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지만 곧 다시 포커페이스를 회복했다.매력적인 미소를 짓던 박수혁은 바람에 날리는 소은정의 머릿결을 정리해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매정하게 고개를 돌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의 손은 어색하게 허공을 머물 뿐이었다.“그래? 그래도 나랑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잖아?”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박수혁은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껌딱지도 아니고 왜 자꾸 달라붙는 건데!“당신이랑 밥 먹고 싶지 않다고! 제발 눈치 좀 챙겨.”하지만 소은정의 핀잔에도 박수혁의 입가에는 묘한 피소가 피어올랐다.“싫은데?”뻔뻔한 박수혁의 모습에 말문이 막힌 소은정은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됐어. 말을 말아야지.“같이 밥 먹자니까?”“꺼져!”이 인간이 진짜 왜 이래? 밥 먹다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강치훈과 전동하가 무슨 사이인지 알고 있는데도?”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좋아.”1초 만에 태도를 바꾸는 소은정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박수혁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그냥 대충 아무 식당에나 가서 정보나 얻으려던 소은정이었지만 박수혁은 도시 전체를 가로질러 프라이빗 레스토랑에 도착했다.매일 15 테이블만 받고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레스토랑, 뭐 그만큼 맛만큼은 최고를 자랑하는 곳이었다.박수혁이 도착하자 직원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VIP 구역으로 안내했다.“뭐 먹을래?”박수혁이 메뉴판을 건넸다.“가장 비싼 걸로 시켜줘.”소은정은 메뉴판을 펼쳐보지도 다시 박수혁에게 돌려주었다.“그래.”박수혁이 직원과 메뉴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소은정은 주위의 경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일식 원림 스타일로 꾸며진 정원, 정교한 초롱불, 연못,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까지... 마음이 편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내가 강치훈과 전동하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
박수혁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소은정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과거의 불행을 말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어디서 뭘 해도 존경받고 사랑받았을 여자다. 그런데 하필 그를 선택해서, 그와 결혼했던 탓에 가장 빛나는 3년이란 시간을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반면 소은정은 더 이상 과거의 경험 때문에 슬프지도 가슴 아프지도 않았다. 누가 시켜서, 떠밀려서 한 결혼도 아니다. 온갖 모욕을 받으면서도 박수혁에 대한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마음은 박수혁에 대한 사랑이 식으며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지만...“은정아...”박수혁은 낮은 목소리로 소은정의 이름을 불렀지만 목이 메어오는 듯 한참을 침묵했다.“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박수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은정을 지키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하지만 소은정은 싱긋 미소 지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앞으로? 우리 두 사람에게 앞으로가 있을까?소은정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일 얘기나 해.”이런 헛소리나 들으려고 바쁜 시간 쪼개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니 말이다.박수혁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감정을 추스른 뒤 다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강상원이 자신만만해 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좋은 인맥을 하나 쌓았거든. 전동하의 집사야.”“집사?”소은정이 눈썹을 꿈트거렸다.“말로는 집사라는데 전동하가 굉장히 신뢰하는 인물인 것 같아. 집사의 말 몇 마디에 결정을 바꿀 정도라던데?”“집사라기보다는 내...”내시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억지로 집어삼키는 소은정이었다.“어쨌든 출장도 전동하 대신 오고 가는 모양인데 그때 강치훈과 인연을 맺은 것 같아. 그 비서가 강상원의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신다던가...”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그래서 아들 강치훈에게 모든 패를 건 것이었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개인적인 관계가
SC그룹.소은정은 소은호와 전동하에 관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한 소은정은 접견실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허인혜였다.누렇게 뜬 낯빛에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소은정을 발견한 허인혜가 일어서고 경비원이 바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잠깐만요...”허인혜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짓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한빈이 연락처 아시나 해서요. 그때 빌린 돈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푸흡 웃음을 터트린 소은정과 달리 허인혜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저한테 주세요. 제가 전해 주면 되니까.”소은정이 손을 내밀었다.허인혜의 가식적인 밑낯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태성이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면 돈을 돌려줄 생각이나 했을까?사실 돈을 돌려주는 걸 빌미로 원한빈과 다시 가까워지려는 게 목적이겠지.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허인혜가 말했다.“제가 직접 돌려주고 싶은데요.”“나랑 한빈이가 무슨 사이인 걸 알면서 그런 말을 한다고요? 사실 갈아타고 싶은 건 아니고요?”소은정의 말에 자극받았는지 허인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 거 아니에요!”성격 같아선 당장 소은정의 뺨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냥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서요.”“그래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기다려요.”소은정의 말에 허인혜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소은정은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고 원한빈의 전화번호를 클릭했다.“누나, 무슨 일이에요?”그녀에게만 다정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소은정을 누나라고 부르고 있다.허인예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빛이 살짝 비쳤다 곧 사라졌다.“여보세요? 지금 인혜 씨가 내 옆에 있거든? 네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전에 빌린 돈을 갚고 싶다는데?”허인혜란 이름에 한동안 침묵하던 원한빈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됐어요. 돈은 그냥 누나가 가져요. 더러운 걸 들였으니 이곳저곳 청소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툭!허인혜의 지갑이 바닥
주소를 확인한 소은정은 이리저리 문자를 돌려보았지만 한유라도 김하늘도 놀이동산으로 가자는 그녀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결국 소은정은 소호랑과 단둘이 놀이동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소호랑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고양이 옷까지 입혀주니 누가 봐도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이었다.소은정의 가방에 담긴 소호랑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와, 회전목마다. 타고 싶어... 롤러코스터도 타고 싶어...”“진정 좀 해. 넌 호랑이라고!”소호랑은 잔뜩 불쌍한 얼굴로 발버둥쳤다.“야옹...”그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소호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조금만 참자. 착하지...”어디까지나 일을 위해 여기로 온 것이니 한가로이 놀이동산 구경이나 할 겨를이 없었다. 집사의 사진을 확인한 나이 든 중년 남자 위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아무리 둘러봐도 다들 아이들과 함께 온 아빠들뿐이었다. 이때 인형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달려오더니 소은정의 다리를 껴안았다.“예쁜 누나다...”“넌... 넌 누구니?”소은정은 부랴부랴 주위를 둘러보았다.길을 잃은 건가?“나예요. 예쁜 누나. 나 기억 안 나요?”남자아이가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소은정은 남자아이의 인형탈을 톡 건드렸다.“사자?”“아!”그제야 남자아이는 무언가 떠올린 듯 인형탈을 벗어려 애썼다. 그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남자아이를 도와주었다.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겨우 소은정의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았지만 이목구비만큼은 뚜렷했다.게다가 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보석 같이 반짝이는 두 눈동자, 혼혈인가?남자아이는 소은정의 다리를 끌어안더니 얼굴을 비비적거렸다.“예쁜 누나, 드디어 다시 만났네요!”소은정도 남자아이에게 정이 가긴 했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건 아닐까?“가족들은 어디 있어? 길 잃어버린 거야? 누나가 도와줄까?”하지만 꼬마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누나, 정말 날 까먹은 거예요? 나 마이크잖아요...”스
마이크가 길을 잃은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한 소은정은 마이크를 데리고 SC그룹으로 향한 뒤 우연준에게 경찰서에 연락하라고 말했다.한편 마이크는 소은정의 손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은 채 껌딱지처럼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회사 문을 나서려던 그때 강상원, 강치훈 부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소은정을 발견한 두 부자는 흠칫 하더니 곧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 오늘 내내 놀이동산에 계셨다면서요?”하, 그건 또 언제 알아냈대?강상원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한발 다가갔다.“대표님, 괜히 힘빼지 마세요. 전동하 프로젝트를 따내면 저희 SC그룹의 위상이 더 올라갈 겁니다. 대표 자리에서는 내려오셔도 소씨 가문 외동딸이라는 건 변하지 안잖아요? SC그룹이 잘 되는 게 대표님한테도 더 좋지 않겠어요?”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치훈도 거들었다.“물론이죠. 회사에서는 나가도 SC그룹 최대 주주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으니까요.”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그럼 승리를 미리... 축하드립니다.”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회사를 나섰다.“예쁜 누나, 저 사람들 별로예요.”입을 삐죽대던 마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그 사람들 분명 전동하라고 했지? 전동하는 우리 아빠 이름인데?“응, 누나도 저 사람들 별로야. 그래서 쫓아내려고!”“누나가 싫어하는 사람이면 나도 싫어요!”뭐든 예쁜 누나가 하는대로 다 따라해야지!오늘 처음 보는 아이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마이크의 모습에 소은정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힐튼 호텔 스위트룸.한 남자가 책상 앞에서 파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보디가드 한 명과 여직원 한 명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남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 한 명이 전화를 끊으며 다가왔다.“어떤 여자가 도련님을 데리고 갔다는데요?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당장 납치죄로 고소해야겠어요!”“그러지 마세요...
누구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아, 내가 문을 안 잠갔던가?전동하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훑어보던 소은정을 바라보다 결국 그녀의 뒤에 숨은 마이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이리 와...”마이크는 그제야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가더니 남자의 허벅지를 꼭 끌어안았다.“아빠...”아빠?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가 비슷하긴 했다.하지만 아들의 애정공세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듯 전동하는 한 손으로 마이크를 들어올렸다.“사람들 따돌리고 혼자 어딜 갔나 했더니. 너 다 컸다 이거야?”마이크는 바둥거리면서도 변명을 멈추지 않았다.“예쁜 누나를 만났거든요. 난 예쁜 누나랑 사귀고 결혼까지 할 거예요! 아빠, 우리 그냥 이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아니, 이 무슨 막장드라마 같은 대사란 말인가.당황한 소은정이 해명하려던 그때,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뮤즈 어쩌고 하더니 그새 바뀐 거야?”“예쁜 누나가 바로 제 뮤즈라고요!”마이크의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는 소은정을 뚫어져라 관찰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사랑이니 뮤즈니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두 부자의 모습에 소은정은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정말 꼬맹이 아빠 맞으세요? 놀이동산에서 만났는데 굳이 따라오겠다고 떼를 써서...”전동하는 못 말린다는 눈빛으로 마이크를 내려다 보았다.“그랬겠죠. 이해합니다.”이때 전동하의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한 남자의 얼굴이 확 어두워지고 마이크를 번쩍 든 채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은정 씨.”“싫어요. 예쁜 누나랑 같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내 첫사랑인데...!”소은정은 멀어져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하고 그녀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데다 본가로 직접 찾아온 걸 보면 미리 조사를 해본 게 분명했다.이상하긴 했지만 소은정은 이 모든 걸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이고 어깨를 으쓱했다.물론 혼자 남겨진 소호랑
“잘못 걸었다고? 그럼 누구랑 데이트를 하려고 했는데?”박수혁이 농담 조로 물었다.“어쨌든 당신은 아니야.”소은정은 화를 식히기 위해 연신 손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반면 소호랑은 왜 소은정이 이렇게 화를 내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수화기 저편, 한참 침묵하던 박수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예전엔 내가 좋다고 하지 않았었나?”당돌하게 사랑한다고, 결혼하자고 말하던 소은정의 얼굴이 떠올랐다.하, 예전. 그래 예전이 맞긴 하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기도 하고.“그래, 좋아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당신이랑 난 안 어울려.”“은정아...”박수혁의 말을 끊어버린 소은정은 소호랑의 꼬리를 잡은 채 협박하기 시작했다.“어서 통화 종료해!”소호랑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표정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주인에게 혼난 아기고양이 같은 눈망울을 보니 다시 마음이 약해진 소은정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소호랑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너 이 자식, 엄마가 박수혁 싫어하는 거 몰라? 누가 시킨 거야?”“데이트하고 싶다고... 전화 걸어보라고 한 건 엄마잖아요...”소호랑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하, 박수혁 그 남자 돌싱이잖아. 돌싱도 당연히 배제했어야지!”“돌싱이긴 하지만 그 결혼 엄마랑 한 거잖아요. 그리고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데요. 돌싱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고요.”“아니, 절대 안 돼!”소은정의 단호한 말투에 소호랑은 말없이 소은정의 품에 안긴 채 풀 죽은 얼굴로 꼬리를 살랑거렸다.마스크 팩을 떼어내고 침대에 누우려던 그때,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렸다.“다른 사람이랑 데이트 하지 마!”박수혁이 보낸 메시지였다.하, 하여간 은근 오지랖도 넓다니까?소은정은 코웃음을 날려준 뒤 눈을 감았다.......힐튼 호텔 스위트 룸.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밖으로 도망치려는 마이크를 건장한 체격의 보디가드가 번쩍 안아들었다.“난 예쁜 누나랑 잘 거라고! 여기 있고 싶지 않다고!”보디가드에게
국제전시센터 문 앞에 럭셔리한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섰다.아주머니와 보디가드가 준비한 선물을 한아름 안은 마이크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려있었다.“도련님,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아니.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마이크가 바로 거절했다.마이크는 국화 꽃다발과 레드벨벳 상자를 손에 꼭 쥔 채 전시센터로 들어갔다.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똘망똘망한 남자아이의 등장에 프런트 직원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꼬마야, 누구 만나러 온 거야?”꼬마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마이크는 싱긋 미소 지었다.“예쁜 누나 만나러 왔어요.”이때 박수혁과 소은정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물론 소은정은 박수혁과 동행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사업 파트너이니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친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에 결국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소은정을 발견한 마이크가 부랴부랴 달려가 소은정의 다리를 끌어안았다.“예쁜 누나...”뭐야? 또 어제 그 꼬마잖아?“마이크, 여긴 어떻게 온 거야?”마이크는 긴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눈을 깜박였다. 앳된 얼굴에 쑥스러운 표정이 피어오르더니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네주었다.“선물이에요.”흰 국화? 이게 무슨 뜻이지?소은정은 당황한 얼굴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이게 뭐야...?”“누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예요. 이 꽃 이쁘죠? 예쁜 누나한테는 가장 예쁜 꽃을 선물해야 할 것 같아서요. 여자들은 다 꽃 좋아한다면서요?”참 이걸 귀엽다고 해야 할지...소은정이 침묵했다.그리고 모든 여자가 다 꽃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하지만 기대 섞인 표정으로 두 눈을 깜박이는 마이크를 차마 실망시킬 수 없었다.“고마워.”소은정이 싱긋 미소 지었다.한편, 흰 국화를 선물이랍시고 건네는 꼬맹이의 등장에 박수혁은 어이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조각 같은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꼬마라 해도 남자, 다른 남자한테 꽃다발을 받고 미소를 짓는 소은정을 보니 짜증이 치밀었다.“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