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말을 마친 형사는 뒤돌아서 가버렸다.윤재수는 악을 쓰며 몸을 비틀더니 포박된 상태로 이쪽으로 달려왔다.“망할 년이 감히 날 속여? 역시 전동하랑 짜고 꾸민 일이었어! 젠장! 절대 용서하지 않아! 죽어 버려!”소은정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다.“죽을 사람은 너지. 너 같은 게 감히 내 가족과 친구를 건드려? 내가 경고했지! 여긴 내 구역이라고!”형사들은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윤재수는 똑똑히 들었다.그는 차에 타고 있는 전동하를 보자 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두고 봐! 나 절대 이대로 안 무너져!”전동하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윤재수가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까지 확인한 소은정은 최성문에게 출발을 지시했다.사실 그녀가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자신의 걸작을 꼭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그리고 원하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그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돌아가는 길, 최성문은 센스 있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었다.소은정은 눈을 감고 잠시 음악을 감상하다가 뭔가 깨닫고 번쩍 눈을 떴다.차에 다른 누군가가 타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그게… 그러니까… 오늘 밤에 부두에서 수색활동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구경하러 온 거예요.”그녀는 저도 모르게 핑계부터 찾았다.전동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렇죠. 게다가 정말 우연스럽게도 그게 SC그룹과 연관이 있는 사건이네요? 역시 내 마누라는 똑똑하다니까요.”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 전혀 그녀를 탓하는 태도나 표정이 없었다.오히려 감탄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소은정이 움찔하며 물었다.“벌써 눈치챘어요?”“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소은정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사실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실행한 계획이었어요. 절대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죠.”전동하는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난 그
전동하는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우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혼탁해지기 시작했다.그런데 소은정이 번쩍 정신을 차리더니 그를 밀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났어요!”“뭐?”“아까 골동품을 기부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다시 사와야죠! 아빠 거니까!”전동하는 못 말린다는 듯이 혀를 찼다.“맞아요. 이것도 정말 중요하죠!”조금만 더 지체된다면 소찬식이 눈치채게 될 것이다!소은정은 다시 쇼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그녀가 생방송 쇼핑몰에 접속한 상황은 인기검색어에서 잠깐 반짝했다가 내려갔다.그녀가 잠깐 접속했을 뿐이고 별다른 구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사람들은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다음 날 아침.소은정은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에 찍힌 수많은 부재중 전화에 식겁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익숙한 번호였기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은정 씨, 윤재수는 어젯밤에 압송 과정에서 도주했습니다.”소은정은 정신이 확 들면서 발신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정 국장의 번호였다.“도주했다고요?”“네. 차에서 뛰어내려 도주했습니다. 우리 형사들이 해변가까지 쫓아갔는데 바다에 뛰어들더니 사라졌어요. 어선까지 동원해서 밤새 수색했는데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우리의 추적을 피해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마지막에 그를 잡히게 한 사람이 은정 씨니까 정말 조심하셔야겠어요.”정 국장의 엄숙한 경고에 소은정은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어떻게 된 거지?어젯밤에 자축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범죄자가 도주했다니?전화를 끊은 뒤, 소은정의 안색은 이미 창백하게 질렸다.우유를 타서 방으로 들어온 전동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깼어요? 우유부터 마셔요. 요즘에는 새봄이가 당신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것 같아요.”소은정은 당황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전동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정 국장님께서 연락이 왔는데 윤재수가 도주했대요.”순간 방 안에
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소은해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이게 점심 때지 아침이야? 참 이상하네. 매제가 너 우유 먹인다고 들어가서 두 시간이나 지나서 내려오다니! 참 부부애가 남달라!”소은정은 화내지 말자고 되뇌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시뻘게진 얼굴로 오빠를 노려보다가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우리 부부가 금슬 좋은 게 그렇게 질투나? 우리 일 얘기하고 있었어. 혼자서 무슨 상상을 한 거야?”옆에서 듣고 있던 전동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소은해가 배를 잡고 웃더니 말했다.“일 얘기? 네 남편은 네가 조금 전까지 영화 보고 있었다고 했는데?”그러니까 떠본 얘기였는데 소은정이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그녀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자신 있게 말했다.“그래, 맞아. 영화에 투자하고 싶어져서 느낌을 찾는 중이었어.”소은해는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외투를 챙기고 시간을 확인했다.소은정은 그에게 다가가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나쁜 소식이 두 개가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들을래?”소은해가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둘 다 나쁜 소식이라며? 그냥 안 듣고 싶은데?”소은정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꼭 선택해야 해!”“그럼 네가 말해.”소은해는 넥타이를 살짝 풀고는 대수롭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어젯밤에 윤재수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평소의 여유만만하고 건들거리던 모습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아무리 나쁜 소식이라도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을까?그는 시간을 확인하며 동생을 재촉했다.“빨리 말해. 하늘이랑 밖에서 외식하기로 했단 말이야! 지금 데리러가기로 했다고!”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첫 번째 나쁜 소식은 윤재수가 도주했다는 거고 우리 신변이 위험하다는 거야.”소은해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동공이 확장되었다.소은정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리고 두 번째는 오빠가 나
사무실에 침묵이 감돌았다.“그래, 알았어. 모든 게 전동하가 주범이었다고 치자.”윤재수는 이를 갈며 말했다.“그 개 자식이 군수물자 기지를 옮겼어. 놈의 핵심 기지가 어디로 옮겼는지 찾아야 해. 그래야 무기를 찾을 수 있어. 아예 소은정 가족들을 잡아서 고문을 하고 죽일까?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거야!”박수혁은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자폭하겠다는 건가요?”음산하고 거침없는 말투였다.윤재수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지금 그 자식 걱정하는 거야? 자네 동생이랑 어머니가 누구 손에 있는지 잊었어?”박수혁은 표정을 잠시 풀고 한결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동하가 미리 대비를 해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예요. 지금 움직이면 놈의 함정에 제 발로 들어가는 거라고요. 지금 당당히 돌아다닐 수 있는 입장도 아니잖아요.”윤재수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여차하면 다 같이 죽는 거지 뭐!”“그렇게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세요.”박수혁은 다시 시선을 서류로 돌렸다.윤재수는 억울했지만 지금 상황에 믿고 몸을 맡길 수 있는 상대는 박수혁밖에 없었다.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매제, 안진이가 사고를 당한 것 같아. 내가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군수물자가 더 중요하잖아. 그러니 자네가 사고 경위 좀 알아봐 줘. 난 전동하를 계속 주시하고 있을게. 무기는 무조건 확보해야 해!”“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조사할 만큼 내가 한가하지 않아서요.”“안진이 내 동생이야. 그 애는 자네 아이를 낳았다고! 어떻게 아무 상관이 없어!”박수혁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윤재수는 화를 참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게다가 난 자네 여동생 애인이잖아!”박수혁의 눈동자에 잠깐 살기가 스쳤다.대화는 그렇게 기분 나쁘게 마무리되었다.윤재수는 전동하가 비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시켜 기지를 옮기고 자기 자신조차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분통한 윤재수가 전동하를 면밀히 주시했지만 요
퍼스트클래스 내부는 공간이 아주 넓고 한적했다. 소은정은 흥분에 잠이 오지 않아서 창밖 풍경을 구경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새봄이도 같이 데려올걸 싶었다.고개를 돌리자 승무원이 담요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그녀는 옆에 있는 소은정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전동하에게 다가가서 그의 다리에 담요를 덮어주었다.소은정은 너무 웃겨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전동하는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뿐이었다.승무원의 손길이 그에게 닿는 순간 낯선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그는 갑자기 눈을 뜨고 냉랭한 표정으로 상대의 손길을 쳐냈다.들고 있던 담요를 바닥에 떨어뜨린 승무원이 다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승무원의 의도를 알아챈 전동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는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바라보았다.소은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전동하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이걸 이렇게 재미난 구경하듯이 보고 있다니.외국인 승무원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전동하를 바라보며 물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 와인 한잔 따라드릴까요?”전동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갑게 대꾸했다.“필요 없어요.”승무원이 뭔가 말을 걸려고 하는데 전동하는 턱짓으로 소은정을 가리키며 말했다.“우리 집사람한테 담요 한 장만 가져다주세요.”승무원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웃고 있는 소은정에게 시선이 향했다.상대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알겠다고 답했다.승무원이 담요를 가져오자 소은정이 웃으며 전동하에게 말했다.“언제부터 우리가 결혼한 사이였어요? 대표님, 우리는 사모님 몰래 여행 나온 애인 사이 아닌가요? 정말 이혼하고 저랑 결혼하실 거예요?”승무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승무원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과감하게 변했다.전동하는 인상을 쓰며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일부러 말했다.“이 비서가 하는 거 봐서!”그러자 소은정은 정색하며 말했다.“그 늙은 여자가 죽으면
소은정은 방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데 차가운 손길이 그녀의 볼을 잠시 만지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너무 차갑고 불쾌한 촉감이라 그녀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아무리 뿌리쳐도 손길은 집요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소은정은 인상을 쓰다가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전동하는 절대 이런 식으로 그녀를 만지지 않았다.번쩍 눈을 뜬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보였다.소은정은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고 상대도 그녀가 깬 것을 알고 손을 내렸다.상대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랜만이야, 은정아.”박수혁의 음울한 얼굴이 시야에 보이자 소은정은 온몸이 빳빳하게 굳었다.“당신이 여기 왜 있어?”그는 한참을 침묵하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것 봐. 전동하는 당신 안전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니까? 내가 이렇게 쉽게 이 방에 잠입할 수 있는 게 증거야. 그놈은 당신을 지켜줄 수 없어.”소은정은 길게 심호흡하고 힘껏 그의 손을 뿌리쳤다.“미친 거 아니야?”그녀가 욕설을 퍼붓는데 선박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박수혁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베란다로 뛰어갔다.찬 바다바람이 불어오자 소은정은 추위를 느끼고 몸을 훔칫 떨었다. 박수혁은 그녀를 커튼 뒤쪽으로 숨겼다.그리고 VIP룸 문이 외력에 의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어때? 전동하 여기 있어?”박수혁은 소은정이 있는 곳을 힐끗 보고는 손을 놓고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상대를 보며 말했다.“없어요. 아마 그 인간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려고 나간 것 같네요.”“젠장! 늦게 왔네!”윤재수가 욕설을 내뱉었다.박수혁은 긴 다리를 움직여 안으로 들어가면서 베란다 문을 닫았다.“지금 쫓아가도 늦지 않아요.”문틈으로 윤재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그 여자는? 여자랑 같이 배에 탄 거 아니었어?”박수혁은 음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같이 이동했겠죠. 전동하는 조심성이 많은 인간이니까요.”그러자 윤재
소은정은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밖으로 달려나갔다.커다란 별장 입구에는 몸집이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소은정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도망가지 못할 거라 자신하더니 입구에 개까지 두었구나!개가 크게 짖자 고용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튀어나와 개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그녀는 소은정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소은정은 이곳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그녀에게는 너무도 낯선 환경이었기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안진은 이미 사라지고 행적도 보이지 않았다.별장 내부에는 저 여자 고용인과 그녀, 그리고 개만 남은 것 같았다.소은정은 다시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안을 오랫동안 돌아다녔지만 전화기는 보이지 않았다.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그 여자 고용인이 다시 나타났다.“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식사하시죠.”소은정이 물었다.“안진도 함께인가요?”하지만 그 여자 고용인은 아무 말없이 뒤돌아서 가버렸다.소은정은 사실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 환경을 자세히 요해하려면 내려가는 게 맞았다.아래층에서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녀는 걸음을 재촉했다.아래층에 내려가서 누가 있는지 확인한 소은정은 화들짝 놀랐다.“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안진과 같이 식사를 하는 사람은 이민혜였다.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이민혜가 왜 여기 있는 걸까?안진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소은정 씨는 제가 초대했어요.”소은정은 다가가서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음식은 한식이 아닌 리비아 요리로 보였다.그녀는 다시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아직 리비아에 있구나.이민혜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왜 가는 곳마다 네가 있는지 모르겠어. 재수가 없으려니까.”소은정은 고개를 들고 차가운 말투로 받아쳤다.“사모님, 그건 제가 드려야 할 말씀 같은데요?”거침없는 반박에 안진은 묘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소은정은 이민혜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선박에서 내린 사람들을 전부 조사했지만 전동하는 소은정을 찾지 못했다.여행객들 중에 윤재수와 연고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소은정은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선장도 선원들을 파견해서 찾고 있지만 소득은 없었다.평소에 항상 매너를 잘 지키고 온화한 성격이던 전동하는 불과 며칠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두 눈은 뻘겋게 핏발이 섰고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선장은 그가 하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그를 위로하려 했다.“대표님, 뭐라도 좀 드셔야죠. 그래야 사람도 찾고 그러는 거죠. 여태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바다에서 실종된 것 같은데….”그 말에 전동하가 물건을 집어 던졌다.“그럴 리 없어요.”그가 떠나기 전에 절대 방을 나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에 소은정이 스스로 방을 나간 건 절대 아닐 것이다.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폭발 사고를 내서 그와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소은정을 납치한 게 분명했다.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의 실수였다.하지만 선박에 오르기 전까지 철저히 조사했고 윤재수는 동남아에, 박수혁은 국내에 있는 걸 확인한 상태였다. 그들이 이렇게 빨리 그의 행적을 알 리 없었다.도대체 소은정을 누가 데려갔을까?이런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전 대표님.”“이상준 씨.”선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길을 비켜주었다.전동하는 인상을 쓰며 상대를 힐끗 보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고 처음부터 이상준의 생사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이상준이 탄 배에 같이 타서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고 겸사겸사 소은정과 휴가를 보낼 목적이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는 꽤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 같았다.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원통했다.이상준은 창백한 얼굴로 다가가서 그에게 물었다.“은정 씨가 사라졌나요?”전동하는 고개를 들고 그를 노려보았다.이상준은 소은정의 실종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