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고기 냄새를 맡자 다시 식욕이 돋았다.그녀는 전동하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고는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하나만 먹을게요.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요.”전동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고기 한점을 크게 베어 물었다. 신선한 육즙이 입안에 흘러들었다. 적당히 구워진 양갈비는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전동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전동하는 그녀의 손이 닿는 곳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하나만 더 먹어요. 어차피 하나 더 먹는다고 살이 찌는 건 아니잖아요. 느끼하면 이따가 오이 주스 마셔요.”소은정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한유라는 그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내가 아는 소은정 맞아?’전동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비큐장으로 합류했다.잠시 후, 심강열이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좀 먹으러 나오지 그래?”한유라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냉랭하게 대꾸했다.“안 먹어. 다이어트 중이야.”심강열이 말했다.“당신 거 다 챙겨 뒀어. 밖에 있어. 배고프면 나와서 먹어.”말을 마친 그는 다시 베란다로 돌아갔다.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심 대표도 자상한 사람이야. 너랑 같이 먹고 싶어서 온 거잖아. 혼자서 얼마나 눈치 보이겠어.”그제야 한유라의 굳은 표정이 조금은 펴졌다.“저 인간이?”말은 그렇게 해도 입은 웃고 있었다.성강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봄이와 절친이 되었다.그가 리모컨을 터치하자 장난감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새봄이는 환호를 지르며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소지혁은 조용히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뭐가 좋다고 저런 반응이지?성강희가 레고 장난감에 다가가자 소지혁은 손을 내밀어 그를 제지하고는 정색해서 말했다.“저 혼자서 할 수 있어요.”그들은 오후내내 바비큐를 즐겼다.소지혁이 낮잠을 잘 시간이 되어 한시연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소은호는 할 말이 많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김하늘은 어떻게든 화제를 전환하려고 애썼다.“신부 드레스는 골랐어?”“신혼 여행은 어디로 갈 거야?”“특별히 가지고 싶은 결혼 선물은? 말 안 하면 그냥 돈으로 준비한다?”드디어 한유라의 잔소리 채팅이 시야에서 사라졌다.소은정은 성강희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소은정: “?”성강희: “응.”소은정: “OK.”조금 이상한 문자 내용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이미 확정 지은 일이고 장난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았다.핸드폰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선물 준비해야겠네요.”전동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의 절친이니 당연히 선물도 귀한 거로 준비해야 한다.새봄이는 젖병을 안은 채로 전동하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분유를 그의 옷에 쏟았다.전동하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우리 새봄이 힘 좋네! 젖병 뚜껑도 딸 줄 알고!”새봄이는 아빠가 자신을 칭찬하는 줄 알고 생글생글 웃으며 그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전동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래를 끄덕였다.소은정이 다가가서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빨리 옷이나 갈아입어요! 애 버릇만 나빠지겠어요.”전동하는 웃으며 다가가서 아내의 얼굴에 입을 맞춘 뒤,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딸이 똑똑한 건 사실이잖아요. 앞으로 생수 뚜껑도 딸 줄 몰라서 나쁜 남자들한테 이용만 당하면 어떡해요? 그러니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야죠!”소은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어린 딸이 사고 칠 나이가 되어간다는 것에 고민하고 있을 때, 전동하는 벌써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세상에!생각이 너무 비약적인 거 아닌가?전동하는 웃으며 옷방으로 들어갔다.소은정은 아이를 자동차에 내려놓고 거실에서 마음껏 뛰놀게 했다.새봄이는 울지도 않고 놀이에 푹 빠졌다.소은정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다가 세탁이 끝난 세탁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그녀는 세탁실에서 옷을 챙긴 뒤, 옷방을 노크하고 들어갔다.“당신 옷들….”상의를
소은정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가는 정말 곤란해질 것 같았다.전동하가 멈칫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요? 갑자기 보기 싫어졌어요?”소은정은 자신이 막무가내 왕이 된 느낌이 들었다.지금 내가 이 남자를 괴롭히고 있는 걸까?너무 어색하고 오글거렸다.그녀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요. 다 좋은데 밤에 벗어요.”전동하가 침묵했다.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단추를 잠그고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알았어요.”어차피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그날 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아줌마는 친근하게 새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소은정과 전동하는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새봄이가 졸음을 못 이기고 연신 하품을 해서야 전동하는 아줌마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마치 폭풍우를 일으킬 시기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소은정은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오늘 밤이 긴 밤이 될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전동하는 입술로 그녀의 목덜미를 지분거리면서도 화끈하게 움직이지 않고 소은정이 그의 옷을 벗길 때까지 기다렸다.그렇게 옷을 벗는데만 두 시간이 걸렸고 두 사람은 땀에 흠뻑 젖은 상태가 되었다.길고 격렬한 사랑이 끝난 후, 소은정은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는 다음 날 점심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조금 원기를 회복한 소은정은 오늘도 회사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옆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줄곧 그랬지만 그는 체력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일이 끝난 뒤에도 지친 소은정을 도와 청결과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었다.소은정은 간단하게 씻고 욕실에서 나왔다.식탁에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그녀를 발견한 아줌마가 다가와서 인사했다.“깨셨어요? 전복죽 끓였는데 지금 가지고 올게요.”소은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식탁에 마주 앉았다.“우리 남편이랑 새봄이는요?”그러자 가정부가 웃으며 대답했다.“대
소은정은 한껏 치장하고 외출하기로 했다.그녀는 최성문을 대동하고 전동하의 회사로 갔다.가는 길에 소찬식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밥 먹으러 가겠다고 전했다.소찬식은 소식을 듣자마자 기뻐하면서도 겉으로는 투덜거렸다.“애 데려가지 말고 우리 집에 두고 가면 얼마나 좋아!”소은정은 바로 전동하의 회사로 향했다. 미리 연락하지 않았기에 전동하도 그녀의 방문을 모르고 있었다.비서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했지만 목에 착용한 목걸이를 보고 무슨 영문인지 알아차렸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모님. 대표님은 지금 화상 회의 중이라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소은정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앉았다.비서가 커피를 내오자 그녀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탁자에 내려놓았다.“가서 일 봐요. 저는 신경 쓸 필요 없어요.”“네, 사모님.”전동하의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었기에 국내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회사 건물은 송화시 번화가의 가장 비싼 위치에 있었다.물론 그에게는 이런 건물을 매수할만한 능력이 충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전동하의 화상 회의는 꽤 길게 진행되었다.잠시 후, 안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자 소은정은 회의가 끝난 줄 알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전동하는 창가의 소파에 앉아 문을 등지고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노트북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들은 대화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소은정의 방문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대표님, 윤재수 쪽에서 다른 세력들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행보에 모두가 당황한 눈치예요. 대영그룹 석유 산업도 눈독을 들이고 있고 이상준 측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박수혁 쪽은 윤재수와 관계가 돈독해서 그런지 태한그룹 쪽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요. 하지만 요즘은 투자를 자제한다고 하더군요. 이상준이 도와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는데도 요지부동이랍니다. 윤재수는 왜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을까요? 윤재수 동생이랑 박수혁 대표도 무
비서가 디저트와 커피를 준비해서 안으로 가져왔다.전동하는 급한 일정만 처리하고 모든 스케줄을 오후로 미뤘다.“당신도 아까 들었겠지만 윤재수는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인간이에요. 그러니 최근에는 경호원 없이 아무데나 돌아다니지 말아요.”소은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가지고 도박하고 싶지도 않았다.“알아요. 최근에는 성강희 결혼식 말고는 다른 일정도 없어요.”성강희의 결혼식은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전동하도 찬성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주저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최근에 박수혁한테서는 연락이 왔었어요?”소은정은 솔직하게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그런데 오빠랑 만났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왜요?”전동하는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박 대표의 가족들이 윤재수 손에 있잖아요. 갑자기 충동을 못 이기고 나쁜 마음을 품을까 봐 좀 걱정되네요.”소은정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지영준한테 잡혀 있었던 거 아닌가요?”전동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확신할 수 없어요. 지영준 쪽에서도 그들을 찾고 있거든요.”소은정은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위험한 곳에 이민혜와 박예리 둘이 어떤 위험에 부딪혔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지금 할 수 있는 건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일뿐이었다.그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윤재수는 정말 군수물자 사업 하나만 노리고 이 난리를 치는 걸까요?”소은정이 물었다.전동하는 무거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윤재수는 좀 이상한 인간이에요. 더러운 방식으로 돈을 벌면서 그 돈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싶어하죠. 동남아 도혁의 세력을 먹고도 만족을 몰랐어요. 그는 해외에 많은 비자금을 조성했어요. 하지만 돈세탁이 쉽지는 않으니 조금씩 세력을 넓히려는 거죠. 그래야 어떻게든 돈을 세탁할 기회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세력이 커지면 돈도 불어나고 세탁은 점점 힘들어지겠죠. 그래서 눈독 들인 게 군수물자 사업이에요. 시작에 불과하죠. 게다가 윤재수는 남아프리카에서도 꽤
소은정은 새봄이가 잠을 자느라 늦었다고 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그러고는 소찬식 앞에서 선물 받은 목걸이를 자랑했다.소찬식은 돋보기를 찾아서 끼고 목걸이를 자세히 살폈다.“이런 목걸이는 너한테도 많지 않아?”소은정이 말했다.“비슷한 색상은 있는데 디자인은 달라요.”소찬식은 액세서리에 대한 여자들의 집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래도 예쁘다고 예의상 말해주고 전동하를 불렀다.“다음 주에 강희 결혼인데 둘이 같이 갈 거지?”전동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준비하고 있었죠.”하지만 테러범들이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고 있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소은정은 주방으로 가서 집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간식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전동하는 그녀에게 티슈 한 장을 꺼내 건넸다.참 손발이 잘 맞는 한쌍이었다.세 사람은 같이 식사를 했다.소은정은 조용히 밥 먹는데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접시에 반찬이 가득 쌓였다.전동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만 집어서 접시에 챙겨주었다.그 모습을 보던 소찬식마저 짜증이 치밀었다.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지. 쟤 안 먹는 것들도 좀 챙겨줘. 너무 오냐오냐 감싸기만 해도 안 좋아.”전동하는 움찔하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아빠, 저 매일 식단 관리한다고요. 가끔은 제가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괜찮잖아요!”소찬식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사위가 딸을 애지중지하는 태도로 봐서 얌전하게 정해진 식단만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그는 이유 없이 짜증이 치밀었다.잠시 후, 소찬식은 수저를 내려놓았다.소은정과 전동하도 배가 어느 정도 불렀다.그런데 물을 마시려던 소은정이 뜨거운 물을 삼키다가 다시 왈칵 쏟아냈다.두 사람은 사색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찬식이 다급히 말했다.“왜 그래? 빨리 구급차 불러! 아니다! 차 대기시킬 테니까 바로 병원에 가자!”전동하도 당황한 얼굴로 다가가서 그녀를 안았다.소은정은 잠시 놀란 가슴을 진
대기실.성강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불만이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었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문설아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이야?”성강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어. 결혼할지, 아니면 지울지. 사실 우리도 기대하는 결혼 생활이 있고 도박을 해보기로 했어. 연애 과정을 생략한 건 아쉽고 남들 보기에 좀 그렇지만 우린 진지하다고.”소은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사실 상류사회에서 성강희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을 줄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하필이면 문설아를 선택했다.이혼한지 얼마 안 된 이혼녀에 평판이 그다지 좋지도 않은 여자.분명 수많은 루머들이 따라다닐 것이다.하지만 둘 다 성인이니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했을 것이다.그러면 축복해 줄 수밖에 없다.김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설아 좋은 애야. 철 없는 면이 있긴 한데 그것도 나름 매력이니까. 이미 결정된 거라니까 축하해. 잘 살아.”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잘 살아.”한유라는 입을 삐죽이며 심드렁한 표정을 유지했다.“결혼은 두 사람이 같은 성에 갇히는 것과 같아. 안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고 밖에서 누가 들어오려고 해도 들여보낼 수 없어. 넌 결혼 경험이 없어서 모르지만 문설아 걔는 이혼 전적도 있으면서 왜 이렇게 경솔하게 결정했대?”소은정은 눈짓으로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한유라….”한유라는 냉큼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그래! 내 말은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해! 축하해!”네 사람은 그 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러던 중 밖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설아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문설아는 오늘따라 눈이 부시게 화사했다.그녀는 방에 모인 친구들을 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내가 회포 푸는데 방해한 건야?”소은정은 웃으며 다가가서 그녀의
전동하는 항상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고는 한다.그녀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그를 안았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문설아는 찰싹 붙어 있는 두 사람을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녀를 따라 나온 웨딩 플래너도 마찬가지였다.굳이 이렇게까지 닭살 행각을 보여야만 할까?문설아는 소은정에게 심경을 털어놓은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두 사람… 여기 내 결혼식인 건 알고 이러는 거지?”그녀의 불만스러운 질문에 소은정과 전동하는 그제야 웃으며 서로를 놓아주었다.“알아. 내가 미혼도 아니고.”말을 마친 소은정은 전동하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문설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냉철하고 단호하기로 소문난 전동하였고 가끔은 감정이 없는 로봇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었다.그런데 소은정을 안고 애교를 부리는 저 남자는 과연 모두가 아는 전동하와 동일인물이 맞는 걸까?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신부님, 이제 우리도 가셔야 합니다.”뒤에 있던 웨딩 플래너가 그녀를 재촉했다.문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갔다.음악이 울려퍼지고 모두가 무영과 성일의 결합을 축하해 주었다.갑작스러운 결혼이고 내막이 좀 궁금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예의를 지켰다.문설아의 아버지 문기훈은 열정적으로 손님들을 접대했고 성일 관계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대영그룹에서 대표로 두 명이 참석했지만 담담하게 인사만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불편한 자리이기는 하지만 세 가문의 이미지가 달린 일이라 안 올 수도 없었다. SC에서는 소은해와 소은정만 식에 참석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소은해는 김하늘을 끌고 어딘가로 가버렸다.소은정과 전동하는 같이 농담도 나누며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틈을 보이지 않았다.잠시 후, 누군가가 다가와서 소은정의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소은정은 멈칫하며 고개를 드는데 성강희가 도움의 눈길을 보내는 게 보였다.그녀는 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