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미동 없이 대꾸했다. "말하세요."그녀는 정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지학 아저씨가 절 대표님 곁에 둔 이유는 저희 둘이 맞선을 봤으면 해서예요."눈을 깜박이던 소은정이 입술을 깨물었다."그럴 리가요. 전 들은 적 없어요. 저한테는 지학 씨를 잘 봐달라고 했지, 다른 얘기는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전 딸아이도 있어요. 설마 어른들의 고리타분한 말에 따르겠다는 건 아니죠?"소은정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자 송지학이 오히려 당황했다.붉어진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던 송지학이 말했다."물론 아니죠. 하지만 우리의 결혼과 아이는 별개의 문제예요."그녀는 정색하며 송지학을 바라보았다."만약 우리가 서로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전 대표님이 아이가 딸린 유부녀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저보다 한 살 많은 것도 신경 쓰지 않을 거고요."눈을 껌뻑이던 소은정이 말했다. "내가 안 괜찮아요. 난 연하가 싫어요."실망한 송지학이 풀이 죽어 말했다. "아, 그래요."때마침 음식을 세팅해 주기 위해 웨이터가 다가왔다. 예상 밖으로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그녀의 식욕을 자극했다.그녀는 앞에 앉은 송지학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식사에 돌입했다.프랑스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자주 갔던 레스토랑의 맛이 떠오르는 풍미에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여기서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야.'오래전 전동하는 요리를 즐겼었다. 불타는 열정 덕분에 그녀가 대학교 시절 맛보았던 레스토랑의 셰프까지 초대해 특별히 비법까지 전수 받았다. 그 맛을 그녀는 지금 이 레스토랑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송지학은 방금 나눈 대화를 완전히 까먹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소은정은 한입, 두 입 먹을수록 수상한 기운을 떨쳐낼 수 없었다.가슴이 자기도 모르게 쿵 하고 가라앉았다.그녀가 좋아하던 장어의 빛깔과 불맛을 그대로 재연한 요리였다.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동하 씨, 돌아온 거예요?'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녀는 물
최나영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멍한 얼굴로 서 있는 소은정을 발견한 송지학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갔다."대표님, 별로 못 드신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요?"그녀는 대꾸하는 대신 도도한 표정으로 그에게 차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설마, 여태 문 열어주길 기다린 거야? 어쩐지 자태가 남다르다더니, 귀하신 분 커피 입맛을 내가 맞출 리 없지!'차 문을 열자 소은정은 얼른 안에 들어가 앉았다."회사로 돌아가요."조수석에 앉은 송지학이 머뭇거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대표님, 저 진짜로 파리를 삼킨 겁니까?"눈을 지그시 감은 소은정이 대꾸했다."지학 씨 생각은 어떤데요?"송지학은 머뭇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휴대폰을 꺼낸 소은정은 문선의 연락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문선은 전동하의 소식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전동하가 애초에 LJ 그룹을 떠난 뒤 행한 곳도 모르는 문선이 지금 전동하의 소식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고 여긴 그녀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제니퍼와 전동하.' 제니퍼는 끝까지 자기 정체를 숨겼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없는 곳에 무사하게 있다는걸.고개를 돌려 창밖박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던 그녀의 마음이 울적해졌다.'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돌아오긴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과몰입한 건가?'그녀가 잡념에 사로잡힌 사이 차는 어느새 회사에 도착했다.마침 소은호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오고 있었다.소은정은 의아한 얼굴로 소은호를 바라보았다."오빠, 어디 가는 거야?"소은호가 다급히 말했다. "네 새 언니가 곧 출산할 것 같다고 해서 병원 가는 중이야."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진 소은정은 소은호의 뒤를 바짝 쫓았다."나도 같이 가."소은호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심호흡을 하며 소은호를 진정시키는 소은정이었다. "걱정하지 마. 우선 병원 사람들한테 내가 연락해 둘게. 그리고 아빠한테도 내가 연락해둘게. 지혁이는 우 비서가 데리러 갈 거
소은정은 소찬식이 병원에 얼른 와주길 기다렸다.그녀는 지금 당장 사람을 풀어 전동하로 추정된 인물을 찾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만약 그녀가 사람을 찾기 위해 병원 전체를 뒤집고 다닌다면 소찬식의 귀에도 이 소식은 들어갈 것이다. 가족들은 그녀를 걱정할 것이고...소은정은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운전 기사에게 연락했다. "아버지 지금 어디까지 오셨어요?"소찬식의 위치를 확인하던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낯 익은 얼굴이었다. 점심에 갔던 S 레스토랑 지배인 최나영이었다. 발을 삔 건지 절뚝거리며 일 층에 있는 의자로 향하고 있었다.소은정은 눈썹을 찡그리며 여자를 주시했다.'이런 우연이?'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검은 바지를 입은 남자가 똑같이 절뚝거리며 수납창구로 향하고 있었다.최나영은 남자에게 난감한 듯 미소를 지었다.절뚝거리는 남자는 분명 전동하였다. 제니퍼가 아닌 전동하였다.'동하 씨잖아!'어떻게 원래의 모습 그대로 회복을 한 건지 몰라도 그녀가 수없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던 얼굴이었다.그녀의 심장 격렬하게 뛰었다.그토록 그리워하던 얼굴을 다시 마주하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그녀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당장이라도 전동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신이 있다면 분명 얄궂은 성격일 거라고 장담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S 레스토랑에서 먹은 몇 가지의 메뉴들은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전동하가 만든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스쳐 지나간 남자도 전동하였다.'동하 씨가 돌아왔어!'흥분한 그녀는 난간을 꽉 움켜쥐었다. 일 층에는 사람들이 붐볐다.하지만 그녀의 눈은 오로지 전동하만 쫓고 있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의 이름을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전동하의 팔을 부축하는 건 최나영이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병원을 나섰다.소은정은 순간 온몸이 굳는
김하늘은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은정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우리는 아직 그와 그 주변 여자들의 사이를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오늘까지도 너희 두 사람은 부부이고 제일 가까운 사이야. 그러니까 옆에 누가 있든 간에 네가 우선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는 거지. 그리고 동하 씨가 돌아왔으니 반드시 널 찾으러 올 거야. 아니면 해외에 세력이 더 많을 텐데 굳이 이렇게 먼 곳을 선택했겠어?”소은정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들어 김하늘을 향해 말했다.“진짜야?”김하늘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다.“그리고 또 한 가지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 있긴 하지. 예를 들면 지진이나 어떤 사고로 기억을 잃고 널 기억 못한다던가. 너도 새봄이 낳고 잠시 기억을 잃었었잖아.”소은정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잊었을까? 잊었다면 왜 돌아왔을까? 안 잊었으면 왜 찾으러 오지 않을까?’소은정은 이를 깨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잊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라면?”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천하의 소은정이 이런 걸 걱정할 때도 있다니.’김하늘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그럼 무릎이라도 꿇고 좋아해달라고 빌어.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지 말라고 해.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라고!”소은정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말도 안 되는 소리!”그녀가 어찌 이토록 자존심을 구기는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가 어떻게 사랑을 구걸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욕설이 튀어나왔다!김하늘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그럼 대체 뭘 고민하는 거야? 네가 말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야. 사실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그렇게 자신이 없어? 고작 주위에 여자 하나 나타났다고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해도 뭐 어때? 사람 마음은 워낙 쉽게 변한다는 걸 너 몰라서 그래? 박수혁이 너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굴때는
소지혁은 밖에 남겨졌다.소은정은 소지혁의 이마를 쓰다듬었는데 소지혁의 이마에서는 땀이 샘솟듯 솟아 나오고 있었다.“씩씩이 착하지.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고모, 엄마가 나 낳을 때도 저렇게 아팠어요?”소은정은 속상해하는 소지혁의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응, 그랬지. 하지만 씩씩이 엄마는 우리 씩씩이 제일 사랑하니까, 아파도 참을 수 있었어.”소지혁은 비록 남자아이지만, 감정은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섬세했다.전새봄도 순순히 소은정의 곁으로 달려와 얌전히 있었다.전새봄은 소은정의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쳐들더니 소은정의 배를 만졌다.“엄마, 나 몬스터 낳아주면 안 돼?”소은정은 어이없다는 눈길로 전새봄을 바라보았다.‘지혁이는 자기 엄마 아까운 줄도 아는데 왜 우리 새봄이는 내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천진한 걸까?’문준서는 전새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너 포켓몬스터 좋아하잖아!”“그럼 더 많이 낳아야지!”전새봄은 단호하게 외쳤다!소은정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너희 둘,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소은해와 김하늘은 급히 한 명씩 안고 다른 곳으로 갔다.두 시간 뒤.한시연은 드디어 아기를 출산했다.남자아이였다.소은호는 아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한시연을 보살폈다.사실 공주님을 낳는 로망이 깨져서 그럴 수도 있다.하여 한시연을 아프게 한 둘째가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소찬식은 이 어린 손자를 아주 예뻐했다.소찬식은 태어난 아기에게 소지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아기는 조산이라 이내 간호사가 데려갔다.소지혁과 어린이들은 모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소찬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은해와 소은정에게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다른 사람은 별로 쓸모가 없어 소은호 혼자만 남으면 충분하다.게다가 한시연을 시중드는 일은 소은호가 제일 잘할 것이다.소은해도 찬성할 수밖에 없다.하여 세 사람은 아이들을 안고 소찬식을 따라 병원을 나섰다.소찬식은 너무 기뻐서 입이 귀에 걸릴
소은정은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이내 눈빛도 굳어지더니 애써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볼까?”‘만약 정말 아프다거나 혹은 하늘이의 말처럼 기억을 잃었다면 어떡하지?’그가 돌아왔으니 그녀는 그때처럼 그를 세심하게 돌볼 것이다.김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조급해할 것 없어. 만약 가능하다면 일단 데려와.”“다시 얘기하자.”소은정은 애써 웃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다정하게 함께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불쾌해졌다.그들의 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며칠 동안 소은정은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분주하게 보냈다.요즘은 소은호가 회사에 나오지 않으니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를 걸었고 별일이 없으면 되도록 연락하지 않았다.하여 소은정은 회사 직원들에게 잡혀 부지런히 업무를 보아야만 했다.비록 S 레스토랑에 가서 직접 사람을 찾을 시간은 없었지만 소은정은 잊지 않았다.그녀는 송지학에게 직접 음식을 주문해 회사로 배달시키도록 한 뒤, 회사에서 식사했다.일 인분만 시킨다…송지학은 몰래 우연준에게 소은정이 독식한다고 투덜거렸다.지난번에는 신나게 먹고 있는데 음식에서 벌레가 나와 그를 역겹게 했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 벌레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소은정은 매일 이 집의 음식을 먹었고, 지난번 일로 문제를 삼지 않았다.송지학은 알 수 없었다.우연준은 진지하게 말했다.“우리는 비서예요. 대표님이 왜 매일 밥을 사줘야 하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죠. 먹고 싶으면 가게에 가서 드세요.”송지학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제가 가면 예약해야 해요, 휴!”소은정은 다르다. 그녀에게는 VIP 카드가 있어 언제든 주문할 수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그 레스토랑은 워낙 음식 배달은 하지 않는데 SC그룹으로 배달되는 거라 예외였다.‘왜 대표님을 위해 예외를 두는 걸까?’송지학은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다. 우연준은 더는 그와 말 섞
소은정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불안한 남자는 얼굴색이 뻘겋게 되었다.“아, 왜 이렇게 비싼 차를 끌고 다녀요? 이거 완전 민폐 아니에요? 아가씨, 이렇게 비싼 차를 끌고 다니면 돈도 많겠는데 그깟 수리비가 필요해요?”남자의 말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쌀쌀맞은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왜요. 돈 좀 있다고 제가 얼간이로 보이세요?”소은정은 차갑고 매정한 말투로 말했다.남자는 말을 더듬더니 점점 더 얼굴이 뻘게지며 말했다.“그게 아니라, 좀 적게 받으시면 안 돼요?”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그녀는 머리를 숙여 휴대폰을 보았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그녀는 우연준도 차가 막혀 바로 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충분히 심란한데 하필이면 이런 모자란 놈을 상대해야 한다니.’남자의 아내는 그나마 눈치가 있었다. 그녀는 아부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아가씨한테는 큰돈이 아니지만 우리 월급쟁이한테는 아주 큰 돈이에요. 이 차 수리하려면 우리 정말 거지가 될지도 몰라요…”소은정은 다른 곳을 힐끗 보았다. 아마도 경찰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남자의 아내는 옷차림도 비교적 정교하고 자태도 우아했다.‘월급쟁이는 무슨, 이런 차림의 직장인이 어디에 있다고.’소은정은 더는 그들과 말을 섞기 싫었다.경찰이 도착해서야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절차를 밟는 건 모두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죠.”경찰은 상황을 살펴보더니 뒤에 있는 차를 가리키며 물었다.“이 차의 차주는 어느 분이시죠?”남자는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여자를 가볍게 밀었다.여자는 야무진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이 사람 차예요.”남자의 안색은 더 일그러졌다.경찰이 계속 물었다.“다친 사람은 없어요?”“없어요.”경찰은 남자를 힐끔 보며 말했다.“마침 감시 카메라가 가까이 있으니 책임 구분이 확실하게 찍혔을 거예요. 두 분 면허증 주세요.”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강한 힘으로 그녀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다음 순간.“정말 너야?”박수혁의 목소리는 그녀를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네가 어떻게 여기에?”그녀는 얼굴을 돌린 채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박수혁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박수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친 손을 찬찬히 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다친 손은 그를 마음 아프게 했다.“오후 회의 때문에 이곳을 지나가는 중이었어.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비서와 기사는?”박수혁은 애써 무뚝뚝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선을 넘었다.소은정은 손을 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실수로 넘어졌을 뿐이야. 추돌 사고가 일어나서 우 비서가 뒤에서 처리하고 있어. 난 길이 막히다 보니 스쿠터를 탔는데 실수로 계단에 부딪혔지, 뭐야.”그녀는 이렇게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됐었다.그녀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전동하의 존재를 지켜주고 싶을 뿐이다.그녀의 설명에 기분이 좋아진 박수혁의 눈동자에는 빛이 반짝였다.그제야 그녀는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이때 뒤에서 시끄러운 경적이 들려왔다.박수혁의 차는 마침 길 중간에서 다른 차량이 오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소은정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이내 허리를 굽혀 스쿠터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박수혁은 그녀를 제지했다.“일단 타, 이 상태로 스쿠터는 무리야.”“괜찮아.”소은정은 애써 웃었다.하지만 박수혁은 그녀를 억지로 차에 태우고 손을 저었다.이한석은 운전석에서 내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정말 소 대표님 맞네요?”이한석은 그저 눈에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여 박수혁의 “좋은 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아무래도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그런데 진짜 소은정이라니!소은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뒤에서 지속해서 울려오는 소음에 그녀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게다가 지금의 컨디션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