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괜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술자리가 끝나고 소은정과 스태프들은 카드게임을 시작했고 밤새 이긴 그녀는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일부러 져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짜릿한 승리의 기분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판마다 지는 반시연의 표정이 일그러질 무렵에야 소은정은 오늘은 이만 파하자고 제안했다.다음 날 점심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소은정은 낑낑대며 몸을 뒤척였다.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다시 꿈나라로 가려던 그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이런! 무음으로 해놓을걸.“한유라, 제발 잠 좀 자자. 잠 좀.”짜증스런 소은정의 말투에도 한유라는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아직도 자고 있었어? 네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뭔데.”“오늘 이태성 결혼식이잖아. 그런데 신부가 바뀌었더라고.”“뭐?”소은정은 순간, 잠에서 덜 깼나 싶었다.“어제 솔로 파티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예비 신부 전 남친이라는 남자가 나타나서 판을 다 엎고 나왔대. 뭐 암튼 그래서 애부터 지울 거라고 새벽에 응급실까지 갔는데... 그 여자 애초에 임신도 아니었대.”한유라의 이어지는 폭탄 발언에 소은정의 눈은 점점 더 커다래졌다.“그래서 오늘 결혼식 취소할 줄 알았는데 신부만 바꿔치기 한 거 있지? 중소기업 회장 외동딸인데 전부터 이태성 좋다고 꽤 따라다녔나 봐. 그쪽 집안에서는 중소기업 사돈이 눈에 차지 않는 눈치지만 뭐 전 여자보다야 낫지 뭐.”결혼식 하루 전 날 신부가 바뀌다니. 그냥 지나가는 말로만 들었다면 분명 거짓 뉴스라고 넘길 정도로 막장인 상황에 소은정은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게다가 허인혜 그 여자 임신도 아니었어?한참을 망설이던 소은정이 겨우 입을 열었다.“신부 쪽 집안은 이런 결혼도 괜찮대?”“여자 쪽에서 먼저 제안한 거라던데? 그리고 어차피 이태성 그 자식 인성 개차반인 거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아는데 웬만한 집안 여자들이 왜 굳이 이태성이랑 결혼하려 하겠어. 이 정도면 만족해야지.
박수혁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왜겠어. 너랑 같은 이유겠지.”사업가인 박수혁과 소은정이 전동하에게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돈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박수혁의 대답에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익숙한 박하향 향수가 코를 찔렀다.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소유자인 두 사람이 나란히 앉자 순식간에 학생들의 시선들이 쏠리기 시작했다.“이런 일에 직접 나설 정도로 한가해?”“그러는 너도 직접 왔잖아?”박수혁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소은정의 귓가에 속삭였다.소은정은 고개를 돌려 박수혁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평소처럼 진중하면서도 약간 차가운 모습, 그런데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어제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바라보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그런데 어제까지 죽을 상이더니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네? 또 무슨 꿍꿍이야?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박수혁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왜? 그렇게 잘생겼어?”하!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박수혁을 흘겨보았다.박수혁의 웃다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하겠네.소은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왜? 보고 싶으면 봐. 안 놀릴 테니까.”계속 능글맞게 들이대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박수혁, 미쳤어?”하지만 박수혁은 소은정이 화내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학생들은 입을 떡 벌렸다. 방금 전까지 차가운 포스를 자랑하던 박수혁이었다. 그 분위기에 겁을 먹고 옆자리에 감히 못 앉았던 건데. 저렇게 웃을 줄도 알고 농담도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나 싶었다.저 정도로 예뻐야 웃어준다는 건가?몇몇 여학생들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입을 삐죽대기도 했다.그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10여 분이 흐르고, 교수가 무대 앞에 섰다.“아, 죄송합니다. 전 대표님께서 오늘 급한 사정으로 강연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다들 이만 돌아가주세요
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지만 곧 다시 포커페이스를 회복했다.매력적인 미소를 짓던 박수혁은 바람에 날리는 소은정의 머릿결을 정리해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매정하게 고개를 돌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의 손은 어색하게 허공을 머물 뿐이었다.“그래? 그래도 나랑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잖아?”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박수혁은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껌딱지도 아니고 왜 자꾸 달라붙는 건데!“당신이랑 밥 먹고 싶지 않다고! 제발 눈치 좀 챙겨.”하지만 소은정의 핀잔에도 박수혁의 입가에는 묘한 피소가 피어올랐다.“싫은데?”뻔뻔한 박수혁의 모습에 말문이 막힌 소은정은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됐어. 말을 말아야지.“같이 밥 먹자니까?”“꺼져!”이 인간이 진짜 왜 이래? 밥 먹다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강치훈과 전동하가 무슨 사이인지 알고 있는데도?”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좋아.”1초 만에 태도를 바꾸는 소은정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박수혁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그냥 대충 아무 식당에나 가서 정보나 얻으려던 소은정이었지만 박수혁은 도시 전체를 가로질러 프라이빗 레스토랑에 도착했다.매일 15 테이블만 받고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레스토랑, 뭐 그만큼 맛만큼은 최고를 자랑하는 곳이었다.박수혁이 도착하자 직원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VIP 구역으로 안내했다.“뭐 먹을래?”박수혁이 메뉴판을 건넸다.“가장 비싼 걸로 시켜줘.”소은정은 메뉴판을 펼쳐보지도 다시 박수혁에게 돌려주었다.“그래.”박수혁이 직원과 메뉴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소은정은 주위의 경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일식 원림 스타일로 꾸며진 정원, 정교한 초롱불, 연못,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까지... 마음이 편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내가 강치훈과 전동하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
박수혁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소은정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과거의 불행을 말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어디서 뭘 해도 존경받고 사랑받았을 여자다. 그런데 하필 그를 선택해서, 그와 결혼했던 탓에 가장 빛나는 3년이란 시간을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반면 소은정은 더 이상 과거의 경험 때문에 슬프지도 가슴 아프지도 않았다. 누가 시켜서, 떠밀려서 한 결혼도 아니다. 온갖 모욕을 받으면서도 박수혁에 대한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마음은 박수혁에 대한 사랑이 식으며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지만...“은정아...”박수혁은 낮은 목소리로 소은정의 이름을 불렀지만 목이 메어오는 듯 한참을 침묵했다.“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박수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은정을 지키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하지만 소은정은 싱긋 미소 지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앞으로? 우리 두 사람에게 앞으로가 있을까?소은정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일 얘기나 해.”이런 헛소리나 들으려고 바쁜 시간 쪼개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니 말이다.박수혁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감정을 추스른 뒤 다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강상원이 자신만만해 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좋은 인맥을 하나 쌓았거든. 전동하의 집사야.”“집사?”소은정이 눈썹을 꿈트거렸다.“말로는 집사라는데 전동하가 굉장히 신뢰하는 인물인 것 같아. 집사의 말 몇 마디에 결정을 바꿀 정도라던데?”“집사라기보다는 내...”내시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억지로 집어삼키는 소은정이었다.“어쨌든 출장도 전동하 대신 오고 가는 모양인데 그때 강치훈과 인연을 맺은 것 같아. 그 비서가 강상원의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신다던가...”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그래서 아들 강치훈에게 모든 패를 건 것이었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개인적인 관계가
SC그룹.소은정은 소은호와 전동하에 관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한 소은정은 접견실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허인혜였다.누렇게 뜬 낯빛에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소은정을 발견한 허인혜가 일어서고 경비원이 바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잠깐만요...”허인혜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짓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한빈이 연락처 아시나 해서요. 그때 빌린 돈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푸흡 웃음을 터트린 소은정과 달리 허인혜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저한테 주세요. 제가 전해 주면 되니까.”소은정이 손을 내밀었다.허인혜의 가식적인 밑낯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태성이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면 돈을 돌려줄 생각이나 했을까?사실 돈을 돌려주는 걸 빌미로 원한빈과 다시 가까워지려는 게 목적이겠지.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허인혜가 말했다.“제가 직접 돌려주고 싶은데요.”“나랑 한빈이가 무슨 사이인 걸 알면서 그런 말을 한다고요? 사실 갈아타고 싶은 건 아니고요?”소은정의 말에 자극받았는지 허인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 거 아니에요!”성격 같아선 당장 소은정의 뺨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냥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서요.”“그래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기다려요.”소은정의 말에 허인혜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소은정은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고 원한빈의 전화번호를 클릭했다.“누나, 무슨 일이에요?”그녀에게만 다정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소은정을 누나라고 부르고 있다.허인예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빛이 살짝 비쳤다 곧 사라졌다.“여보세요? 지금 인혜 씨가 내 옆에 있거든? 네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전에 빌린 돈을 갚고 싶다는데?”허인혜란 이름에 한동안 침묵하던 원한빈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됐어요. 돈은 그냥 누나가 가져요. 더러운 걸 들였으니 이곳저곳 청소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툭!허인혜의 지갑이 바닥
주소를 확인한 소은정은 이리저리 문자를 돌려보았지만 한유라도 김하늘도 놀이동산으로 가자는 그녀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결국 소은정은 소호랑과 단둘이 놀이동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소호랑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고양이 옷까지 입혀주니 누가 봐도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이었다.소은정의 가방에 담긴 소호랑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와, 회전목마다. 타고 싶어... 롤러코스터도 타고 싶어...”“진정 좀 해. 넌 호랑이라고!”소호랑은 잔뜩 불쌍한 얼굴로 발버둥쳤다.“야옹...”그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소호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조금만 참자. 착하지...”어디까지나 일을 위해 여기로 온 것이니 한가로이 놀이동산 구경이나 할 겨를이 없었다. 집사의 사진을 확인한 나이 든 중년 남자 위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아무리 둘러봐도 다들 아이들과 함께 온 아빠들뿐이었다. 이때 인형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달려오더니 소은정의 다리를 껴안았다.“예쁜 누나다...”“넌... 넌 누구니?”소은정은 부랴부랴 주위를 둘러보았다.길을 잃은 건가?“나예요. 예쁜 누나. 나 기억 안 나요?”남자아이가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소은정은 남자아이의 인형탈을 톡 건드렸다.“사자?”“아!”그제야 남자아이는 무언가 떠올린 듯 인형탈을 벗어려 애썼다. 그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남자아이를 도와주었다.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겨우 소은정의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았지만 이목구비만큼은 뚜렷했다.게다가 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보석 같이 반짝이는 두 눈동자, 혼혈인가?남자아이는 소은정의 다리를 끌어안더니 얼굴을 비비적거렸다.“예쁜 누나, 드디어 다시 만났네요!”소은정도 남자아이에게 정이 가긴 했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건 아닐까?“가족들은 어디 있어? 길 잃어버린 거야? 누나가 도와줄까?”하지만 꼬마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누나, 정말 날 까먹은 거예요? 나 마이크잖아요...”스
마이크가 길을 잃은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한 소은정은 마이크를 데리고 SC그룹으로 향한 뒤 우연준에게 경찰서에 연락하라고 말했다.한편 마이크는 소은정의 손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은 채 껌딱지처럼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회사 문을 나서려던 그때 강상원, 강치훈 부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소은정을 발견한 두 부자는 흠칫 하더니 곧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 오늘 내내 놀이동산에 계셨다면서요?”하, 그건 또 언제 알아냈대?강상원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한발 다가갔다.“대표님, 괜히 힘빼지 마세요. 전동하 프로젝트를 따내면 저희 SC그룹의 위상이 더 올라갈 겁니다. 대표 자리에서는 내려오셔도 소씨 가문 외동딸이라는 건 변하지 안잖아요? SC그룹이 잘 되는 게 대표님한테도 더 좋지 않겠어요?”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치훈도 거들었다.“물론이죠. 회사에서는 나가도 SC그룹 최대 주주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으니까요.”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그럼 승리를 미리... 축하드립니다.”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회사를 나섰다.“예쁜 누나, 저 사람들 별로예요.”입을 삐죽대던 마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그 사람들 분명 전동하라고 했지? 전동하는 우리 아빠 이름인데?“응, 누나도 저 사람들 별로야. 그래서 쫓아내려고!”“누나가 싫어하는 사람이면 나도 싫어요!”뭐든 예쁜 누나가 하는대로 다 따라해야지!오늘 처음 보는 아이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마이크의 모습에 소은정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힐튼 호텔 스위트룸.한 남자가 책상 앞에서 파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보디가드 한 명과 여직원 한 명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남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 한 명이 전화를 끊으며 다가왔다.“어떤 여자가 도련님을 데리고 갔다는데요?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당장 납치죄로 고소해야겠어요!”“그러지 마세요...
누구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아, 내가 문을 안 잠갔던가?전동하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훑어보던 소은정을 바라보다 결국 그녀의 뒤에 숨은 마이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이리 와...”마이크는 그제야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가더니 남자의 허벅지를 꼭 끌어안았다.“아빠...”아빠?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가 비슷하긴 했다.하지만 아들의 애정공세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듯 전동하는 한 손으로 마이크를 들어올렸다.“사람들 따돌리고 혼자 어딜 갔나 했더니. 너 다 컸다 이거야?”마이크는 바둥거리면서도 변명을 멈추지 않았다.“예쁜 누나를 만났거든요. 난 예쁜 누나랑 사귀고 결혼까지 할 거예요! 아빠, 우리 그냥 이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아니, 이 무슨 막장드라마 같은 대사란 말인가.당황한 소은정이 해명하려던 그때,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뮤즈 어쩌고 하더니 그새 바뀐 거야?”“예쁜 누나가 바로 제 뮤즈라고요!”마이크의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는 소은정을 뚫어져라 관찰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사랑이니 뮤즈니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두 부자의 모습에 소은정은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정말 꼬맹이 아빠 맞으세요? 놀이동산에서 만났는데 굳이 따라오겠다고 떼를 써서...”전동하는 못 말린다는 눈빛으로 마이크를 내려다 보았다.“그랬겠죠. 이해합니다.”이때 전동하의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한 남자의 얼굴이 확 어두워지고 마이크를 번쩍 든 채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은정 씨.”“싫어요. 예쁜 누나랑 같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내 첫사랑인데...!”소은정은 멀어져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하고 그녀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데다 본가로 직접 찾아온 걸 보면 미리 조사를 해본 게 분명했다.이상하긴 했지만 소은정은 이 모든 걸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이고 어깨를 으쓱했다.물론 혼자 남겨진 소호랑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