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와 부러움, 찬양, 복합적인 시선들이 민하준을 향했다.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민하준을 두려워한다는 정도랄까.그들은 자발적으로 두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민하준은 사람들에게 인사도 없이 곧장 안쪽으로 향했다.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곽현이 그들을 맞아주었다.“형님, 영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민하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한유라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한유라는 이 영감님이라는 자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범죄조직의 정점에 있는 자, 아는 게 많을수록 그만큼 목숨이 위험했다.민하준은 왜 굳이 이런 장소에 나를 데려온 걸까?하지만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민하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중간에 가림막이 설치된 뒤쪽에 한적하고 호화스러운 휴게실이 보였다.상석에는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백발 영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웃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섬뜩했다.영감은 매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한유라는 영감과 눈을 마주친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살면서 한 번도 마주할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민하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서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경례했다.“어르신, 생신 축하드립니다.”영감은 민하준을 보자 기분이 좋은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하준이 너 요즘 통 안 보이더니 여자 만나고 다녔어?”민하준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유라의 손을 이끌었다.“이런, 들켜버렸네요. 한유라입니다.”한유라는 꿈쩍도 않고 영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저 영감에게 깎듯이 인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재벌2세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기에 아무리 인성이 좋아도 거만함과 높은 자존감은 패시브로 장착하고 있었다. 상대가 무섭다고 해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민하준은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하지만 그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그는 영감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애가 어려서 눈치도 없고
영감의 태도는 강경했다.희망을 아예 놓아버렸던 한유라까지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얘기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난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어.난 잊혀지지 않았어.민하준은 영감의 질타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그래서요? 사람이 실종됐으니까 찾는 게 당연하겠죠. 그러다가 못 찾으면 포기하겠죠. 저는 포기 못합니다! 그 집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저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요!”말을 마친 그는 영감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오늘은 어르신 생신이니 일 얘기는 나중에 해요. 별거 아닌 일이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영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민하준을 쏘아보았다.한유라는 기대를 품고 영감의 눈치를 살폈다.어떻게든 영감이 다시 한번 자기를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렸으면 했다.그런데 영감이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하준이 네가 일을 깔끔히 처리하는 건 알지. 어차피 아무리 잘나도 여자 한 명인데 그렇게 가지고 싶으면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오늘처럼 사람들 눈에 띄게 밖에 데리고 나오는 건 이제 금지야.”민하준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조심하겠습니다.”한유라는 충격에 빠진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보았다.이게 끝이야?이대로 포기한다고?또다시 절망감이 찾아왔다.민하준이 영감의 지시를 되돌릴 정도로 이미 세력이 커졌단 말인가?민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한유라는 억울한 눈으로 뒤돌아보았다.영감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뭔가 아주 복잡한 눈빛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하찮은 동정일까? 아니면….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녀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한유라는 손에 땀이 났다.이때 민하준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설마 저 영감이 끝까지 널 풀어주라고 우길 줄 알았던 거야?”한유라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민하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한유라는 거리낌 없이 민하준의 흉을 보았다.도대체 이 여자들은 뭘 보고 민하준 같은 남자에게 목을 매려는 걸까?만약 그가 했던 짓을 전부 알게 된다면 아마 혼비백산하며 도망갈 게 뻔했다.설리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한유라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얼굴은 반반하게 생겨서 그 정도로 짠돌이였어? 역시 남자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니까!”한유라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설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같은 호텔에서 진행하는 파티지만 정말 분위기가 다르다. 그거 알아? 오늘 SC그룹 소찬식 회장 생신잔치도 여기서 하잖아. 능력 있는 여자들은 아마 다 거기 갔을걸?”한유라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에게 물었다.“방금 누구라고 했어?”“SC그룹 회장님. 못 들어봤지? 아까 아래층에서 올라오다가 들었어. 그쪽도 VIP 통로로 들어온 거라 우리 같은 사람은 얼굴도 못 봐. 게다가 초대장 가지고 온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대. 그 사위가 장인어른 체면 세워준다고 25층, 26층을 풀로 대여했나 봐. 소은정은 참 복도 많지….”한유라는 일렁이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안간힘을 썼다.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그쪽으로 건너갈 수만 있다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한유라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오늘 내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나가지?그녀는 저도 모르게 민하준이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자리에 있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았다.한유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찰나의 순간, 그녀는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설리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일 있어?”한유라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별거 아니야. 누구 좀 찾아보고 올게.”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신속히 주변을 살폈다.민하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이런 걱정도 들었다. 이것도 함정이 아닐까?만약 함정이라면 도망치는 게 맞을까?하지만 함정이 아니라면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리는 게 아닐까?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출입
그러다가 다시 밖에서 문을 닫은 뒤, 천천히 문을 잠가버렸다.“얼른 가세요.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여기를 잠가야 해요. 이렇게 해야 시간을 끌 수 있어요.”말을 하던 미연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물쇠를 굳게 잠갔고 다행이라고 느껴야 할 한유라는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으며 자꾸 마음이 불안했다.26층, 이를 꽉 깨문 한유라는 계속해서 아래층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찬식 생일의 구체적인 날짜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면 이 계절이 맞는 듯했다.한유라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두 층 정도 뛰어 내려가던 그때, 한 남자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고 흠칫하던 한유라는 온몸이 굳어진 채, 손발은 얼음장 마냥 차가워졌다.“한유라 씨, 오랜만이네요. 제가 이곳으로 쫓겨나서 경호를 담당한 뒤로부터 계속 한유라 씨만 기다리고 있었어요.”남자는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한유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전혀 놀라지도 않고 그녀를 향해 사악하게 웃었으며 그 남자가 바로 전에 민하준 곁을 지키던 멸치남 장민이었다.장민의 행동과 눈빛은 양아치와 다름없었기에 한유라는 평소에도 이 사람을 매우 싫어했는데 이곳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위험을 감지한 한유라가 돌아서서 위층으로 달려갔지만 안전통로 입구에 도착해 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조금 전에 자물쇠를 잠근 미연이 생각나자 한유라는 충격을 받아 마음이 순식간에 차가워졌으며 머릿속은 백지장 마냥 하얗게 변해버렸다.일부러 말을 걸면서 은근슬쩍 소찬식이 아래층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린 설리부터 시작해서 적극적으로 한유라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게 도운 미연까지, 이 모든 건 한유라가 장민 손에 잡히게 만들기 위한 계획적인 행동이었나?한유라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닫게 되었고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으며 뒤에 들려오는 여유로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복도에 있던 검은 복장을 입은 남자는 그녀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고 굳게 잠긴 문은 그녀의 실낱
미친 듯이 발버둥 치던 한유라가 장민의 손을 힘껏 깨물었고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장민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한유라의 한 쪽 뺨은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라 저리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끝까지 경계심에 찬 눈빛으로 장민을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감히 날 때려? 민하준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난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있어. 감히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한유라는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비참하고 보잘것없어도 절대 아무한테나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며 더군다나 양아치에게 놀아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만들 것이다.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한유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장민은 손을 움켜쥐고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으며 악에 받친 표정으로 한유라를 쳐다보며 웃음이 더욱 사악해지고 있었다.“가만두지 않겠다고요? 내가 이 자리에서 한유라 씨와 잠자리를 가져도 형님은 절대 저를 탓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이 청렴한 미연까지 나에게 줬는데 한유라 씨는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리고 형님이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당신이 먼저 나를 꼬셨다고 말하면 돼요!”장민은 이를 악물고 한유라를 향해 덮쳤고 그의 손이 한유라의 어깨에 닿은 순간, 한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손톱으로 장민의 얼굴을 할퀴었으며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핏자국이 생겼다.기분이 언짢아진 장민은 거칠게 한유라의 옷을 찢어버리려고 했지만 얌전히 있을 리가 없는 한유라가 붉어진 눈시울로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으며 역겨운 기분이 들어 연신 헛구역질까지 했다.장민이 그녀를 구석으로 끌고 갔고 한유라가 살려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바로 이때, 그들 뒤에서 굉음이 들렸고 장민이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 밖에서 굳게 잠긴 문을 부숴버린 것이다.부서진 문을 밟고 걸어 들어온 민하준은 벌겋게 충혈될 두 눈으로 온몸에서는 얼음장 마냥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으며 순간, 흐르던 공기마저 멈춰버린 듯한 정적이 흘렀다.한유라는 파랗게 질
물론 장민도 벌받아 마땅하지만 옷은 한유라가 직접 갈아입은 것이고 도망도 그녀가 원해서 저지른 일이며 장민에게 속은 것도 그녀가 멍청했기 때문이었다.이런저런 생각에 한유라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공포가 온몸을 둘러싸자 한유라는 너무 두려운 마음에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민하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서서 엉망진창이 된 장민을 쳐다보며 추호의 동정도 머뭇거림도 없었고 곁에 있던 부하들도 늘 보던 모습인 듯이 다들 평온한 얼굴이었다.장민은 민하준이 여자를 위해서 동생을 버릴 리가 없다고 확신했지만 그가 민하준 마음속에서의 위치를 너무 높게 생각한 듯했다.민하준이 한유라를 곁에 둔 이유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를 세뇌시키는 단계에서는 그녀의 말을 들어야 했고 그녀의 말을 듣는 전제가 바로 다른 사람은 절대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한유라는 평정심을 되찾기 시작했으며 아직 이용 가치가 있는 자신이 적어도 지금 바로 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장민을 해결한 민하준은 한유라의 손을 잡고 연회장으로 향했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민하준을 보며 한유라는 왠지 불안했다.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한 여인을 꽉 잡고 있었고 그 여인이 바로 설리였다. 설리는 한유라의 눈을 슬쩍 피하면서 경악에 찬 표정으로 민하준을 쳐다보았다.한유라는 그 순간 민하준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유라가 입을 열지 않아도 알아낼 방법이 다 있는 민하준을 보며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민하준의 능력은 그녀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기에 한유라는 과연 자신이 이 사람을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설리는 민하준의 기세에 눌려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민하준 씨, 저 아니에요. 제발 저를 풀어주세요. 미연 언니가 저에게 돈을 주면서 민하준 씨 곁에 있는 여자를 속이라고 시켰어요. 전 잠시 돈에 눈이 멀어서 그랬던 것뿐이에요. 잘못했습니다!”민하준은 싸늘하게 입꼬리를 살짝
민하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기가 얼어붙은 것만 같았고 흠칫하던 유경한은 화가 나서 볼이 빵빵해졌다.“민하준, 너…”유경한이 민하준에게 욕설을 퍼부으려고 하던 순간, 어르신이 굳은 표정으로 버럭 화를 냈다.“그만해, 두 사람 오늘 싸우러 온 거야?”어르신은 두 사람에게 언짢아졌기에 코웃음을 쳤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미연을 가리키며 민하준에게 말했다.“사람은 데려가도 되는데 나도 조건이 있어.”“어르신, 편하게 말씀하세요.”민하준이 눈썹을 들썩이며 대답하자 어르신은 시선을 한유라에게 돌리며 실눈을 살짝 뜬 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저 여자를 내 곁에 한동안 남겨둬.”민하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한유라마저 깜짝 놀란 얼굴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에 민하준을 빤히 쳐다보았으며 그가 혹시라도 어르신의 조건에 동의할까 봐 너무 겁이 났다.이때, 곁에 있던 유경한이 코웃음을 쳤다. 어르신이 그의 체면을 고려해 주지 않았지만 민하준의 체면도 똑같이 구겨버린 것이다.미연은 차갑고 질투 가득한 표정으로 한유라를 쳐다보며 웃음거리가 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녀는 그렇게 장난감처럼 너무도 쉽게 버려진 것이다.잠시 고민하던 민하준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럴 수는 없습니다.”어르신은 압박에 찬 눈빛으로 민하준을 빤히 쳐다보며 슬쩍 웃었다.“따라 들어와.”어르신은 돌아서서 병풍 뒤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고 한유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어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민하준을 빤히 쳐다보았다.어르신은 양보하는 척하면서 모든 행동이 계획된 듯, 민하준을 유도하고 있었고 한유라는 그저 저 두 사람이 두는 바둑 한 알에 불과했다.한유라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긴장한 마음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으며 어느새 눈시울까지 붉어졌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그녀의 걱정을 눈치챈 민하준은 마음이 약해져서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걱정하지 마.
민하준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유라에게 다가갔으며 마음속의 절망과 발버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하얗게 질린 한유라의 입술과 흐트러진 웨이터 복장을 보며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한유라는 이제 절대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그녀 입으로 약속했기에 민하준은 그녀가 한 달 뒤에도 그 약속을 지켜주길 바랐다.민하준이 한유라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보이자 한유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편안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우리 이제 가도 돼? 나 이곳이 너무 싫어. 앞으로 다시는 안 올 거야.”민하준은 오랜 노력 끝에 겨우 그녀의 웃음과 다정한 말투를 되찾았는데 이제 그녀는 다시 그를 뼛속까지 원망하고 미워할 것이다.한유라가 민하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민하준은 자리에서 굳은 채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그는 미안하고 잔인한 눈빛으로 한유라를 쳐다보았다.그 순간, 한유라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달은 듯, 입가의 웃음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그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한유라는 순진하게 민하준이 절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인생을 망친 이 남자에게 또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한유라는 민하준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뒷걸음질 쳤으며 물건처럼 다른 사람에게 쉽게 팔린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다.마음이 약해진 민하준은 그런 한유라를 보며 자신의 결정이 후회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선택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그는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바둑알이 아니라 바둑을 두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그래야만 앞으로 그의 사람을 빼앗기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기에 일단은 한유라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결정을 바꿀 수는 없기에 민하준은 마음속으로 잠시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평온해졌다.그는 한유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꽉 껴안았으며 발버둥 치는 그녀의 허리를 꽉 잡으며 말했다.“유라야, 날 믿어줘. 난 너에게 진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