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하준의 말에 장민의 조심스러워하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몇 발짝 앞으로 가서 그의 앞에 서서는 당황한 듯 말했다.“형님, 절 버리시려고요? 제가 잘못했어요. 때리셔도 되고 욕하셔도 되니까……”미연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말했다,“이 일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물건 다 치울게요. 저 때문에 두 분 싸우지 말아요!”말은 마친 그녀는 들어가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민하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기다려. 곽현아, 올라와……”곽현은 허겁지겁 달려왔고,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민하준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가서 쟤가 물건 챙기는 거 도와줘. 똑똑히 봐. 가져가지 말아야 할 건 가져가선 안 돼.”곽현이 곧장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미연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의 어깨는 김빠진 콜라처럼 축 처져 있었고, 어색한 침묵이 방안을 감돌았다. 민하준은 한 번도 그녀를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이렇게까지 화내는 건 내가 뭘 알까 봐 그러는 건가? 아니면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을 가져갈 까 봐 두려운 걸까?’미연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천천히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곽현이 올라온 순간, 장민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차렸다. 장민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외딴 여자를 민하준의 방에 들어오게 했으니, 그는 금기를 위반한 것이다. 민하준이 한발 다가가 장민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우리가 하는 사업이 정정당당한 거라고 생각해? 여자 몇 명이랑 자는 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만약 네가 믿고 있던 미연이가 내가 죄를 저지른 증거를 들고 나를 고발한다면 어떡할 건데? 그땐 후회해도 소용없어. 생각이나 해 봤어?”장민은 민하준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 손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고, 잘못을 제대로 깨달은 그는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민하준과 이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니
민하준은 고개를 살짝 내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어두운 눈동자로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했다. 그는 남들 몰래 세력을 키워왔다. 어르신의 뒷배만 누군지 알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항상 어르신을 위해 일 처리를 맡아왔지만 까놓고 말해 그에게 믿고 맡길 수 있었던“수하”에 그치지 않았다. 민하준은 이런 지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을 그 영감이 망쳐놓았다. 자신의 영역에 끌어들인다고 하여 순순히 말을 들을 민하준이 아니었다.민하준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 마치 눈앞에서 한유라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듯했다. 그의 목젖이 떨리고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지졌다. 한유라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민하준은 죽도록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마친 민하준은 그 자리에 일어났다.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앞에 있던 그녀도 사라졌다. ‘그녀가 여기에 올 리가 없잖아.’설령 그녀를 일 년 반 동안 가둬놓더라고 그녀 성격상 여기를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민하준은 간질거리는 마음에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책장의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많은 약들과 주사기가 있었다. 익숙한 듯 약에 손을 뻗으려던 그때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민하준은 재빨리 서랍을 닫았다. 다시는 이런 것에 의존하지 않아! 그는 더 이상 약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약을 끊는 독한 의지가 없었더라면 어르신의 눈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가 추락했던 어제와 오늘. 그가 그토록 원했던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던 날. 그의 사업이 잇따라 충격을 받은 날. 그의 인생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죽도록 노력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거품이 된 채 사라졌다. 이때 운명적으로 교통사고가 난 어르신을 구했고 그가 민하준의 인생을 새롭게 변하게 했다. 민하준은 어르신 대신 차에
한유라가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민하준에게 한유라란 항상 철없는 아이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원히 철부지 소녀일 줄 알았다. 항상 그가 생각지 못한 일을 터트리곤 했으니... 그녀가 아이를? 생각도 하기 싫다. 그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이 끊어졌다. 둘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었다니...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이미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니... 그녀의 미래에는 민하준이 없었다. 민하준의 눈이 서늘해졌다. 생각보다 더 큰 아픔과 시련이 몰려왔다. 민하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손을 내뻗어 그녀를 확 끌어당겼다. “멀리도 생각했네, 한유라. 만약 내가 널 찾으러 가지 않는다면 평생 날 찾지도 않았겠어.”민하준은 그녀의 턱을 붙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한유라에게 물었다.“그렇지?”한유라는 그의 힘에 눌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분노로 이를 깨물었다. 하지만 심강열의 안위를 생각한 한유라는 자신이 성급했음을 후회했다. 지금의 민하준은 미친놈이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못한다면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한유라는 천천히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아니야, 전에는 널 사랑했었어.”민하준의 눈빛이 살짝 돌아왔다. 그는 눈을 깜빡이면서 한유라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 그의 굳었던 몸이 살며시 풀어지고 한유라에게 입을 맞추려던 순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한유라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역시. 거짓말이었군. 한유라가 해석할 겨를도 없이 민하준은 폭우처럼 그녀에게 휘몰아쳤다. 그는 자신의 소유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한유라의 얼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하였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민하준은 점점 더 세게 그녀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한바탕 끝난 후 한유라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샤워하러 가려고 했다. 민하준이 그런 그녀를 잡았다.“어디가?”민하준의 목소리는 낮고 걸
흠칫하던 민하준이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들었다.“괜찮아.”그리고 잠깐 고민하던 민하준은 샌드위치 대신 우유와 정교한 비주얼의 디저트를 집어 쟁반에 올린 뒤 2층으로 올라갔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방혁재가 고개를 저었다.“형님은 왜 인질한테 저렇게 잘해 주는 거지?”“전 여친이거든.”이에 곽현이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툭 대꾸했다.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는 샤워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있는 한유라의 모습이 보였다.마치 인형처럼 눈 한 번 깜박하지 않는 한유라의 머릿결에서 샴푸의 산뜻한 향기가 풍겨왔다.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민하준이 물었다.“깼으면 내려오지 그랬어. 셰프 한 명을 새로 구했는데 솜씨가 꽤 좋더라고.”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아직도 화가 잔뜩 난 상태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고개를 돌린 한유라는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입맛이 없어서.”예상과 다른 반응에 민하준이 어떠한 리액션도 하지 못하던 그때, 한유라의 말이 이어졌다.“나, 토스트 먹고 싶어.”그리고 다음 순간, 민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가만히 있을 땐 고독한 늑대 같은 차가운 인상이지만 미소를 지을 때면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전부 가려질 정도로 찬란한 웃음을 가진 남자, 한때 한유라가 가장 사랑했던 모습이기도 했다.적어도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건 어제 일에 대한 책임을 더 묻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민하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올라갈 때와 그대로인 쟁반을 바라보던 노경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안 드신답니까?”“토스트가 먹고 싶다네.”“예?”그리고 민하준은 대답 대신 소매를 걷은 채 주방으로 향했다.“내가 직접 만들 거야.”‘세상에나...’노경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음식 냄새라면 질색하는 사람이 직접 요리라니.힐끗 곽현을 바라보니 역시 적잖게 놀란 표정이다.다행히 식자재와 주방도구들을 두루 갖춘 덕에 한참을 뚝딱대던 민하준은 곧 꽤
민하준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하지만 한유라의 표정으로 보아 크게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그냥 정말 궁금해서 던진 질문인 것 같았다.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말고 다른 여자가 들어올 일은 없어. 어젯밤에 창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나 봐. 바람도 세더라.”그는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렸지만 그 순간 한유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어젯밤은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한 날씨였다.“형님, 이분이 한유라 씨인가요?”주방에서 나온 방혁재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한유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재수 없는 멸치남이 보이지 않아서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방혁재는 수더분하고 넉살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하지만 민하준 신변의 사람을 믿을 수는 없었다.민하준은 기분이 좋은지 한유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쪽은 방혁재, 한때는 잘나가는 쉐프였으니까 앞으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혁재한테 얘기하면 돼.”방혁재는 민하준의 은근한 칭찬에 싱글벙글 웃었다.“유라 씨,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요. 제가 모르는 메뉴라도 인터넷 치면 레시피는 다 나오니까요.”재수 없는 인간들이 사라지고 그나마 인상 좋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여전히 감금된 상태이지만 전에 비하면 덜 숨이 막혔다.한유라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민하준이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 뒤에서 곽현이 따라왔다.그는 여전히 운전기사 역할을 수행했다. 민하준이 차 문을 열어주자 한유라는 대범하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뒤이어 차에 오른 민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쇼핑하러 가자. 새 옷도 좀 장만해야지.”한유라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바람 쐬러 나온다고 했을 때는 지난번 경험이 있었기에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녀였다.그런데 쇼핑을 간다고?사람이 많은 백화점에?한유라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뭔가 좀 이상했다.민하준은 재밌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왜? 쇼핑하러 가자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민하준은 그 뒤로 더 이상 태클을 걸지 않았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진하지 않고 포인트만 강조한 연한 화장으로 그녀를 꾸며주었다.평소의 한유라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지만 오히려 깨끗하고 청순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민하준도 흡족한 표정으로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왜 갑자기 쇼핑하러 나왔는지 안 궁금해?”이걸 쇼핑이라고 할 수 있을까?한유라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다.“모르겠어.”뭔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까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저녁에 파티가 열릴 건데 같이 가자. 내 지인들 소개해 줄게.”아니나 다를까.파티에 가지 않을 거면 이렇게 화려한 드레스가 필요 없었다.민하준은 무슨 의도로 그녀를 데리고 파티에 참석하려는 걸까?한유라는 이미 알려진 인물인데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알려진대도 상관없다는 뜻일까?아니면 이 모임은 처음부터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모이는 걸까?점점 더 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녀는 평소에 눈치라도 좀 길렀을걸 하고 지난날을 후회했다. 왜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먹고 노는데만 집중했던 걸까?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하찮아 보였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네 지인들을 나한테 소개하려고? 만약 그 멸치남처럼 재수 없는 사람들이면 됐어. 그냥 집에 있을래. 이렇게 차려 입고 가서 만나기는 아까운 사람들이니까.”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협박하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민하준은 한참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 사람들 아니야. 장민이를 싫다고 했으니 다시 걔를 만날 일도 없어.”한유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드레스자락을 잡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이건 정말 네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궁금해서 가는 거야.”그러니까 날 의심하지 마.네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졌으니까.민하준은 움찔하더니
질투와 부러움, 찬양, 복합적인 시선들이 민하준을 향했다.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민하준을 두려워한다는 정도랄까.그들은 자발적으로 두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민하준은 사람들에게 인사도 없이 곧장 안쪽으로 향했다.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곽현이 그들을 맞아주었다.“형님, 영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민하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한유라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한유라는 이 영감님이라는 자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범죄조직의 정점에 있는 자, 아는 게 많을수록 그만큼 목숨이 위험했다.민하준은 왜 굳이 이런 장소에 나를 데려온 걸까?하지만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민하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중간에 가림막이 설치된 뒤쪽에 한적하고 호화스러운 휴게실이 보였다.상석에는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백발 영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웃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섬뜩했다.영감은 매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한유라는 영감과 눈을 마주친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살면서 한 번도 마주할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민하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서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경례했다.“어르신, 생신 축하드립니다.”영감은 민하준을 보자 기분이 좋은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하준이 너 요즘 통 안 보이더니 여자 만나고 다녔어?”민하준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유라의 손을 이끌었다.“이런, 들켜버렸네요. 한유라입니다.”한유라는 꿈쩍도 않고 영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저 영감에게 깎듯이 인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재벌2세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기에 아무리 인성이 좋아도 거만함과 높은 자존감은 패시브로 장착하고 있었다. 상대가 무섭다고 해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민하준은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하지만 그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그는 영감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애가 어려서 눈치도 없고
영감의 태도는 강경했다.희망을 아예 놓아버렸던 한유라까지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얘기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난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어.난 잊혀지지 않았어.민하준은 영감의 질타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그래서요? 사람이 실종됐으니까 찾는 게 당연하겠죠. 그러다가 못 찾으면 포기하겠죠. 저는 포기 못합니다! 그 집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저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요!”말을 마친 그는 영감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오늘은 어르신 생신이니 일 얘기는 나중에 해요. 별거 아닌 일이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영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민하준을 쏘아보았다.한유라는 기대를 품고 영감의 눈치를 살폈다.어떻게든 영감이 다시 한번 자기를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렸으면 했다.그런데 영감이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하준이 네가 일을 깔끔히 처리하는 건 알지. 어차피 아무리 잘나도 여자 한 명인데 그렇게 가지고 싶으면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오늘처럼 사람들 눈에 띄게 밖에 데리고 나오는 건 이제 금지야.”민하준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조심하겠습니다.”한유라는 충격에 빠진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보았다.이게 끝이야?이대로 포기한다고?또다시 절망감이 찾아왔다.민하준이 영감의 지시를 되돌릴 정도로 이미 세력이 커졌단 말인가?민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한유라는 억울한 눈으로 뒤돌아보았다.영감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뭔가 아주 복잡한 눈빛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하찮은 동정일까? 아니면….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녀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한유라는 손에 땀이 났다.이때 민하준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설마 저 영감이 끝까지 널 풀어주라고 우길 줄 알았던 거야?”한유라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민하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