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성강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불만이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었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문설아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이야?”성강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어. 결혼할지, 아니면 지울지. 사실 우리도 기대하는 결혼 생활이 있고 도박을 해보기로 했어. 연애 과정을 생략한 건 아쉽고 남들 보기에 좀 그렇지만 우린 진지하다고.”소은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사실 상류사회에서 성강희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을 줄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하필이면 문설아를 선택했다.이혼한지 얼마 안 된 이혼녀에 평판이 그다지 좋지도 않은 여자.분명 수많은 루머들이 따라다닐 것이다.하지만 둘 다 성인이니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했을 것이다.그러면 축복해 줄 수밖에 없다.김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설아 좋은 애야. 철 없는 면이 있긴 한데 그것도 나름 매력이니까. 이미 결정된 거라니까 축하해. 잘 살아.”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잘 살아.”한유라는 입을 삐죽이며 심드렁한 표정을 유지했다.“결혼은 두 사람이 같은 성에 갇히는 것과 같아. 안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고 밖에서 누가 들어오려고 해도 들여보낼 수 없어. 넌 결혼 경험이 없어서 모르지만 문설아 걔는 이혼 전적도 있으면서 왜 이렇게 경솔하게 결정했대?”소은정은 눈짓으로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한유라….”한유라는 냉큼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그래! 내 말은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해! 축하해!”네 사람은 그 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러던 중 밖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설아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문설아는 오늘따라 눈이 부시게 화사했다.그녀는 방에 모인 친구들을 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내가 회포 푸는데 방해한 건야?”소은정은 웃으며 다가가서 그녀의
전동하는 항상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고는 한다.그녀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그를 안았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문설아는 찰싹 붙어 있는 두 사람을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녀를 따라 나온 웨딩 플래너도 마찬가지였다.굳이 이렇게까지 닭살 행각을 보여야만 할까?문설아는 소은정에게 심경을 털어놓은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두 사람… 여기 내 결혼식인 건 알고 이러는 거지?”그녀의 불만스러운 질문에 소은정과 전동하는 그제야 웃으며 서로를 놓아주었다.“알아. 내가 미혼도 아니고.”말을 마친 소은정은 전동하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문설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냉철하고 단호하기로 소문난 전동하였고 가끔은 감정이 없는 로봇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었다.그런데 소은정을 안고 애교를 부리는 저 남자는 과연 모두가 아는 전동하와 동일인물이 맞는 걸까?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신부님, 이제 우리도 가셔야 합니다.”뒤에 있던 웨딩 플래너가 그녀를 재촉했다.문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갔다.음악이 울려퍼지고 모두가 무영과 성일의 결합을 축하해 주었다.갑작스러운 결혼이고 내막이 좀 궁금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예의를 지켰다.문설아의 아버지 문기훈은 열정적으로 손님들을 접대했고 성일 관계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대영그룹에서 대표로 두 명이 참석했지만 담담하게 인사만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불편한 자리이기는 하지만 세 가문의 이미지가 달린 일이라 안 올 수도 없었다. SC에서는 소은해와 소은정만 식에 참석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소은해는 김하늘을 끌고 어딘가로 가버렸다.소은정과 전동하는 같이 농담도 나누며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틈을 보이지 않았다.잠시 후, 누군가가 다가와서 소은정의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소은정은 멈칫하며 고개를 드는데 성강희가 도움의 눈길을 보내는 게 보였다.그녀는 한
지금 식장에 달려들어가면 신부에게 가야 할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릴 것 같았다.게다가 소은정은 드레스에 호주머니가 없어서 핸드폰을 전동하에게 맡긴 상태였다.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의 다른 여직원을 불렀다.“이따가 전동하 씨한테 내가 자리를 비운다고 전달해 줘요.”여직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치맛자락을 잡고 밖으로 달렸다.호텔 로비를 지나 주차장으로 나가자 멀지 않은 곳에 소은해의 차가 있었다. 그녀는 주저없이 그쪽으로 달려갔다.그런데 뒷좌석 문을 연 순간.안에 기다리고 있어야 할 소은해와 김하늘은 없고 골프장에서 그녀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남자가 타고 있었다.윤재수?남자는 감탄의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소은정 씨 한 번 만나기 쉽지 않네요!”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소은정은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최소한 소찬식과 새봄이는 무사하다는 얘기일 테니까.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걸음 물러선 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경호원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그쪽을 보기 싫어한다는 걸 알면 좀 멀리 꺼지지 그랬어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뒤돌아서자 윤재수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뼉을 쳤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김하늘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새빨갛게 부은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은 가슴이 철렁해서 남자를 차갑게 쏘아보았다.“내 구역에서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요?”윤재수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에게 말했다.“소은정 씨 성격이야 겪어봐서 잘 알죠. 첫만남에 나를 병원에 보내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 나는데 얼굴이 예쁘니까 참아주는 거예요. 간만에 얼굴이나 보려고 했는데 방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좀 지체되었죠. 그래도 지금 얼굴을 봤으니까 된 거죠.”말을 마친 윤재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일단 타시죠. 식사라도 좀 대접하고 싶은데 어때요?”그의 반응을 보면 흥미로운 사냥감을
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교활한 놈이고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어요. 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근방에 경호원을 몇 명이나 데리고 왔는지 파악이 안 돼서 그랬겠죠. 만약 우리 인원이 그쪽보다 적다고 판단하면 바로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거예요. 사냥개 알죠?”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사냥개 같은 놈이에요.”소은정은 말없이 시선을 떨구었다.전동하는 그녀가 놀랐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괜찮아요. 내가 있는 한 그놈은 당신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런데 놈이 가족을 노릴 줄은 몰랐어요. 사람을 시켜 나한테 집에 불이 났다고 거짓말했어요. 그래서 열일 제쳐두고 달려나온 거예요. 그런데 오빠랑 하늘이가 납치되었을 줄은 몰랐어요. 다음에 누구를 건드릴지 몰라서 걱정돼요.”소은정은 가족들 문제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전동하는 시선을 등 뒤로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그럼 쫓아내야죠. 다시는 우리 사람을 건드리지 못하게.”그녀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소은정은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하면서도 전보다 전동하에게 더 의지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심경에는 변화가 찾아왔다.잠시 후, 소은정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런데 내가 나온 걸 어떻게 알았어요?”전동하가 웃으며 되물었다.“직감이라면 믿겠어요?”“믿어야죠.”소은정은 눈을 곱게 휘며 웃었고 전동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성강희 씨 결혼식인데 당신이 자리를 비운 게 이상했어요. 밖으로 나왔는데 호텔 직원이 본가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하길래 뭔가 수상하다 생각했죠.”이런 걸 텔레파시라고 해야 할까?그가 경각심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소은정은 윤재수에게 납치당했을 수도 있었다.호텔로 돌아간 두 사람은
분위기가 싸해졌다.이한석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되물었다.“윤재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상황에 마냥 약속을 엎어버릴 수도 없는데….”박수혁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SC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이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해. 윤재수가 이번 작전을 성공하려면 해외 세력이 무조건 필요해. SC 그룹의 해외 산업은 국내 본사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니까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야.”“소은호 대표와 얘기가 끝났으니 차질없이 진행될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윤재수가 낌새를 알아차리기라도 하면….”이한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그때가 되면 솔직하게 얘기해야겠지. 윤재수의 비자금을 우리가 꽉 잡고 있으면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협상을 끌고 갈 수 있어. 때가 되면 다음 계획을 진행할 수도 있고.”그 말을 들은 이한석은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족들 때문에 윤재수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박수혁처럼 긍지감 충만한 사람이 윤재수 같은 인간을 상대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SC쪽에 연락해서 놈이 소은정 씨를 노린다고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요.”박수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덤덤하게 대꾸했다.“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우리가 소은정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을수록 그쪽은 안전해. 윤재수도 그쪽을 신경 쓰지 않을 거고.”이한석은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박수혁이 결정을 내린 일이니 무슨 말을 해도 통할 것 같지 않았다.만약 소은정이 알고 미리 대비하는 게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하지만 박수혁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올라간다.만약 계획이 틀어지면 박예리와 이민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한편, 결혼식날 있었던 사고로 소은정과 전동하의 거처에는 경호원이 늘었다.그들은 원래 살던 빌라에서 다시 소은정의 본가로 돌아와서 생활했다.가장 신이 난 사람은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다가 마침 소은호와 시선이 마주쳤다.그런데 소은호가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전화를 끊은 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서 자리에 앉았다.소찬식이 기분 좋게 카드를 흔들며 소리쳤다.“한 판만 더 해!”그는 오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그런데 소은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아버지, 시연이가 일이 생겨서 지혁이 데리러 못 갈 것 같아요. 학교에서 점심 먹으라고 해야겠어요.”소찬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그건 안 되지! 학교 구내식당 밥이 무슨 영양가가 있어? 요즘 뉴스에도 단체 식중독 사건이 자꾸 보도가 되잖아. 너 애 아빠 맞아? 어떻게 아들한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어?”소은호는 담담하게 카드를 정리하며 말했다.“어쨌든 저는 안 갈래요.”그러자 소찬식이 카드를 집어 던지며 분노한 말투로 말했다.“네가 안 가면 내가 가.”말을 마친 그는 집사에게 차를 대기시키라고 명령했다.주인공이 빠진 이상 게임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전동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은호를 바라보았다. 소은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보더니 말했다.“네 남편이 제일 많이 땄으니까 내가 진 건 네가 내.”소은정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오빠, 나도 많이 졌거든?”소은호는 막무가내로 말했다.“아, 몰라. 네 새언니 요즘 내 지갑까지 관리해.”소은정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도망갔다.이게 큰오빠로서 할 말인가?전동하는 피식 웃고는 탁자를 정리했다.“형님,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소은호는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남아프리카 기지에 폭발 사고가 났다던데, 정말 몰랐어?”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알죠. 조금 전에 연락이 왔었잖아요.”소은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이렇게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전동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한가하게 카드게임이나 하고 있다니?“자네 계획의 일부분이야?”전동하는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윤재수 일당이 벌인
전동하는 새봄이의 밥을 챙겨 먹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즘 이유식을 시작한 새봄이는 가리는 게 많아서 골치가 아팠다.하지만 전동하는 이 일에 굉장한 인내심을 발휘했고 아이가 음식을 조금이라도 삼키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전동하는 아내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모르죠. 장인어른 생각에 따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 말은 소찬식과 대영 사이에 예의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으면 만나겠다는 뜻이었다.그는 한국에 오게 되면서 한국 사회의 오가는 정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었다.소찬식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얘기나 들어보자.”비록 왕래가 한 번도 없었지만 사업을 하는 집안끼리 언제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다.집사가 나가서 사람들을 안으로 안내했다.가족들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소은해와 김하늘은 남아서 아이를 돌보기로 하고 남은 가족들은 거실로 나갔다.소은정은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문설아와 이상준 사이에서 그녀는 문설아 편이었기에 입장이 조금 난처했다.하지만 대영의 가족들은 아마 전동하를 만나는 게 주 목적이었기에 그들의 얘기가 궁금하기도 했다.이상준의 부모님은 선물을 한가득 들고 현관으로 들어섰다.소찬식은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명절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오셨어요?”이상준의 부모님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진작 만나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은퇴하신 뒤로는 공식석상에 잘 나오시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낚시라도 해요.”소찬식은 예의상 미소를 지었다.이상준의 어머니인 차민영은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화장을 하고 왔는데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소은정은 옆에 조용히 서 있었고 전동하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차를 따랐다.이상준의 아버지 이정재는 다가가서 소찬식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회장님, 꼭 좀 도와주십시오!”“급한 일로 찾아오신 것 같은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이정재는 절박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힐끔거리며 말을 망설였다.참다못한 차민영이 흐느끼며
소찬식이 보기에 전동하는 여느 사업가들처럼 조금 이기적이고 인간미가 없기는 해도 이건 그가 미국식 교육을 받은 탓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앞으로 잘 이끌어만 준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배포가 큰 훌륭한 기업가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소은정은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남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당신도 그만해요. 아빠를 더 치켜세우다가 여기서 강연까지 할 기세라고요.”소찬식은 딸을 노려보고는 현관 앞에 놓인 선물박스에 시선이 갔다.그는 다급히 집사를 불렀다.“저것들은 다 돌려보내. 받지 말아야 할 물건들이야.”집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뒤돌아섰다.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집사를 다시 잡았다.“잠깐만요. 단서가 나오면 그때 돌려보내도 늦지 않아요. 지금 그냥 돌려보내면 그쪽에서 불안해할 거예요.”소찬식도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말한대로 하자꾸나!”한편 호텔.소식을 들은 윤재수는 홧김에 물건들을 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있었다.“실패했다는 게 웬말이야? 창고에 그렇게 많은 탄약이 있는데 다 가짜라는 거야? 작전 시작하기 전에 정확하게 위치 파악했다면서?”그의 부하는 겁에 질려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형님, 위치가 좀 잘못된 거 같아요. 창고에는 빈 박스밖에 없었대요. 그쪽에서 창고를 옮긴 것 같아요.”윤재수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그럼 다시 위치 파악하고 폭발물 설치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동하가 국내에 납품하는 걸 막아야 해!”“네!”윤재수의 얼굴은 분노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안진이 넌 언제 귀국할 거야? 네가 없으니 박수혁 저 자식이 내 말을 듣지를 않아! 전동하는 자기가 왕이라도 된 것처럼 활개치고 있어! 박수혁 저 자식도 우리 일을 진심으로 돕는 게 아닌 것 같아!”상대는 뭐라고 짧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어 버렸다.윤재수는 꺼진 핸드폰 화면을 힐끗 보다가 화를 못 참고 바닥에 던져 버렸다.다음 날, SC그룹 본사.소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