 최대한 로봇
게다가 소은정의 우아하고 냉정한 태도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대화 내용만 따지고 보면 너무나 일상적이었지만 그 고고한 말투와 표정은 마치 죄를 사하는 성녀의 모습까지도 연상케 했다.한편, 강서진은 영상이 유출된 사실을 알고 방방 뛰다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 친구들을 차단하는 치졸함까지 보여주었다.이게 무슨 망신이래!대지를 찬란하게 비추던 해가 넘어가고 그 뒤를 장식하던 붉은 노을까지 사라지고 은은한 달빛과 눈부신 네온사인이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웠다.태한그룹.혹시나 소은정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SNS를 뒤적거리던 박수혁은 이태성이 업로드한 “강서진 비굴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클릭했다.클릭과 동시에 “이미 삭제된 영상입니다”라는 글귀가 뜨긴 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박수혁이 아니었다.바로 이태성에게 DM을 보낸 박수혁은 끝끝내 영상을 입수하고 말았다.“서진이가 절대 유출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줬다고 말하지 마라?”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어 영상을 클릭한 박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10초 정도 되는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던 박수혁은 이상하리만치 비굴한 강서진의 모습에 질문했다.“서진이가 뭐 잘못했어?”“몰라.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받은 거라. 아 물론 지금은 다들 삭제했어.”이태성과의 대화에서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한 박수혁은 바로 강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은정이한테 뭐 실수했어?”단도직입적인 박수혁의 질문에 강서진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도대체 누가 저딴 영상을 찍은 거야! 잡히기만 해봐 아주!“형은 어떻게 안 거래?”“무슨 일인데?”박수혁이 대답 대신 되물었다.하긴, 박수혁이 물으면 다들 대답해 줄 수밖에 없겠다 싶어 강서진이 직접 설명했다.“오늘 그 예능 프로그램 종방 파티인데... 추하나랑 박우혁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고 속이 뒤집혀서는... 박우혁이 소은정 씨를 좋아했다는 말을 실수로 해버렸거든...”강서진의 말에 박수혁은 한참을 침묵했다.그리
한참을 울던 강서진은 진작 통화가 종료된 걸 발견하고 휴대폰을 내팽개쳤다.한편, 통화를 마친 박수혁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오한진에게 말했다.“오늘 종방 파티에서 은정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줘요.”박수혁의 분부에 오한진은 하던 일을 제쳐두고 바로 대답했다.“네, 대표님.”오한진이 사무실을 나서고 휴대폰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소은정의 SNS로 들어가봤지만 여전히 텅텅 비어있는 걸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왜 사진을 안 올리는 거야.”잠깐 망설이던 박수혁은 카톡창에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네가 너무 보고 싶어. 뭘 보든 네 얼굴이 아른 거려.”크으... 그가 봐도 달콤함 한도를 초과한 멘트였다. 과거의 무정하고 차갑던 박수혁이 아니라고 다시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박수혁은 바로 문자를 전송했다.10초... 30초...여전히 묵묵부답인 휴대폰에 박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자는 건가?또다시 망설이던 박수혁은 대화창에 “잘자”라고 적은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뒤 따르는 글귀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친구가 아닌 상대에게 문자를 보낼 수 없습니다.이때 눈치없이 이한석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대표님, 저희 이제 그만 퇴근해도 될까요?”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은 박수혁의 표정에 이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안 된다고요? 알겠습니다.”사무실 문을 꼭 닫고 나온 이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오후까지 직원들에게 커피에 디저트까지 쏘던 박수혁이 왜 또 기분이 나빠진 건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차라리 항상 굳은 표정으로 있던 예전이 그리워질 정도였다.얼마 후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아낸 오한진이 사무실로 달려들어와 자초지종을 전부 얘기해 주었다.“도련님도 참 대단하시네요. 여자 마음을 아주 잘 아시는데요?”박우혁 반이라도 따라갔다면 소은정이 진작 넘어갔을 텐데라는 생각에 오한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그제야 박수혁도 왠지 강서진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이런 여우 같은 조카자식 같으니.
솔직히 박수혁은 소은정이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밀려들었지만 오한진의 근거없는 자신감에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저렇게까지 확신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걸까?그리고 소은정과의 친구 추가를 다시 요구하는 카톡창을 바라보다 오한진이 건네는 아이패드를 받아들었지만 곧 바로 다시 던져버렸다.“아, 안돼. 이런 건 보고 싶지도 않다고.”소은정을 위해서라면 별도 달도 따다줄 수 있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아깝지 않았지만 저딴 대사를 하는 건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넌 내가 만났던 여자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야.”“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었는데 널 보는 순간, 남은 건 이것 한 마디뿐이야. 사랑해.”“화난 거 알아. 그런데 이렇게 늦게까지 나랑 얘기해도 괜찮아? 남자친구 화 안 내?”전부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들에게 보내는 애매한 멘트들이었다. 한편, 박수혁이 강하게 거부감을 보이자 오한진은 발까지 동동 구르며 설득을 시작했다.“대표님, 전동하 대표가 은정 대표님 본가와 가까운 SY 타운 구매하신 거 아시죠? 이건 장기전으로 넘어갈 계획인 거라고요!”하지만 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의 입가에는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은정이 오피스텔 위층, 아래층 옆집까지 다 내 명의인데?”“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요즘 은정 대표님은 본가에서 지내시잖아요!”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럼 그 본가 땅을 사버릴까?”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 집에서 그 땅을 팔 리가 없지.한편 아직도 자존심을 채 내려놓지 못한 대표의 모습에 오한진은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대표님, 지금 저희는 압도적으로 전동하 대표한테 밀리고 있어요. 적어도 은정 대표님은 전동하 대표를 더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다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연민의 감정에서 사랑으로 번지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순간 박수혁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오한진을 노려보았다. 그 포스에 눌린 오한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대표님,
국자를 쥐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고 오한진을 한참 동안 노려보던 박수혁은 결국 주방을 나가버렸다.저런 중2병스러운 소설은 도대체 어디서 찾은 거야!그리고 남주는 기업 대표라면서? 저런 무례한...!박수혁의 뒤를 따라 달려나온 오한진이 설명을 시작했다.“대표님, 작가가 기업 대표의 삶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물론 굳이 비교하자면 대표님이 남주보다 훨씬 더 멋지시죠. 그런 디테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하지만 박수혁은 더 이상 오한진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꺼져!”“네. 일단 꺼지겠습니다. 좀 더 정상적인 소설로 찾아올게요.”뒤뚱거리며 자리를 뜨는 오한진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속에서 천불이 이는 기분이었다.터벅터벅 방으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박수혁은 겨우 이성의 끈을 잡은 채 휴대폰을 켰다.소은정에게 문자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친구 요청 메시지였다.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외로움이 그를 휘감았다.이렇게 은정이를 또다시 잃게 되는 건가?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그래, 좀만 참아보자... 은정이와 다시 화해할 수 있다면 역겨운 소설 따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읽어주겠어.큰 다짐을 한 듯한 박수혁은 다시 음성 파일을 클릭했다...소은정의 본가.집으로 돌아온 소은정과 김하늘은 오늘 있었던 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요즘 소은해는 김하늘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잠자는 시간 말고는 그녀를 밀착 경호하는 중이었다.뭐 그 덕분에 윤지훈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나란히 침대에 누워 마스크 팩을 하던 그때, 김하늘이 문득 말했다.“그나마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오빠한테 신세진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김하늘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소은해 그 인간이 좋아서 하는 거야. 이 바보야...“마음에 담아두지 마. 소은해가 안 했으면 내가 했을 테니까. 그리고 은해 오빠 너 좋아하잖아. 오히려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연락을 받은 우연준이 바로 박수혁을 맞이했다. 박수혁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붙인 건지 접객실도 아닌 대표 사무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박수혁은 유리창 너머 회의실에 앉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정교한 화장에 능숙한 일처리, 자신만만한 미소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화려한 미모임에도 그녀의 미소는 부드러움보다는 왠지 모를 날카로움이 느껴져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 순간 박수혁은 새삼스레 다시 소은정에게 반하고 말았다.그녀의 부드러움과 강함이 그녀의 지혜와 용기가 박수혁을 걷잡을 수 없이 빠지게 만들었다.그와 함께했던 3년 동안 날카로움을 감추고 모든 반짝임을 감추고 살았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마 소은정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3년이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결혼 생활을 후회하고 있는 거고.옆에 서 있는 우연준은 박수혁을 쫓아버릴 수도 없고 안절부절 못할 따름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남다른 포스를 내뿜는 박수혁의 눈치만 바라보느라 업무 전체가 마비 상태였다.20분 뒤, 회의가 끝나고 각 부서 부장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다.“대표님은 너무 직설적이셔. 은호 대표님보다 훨씬 더 무섭다니까...”“지금 우리 그룹 실세는 소은정 대표님이야. 줄 잘 서야 해.”모두가 나선 뒤에야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며 회의실을 나서던 소은정은 어느새 회의실 문앞까지 다가온 박수혁을 발견하고 흠칫했다.이 남자가 왜 여기에?“굿모닝.”뻔뻔하게 아침 인사까지 건네는 박수혁을 무시하고 소은정은 우연준을 노려보았다.하지만 우연준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전 박수혁이 먼저 선수를 쳤다.“일 얘기 하러 온 거야.”이 한 마디를 남겨둔 채 박수혁은 먼저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뭐 저딴 게 있나 싶어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은 들고 있던 자료를 우연준에게 넘겨주었다.“커피 두 잔 준비해 줘요.”“네.”소파에 앉은 채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박수혁은 이 방의 주인인 듯 여유로웠다.
왜 저러나 싶어 박수혁의 행동을 관찰하던 그때 박수혁이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제비집 수프를 컵에 따르는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의 긴 손가락 덕분에 왠지 아름다운 안무처럼 느껴졌다.“먹어 봐.”예전과 먼가 달라진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콕 집어 어디가 달라졌는지는 말하기 힘들어 더 답답했다.“오 집사님이 하신 거야?”긴 속눈썹을 늘여트린 채 제비집 수프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하지만 입맛이 없었던 소은정은 수프는 손도 대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친구 삭제한 거 말고 다른 할 말 있어?”대놓고 이만 꺼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소은정의 태도에 박수혁의 눈동자가 살짝 반짝였다.“거성 프로젝트 추진을 더 가속화할 생각이야. 독일 기술팀을 스카우트했거든. 다음 달 쯤에 도착할 거니까 일정표부터 다시 짜자.”그제야 소은정은 박수혁의 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그 콧대높은 독일 기술팀을? 웬만한 연봉으로는 꿈쩍도 안 하는 사람들인데.소은정이 몰래 감탄을 하던 그때 박수혁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전동하 그 자식더러 얼른 미국으로 꺼지라고 해.”온갖 인맥을 동원해 기술팀을 더 스카우트한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전동하와 인연을 끊어내기 위해서였다.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 소은정도 다시 흔들리지 않겠지.“전동하 대표가 미국을 돌아가든 말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한숨을 푹 내쉰 소은정의 대답에 박수혁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녀를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빛은 용암보다 더 뜨거웠다.“내 말 무슨 뜻인지 알잖아? 전동하 대표를 차버리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게.”순간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오호, 세게 나오는데?박수혁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소은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오직 박수혁만 할 수 있는 보장이겠지.어제 밤새 오한진이 준 소설을 읽으며 박수혁이 깨달은 건 한 가지!이딴 방법은 소은정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