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불빛이 환하게 비추는 어두운 밤, 그린 클럽.소은정은 체크무늬 셔츠에 미니 스커트를 매치한 캐주얼한 차림으로 클럽에 나타났다. 짧은 기장의 치마가 소은정의 각선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룸에 도착하자마자 박우혁은 샴페인을 터트리더니 원한빈의 얼굴에 뿌려버렸고 원한빈도 지지 않겠다는 듯 바로 박우혁의 헤드락을 걸었다.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그때, 소은정이 룸으로 들어오자 PD와 얘기를 나누던 유준열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대표님 오셨어요?”PD를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준열의 스태프들인지 낯선 얼굴도 간간히 보였다.주위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 소은정과 달리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반시연은 외로운 모습이었다.반시연은 의상이며 메이크업이며 헤어며, 지금 모습 그대로 레드카펫을 걸어도 될 만큼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었지만 그녀 곁에 다가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저번 촬영에서 만장일치로 번지 점프를 하게 된 반시연은 자신이 이 그룹에서 결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번지점프 후에도 그녀의 컨디션을 걱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다니. 괜히 소은정에게 자격지심을 느껴 견제했던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사실 쫑파티 따위에 참석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음 시즌 계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비추러 온 것이었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신인 연기자상을 수상한 김에 웹 예능에 출연한다면 인기가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애초의 기대와 달리 그녀가 보여준 모습 때문에 오히려 이미지만 깎아먹고 말았다.하지만 연예인에게 악플보다 더 나쁜 건 무플, 좋든 나쁘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데는 성공했으니 어떻게든 이 프로그램에 더 붙어있어야 했다. 그래야 이미지 세탁을 하든 뭘 하든 기회가 있을 테니까.반시연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소은정이 부러웠고 질투가 났다. 하, 뭐가 그렇게 잘났어? 돈 좀 있으면 다인가?원한빈이 전화를 받으러 나가고 옆자리가 빈 박우혁이 바로 소은정을 자신의 옆으로 안내
말을 하면 할 수록 화가 치미는지 원한빈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허, 뭐야? 이 막장 전개는? 요즘은 아침 드라마 시나리오도 이렇게 안 쓴다고!소은정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원한빈을 바라보았다.“그런 거라면 도와줘야죠.”그냥 여자친구 역을 하는 것뿐이니 별문제야 있겠나 싶었다.“그런데... 나 정도로 정말 괜찮겠어요?”소은정의 질문에 원한빈이 그녀를 훑어보았다.“누나 돈 많잖아요.”하, 이 자식 봐라? 수많은 장점 중에서 돈을 꼽다니.원한빈은 소은정이 동의했다고 받아들였는지 바로 그녀의 손목을 끌고 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룸 안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인혜야, 우리 중에서 네가 가장 먼저 갈 줄은 몰랐다. 태성 씨가 아주 너라면 껌벅 죽더구만. 어떻게 휘어잡은 거야? 비결 좀 말해 봐.”“너희들 몰랐어? 인혜 얘 임신했잖아. 시간 더 지체하면 웨딩드레스 못 입을까 봐 급하게 결혼식 올리는 거야.”“어머, 정말? 축하해. 겹경사네...”“야, 결혼하면 경제권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 거 알지?”......소은정은 괜히 옆에 있는 원한빈의 눈치를 보았다. 역시,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꼭 가야겠어요?”“당연하죠!”말을 마친 원한빈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은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무뚝뚝하던 원한빈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니 복수가 정말 하고 싶었나 보다 싶었던 소은정이 바로 연기에 몰입했다.“어, 여기가 아닌가 봐, 자기야...”애교섞인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에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원한빈은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역시나 흠칫 놀란 척 연기를 시작했다.“그러네. 죄송합니다...”덤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던 원한빈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허인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원한빈의 눈빛이 위험하게 반짝였다.“하, 이런 우연이 있나. 여기서 친구를 다 보네.”원한빈은 “친구”라는 단어에 특별히 힘을 주었다. 그
소은정은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싱긋 웃으며 원한빈의 팔짱을 겼다.뭐지?아무 말도 없다는 건 인정한다는 건가?게다가 자연스럽게 어깨에 올린 저 손... 두 사람 정말 사귀는 거야?룸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두 사람의 다정한 스킨십에 허인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소은정을 가리키며 뾰족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더 잘난 여자 만날 거라더니. 겨우 저 여자야?”허인혜의 무례한 발언에 방금 전까지 소은정에게 팬심을 표하던 친구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한편, 허인혜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원한빈이 이 룸으로 결코 우연히 들어온 게 아님을, 오늘 뭔가 단단히 벼르고 왔음을 허인혜는 직감했다.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를 바라보는 원한빈의 눈동자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그래서 원한빈이 쓸데없는 짓을 벌이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해야 했다. 그래서 원한빈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었다.“너 눈 많이 낮아졌다. 예쁜 애들은 전부 거절하더니 겨우 저딴 여자랑 사귀는 거야?”허인혜의 계속되는 도발에 사람들은 소은정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편, 소은정은 그녀의 말에 딱히 불쾌한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오늘은 원한빈의 복수 무대니 모든 건 그에게 맡길 수밖에.“인혜야, 너 지금 소 대표님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소은정의 낯빛을 계속 살피던 친구가 허인혜의 드레스 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친구의 말에 허인혜도 살짝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헉! 원한빈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기 위해 나오는 대로 내뱉은 거였는데... 하필 그 상대가 소은정이라니.허인혜가 변명하려던 그때, 원한빈이 차갑게 웃었다.“겨우? 누굴 만나든 너보다는 훨씬 더 나을 거야.”룸 안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고 친구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아니, 친구라고 하더니 왜 이렇게 서로 날을 세우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한편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허인혜가 두 눈을 반짝였다
소은정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 원한빈을 올려다 보았다.“됐어요. 어차피 파티에 참석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쪽은 오늘 제대로 한을 풀고 가고 싶다는데요?”원한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려던 순간 허인혜가 먼저 선수를 쳤다.“한빈 씨, 우리 사이가 조금 껄끄러운 건 맞지만... 그래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죠.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 그리고 이제 겨우 유명세를 얻은 유튜버 주제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무례를 범하는 거죠? 제 예비 신랑은 위연그룹 둘째 아들이에요. 여기 모은 다른 분들도 전부 재벌 2세들이고요. 이 파티를 망치면 앞으로 연예계 생활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아주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들이니 알아서 주제 파악하고 기어라는 소리였다.그녀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씰룩거렸다.하, 허인혜, 수수한 얼굴에 착한 척은 다 하더니, 이런 모습을 숨기고 있었어?이태성도 여자친구의 이런 모습은 처음인지 눈동자가 커다래졌다.평소에 큰 소리 한 번 안 내던 사람이 왜...룸 안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누군가 음악까지 꺼버려 그야말로 죽음 같은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원한빈은 허인혜의 협박이 오히려 우습다는 듯 피식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그래. 내가 가난한 모험가인 건 맞지. 그래서 내 돈 다 들고 재벌 2세한테 들러붙은 거야?”“닥쳐!”“뭐라고?”허인혜와 이태성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초조하고 불안한 얼굴의 허인혜와 당황스럽고 놀란 표정의 이태성의 눈빛이 모두 원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허인혜는 바로 이태성의 팔짱을 끼며 해명했다.“태성 씨, 저 남자 말 믿지 말아요. 저 사람 사기꾼이라고요. 전 애초에 저런 사람 알지도 못해요. 우리...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잖아요. 저딴 사기꾼 때문에 흔들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날 믿어요.”허인혜의 말에 흔들린 듯 잔뜩 찌푸린 이태성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하하하하!”하지만 이에 원한빈은 이런 웃
원한빈은 허인혜를 죽어라 노려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한빈은 자신이 뭘 잘못한 줄 알고 허인혜가 있는 곳으로 부랴부랴 달려갔었다.사과를 하든 무릎을 꿇든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으니까.하지만... 그런 원한빈의 시야에 들어온 건 너무나 다정한 모습으로 호텔에 들어가는 이태성과 허인혜의 모습이었다.그 뒤로 다니던 학교까지 자퇴하고 허인혜는 완전히 그의 세계에서 사라졌다.그때부터는 다른 사람들한테 만나던 여자가 죽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인생 최대의 치욕,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했으니까.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원한빈과 허인혜를 번갈아 돌아보았다.세상에... 결혼 전 날 이런 재미있는 볼거리라니.점점 흥미롭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사람들의 두 눈이 반짝였다.허인혜는 초조한 얼굴로 이태성의 팔을 잡아당겼다.“아니에요. 저 진짜 거짓말한 거 아니에요. 난 당신 정말 사랑해요...”하지만 그녀의 애원에도 이태성의 미간을 찌푸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허인혜는 두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돌려 원한빈을 노려보았다.“겨우 5000만원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래서 결혼식 전 날에 이렇게 깽판을 쳐야겠어? 한때 사랑했던 여자한테 그 정도도 못 해줘?”하, 뻔뻔하긴...순간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혐오감이 더해졌다.하지만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허인혜에게 그런 것 따위가 보일 리가 없었다.“뭐? 나랑 결혼하겠다고? 돈 한 푼 없는 자식이 무슨 자격으로 결혼을 논해? 뻔뻔한 건 너야, 원한빈!”허인혜는 소은정을 노려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러는 너도 결국 돈 많은 여자랑 사귀게 됐잖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욕해!”“아, 그러니까 이태성 씨가 한빈 씨보다 부자라서 한빈 씨를 찼다는 거죠?”“누구라도 그렇게 선택했을 거예요!”무의식적으로 대답한 허인혜는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색하게 이태성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이태성의 눈빛에서 더 이상
소은정의 폭탄 발언에 주위가 조용해졌다.SW그룹은 글로벌 대기업으로 시가 총액은 위연그룹의 수십 배에 달했다.허인혜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원한빈을 바라보았다. 깜짝 놀란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유튜버인 원한빈이 재벌 2세라니...하지만 폭탄을 던져버린 소은정은 여유롭게 원한빈의 팔짱을 끼고 룸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허인혜의 울음 섞인 해명이 흘러나왔다.복도 끝까지 걸어간 뒤에야 두 사람은 팔짱을 풀고 서로를 향해 싱긋 웃었다.“우리 집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어요?”원한빈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우혁이가 말해 줬는데요.”“하, 이 자식. 진짜 입만 가벼워서는.”원한빈이 고개를 저었다.“뭐 어때요? 나쁜 일도 아니고. 마지막 선물로 이 폭탄은 터트려줘야죠?”두 사람이 클럽을 나가려던 그때, 뒤편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벌써 가려고?”박수혁이었다.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원한빈, 소은정은 흠칫 하다 뒤돌아섰다.“친구 위로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나왔어?”남자친구를 배신한 허인혜가 인과응보를 당한 것도 속이 시원했지만 평소 안하무인이던 이태성이 당한 꼴을 보는 것도 나름 깨고소하다고 생각하던 소은정이었다.“두 사람 일부러 룸에 들어온 거지?”원한빈을 힐끗 바라보던 박수혁이 물었다.“그렇다면요? 친구 대신 복수라도 하시려고요?”원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여유로운 원한빈의 표정에 박수혁은 코웃음을 쳤다.“그딴 건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궁금한 건... 너랑 소은정 도대체 무슨 사이야?”고개를 돌린 박수혁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태성과는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평소 그의 이름을 팔아 밖에서 잘난 척하는 꼴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그는 친구의 실패한 연애사 따위에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기분을 거슬리게 만든 건 바로 룸에 들어온 뒤로 다정한 연인처럼 스킨쉽을 주고 받는 소은정과 원한빈이었다.“무슨 사이면 뭐?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
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은 가슴이 욱신거렸다.뭐야? 정신 차려. 박수혁이 불쌍하기라도 하단 거야?소은정은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혁과 시선을 마주했다.“알면 됐어.”매정한 소은정의 말에 마음이 아프긴 박수혁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수많은 여자들의 시선을 끌던 멋진 뒷모습이 오늘만큼은 외롭게 느껴졌다.협박도, 회유도 통하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소은정 앞에서만큼은 무력해지는 자기 자신이 미웠다.이때 룸에서 나온 강서진이 부랴부랴 달려왔다.“형, 얼른 좀 와봐! 태성이가 지금 당장 애부터 지워야 한다고 난리... 어? 은정 씨?”이에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지어준 뒤돌아섰다. 외롭지만 결연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수혁은 또다시 아려오는 가슴에 미간을 찌푸렸다.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표정을 관리했지만 손톱이 파고들어갈 정도로 꽉 움켜쥔 주먹이 지금 이 순간, 박수혁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대충 눈치챈 강서진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려던 그때, 박수혁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형!”부름에도 대답 없이 움직이는 박수혁의 모습에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든 강서진이 뒤를 따라가던 그때, 룸 안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온다.“젠장...”짧은 욕설을 내뱉은 강서진은 잠깐 고민하다 결국 룸으로 다시 돌아간다.소은정이 다시 룸으로 돌아오지 그제야 원한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남녀 사이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이 맞나 보다. 그 천하의 박수혁이 여자 앞에서 결국 고개를 숙인 걸 보면.박우혁은 약속대로 비싼 양주를 주문했지만 이미 기분이 잡친 소은정은 술을 마실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붉은 눈시울로 그녀를 바라보던 박수혁의 눈빛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내가 너무 심했나? 아니야. 괜한 희망을 심어주는 것보다 현실을 제대로 짚어주는 게 맞아. 언젠가 나도 새로운 연애를 할 테고 박수혁 당신도 재혼할 거잖아.착잡
소은정은 괜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술자리가 끝나고 소은정과 스태프들은 카드게임을 시작했고 밤새 이긴 그녀는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일부러 져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짜릿한 승리의 기분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판마다 지는 반시연의 표정이 일그러질 무렵에야 소은정은 오늘은 이만 파하자고 제안했다.다음 날 점심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소은정은 낑낑대며 몸을 뒤척였다.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다시 꿈나라로 가려던 그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이런! 무음으로 해놓을걸.“한유라, 제발 잠 좀 자자. 잠 좀.”짜증스런 소은정의 말투에도 한유라는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아직도 자고 있었어? 네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뭔데.”“오늘 이태성 결혼식이잖아. 그런데 신부가 바뀌었더라고.”“뭐?”소은정은 순간, 잠에서 덜 깼나 싶었다.“어제 솔로 파티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예비 신부 전 남친이라는 남자가 나타나서 판을 다 엎고 나왔대. 뭐 암튼 그래서 애부터 지울 거라고 새벽에 응급실까지 갔는데... 그 여자 애초에 임신도 아니었대.”한유라의 이어지는 폭탄 발언에 소은정의 눈은 점점 더 커다래졌다.“그래서 오늘 결혼식 취소할 줄 알았는데 신부만 바꿔치기 한 거 있지? 중소기업 회장 외동딸인데 전부터 이태성 좋다고 꽤 따라다녔나 봐. 그쪽 집안에서는 중소기업 사돈이 눈에 차지 않는 눈치지만 뭐 전 여자보다야 낫지 뭐.”결혼식 하루 전 날 신부가 바뀌다니. 그냥 지나가는 말로만 들었다면 분명 거짓 뉴스라고 넘길 정도로 막장인 상황에 소은정은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게다가 허인혜 그 여자 임신도 아니었어?한참을 망설이던 소은정이 겨우 입을 열었다.“신부 쪽 집안은 이런 결혼도 괜찮대?”“여자 쪽에서 먼저 제안한 거라던데? 그리고 어차피 이태성 그 자식 인성 개차반인 거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아는데 웬만한 집안 여자들이 왜 굳이 이태성이랑 결혼하려 하겠어. 이 정도면 만족해야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