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상황이 변할 수도 있잖아. 사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는 신체에 안 좋은 게 사실이야. 나도 평소에 새봄이랑 준서한테 자제하라고 말하거든. 아빠는 너 걱정하는 마음에 더 엄하게 대했을 거야. 네가 배고파서 먹었다고 말해야 아빠도 알지.”그녀는 정말 박시준이 안쓰러웠다.하지만 아버지로서 박수혁이 아이에게 자상한 아빠는 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의 성격에 박시준을 거리에 내다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결정을 한 것이다.그가 공식적으로 박시준의 신분을 대중 앞에 공개했다는 건 아이를 가족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하지만 눈치 없는 일부 인간들은 박시준을 대하는 상사의 태도가 안 좋다고 같이 아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어린 박시준이 상처를 입은 것도 당연했다.모두가 전동하처럼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는 없었다.소은정은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전동하는 항상 새봄이를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아이가 옹알이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는 아이의 표정과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고 아이가 원하는 바를 제때에 캐치했다.엄마인 소은정도 놀랄 정도였다.그래서 새봄이는 항상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다.갑자기 머릿속에 몸집이 왜소한 누군가가 떠올랐다.지팡이를 겨우 짚고 떠나던 모습, 그리고 바다를 등지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박수혁이 다가왔다.바깥을 향한 쪽이 병풍으로 가려져 있어서 소은정은 그가 언제 왔는지 알지 못했다.그는 자연스럽게 식탁을 살짝 두드리며 부드럽게 물었다.“메뉴는 주문했어?”“아니.”박수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는 말했다.“그럼 여기서 품평이 가장 좋은 메뉴로 준비하라고 시킬게.”그는 레스토랑 직원에게 손짓했다.잠시 후, 직원이 어린이 세트 메뉴를 가져다가 박시준의 앞에 놓았다.박시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박수혁은 입술을 꾹 깨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밥도 못 먹었다면
“이 나이에 눈치도 볼 줄 모르면 멍청한 거지. 도와줄 마음이 없으면 됐어. 억지로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할게. 어차피 조지랑 엮인 사람이 너뿐인 것도 아니고. 주변사람들 중에 알아보다 보면 또 누군가 있겠지.”말을 마친 소은정은 미련없이 뒤돌아섰다.박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못 말린다니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거면 그냥 내가 도와줄게. 네가 아는 지인들 중에 조지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널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나서면 지금이라도 조지 만날 수 있어.”그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분명 무언가 조건이 있을 것이다.소은정은 걸음을 멈추고 정중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부탁할게.”박수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그래. 일단 자리로 돌아가자. 밥 먹으면서 얘기해.”소은정은 속으로 입을 삐죽이면서도 그를 따라 자리로 향했다.그와 같이 식사하는 게 불편하기도 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얼마 없었다.가능하다면 오늘 바로 해결하고 싶었다. 너무 시간을 끌면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했다.박시준은 조용히 옆에서 밥 먹는데 집중했다.그래도 오늘은 박수혁이 평소의 근엄한 표정이 아닌 착잡한 표정을 봐서 감회가 새로웠다.아이는 몰래 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들이 자리로 오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레스토랑 직원이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왔다.박수혁은 직원들을 물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조지를 설득할 자신은 있어? 지금 조지는 시한부 인생이고 그 프로젝트에 모든 걸 걸었어. 성세가 조지에게는 동아줄인 셈이라고.”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그 프로젝트를 개발한 사람은 성세가 아니야. 성세는 조지를 살릴 수 없어.”박수혁은 피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하지만 네 지인이라는 사람도 조지를 살릴 수는 없잖아?”“그래도 사기를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아?”“그건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지. 조지가 알면서 속는 셈 치고 당해준 걸
박시준의 목소리는 온화하면서도 억울해 보였다.마음이 약해진 소은정의 눈빛이 흔들렸다.박수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시준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제대로 머리를 쓸 줄 아는 박시준이 뿌듯했다."그럼... 그렇게 해. 대신 이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이야. 만약에 지혁이가 월반을 한다거나 전학을 가면 우리 계약도 무효가 되는 거 알고 있지?"그녀의 질문에 박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렇게 할게."박시준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소은정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그녀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박수혁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박시준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고마워요, 말썽 안 부리고 잘 지낼게요."소은정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어린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박시준의 해맑은 미소에 그녀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그녀는 눈썹을 치켜들고 시선을 다시 박수혁에게 돌렸다. 그는 조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전화기 너머로 조지의 비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박 대표님, 무슨 일로 연락하셨어요?""조 대표님과 할 얘기가 있는데 자리에 계시나요?""조대표 님은 현재 부재중이십니다. 급한 용무가 아니시면 3, 4 일뒤에 다시 연락 주시겠어요?"얼굴을 찌푸린 박수혁은 전보다 훨씬 차가워진 목소리로 급히 말했다."급한 일이니 즉시 연락 바랍니다."사람마다 급한 용무에 대한 인식은 달랐지만 회사를 이끄는 사람들에게는 그 무게 역시 상당히 무거웠다.비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에게 지금 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박수혁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놓았다.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박수혁 때문에 소은정은 자기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박수혁은 그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활짝 웃어 보였다."와, 맛있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보다 못한 박수혁이 그녀에게서 전화를 돌려받아 통화를 이어갔다."알겠습니다. 위치 찍어서 보내주시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세요."그는 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괜찮아? 무슨 일이야?"소은정은 갑자기 심해진 두통에 얼굴을 찡그렸다.고통에 허우적대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기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제니퍼와 전동하 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녀가 바라는 사람은 전동하였다.'동하 씨가 맞았을까? 아직 살아있다면 왜 나를 찾으러 오지 않는 걸까?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그녀는 예전에 제니퍼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전동하가 아니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쁘띠 성형 수술이라도 한 걸까? 요즘 기술로는 짧은 시간으로도 쁘띠 성형이 충분히 가능해.'마음속 의심이라는 불씨가 점점 커졌다.박수혁이 자기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데도 그녀는 공상에 빠져 있었다.그녀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박수혁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위치는 받았고 이제 당신을 돕는다던 그 지인한테 연락해야 되는 거 아니야?"그녀는 우왕좌왕하다가 본능적으로 문선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호텔을 나설 때 그녀는 배웅해 주겠다는 박수혁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녀는 홀로 차에 앉아 창밖의 번쩍이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풍경과 다르게 그녀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제니퍼의 특이한 Rh 식 혈액형은 진짜 그가 동하 씨라는 걸 확신시켜 주는 증거일까? 하지만 그냥 우연의 일치면 어떡하지?'Rh 식 혈액형은 흔한 혈액형은 아니지만 결코 그 수가 적지는 않았다. '단순한 우연인 걸까?'그녀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오한이 들었다.그녀는 이 우연의 일치를 온 마음을 다해 부정했다. 오히려 제니퍼가 전동하라고 믿고 싶었다. 어떻게 그녀를 속일 수 있었던 건지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놀이공원에서의 만남부터 박수혁이 얘기한 차이나타운에서의 스토킹까지, 어쩌면 박수혁의 말이 사실일 수 있었
그 환자도 소은정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웃으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팔에는 자해 자국으로 가득했다.어쩌면 괜찮은 척, 정상적인 척 연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소은정도 그런 류의 사람일까 봐 걱정이 되어 밤중에 다급히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환자가 자기 상태를 숨기고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건 스스로 마음을 닫은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이런 환자는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고 누구보다 위험한 선택을 많이 할 것이기에, 항상 옆에서 주시해야 했다.소은정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지 않자 정신과 의사는 당황했다."환자분, 듣고 있어요?"소은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죄송해요, 처리할 업무가 남아서 집중을 못 했네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귀국하면 바로 연락할 게요." 혹시라도 자기를 속이는 것일까 봐 한참 동안 고민하던 의사는 우선 그녀를 믿기로 했다.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로 한결 안심이 된 의사가 말했다."알았어요, 하지만 전에 이상함을 느끼면 즉시 저에게 말해야 해요. 환자분과 나눴던 얘기는 전부 기밀 유지가 돼요. 그러니 안심하고 전문의한테 맡기세요."소은정은 담담하게 대꾸했다."네, 저도 선생님 믿어요."전화를 끊고 나서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녹색 덩굴이 벽을 가득 채워 생기가 넘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호수가 보였다.의사가 한 말을 떠올리며 그녀는 자기 팔을 만졌다.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새봄이와 문준서와 시간을 보낸 그녀는 잠자리에 들었다.어두컴컴한 밤 9시, 도시 전체가 고요한 침묵에 빠졌다.최성문이 소은정을 부두로 데려다줬다.궁금할 법만도 한 상황에서 최성문은 묵묵히 그녀를 따랐다.부두도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바다는 당장이라도 깨어나 세상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은정이 부드럽게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사무엘의 외국어 실력은 아주 의외였다. 발음이며 말투며 내국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천만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은정 씨의 친구가 아직 거기서 벗어 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도와주신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성세를 체포하고 나서 실험실을 파괴하는 동안 친구를 데리고 나올게요. 이름이 뭔지 알려주세요."소은정이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입술을 오므리며 몇 초동안 침묵했다."제니퍼요. 몸이 불편한 사람이니 신경 좀 써줘요.""알겠습니다."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엘은 그녀의 옆에 있는 최성문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은정 씨도 몸조심 하세요." "제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그 사람만 찾아줘요."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예성이 나와서 사무엘의 어깨를 두드렸다."시작할까요?""좋아요, 여긴 당신이 맡으세요. 은정 씨가 여기 와본 적 있다고 했으니까 저랑 안에 들아가서 얘기하면 어떨까요?""그러죠."소은정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여기까지 왔으니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했다.첫 번째 방을 제외하고 이곳은 연회장이었다. 널찍한 연회장은 고급스럽게 꾸며졌다.반면 위층은 조금 더 아늑했다.간단히 구경만 했던 곳이라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위치는 파악할 수 있었다."은정 씨가 말했던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어요?"사무엘이 물었다. 소은정이 기억을 따라 그곳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그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두세번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해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사무엘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은정 씨, 혹시 기억을 잘못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분명히 여기 있을 거예요."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는 곳이 연회장의 옆문에 있다고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는 엘리베이터 대신 벽이 있었다. 누
사무엘이 경멸의 눈빛으로 썩은 미소를 지었다. "남의 업적을 훔치고, 남의 인맥을 훔치고, 이젠 디자인까지 똑같은 연구실을 만들어?"소은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문예성이 황급히 설명했다."이 연구실은 저희 연구실과 구조부터 시작해 연회장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아요."소은정이 충격에 얼어붙었다."그럼 내부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나요?""물론이죠, 눈 감고도 몇 바퀴 돌 수 있어요. 왠지 오늘 작전은 순조로울 것 같아요."사무엘이 눈썹을 치켜들고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다가와 문예성에게 말을 건넸고 문예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엘을 바라보았다."다 왔어요. 들어갑시다."사무엘이 소은정을 흘끗 쳐다보았다."은정 씨, 들어가시죠?"소은정이 웃으며 일어나 최성문을 바라보았다. 최성문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엘리베이터 내부는 건장한 사람 서른 명 가까이는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엘리베이터 내부에 들어선 사무엘은 기관 구조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그가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엘리베이터 안의 감시 카메라 방향이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엘리베이터가 계속 내려가면서 무중력 상태에 도달했다. 바깥의 해저가 너무 깊고 어두워 숨을 쉴 수 없는 밀폐된 공간이 된 엘리베이터였다.소은정이 약간 불편한 듯 눈을 감았다. 최성문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빠져나왔다.문예성, 사무엘, 소은정이 맨 마지막에 남았다.최성문은 그녀가 조금 나아진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무엘이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와 눈앞에 있는 유리 더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단순하게 계산해도 8년에서 10년 정도 걸릴 것 같은 대공사인데, 5년 전에 회사를 떠난 성세가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걸 완성했을 리는 없고, 훨씬 전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네요."문예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이곳은 외부인이 들어오기도 힘
"지금 뭘 찾고 있는데요?""사람 찾아요."소은정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제가 찾는 사람이 여기 있든 없든 간에 모든 길과 방은 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 서로 통하는 게 좋아요. 출입 가능한 통로가 하나쯤은 있어야 해요. 그럼 밖에서 찾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잖아요."사무엘이 가기 전에 그녀에게 한 말이었다.여기부터 찾기 시작한다면 아주 빠르게 그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최성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를 강화했다.소은정은 빛 반사가 되는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유리 재질의 벽 같았지만 두께로 보아 실제 벽은 아닌 것 같았다.벽 앞에 서서 손을 뻗은 그녀는 긴장되어 침을 꼴깍 삼켰다.안으로 벽을 힘껏 밀자 벽은 서서히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사방이 고요했다.바다 심연의 울림마저 무수히 증폭되어 들려왔다.휴게실 같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소은정은 안을 둘러보며 눈썹을 찡그렸다.최성문이 물었다."저희가 잘못 찾아온 건 아니겠죠? 사무실부터 찾아보는 건 어때요?"'여긴 첫 번째 장소야, 어떤 기술적인 시스템도 보이지 않아.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그녀는 익숙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결국 안으로 걸음을 옮긴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방 안에서만 보이는 유리창 너머로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검푸른 빛깔의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칠흑 같은 바닷속에서 희미한 빛이 비쳤고 쓸쓸한 분위기를 한층 더 자아냈다.소은정은 혹시나 더 있을 방을 찾아 벽에 손을 대고 밀었다.'안에 있는 건가?'그녀는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이상한 느낌이 든 그녀는 투명한 유리 옆에서 손을 불쑥 내밀었다.최성문은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난감해 보였다.순간, 손에 힘을 주자 유리가 천천히 밀려들어 갔다.그들의 눈앞에 어두운 터널 공간이 하나 나타났다."은정 씨..."이미 끝까지 도착한 줄 알았던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흠칫 놀랐다.소은정의 두 손이 가늘게 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