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영은 더욱 죄책감을 느끼며 말했다. “박 대표님 오세요? 제가 작은 도련님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혼내시지는 않겠죠?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작은 도련님이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어요!”이한석은 윤이영의 강경한 태도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윤이영 씨가 작은 도련님을 제때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제때 오지 않았더라면 뇌까지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해요.”박시준은 정말 위험할 뻔했다. 박시준이 바보가 된다면 박수혁이 어떻게 할지 모른다. 윤이영은 코를 훌쩍 거리며 말했다. “이 비서님, 어디 가지 마시고 저 좀 도와주세요. 앞으로 작은 도련님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겠습니다.”이한석은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박 대표님의 말씀을 들어봐야죠.”이한석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수속 절차를 밟으러 갔다. 이한석이 떠나자 윤이영이 담담한 표정으로 응급실 문을 쳐다본 후 의자에 앉았다. ......그 시각, 소은정은 밤늦게 서류를 들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에 들어가자 손재은이 졸린 눈으로 소은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은정 씨,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9시에 오라고 했잖아요, 지금 새벽 1시에요!소은정은 피곤한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운전기사가 일을 보러 가서 남편 올 때까지 기다렸어요.”“소은정 씨는 운전 못 해요?”“선녀가 운전하는 거 봤습니까?”손재은은 말했다. “아... 남편은 밑에 있어요? 왜 같이 안 올라왔어요?”소은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전동하가 손재은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밑에서 기다려야죠.” 소은정은 돌려서 말했다.손재은은 침대에서 일어나 서류를 살펴봤다. 그리고 별문제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사인을 했다. “걱정 마세요. 내일 변호사한테 공증 받으면 구태정의 모든 재산은 제 것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제 것이 곧 손재은 씨의 것이죠.”손재은은 정신없이 바쁠 구태정을 생각하니 매우 기뻤다.소은정
전화를 끊고 나서도 소은정은 한참을 넋이 나가 있었다. 분명 몇 시간 전에만 해도 만났던 사람인데, 자신이 실패한 혼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이젠 죽었다고? 그녀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냉기가 자신을 휩쓸고 간듯한 느낌이었다. 전동하는 그녀를 안아서 소파에 앉히고는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미안해요, 어젯밤에 같이 갔었어야 했는데.” 어젯밤에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저 소은정이 너무 피곤해서 그 일에 신경 쓰지 못했을 뿐. 그는 소은정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당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거 전 알고 있어요. 사실대로 잘 말하면 돼요. 그 외의 일들은 제가 다 커버할게요.” 소은정의 낯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녀는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잠시만요, 혹시 전에 우리 집에 들이닥친 그 사건과 관련 있는 거 아니에요? 손재은은 절 아니까, 절 노리고 온 거 아닐까요?”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를 자신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이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전동하는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그녀가 천천히 진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너무 마음 쓰지 마요. 다 우연의 일치일 뿐 당신이랑 아무 상관도 없어요. 곧 이혼할 사람이니 남편분이 재산을 노리고 벌인 짓일 수도 있잖아요. 너무 두려워하지 마요.” 전동하의 목소리가 무척 부드러웠다. 덕분에 소은정도 점차 진정돼가고 있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두려워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조금 괴롭네요. 어젯밤만 해도 만났던 사람인데...” “알아요, 저도 그 마음 다 알아요.” 얘기 중에 갑자기 소은정의 전화가 울렸다. 우연준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반대쪽에서 우연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이미 SC그룹의 변호사를 대기시켜 놨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서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은정은 그 말에
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다가 대답을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무엇도 확신하긴 힘들죠.” 말 안에 뼈가 있는 느낌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조사에 필요한 층들 말고는 다 정상적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필경 병원이 일반적인 공공장소는 아니니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소은정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걸어 들어갔다. 그녀가 손재은에게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가련함이었다. 비록 모든 불행은 그녀가 자초한 것일 테지만 그래도 그녀의 처지가 불쌍한 건 변함이 없었다. 불쌍한 처지지만 구원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책망할 수는 없다. 소은정은 가려는 층수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이상했다. 전동하는 미리 원장님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 원장님도 방금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이셨다. “아이고, 두 분이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전 아가씨가 결백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경찰분들이랑 잘 설명하셨죠?” 소은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 혹시 cctv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경찰 측에서 원본을 가져갔고요, 제 쪽에는 복구해 놓은 게 하나 있습니다.” 원장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쉽게 내놓지 않았을 텐데 다 아는 사람들인 데다가 소은정은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니 원장도 cctv를 보여주는 거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소은정과 전동하는 눈을 한번 맞추고 그대로 원장님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원장님이 cctv화면을 보여주자 소은정은 화면을 집중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화면은 손재은이 병원에 들어서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오후 다섯 시가량에 병원에 들어왔고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영양제를 맞았다. 그리고는 변호사와 재산을 이전시킨 후 어떻게 안전하게 재산을 보관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대화가 너무 길어져 소은정이 영상을 건너뛰려는데 전동하가 뒤에서 말렸다. “잠시만요..
원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동하가 말했다.“이건 병원에 큰 타격을 줄 사건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병원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어요?”그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하지만 원장은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만약 박수혁이 나서준다면 해결이 빠를 수도 있다.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전동하와 소은정이 가진 세력으로 이 사건을 은폐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박수혁을 끌어들이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걸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전동하가 방향을 제시했으니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소은정과 전동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은정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경찰이 현장에 왔을 텐데 무슨 단서는 나왔나요? 몸싸움을 한 흔적은 있나요?”원장은 움찔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경찰들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사인을 파고든다는 건 단순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몸싸움을 한 흔적이 있다는 건 손재은이 죽기 전에 누군가가 접근했다는 의미였다.타살이었다.두 사람은 바래다준다는 원장을 뒤로하고 조용히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손재은이 사고가 난 층은 이미 봉쇄가 되어 있었다.그 층에 있던 환자들은 모두 아래층으로 옮겼다.병원에 사람이 많으니 엘리베이터 안에도 사람들로 붐볐다.전동하는 어쩔 수 없이 소은정을 감싸안고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 밀려났다.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고 전동하는 웃으며 팔을 마사지했다.“어르신들이 힘이 장난이 아니네요.”소은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버스나 지하철 타면 막 밀치고 들어오시는 분들이니까요.”다시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아니면 계단으로 갈까요?”소은정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그렇게 손을 잡고 계단으로 향하는데 차갑지만 말랑한 손이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소은정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당황했다.“너구나….”박시준,
박시준은 부모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아이는 차츰 그렇게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오히려 박수혁의 비서인 이한석이 더 관심을 주었다.이한석은 박수혁이 그렇게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자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소은정이 아이 옆에 앉은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전동하가 담당의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눈을 뜬 박시준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불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정이 망설이자 전동하가 웃으며 다가가서 아이의 손을 빼고 잡아주었다. 그는 소은정이 앉았던 위치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애 재우려고요? 이런 건 내가 잘하니까 나한테 맡겨요.”소은정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동하 씨가 해요.”그녀는 전동하의 육아 실력을 믿었다.새봄이 같은 말괄량이도 전동하에게만 가면 순한 양이 되는데 다른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박시준은 살짝 겁에 질린 얼굴로 손을 빼려고 했다.하지만 전동하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는 손에 조금 힘을 주고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누운 아이를 바라보았다.그는 아이의 생각을 쉽게 읽어냈다.“자. 삼촌은 네가 잠들면 갈게. 네가 안 자면 삼촌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박시준은 반항을 포기하고는 애절한 눈빛으로 의사와 대화 중인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소은정은 아이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하고 의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전동하는 그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이 물었다.“여기 지키는 사람도 없나요?”의사가 말했다.“조금 전에 돌봐주기로 한 베이비시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곧 도착한대요. 간호사 한 명은 남겨서 지키게 해야 했는데 저희가 좀 소홀했어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애들이 자꾸 앓으면 너무 불쌍하죠.”“시준이는 감기인 것 같아요. 찬물에 씻은 것 같은데 갑자기 열이 나
윤이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앞으로 상체를 쭉 내밀었다.그녀는 서늘했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아이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별로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시준아, 엄마는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너도 우리 가족이 세 명이서 같이 살기를 바라잖아? 아빠랑 잘 될 수 있게 엄마를 도와주면 우리 같이 살 수 있어.”박시준은 경직된 채, 침대에 누워 애써 잠든 척, 눈을 감았다.아이는 윤이영의 말을 못 들은 척했지만 윤이영은 의외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그녀는 가볍게 박시준의 손을 터치했다.하지만 많이 놀라서였을까, 박시준은 움찔하며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를 떨어뜨렸다.윤이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바라보더니 점차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이건 아까 소은정이 했던 것과 똑 같은 귀걸이였다.윤이영은 냉랭한 눈빛으로 박시준을 쏘아보았다.박시준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아이는 귀걸이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다시 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다.윤이영은 자상한 연기도 하기 싫었는지 냉랭한 시선으로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너 소은정 만났어? 그 여자 물건이 왜 네 손에 있지? 너 소은정이랑 연락해?”박시준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눈빛이 아이의 마음을 대변했다.이성을 잃은 윤이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말해. 너 금방 태어났을 때 울기도 하고 소리도 치고 그랬잖아. 왜 벙어리인 척하는 거지?”박시준은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글썽였다.윤이영은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를 패대기치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양심도 없는 자식!”방 안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그런데 바깥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윤이영은 금세 표정을 바꾸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박시준이 덮고 있는 이불을 여며주었다.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박예리가 임유경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시준아, 고모 왔어. 너 아프다며? 지금은 좀 괜찮아?”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병실 안에 있는 낯
두 사람의 첫만남은 박 회장의 장례식에서 이루어졌다.임유경은 임춘식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이민혜가 돌아오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상황을 이끌고 갈 안주인도 없었다. 그래서 고용인들은 그들을 별채로 안내했다.임유경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검은색 상복을 입은 박예리가 몰래 이한석과 함께 뒤에 있는 별채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의아해서 따라가 보았더니 이한석이 건물을 떠난 뒤, 박예리가 올라가서 방 문을 잠갔다.그녀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박예리는 커튼, 소파 등 불이 붙을만한 곳에 모두 불을 질렀다.박예리는 박수혁의 아들을 불태워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임유경은 그녀의 눈빛에서 살기와 증오, 그리고 쾌감을 느꼈다.그녀는 박예리가 왜 어린 아이한테 이토록 적대심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불길은 한참이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2층에서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시준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였다.박예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임유경은 창가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소은정이었다.임유경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달려가서 박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그렇게 박예리는 소은정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박예리는 감사의 의미로 임유경에게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다.임유경은 간결하게 대답했다.“박수혁 씨랑 결혼하는 거.”아주 솔직한 대답이었다.그녀는 박예리의 약점을 쥐고 있었기에 박예리가 주제도 모른다고 비난할 일은 없었다.박예리는 그녀를 한참 빤히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오빠 주변에 여자들이 참 많지만 네가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이게 임유경에 대한 박예리의 평가였다.장례식이 끝나고 돌아가기 전, 박예리는 그녀에게 물었다.“그때 다 보고 있었으면서 왜 날 막지 않았어?”임유경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박수혁은 아이가 있다는 흠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남자였다.착해서, 구해주고 싶었다는 말은 어차피 거짓말이었다.어떤 여자가 계모가 되고 싶을까?박예리가 그 아이를
임유경이 다가가서 머뭇거리자 박예리가 고개를 돌렸다.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사라졌다.박예리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기다리고 있었어. 늦게 나왔네.”임유경은 다가가서 무심한듯 말했다.“미안해. 내가 시기를 잘못 고른 것 같아. 남의 가정사를 의도치 않게 듣게 돼서 미안하네.”박예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어차피 우리 집 사람이 될 텐데 미안하기는.”임유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너희 오빠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유형은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베이비시터한테 대하는 태도도 나보다는 좋은 것 같더라.”박예리는 웃으며 다가가서 그녀의 팔짱을 꼈다.“유경아, 이상한 생각하지 마.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게 달라서 그래. 오빠가 고작 베이비시터랑 눈 맞을 리 없잖아? 날 도발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우리 둘 사이의 모순 때문에 네가 피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 너 같은 스타일을 안 좋아하면 네가 스타일을 좀 바꿔보는 게 어때?”임유경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박예리는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두 사람은 그 뒤로 백화점 쇼핑을 즐겼다.그들은 명품 매장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쓸어담았다.옷과 액세서리를 사느라 임유경은 모아 놓은 적금까지 다 털고도 신용카드를 긁었다.겉으로는 담담하게 웃고 있었지만 사실 속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사실 섹시 큐티 컨셉은 그녀처럼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녀는 몸매가 살짝 드러나고 발목까지 오는 긴 원피스를 입었다. 색상이 화려해서 그런지 멀리서 봐도 눈에 확 튀는 스타일이었다.임유경은 침착하고 성숙한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전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낯설다고 느꼈다.박예리는 대놓고 어떤 스타일이라고 집어주지 않았다.하지만 그날 소장품 경매에서 소은정이 입었던 스타일과 흡사했다.그녀는 누군가에게 귀뺨이라도 맞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