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미동 없이 대꾸했다. "말하세요."그녀는 정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지학 아저씨가 절 대표님 곁에 둔 이유는 저희 둘이 맞선을 봤으면 해서예요."눈을 깜박이던 소은정이 입술을 깨물었다."그럴 리가요. 전 들은 적 없어요. 저한테는 지학 씨를 잘 봐달라고 했지, 다른 얘기는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전 딸아이도 있어요. 설마 어른들의 고리타분한 말에 따르겠다는 건 아니죠?"소은정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자 송지학이 오히려 당황했다.붉어진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던 송지학이 말했다."물론 아니죠. 하지만 우리의 결혼과 아이는 별개의 문제예요."그녀는 정색하며 송지학을 바라보았다."만약 우리가 서로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전 대표님이 아이가 딸린 유부녀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저보다 한 살 많은 것도 신경 쓰지 않을 거고요."눈을 껌뻑이던 소은정이 말했다. "내가 안 괜찮아요. 난 연하가 싫어요."실망한 송지학이 풀이 죽어 말했다. "아, 그래요."때마침 음식을 세팅해 주기 위해 웨이터가 다가왔다. 예상 밖으로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그녀의 식욕을 자극했다.그녀는 앞에 앉은 송지학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식사에 돌입했다.프랑스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자주 갔던 레스토랑의 맛이 떠오르는 풍미에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여기서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야.'오래전 전동하는 요리를 즐겼었다. 불타는 열정 덕분에 그녀가 대학교 시절 맛보았던 레스토랑의 셰프까지 초대해 특별히 비법까지 전수 받았다. 그 맛을 그녀는 지금 이 레스토랑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송지학은 방금 나눈 대화를 완전히 까먹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소은정은 한입, 두 입 먹을수록 수상한 기운을 떨쳐낼 수 없었다.가슴이 자기도 모르게 쿵 하고 가라앉았다.그녀가 좋아하던 장어의 빛깔과 불맛을 그대로 재연한 요리였다.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동하 씨, 돌아온 거예요?'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녀는 물
최나영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멍한 얼굴로 서 있는 소은정을 발견한 송지학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갔다."대표님, 별로 못 드신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요?"그녀는 대꾸하는 대신 도도한 표정으로 그에게 차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설마, 여태 문 열어주길 기다린 거야? 어쩐지 자태가 남다르다더니, 귀하신 분 커피 입맛을 내가 맞출 리 없지!'차 문을 열자 소은정은 얼른 안에 들어가 앉았다."회사로 돌아가요."조수석에 앉은 송지학이 머뭇거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대표님, 저 진짜로 파리를 삼킨 겁니까?"눈을 지그시 감은 소은정이 대꾸했다."지학 씨 생각은 어떤데요?"송지학은 머뭇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휴대폰을 꺼낸 소은정은 문선의 연락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문선은 전동하의 소식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전동하가 애초에 LJ 그룹을 떠난 뒤 행한 곳도 모르는 문선이 지금 전동하의 소식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고 여긴 그녀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제니퍼와 전동하.' 제니퍼는 끝까지 자기 정체를 숨겼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없는 곳에 무사하게 있다는걸.고개를 돌려 창밖박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던 그녀의 마음이 울적해졌다.'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돌아오긴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과몰입한 건가?'그녀가 잡념에 사로잡힌 사이 차는 어느새 회사에 도착했다.마침 소은호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오고 있었다.소은정은 의아한 얼굴로 소은호를 바라보았다."오빠, 어디 가는 거야?"소은호가 다급히 말했다. "네 새 언니가 곧 출산할 것 같다고 해서 병원 가는 중이야."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진 소은정은 소은호의 뒤를 바짝 쫓았다."나도 같이 가."소은호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심호흡을 하며 소은호를 진정시키는 소은정이었다. "걱정하지 마. 우선 병원 사람들한테 내가 연락해 둘게. 그리고 아빠한테도 내가 연락해둘게. 지혁이는 우 비서가 데리러 갈 거
소은정은 소찬식이 병원에 얼른 와주길 기다렸다.그녀는 지금 당장 사람을 풀어 전동하로 추정된 인물을 찾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만약 그녀가 사람을 찾기 위해 병원 전체를 뒤집고 다닌다면 소찬식의 귀에도 이 소식은 들어갈 것이다. 가족들은 그녀를 걱정할 것이고...소은정은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운전 기사에게 연락했다. "아버지 지금 어디까지 오셨어요?"소찬식의 위치를 확인하던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낯 익은 얼굴이었다. 점심에 갔던 S 레스토랑 지배인 최나영이었다. 발을 삔 건지 절뚝거리며 일 층에 있는 의자로 향하고 있었다.소은정은 눈썹을 찡그리며 여자를 주시했다.'이런 우연이?'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검은 바지를 입은 남자가 똑같이 절뚝거리며 수납창구로 향하고 있었다.최나영은 남자에게 난감한 듯 미소를 지었다.절뚝거리는 남자는 분명 전동하였다. 제니퍼가 아닌 전동하였다.'동하 씨잖아!'어떻게 원래의 모습 그대로 회복을 한 건지 몰라도 그녀가 수없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던 얼굴이었다.그녀의 심장 격렬하게 뛰었다.그토록 그리워하던 얼굴을 다시 마주하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그녀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당장이라도 전동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신이 있다면 분명 얄궂은 성격일 거라고 장담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S 레스토랑에서 먹은 몇 가지의 메뉴들은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전동하가 만든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스쳐 지나간 남자도 전동하였다.'동하 씨가 돌아왔어!'흥분한 그녀는 난간을 꽉 움켜쥐었다. 일 층에는 사람들이 붐볐다.하지만 그녀의 눈은 오로지 전동하만 쫓고 있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의 이름을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전동하의 팔을 부축하는 건 최나영이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병원을 나섰다.소은정은 순간 온몸이 굳는
김하늘은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은정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우리는 아직 그와 그 주변 여자들의 사이를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오늘까지도 너희 두 사람은 부부이고 제일 가까운 사이야. 그러니까 옆에 누가 있든 간에 네가 우선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는 거지. 그리고 동하 씨가 돌아왔으니 반드시 널 찾으러 올 거야. 아니면 해외에 세력이 더 많을 텐데 굳이 이렇게 먼 곳을 선택했겠어?”소은정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들어 김하늘을 향해 말했다.“진짜야?”김하늘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다.“그리고 또 한 가지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 있긴 하지. 예를 들면 지진이나 어떤 사고로 기억을 잃고 널 기억 못한다던가. 너도 새봄이 낳고 잠시 기억을 잃었었잖아.”소은정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잊었을까? 잊었다면 왜 돌아왔을까? 안 잊었으면 왜 찾으러 오지 않을까?’소은정은 이를 깨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잊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라면?”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천하의 소은정이 이런 걸 걱정할 때도 있다니.’김하늘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그럼 무릎이라도 꿇고 좋아해달라고 빌어.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지 말라고 해.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라고!”소은정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말도 안 되는 소리!”그녀가 어찌 이토록 자존심을 구기는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가 어떻게 사랑을 구걸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욕설이 튀어나왔다!김하늘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그럼 대체 뭘 고민하는 거야? 네가 말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야. 사실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그렇게 자신이 없어? 고작 주위에 여자 하나 나타났다고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해도 뭐 어때? 사람 마음은 워낙 쉽게 변한다는 걸 너 몰라서 그래? 박수혁이 너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굴때는
소지혁은 밖에 남겨졌다.소은정은 소지혁의 이마를 쓰다듬었는데 소지혁의 이마에서는 땀이 샘솟듯 솟아 나오고 있었다.“씩씩이 착하지.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고모, 엄마가 나 낳을 때도 저렇게 아팠어요?”소은정은 속상해하는 소지혁의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응, 그랬지. 하지만 씩씩이 엄마는 우리 씩씩이 제일 사랑하니까, 아파도 참을 수 있었어.”소지혁은 비록 남자아이지만, 감정은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섬세했다.전새봄도 순순히 소은정의 곁으로 달려와 얌전히 있었다.전새봄은 소은정의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쳐들더니 소은정의 배를 만졌다.“엄마, 나 몬스터 낳아주면 안 돼?”소은정은 어이없다는 눈길로 전새봄을 바라보았다.‘지혁이는 자기 엄마 아까운 줄도 아는데 왜 우리 새봄이는 내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천진한 걸까?’문준서는 전새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너 포켓몬스터 좋아하잖아!”“그럼 더 많이 낳아야지!”전새봄은 단호하게 외쳤다!소은정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너희 둘,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소은해와 김하늘은 급히 한 명씩 안고 다른 곳으로 갔다.두 시간 뒤.한시연은 드디어 아기를 출산했다.남자아이였다.소은호는 아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한시연을 보살폈다.사실 공주님을 낳는 로망이 깨져서 그럴 수도 있다.하여 한시연을 아프게 한 둘째가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소찬식은 이 어린 손자를 아주 예뻐했다.소찬식은 태어난 아기에게 소지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아기는 조산이라 이내 간호사가 데려갔다.소지혁과 어린이들은 모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소찬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은해와 소은정에게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다른 사람은 별로 쓸모가 없어 소은호 혼자만 남으면 충분하다.게다가 한시연을 시중드는 일은 소은호가 제일 잘할 것이다.소은해도 찬성할 수밖에 없다.하여 세 사람은 아이들을 안고 소찬식을 따라 병원을 나섰다.소찬식은 너무 기뻐서 입이 귀에 걸릴
소은정은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이내 눈빛도 굳어지더니 애써 미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볼까?”‘만약 정말 아프다거나 혹은 하늘이의 말처럼 기억을 잃었다면 어떡하지?’그가 돌아왔으니 그녀는 그때처럼 그를 세심하게 돌볼 것이다.김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조급해할 것 없어. 만약 가능하다면 일단 데려와.”“다시 얘기하자.”소은정은 애써 웃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다정하게 함께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불쾌해졌다.그들의 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며칠 동안 소은정은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분주하게 보냈다.요즘은 소은호가 회사에 나오지 않으니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를 걸었고 별일이 없으면 되도록 연락하지 않았다.하여 소은정은 회사 직원들에게 잡혀 부지런히 업무를 보아야만 했다.비록 S 레스토랑에 가서 직접 사람을 찾을 시간은 없었지만 소은정은 잊지 않았다.그녀는 송지학에게 직접 음식을 주문해 회사로 배달시키도록 한 뒤, 회사에서 식사했다.일 인분만 시킨다…송지학은 몰래 우연준에게 소은정이 독식한다고 투덜거렸다.지난번에는 신나게 먹고 있는데 음식에서 벌레가 나와 그를 역겹게 했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 벌레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소은정은 매일 이 집의 음식을 먹었고, 지난번 일로 문제를 삼지 않았다.송지학은 알 수 없었다.우연준은 진지하게 말했다.“우리는 비서예요. 대표님이 왜 매일 밥을 사줘야 하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죠. 먹고 싶으면 가게에 가서 드세요.”송지학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제가 가면 예약해야 해요, 휴!”소은정은 다르다. 그녀에게는 VIP 카드가 있어 언제든 주문할 수 있었다.가장 중요한 건, 그 레스토랑은 워낙 음식 배달은 하지 않는데 SC그룹으로 배달되는 거라 예외였다.‘왜 대표님을 위해 예외를 두는 걸까?’송지학은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다. 우연준은 더는 그와 말 섞
소은정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불안한 남자는 얼굴색이 뻘겋게 되었다.“아, 왜 이렇게 비싼 차를 끌고 다녀요? 이거 완전 민폐 아니에요? 아가씨, 이렇게 비싼 차를 끌고 다니면 돈도 많겠는데 그깟 수리비가 필요해요?”남자의 말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쌀쌀맞은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왜요. 돈 좀 있다고 제가 얼간이로 보이세요?”소은정은 차갑고 매정한 말투로 말했다.남자는 말을 더듬더니 점점 더 얼굴이 뻘게지며 말했다.“그게 아니라, 좀 적게 받으시면 안 돼요?”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그녀는 머리를 숙여 휴대폰을 보았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그녀는 우연준도 차가 막혀 바로 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충분히 심란한데 하필이면 이런 모자란 놈을 상대해야 한다니.’남자의 아내는 그나마 눈치가 있었다. 그녀는 아부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아가씨한테는 큰돈이 아니지만 우리 월급쟁이한테는 아주 큰 돈이에요. 이 차 수리하려면 우리 정말 거지가 될지도 몰라요…”소은정은 다른 곳을 힐끗 보았다. 아마도 경찰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남자의 아내는 옷차림도 비교적 정교하고 자태도 우아했다.‘월급쟁이는 무슨, 이런 차림의 직장인이 어디에 있다고.’소은정은 더는 그들과 말을 섞기 싫었다.경찰이 도착해서야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절차를 밟는 건 모두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죠.”경찰은 상황을 살펴보더니 뒤에 있는 차를 가리키며 물었다.“이 차의 차주는 어느 분이시죠?”남자는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여자를 가볍게 밀었다.여자는 야무진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이 사람 차예요.”남자의 안색은 더 일그러졌다.경찰이 계속 물었다.“다친 사람은 없어요?”“없어요.”경찰은 남자를 힐끔 보며 말했다.“마침 감시 카메라가 가까이 있으니 책임 구분이 확실하게 찍혔을 거예요. 두 분 면허증 주세요.”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강한 힘으로 그녀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다음 순간.“정말 너야?”박수혁의 목소리는 그녀를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네가 어떻게 여기에?”그녀는 얼굴을 돌린 채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박수혁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박수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친 손을 찬찬히 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다친 손은 그를 마음 아프게 했다.“오후 회의 때문에 이곳을 지나가는 중이었어.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비서와 기사는?”박수혁은 애써 무뚝뚝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선을 넘었다.소은정은 손을 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실수로 넘어졌을 뿐이야. 추돌 사고가 일어나서 우 비서가 뒤에서 처리하고 있어. 난 길이 막히다 보니 스쿠터를 탔는데 실수로 계단에 부딪혔지, 뭐야.”그녀는 이렇게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됐었다.그녀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전동하의 존재를 지켜주고 싶을 뿐이다.그녀의 설명에 기분이 좋아진 박수혁의 눈동자에는 빛이 반짝였다.그제야 그녀는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이때 뒤에서 시끄러운 경적이 들려왔다.박수혁의 차는 마침 길 중간에서 다른 차량이 오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소은정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이내 허리를 굽혀 스쿠터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박수혁은 그녀를 제지했다.“일단 타, 이 상태로 스쿠터는 무리야.”“괜찮아.”소은정은 애써 웃었다.하지만 박수혁은 그녀를 억지로 차에 태우고 손을 저었다.이한석은 운전석에서 내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정말 소 대표님 맞네요?”이한석은 그저 눈에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여 박수혁의 “좋은 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아무래도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그런데 진짜 소은정이라니!소은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뒤에서 지속해서 울려오는 소음에 그녀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게다가 지금의 컨디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