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동하가 말했다.“이건 병원에 큰 타격을 줄 사건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병원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어요?”그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하지만 원장은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만약 박수혁이 나서준다면 해결이 빠를 수도 있다.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전동하와 소은정이 가진 세력으로 이 사건을 은폐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박수혁을 끌어들이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걸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전동하가 방향을 제시했으니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소은정과 전동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은정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경찰이 현장에 왔을 텐데 무슨 단서는 나왔나요? 몸싸움을 한 흔적은 있나요?”원장은 움찔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경찰들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사인을 파고든다는 건 단순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몸싸움을 한 흔적이 있다는 건 손재은이 죽기 전에 누군가가 접근했다는 의미였다.타살이었다.두 사람은 바래다준다는 원장을 뒤로하고 조용히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손재은이 사고가 난 층은 이미 봉쇄가 되어 있었다.그 층에 있던 환자들은 모두 아래층으로 옮겼다.병원에 사람이 많으니 엘리베이터 안에도 사람들로 붐볐다.전동하는 어쩔 수 없이 소은정을 감싸안고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 밀려났다.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고 전동하는 웃으며 팔을 마사지했다.“어르신들이 힘이 장난이 아니네요.”소은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버스나 지하철 타면 막 밀치고 들어오시는 분들이니까요.”다시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아니면 계단으로 갈까요?”소은정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그렇게 손을 잡고 계단으로 향하는데 차갑지만 말랑한 손이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소은정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당황했다.“너구나….”박시준,
박시준은 부모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아이는 차츰 그렇게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오히려 박수혁의 비서인 이한석이 더 관심을 주었다.이한석은 박수혁이 그렇게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자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소은정이 아이 옆에 앉은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전동하가 담당의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눈을 뜬 박시준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불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정이 망설이자 전동하가 웃으며 다가가서 아이의 손을 빼고 잡아주었다. 그는 소은정이 앉았던 위치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애 재우려고요? 이런 건 내가 잘하니까 나한테 맡겨요.”소은정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동하 씨가 해요.”그녀는 전동하의 육아 실력을 믿었다.새봄이 같은 말괄량이도 전동하에게만 가면 순한 양이 되는데 다른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박시준은 살짝 겁에 질린 얼굴로 손을 빼려고 했다.하지만 전동하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는 손에 조금 힘을 주고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누운 아이를 바라보았다.그는 아이의 생각을 쉽게 읽어냈다.“자. 삼촌은 네가 잠들면 갈게. 네가 안 자면 삼촌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박시준은 반항을 포기하고는 애절한 눈빛으로 의사와 대화 중인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소은정은 아이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하고 의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전동하는 그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이 물었다.“여기 지키는 사람도 없나요?”의사가 말했다.“조금 전에 돌봐주기로 한 베이비시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곧 도착한대요. 간호사 한 명은 남겨서 지키게 해야 했는데 저희가 좀 소홀했어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애들이 자꾸 앓으면 너무 불쌍하죠.”“시준이는 감기인 것 같아요. 찬물에 씻은 것 같은데 갑자기 열이 나
윤이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앞으로 상체를 쭉 내밀었다.그녀는 서늘했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아이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별로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시준아, 엄마는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너도 우리 가족이 세 명이서 같이 살기를 바라잖아? 아빠랑 잘 될 수 있게 엄마를 도와주면 우리 같이 살 수 있어.”박시준은 경직된 채, 침대에 누워 애써 잠든 척, 눈을 감았다.아이는 윤이영의 말을 못 들은 척했지만 윤이영은 의외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그녀는 가볍게 박시준의 손을 터치했다.하지만 많이 놀라서였을까, 박시준은 움찔하며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를 떨어뜨렸다.윤이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바라보더니 점차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이건 아까 소은정이 했던 것과 똑 같은 귀걸이였다.윤이영은 냉랭한 눈빛으로 박시준을 쏘아보았다.박시준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아이는 귀걸이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다시 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다.윤이영은 자상한 연기도 하기 싫었는지 냉랭한 시선으로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너 소은정 만났어? 그 여자 물건이 왜 네 손에 있지? 너 소은정이랑 연락해?”박시준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눈빛이 아이의 마음을 대변했다.이성을 잃은 윤이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말해. 너 금방 태어났을 때 울기도 하고 소리도 치고 그랬잖아. 왜 벙어리인 척하는 거지?”박시준은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글썽였다.윤이영은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를 패대기치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양심도 없는 자식!”방 안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그런데 바깥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윤이영은 금세 표정을 바꾸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박시준이 덮고 있는 이불을 여며주었다.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박예리가 임유경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시준아, 고모 왔어. 너 아프다며? 지금은 좀 괜찮아?”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병실 안에 있는 낯
두 사람의 첫만남은 박 회장의 장례식에서 이루어졌다.임유경은 임춘식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이민혜가 돌아오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상황을 이끌고 갈 안주인도 없었다. 그래서 고용인들은 그들을 별채로 안내했다.임유경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검은색 상복을 입은 박예리가 몰래 이한석과 함께 뒤에 있는 별채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의아해서 따라가 보았더니 이한석이 건물을 떠난 뒤, 박예리가 올라가서 방 문을 잠갔다.그녀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박예리는 커튼, 소파 등 불이 붙을만한 곳에 모두 불을 질렀다.박예리는 박수혁의 아들을 불태워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임유경은 그녀의 눈빛에서 살기와 증오, 그리고 쾌감을 느꼈다.그녀는 박예리가 왜 어린 아이한테 이토록 적대심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불길은 한참이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2층에서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시준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였다.박예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임유경은 창가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소은정이었다.임유경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달려가서 박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그렇게 박예리는 소은정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박예리는 감사의 의미로 임유경에게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다.임유경은 간결하게 대답했다.“박수혁 씨랑 결혼하는 거.”아주 솔직한 대답이었다.그녀는 박예리의 약점을 쥐고 있었기에 박예리가 주제도 모른다고 비난할 일은 없었다.박예리는 그녀를 한참 빤히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오빠 주변에 여자들이 참 많지만 네가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이게 임유경에 대한 박예리의 평가였다.장례식이 끝나고 돌아가기 전, 박예리는 그녀에게 물었다.“그때 다 보고 있었으면서 왜 날 막지 않았어?”임유경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박수혁은 아이가 있다는 흠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남자였다.착해서, 구해주고 싶었다는 말은 어차피 거짓말이었다.어떤 여자가 계모가 되고 싶을까?박예리가 그 아이를
임유경이 다가가서 머뭇거리자 박예리가 고개를 돌렸다.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사라졌다.박예리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기다리고 있었어. 늦게 나왔네.”임유경은 다가가서 무심한듯 말했다.“미안해. 내가 시기를 잘못 고른 것 같아. 남의 가정사를 의도치 않게 듣게 돼서 미안하네.”박예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어차피 우리 집 사람이 될 텐데 미안하기는.”임유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너희 오빠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유형은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베이비시터한테 대하는 태도도 나보다는 좋은 것 같더라.”박예리는 웃으며 다가가서 그녀의 팔짱을 꼈다.“유경아, 이상한 생각하지 마.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게 달라서 그래. 오빠가 고작 베이비시터랑 눈 맞을 리 없잖아? 날 도발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우리 둘 사이의 모순 때문에 네가 피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 너 같은 스타일을 안 좋아하면 네가 스타일을 좀 바꿔보는 게 어때?”임유경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박예리는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두 사람은 그 뒤로 백화점 쇼핑을 즐겼다.그들은 명품 매장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쓸어담았다.옷과 액세서리를 사느라 임유경은 모아 놓은 적금까지 다 털고도 신용카드를 긁었다.겉으로는 담담하게 웃고 있었지만 사실 속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사실 섹시 큐티 컨셉은 그녀처럼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녀는 몸매가 살짝 드러나고 발목까지 오는 긴 원피스를 입었다. 색상이 화려해서 그런지 멀리서 봐도 눈에 확 튀는 스타일이었다.임유경은 침착하고 성숙한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전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낯설다고 느꼈다.박예리는 대놓고 어떤 스타일이라고 집어주지 않았다.하지만 그날 소장품 경매에서 소은정이 입었던 스타일과 흡사했다.그녀는 누군가에게 귀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박수혁은 자기 아들이 이렇게 겁 많고 소심하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렸다.하지만 자신이 워낙 아이와 가깝지 않으니 뭐라고 훈계할 수도 없었다.안진은 도대체 애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안진이 이제 와서 아이를 자신에게 보낸 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어차피 의도가 있는 접근이라면 그도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아이에게는 정을 주지 않기로 했다.이런 생각을 하자 그의 복잡하던 감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그는 허리를 펴고 윤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준이 잘 보살펴요. 앞으로 다시 애가 아프면 당신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애 하나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베이비시터에게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었다.베이비시터는 다시 고용하면 그만이다.윤이영은 멈칫하더니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최선을 다해 도련님 아프지 않게 잘 케어할게요.”아이가 아픈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박수혁이 박시준이 아픈 게 싫은 이유는 아이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이 아이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게 싫어서였다.병원에 가서 환자를 돌보는 시간에 서류 한 장 더 처리하는 게 더 의미가 있었다.박수혁은 그 길로 걸음을 돌렸다.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윤이영이 쫓아와서 말했다.“대표님, 사실 아이가 아픈 이유는 면역력이 그만큼 약해서예요.”박수혁은 핸드폰을 든 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죠?”그는 이곳에서 육아 지식이나 들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윤이영은 길게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아프다고 해도 저렇게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지는 않죠. 학교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적응되지 않은 것도 크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박수혁은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애가 아빠 사랑을 못 받아서 대표님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아픈 척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해를 하는 방식으로
구태정이 돈으로 기사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무수히 많은 동영상과 사진들이 돌아다녔고 네티즌들은 두 사람의 파렴치한 행위를 비난했다.구태정의 계좌는 동결되었으며 구태정의 재산이 문상아의 소유로 넘어갔다는 소문도 있었다.한편, 전동하와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중에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한 소은정은 고개를 들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남편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설마 당신이 한 건 아니죠?”전동하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내가 한 거 맞아요.”너무 쉽게 인정해서 오히려 소은정이 당황했다.“왜 그랬어요? 당신 남의 일에 관심도 없잖아요.”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손재은 씨는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당신에게 팔려고 했다면서요. 당신도 이 일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손재은 씨가 사망하면서 일이 틀어졌잖아요. 물론 사망하기 전에 계약서에 손재은 씨가 사인했지만 아직 공증도 되지 않아서 인정받기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이 구태정이니까 구태정이 외도를 저질렀다는 사실과 재산을 불륜녀 명의로 옮기려 했다는 것을 입증하면 이미지는 되돌릴 수 없이 추락하겠죠. 그렇게 되면 구태정 소유의 재산은 검찰에서 동결할 거고 그 연예인도 여론의 압박 때문에 나서서 해명하지는 못할 거예요. 어쨌든 저들이 사고를 치면 당신에게 유리하겠죠.”소은정은 멍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손재은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조사하고 있을 때, 전동하는 먼저 그녀가 가진 재산의 행방에 주목했다.그녀는 자신이 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살인 사건 결과가 나온 뒤에 재산 문제를 처리하려 했다면 그때는 구태정이 모든 재산을 다 다른 사람 명의로 옮겨버린 뒤라 추적도 어려웠을 것이다.전동하는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렸다.“나 똑똑하죠?”소은정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가 물었다.“조금 비겁한가요? 본가에 있었으면 장인어른이 저한테 비겁하다고 한소리 했을 것 같군요.”그는 약간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소은정은 회의 시간이 거이 다 된 것을 확인하고 소지혁의 손을 잡았다.“가자. 이따가 학생이랑 학부모가 같이 참여하는 이벤트도 있던데 넌 무슨 운동 잘해? 달리기? 그런데 내가 오늘 운동복을 안 입고 와서….”소지혁은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를 따라가며 말했다.“바둑 지원했거든요?”소은정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잘했네.”소지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정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진지하게 말했다.“나 바둑 둘 줄 몰라.”그들이 다시 강당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점 찍었던 자리 옆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소은정은 순간 인상을 확 썼다.상대는 박수혁이었고 그 옆에 뜻밖의 인물 임유경이 앉아 있었다.‘그래도 아들 생각을 조금은 하나 보네!’그녀는 무심한 듯, 그들을 힐끗 보고는 다가가서 앉았다.선생님도 그녀를 발견하고 인사했다.“은정 씨, 어서 앉으시죠.”아마 그녀가 조금 늦은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했다.그리고 최대한 집중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그렇게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놀이를 하는 시간이 돌아왔다.소은정은 소지혁을 데리고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소지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네가 있는 정원에 갔다.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주변은 큰 관목으로 둘러싸이고 주변에는 싱그러운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마치 시크릿 가든 같은 느낌이었다.“고모, 아까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가 무서웠어요?”소은정은 멈칫하며 말했다.“헛소리. 고모는 무서운 게 없어.”“그런데 그쪽으로 시선도 안 돌리던데요?”“그냥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소은정은 갑자기 마음이 좀 답답해졌다.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지 않을걸!둘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윤이영 씨, 일단은 저와 박 대표님이 시준이의 학부모로 이 자리에 왔으니 베이비시터인 윤이영 씨는 이곳에 계실 필요 없어요. 그냥 돌아가세요.”임유경의 목소리였다.소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