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은 담배를 입에 물고 생각에 잠겼다.며칠 전 보여줬던 밝은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음침하고 냉철하며 진한 살기마저 느껴졌다.사람들은 호텔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녔지만 남유주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결국 그는 담배를 비벼끄고 호텔 지배인에게 시선을 돌렸다.“호텔에 비밀통로가 있나요?”지배인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그런 건 없습니다….”박수혁의 싸늘한 시선이 날아왔다.경호원이 달려와서 지배인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지배인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경호원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처박았다.박수혁은 다리를 꼬고 앉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솔직히 얘기하고 내 아내한테 아무 일 없으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지. 하지만 집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면 이 호텔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거야.”지금의 박수혁은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다.그는 상처 입은 맹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지배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대표님, 제가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요. 저도 이제 생각난 거고 예전에 대표님이 사람을 보내 고찰을 오셨을 때도 발견하지 못한 통로라서 말씀을 못 드린 겁니다.”“그러니까 지금 말하라고.”박수혁이 짜증스럽게 말했다.시간이 흐를수록 남유주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그는 그녀가 지금 어떤 처지에 처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벌레가 심장을 물어뜯는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담당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옷방에 있는 옷장에 밖으로 통하는 통로가 하나 있습니다.”박수혁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경호원도 지배인을 끌고 그를 따라 옷방으로 들어갔다.박수혁은 남유주가 쓰던 옷장 문을 열었다.아니나 다를까, 안에 작은 동굴 입구가 하나 나타났다.그 순간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었고 온몸이 경직되었다.지배인이 말했다.“사모님께서 호기심에 들어가셨을 수도 있어요.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깐요.”박수혁이 싸늘하게 말했다.“지금 들어가 보지.”경호원이
설마 며칠 째 어딘가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남유주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다가 공중에 매달려 왔다갔다 하는 유리 가림막과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식인어를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했다.아득한 공포감에 그녀는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할 수 없었다.남연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겁에 질린 그녀의 얼굴을 감상했다.그녀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겁에 질린 남유주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팔다리가 모두 묶여 있었기에 그녀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남연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마치 영혼을 악마에게 빼앗긴 것처럼 온몸으로 악의를 뿜어대고 있었다.가림막이 사라지자 남유주는 그대로 물에 빠졌다.그녀는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사냥감을 발견한 식인어가 그녀를 향해 헤엄쳐 왔다.추락하던 순간, 남유주는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하지만 수영장으로 추락한 순간 외부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숨이 막혀왔다.식인어 한마리가 달려들어 그녀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극심한 통증에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다른 한 마리도 달려들어 그녀의 팔을 물어뜯었다.상처에서 피가 흘러 수영장 전체를 뻘겋게 물들였다.그녀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식인어들은 맛있는 요리가 앞에 보이자 미친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안으로 쳐들어온 박수혁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남유주가 수영장으로 추락한 순간, 남연은 주체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박수혁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쳤다.“박 대표님….”박수혁은 바로 달려들어 그녀의 가슴을 걷어찼다.바닥에 쓰러진 남연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박수혁이 수영장에 뛰어들었다.다른 경호원들이 달려와서 남연을 제압했다.일부는 박수혁을 도우려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다.박수혁이 여자를 품에
의사의 설명을 다 들은 박수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에 힘을 풀었다.다행이었다.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는데 그냥 운명의 짖꿎은 장난이었을 뿐이었다.의사가 그의 팔에 항생제를 투여하고 상처를 소독했다.경호원은 유리 가림막을 다시 수영장에 덮었다.고개를 든 박수혁은 싸늘한 시선으로 수영장 방향을 노려보았다.경호원이 남연을 끌고 그에게 다가왔다.박수혁은 분노를 담아 그녀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갈비뼈가 부러졌다.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신사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곧장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는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었다.누구든 그를 도발하면 그는 사정없이 반격하는 사람이었다.남연은 그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남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박수혁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거대한 압박감에 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했다.“대표님, 죄송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의사도 유주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냥 겁만 주려던 것뿐이에요.”그녀는 울며 고통스럽게 기침했다.박수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겁만 주려고 했다고? 그렇다면 너도 똑 같은 방법으로 당해봐야지.”그의 말을 알아들은 경호원이 남연의 목덜미를 잡고 수영장으로 끌고 갔다.남연이 다급히 소리쳤다.“이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목숨만 살려주세요….”하지만 현장에 있는 아무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지금 당장 그녀를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남유주가 수영장으로 추락하고 식인어가 그녀의 살을 물어뜯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그는 당장 배후를 끌어내서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그냥 발로 걷어차는 걸로 끝냈다.남유주를 구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이제 남유주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범인을 응징할 차례였다.경호원은 남연의 아우성을 들은 척도 하지
“뭐라고?”박수혁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남유주의 친부?그는 남유주의 과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가족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가 혈육을 찾아주겠다고 했을 때도 그녀는 거절했었다.그 뒤로 박수혁은 그녀의 반감을 살까 봐 두려워 그녀의 가족을 수소문하지는 않았다.딸이 갑부를 만나 잘살면서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자 화가 난 걸까?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친딸에게 이런 짓을 한 아버지라니!박수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그게 누구지?”“그 여자의 말을 들어보면 누가 먼저 남연 그 여자에게 연락했고 돈을 줘서 사모님을 처리하라고 했답니다. 조사를 해봤는데 조심성이 많은 놈이에요. 돈은 달러로 남연의 계좌에 입금했더군요. 그 전화번호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왔습니다.”경호원은 초조한 얼굴로 박수혁의 눈치를 살폈다.남연이 남유주를 질투해서 벌인 짓인 줄 알았는데 배후에 친부가 얽혀 있을 줄은 몰랐다.“초대한 손님 중에 범인이 있을 수도 있었겠군. 내가 경솔했어.”박수혁은 피곤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호텔 측에 말해서 CCTV를 다 조회해 봐. 그 여자가 전화를 받을 때 통화 중이었던 사람은 한 명도 놓치지 말고 전부 조사해. 그리고 이번에 섬에 방문한 손님 리스트를 다시 정리하고 그 사람들의 배경을 알아내서 최대한 빨리 용의자를 특정하도록.”박수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향했다.그렇게 오전이 되자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쳐들어왔다.남유주는 새벽에 열이 내렸지만 고통은 여전했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날이 다 밝은 뒤에야 그녀는 고통이 덜했는지 조금 편하게 잠을 잤다.의사는 두 사람에게 진통제를 주사했다.고통에 시달리는 남유주와는 달리 박수혁은 독소에 몸이 마비되지도 않았고 열도 나지 않았다.아마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인 것 같았다.점심 때가 되자 남유주는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그
박수혁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물었다.“넌 유주의 친아버지를 만난 적 있지?”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남유주는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 인간이 누구지?”박수혁이 다시 물었다.남연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어릴 때 만난 게 전부예요.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기억이 안 나? 그런데 너한테 연락한 사람이 그 인간인지 어떻게 바로 알았지? 너 확인도 안 했잖아?”박수혁은 싸늘한 목소리로 압력을 가했다.남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오기 전에 바닷가에서 그 사람이랑 비슷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봤어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좀 이상하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래서 믿게 됐어요. 하지만 그 사람을 찾아내라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그때 사람이 너무 많았고 스치듯 봤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아서….”남연은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대답했다.박수혁의 말투로 보아 남유주의 친부를 찾기 전까지는 절대 풀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그래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그 사람이 먼저 연락해서 계좌를 조회해 보라고 했어요. 돈이 입금되었더라고요. 그래서 그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수영장에 있던 식인어는 제가 준비한 게 아니에요. 제가 갔을 때 이미 그곳에 있었어요.”“대표님, 저 좀 풀어주세요. 제가 아는 건 이게 전부예요. 유주 언니한테 가서 사과할게요….”박수혁은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들이고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시간은 그렇게 일분일초 흐르고 있었다.이때,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고개를 들어 보니 남유주가 창백한 얼굴로 입구에 서 있었다.박수혁은 가슴이 철렁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더 자지 왜 일어났어? 배 안 고파? 어디 불편해?”남유주는 싸늘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남연을 쳐다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 친부가 널 사주해서 날 죽이라고 했단 말이야?”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네가 자초한 일.비행기 안.남연은 묶인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 양옆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지키고 있어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박수혁과 남유주가 그녀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대로 태평양에 던져버릴까 봐 두려웠다.남유주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잠에서 깼다.그녀가 눈을 떴을 때, 박수혁은 다른 곳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화상회의 중 같은데 그녀가 잠자는 것을 방해할까 봐 멀리 간 듯했다.남유주는 멍하니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다가 남연에게 다가갔다.경호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인사했다.“사모님.”남유주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얘랑 할 얘기가 좀 있으니 저쪽으로 가서 기다려요.”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비켜주었다.남연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유주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테이프를 그대로 제거했다.남연이 아파서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 반쪽이 테이프 자국이 커다랗게 나 있었지만 남연은 아픈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남연이 물었다.“나한테서 무슨 얘기가 듣고 싶은 거야? 넌 날 죽일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네 친부가 누군지 찾아낼 수 없게 되잖아. 나만 그 사람을 봤으니까.”그녀는 용기를 쥐어짜내서 말했다.지금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남유주의 친부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는 사실뿐이었다.남유주는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며 냉랭한 시선으로 남연을 쏘아보았다.창백한 얼굴에 서늘한 눈동자는 보고만 있어도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남연은 그녀의 낯선 모습에 어깨를 움찔했다.남유주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뭘 그렇게 겁에 질렸어? 전에는 그렇게 날 무시하더니?”“남유주, 나만 탓할 게 아니라 탓할 거면 그 사람을 탓해. 나도 사주를 받고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니까. 원망할 거면 네 아버지를 원망하라고!”남연은 어떻게든 그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남유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지. 둘 다 용서하지 않
전동하와 박수혁 사이에는 원한관계가 있으니 그가 배후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남유주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그녀의 직감이 그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소은정과 이 일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였다.이한석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전 대표는 아닐 겁니다. 그날 밤 아주 기분 좋게 술을 마셨잖아요. 대표님을 대신해서 술을 마시고 새봄이를 케어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을 거예요.”“사람을 시켰을 수도 있지.”박수혁이 싸늘하게 말했다.이한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SC그룹은 오너 일가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SC그룹 진한 지사의 소찬학 대표도 초대를 받고 왔으니까요. 비록 소은정 씨 가족들이랑 같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사람도 분명히 SC 사람입니다.”그 말을 들은 박수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는 소찬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전부인 심청하가 전에 소은정에게 자주 시비를 걸었었는데 가문에서 쫓겨난 걸로 알고 있었다.실권이 없는 소찬혁 일가는 SC그룹에서 거의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매년 주주로써 가져갈 수 있는 이윤만 취할 뿐,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물론 소찬혁의 능력에 비하면 그것마저 감지덕지였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박수혁의 결혼식에 얼굴을 내민 걸까?이한석도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소찬혁을 지목했다.“대표님, 비록 우리가 초대 손님들의 배경을 철저히 조사했다지만 이 소찬혁이라는 사람은 SC의 친척이고 그때 당시에는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았을 겁니다. SC라는 큰 배경이 있으니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대했을 거고요. 제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조사를 해봐야 합니다.”남유주는 허리를 곧게 펴고 박수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더 직접적인 방법이 있어요.”“그게 뭐야?”“초대 손님들을 다시 자리에 부르는 거예요. 남씨 가문 사람들도 함께요. 그러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위험부담이 있었다.
소은정이 자리를 뜨자 호텔 직원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다.남유주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고 재채기를 했다.박수혁은 다급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직원에게 싸늘하게 굳었다.“아무도 꽃을 시키지 않았는데 이건 뭐지?”직원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CK그룹에서 온 손님이 두분 결혼을 축하드린다고 꽃다발을 보내왔어요.”박수혁은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져가. 사모님은 꽃가루 알러지가 있으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네.”직원이 꽃다발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박수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죄송해요. 집사람이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은데 꽃가루 알러지가 심해요. 꽃가루가 들어간 술 같은 거 마시면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파티장에도 생화는 설치하지 않았어요.”옆에 있던 한 기업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러지가 심하면 조심해야죠.”소찬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결혼식장에는 전부 생화로 장식했었잖아요. 사모님은 특정한 꽃에 알러지가 있으신가요?”“그건 아니고요. 그때 항공기로 운반해 온 꽃들은 특수 약품으로 처리해서 꽃가루가 날리지 않거든요. 이번 일로 남편이 공을 많이 들였어요. 저는 그냥 조화를 쓰자고 했는데 이 사람이 꼭 생화여야 한다고 고집해서요.”박수혁도 웃으며 말했다.“결혼식에 조화를 쓸 수는 없죠. 앞으로 내가 선물한 꽃은 절대 꽃가루가 날리지 않을 거야.”두 사람은 서로를 애정을 담아 바라보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기업가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다.소찬혁이 웃으며 말했다.“두 분은 사이가 참 좋아 보이네요.”남유주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말씀 나눠요. 저는 저쪽에 좀 가볼게요.”박수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소찬혁에게 말했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말씀해 보세요.”소찬혁은 쑥스럽게 웃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대표님, 지금 SC와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거로 아는데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