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착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해.”“아까 그 사람 누구야?”소은정이 물었다.감히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다. 그러니 미리 대비를 해두어야 했다.박수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신경 쓸 거 없어. 그 인간은 당신한테 어떻게 하지 못해.”소은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런 인간이랑 어울리다니. 박수혁, 당신 많이 변했다? 인간쓰레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해외 범죄집단과 연관이 있다고 들었어. 당신이 왜 저런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업 파트너라는 거야?”박수혁의 웃는 얼굴이 창백했다.“당신이 기억하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나 봐?”소은정은 움찔하다가 짐을 들고 뒤돌아섰다.박수혁이 약간 거칠어진 목소리로 물었다.“전동하 씨는 국내에 없는 것 같은데? 어디 갔어?”“내 남편에게 관심이 이렇게 많았다니. 고마워.”소은정은 차갑게 대꾸했다.비록 소찬식에게서 태한그룹 쪽 사정을 듣기는 했지만 박수혁에게 이민혜와 박예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는 말은 믿고 싶지 않았다.그는 천하의 박수혁이 아닌가!군수물자 상인의 딸 안진을 상대할 때도 전혀 기 죽지 않았던 그였다.그런데 상대가 이민혜와 박예리를 잡고 있다고 그에게 위협이 될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가족이라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보였다.소은정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박수혁은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아. 하지만 은정아, 전동하는 당신이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이 해외에서 건전한 사업만 하는 줄 알았어?”소은정은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박수혁은 입만 열면 전동하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그래서 분노가 치밀었다.뭘 믿고 저렇게 다른 사람 욕을 하는 거지?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거지?“하고 싶은 말이 뭐야? 박수혁, 당신 일이나 신경 써. 전동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남한테 들을 이유는 없으니까!”거리감이 느껴지는 차가운 말투였다. 말을 마친 소은정
“윗분들의 뜻은 군수물자 사업을 다시 박수혁에게 맡기고 싶다는 뜻이네?”소찬식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명확한 지시가 없었으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겁니다. 박수혁은 남아프리카 기지와 견줄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위에서는 아마 우리가 남아프리카 기지의 모든 통제권을 가져오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군수물자 사업은 각국의 이익과 연관되기도 하니까 신중을 더 가하는 거겠죠.”소은정은 그 대화를 들으며 손발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낮에 박수혁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전동하의 사업에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한 것 같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안에 있던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소찬식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잘 놀았어?”소은정은 머뭇거리며 입술을 깨물다가 물었다.“저한테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세요. 동하 씨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거죠?”소찬식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소은호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되물었다.“매제한테서 들은 게 없어?”소은정은 고개를 흔들었다.“조금 전에 박수혁 만났어. 동하 씨가 해외 군수물자 상인과 결탁했다고 했어. 그리고 남아프리카 기지에 문제가 생겼다고. 이게 다 사실이야?”소은정은 속으로 무척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프로젝트 때문이 아니었다.그녀가 걱정하는 건 오로지 전동하 뿐이었다.군수물자 사업은 해외에서 흔히들 하는 사업이고 그녀는 전동하의 사업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박수혁을 포기하면서까지 전동하를 선택했다는 건 그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의 신변 안전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전동하는 아직 해외에 있는데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소은호는 이 일을 동생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공기마저 무거워진 느낌이었다.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오빠, 빨리 말해줘. 그게 다 사실이야?”소찬식은
정색해서 말하는 소찬식의 모습에 소은호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박수혁은 여전히 밉지만 사업적으로 보면 그는 꽤 괜찮은 라이벌이고 파트너였다.만약 소은정과의 사이에서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 SC그룹을 선두에서 지휘할 사람은 박수혁일지도 모른다.사실 소은정과 둘 사이의 앙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누구라도 항상 미움만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수는 없다.미움도 관심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다. 소은정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그가 그녀를 구하지 않은 건 그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민할 게 많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가족인 여동생과 어머니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소은정은 그가 성공하기를 바랐다.딸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찬식은 웃으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소은정이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박수혁도 그렇고 전동하도 그렇고 다 좋은 사람 들이야. 한 놈은 너무 자유분방하고 한 놈은 조심성이 많은 점이 다르지만. 지금은 둘 다 위급한 상황이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아빠는 네가 이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소찬식의 간곡한 부탁에 소은정은 가슴이 떨렸다.그녀에게 조금 진정하라는 아빠의 경고이자 부탁이었다.전동하가 관련된 문제라 그녀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소찬식도 알고 있다.자신을 위해 가만히 있는 건 할 수 있었다.하지만 전동하가 위험해지는 건 보고 있을 수 없다.소은정은 걱정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아빠.”소은호가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딸을 그렇게 몰라요? 얘는 똑똑해서 자기 손해 보는 일은 안 할 거예요.”소찬식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긴 하지.”소은정은 길게 심호흡하며 말했다.“그럼 둘이 계속 이야기해요. 저는 새봄이 깼나 보러 갈게요.”서재를 나서자 한숨이 나왔다.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무겁고 숨이 막혔다.핸드폰을 쥔 손에 땀이 났다.전화해서 물어볼까?그녀는 고민되었다.하지만 묻는다고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소은정은 전동하가 미국에 있는 거처를 알고는 있지만 지금 찾아가는 건 너무 갑작스러워 보였다.게다가 이곳 지리도 잘 모르는데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다.그녀는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다.“SF 그룹으로 가주세요.”여기서 소은호가 보낸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었다.그녀는 바로 회사로 가서 야근하고 있을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광선이 어두워서 그녀는 운전기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차량번호를 속으로 암기했다.그녀는 SF그룹으로 가는 경로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차가 정확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꺼내 소은호에게 문자를 보냈다.이틀만 시간을 더 달라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이미 화가 날 대로 나 있는 소은호에게서는 답장이 없었다.차가 교각 밑을 지날 때, 잠시 어둠이 찾아왔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그런데 그 순간 차체가 흔들리더니 옆에서 달리던 차량과 충돌했다.그녀를 태운 택시는 제 자리에서 몇 바퀴 돌다가 멈추었다.소은정은 관성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힘들게 중심을 잡았다.그런데 등 뒤에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지만 어두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순식간에 차가운 침이 그녀의 피부를 뚫었다.그녀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문을 열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누군가가 와서 문을 열었다.그녀는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마지막 순간,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소은정 씨, 이곳으로 온 걸 환영해요.”그녀는 상대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소은호의 사람들을 기다릴 걸 후회가 되었다.전동하도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혹시 그도 위험에 처한 건 아닐까?거대한 유럽식 별장.소은정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환경은 낯설었다.긴장감이 돌아오면서 마지막에 봤던 순간이 머리속에 떠올랐다.위험이 엄습해 오는 느낌에 그녀는 저
생김새는 별로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카리스마가 충분했다.그는 박예리를 크게 안중에도 두지 않는 태도였다.아마 평범한 사업가는 아닌 것 같았다.표정을 많이 감추려고는 했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분위기는 감추지 못했다.박예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남자에게 말했다.“감히 내 말을 거역해요? 재수 씨가 당신 가만둘 것 같아요?”남자의 눈빛에 짜증이 스쳤다.“박예리 씨, 윤재수 씨는 잘 모르겠고 계속 내 집에서 내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면 내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박예리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예리야….”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민혜였다.저번에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얼굴에 살이 다 빠져서 볼이 쑥 꺼졌다.이민혜는 소은정을 본 순간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박예리에게 다가갔다.“일단 나가자. 너 손은 왜 그래?”박예리는 이민혜를 확 밀쳤다.“소은정이 그랬어. 우리한테 잡힌 주제에 아직도 자기가 대단한 줄 알아.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엄마는 잊었어?”이민혜는 할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결국 박예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일단 손목 치료부터 좀 하자.”방 안이 드디어 조용해졌다.소은정은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웃으며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소은정 씨, 아니지. 사모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사실 저는 전 대표님과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이번에 이런 식으로 모셔와서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해요.”소은정은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남편과 아는 사이라면 남편에게 직접 연락하면 될 텐데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납치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남자가 냉랭한 미소를 짓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전 대표님은 참 교활하신 분이죠. 몇 번 만나자고 연락을 보냈는데 계속 안 만나주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모님을 모셔왔죠.”소은정은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았다.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성격이
이런 사람이 신용을 지킬까?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의라는 게 있을까?소은정은 다가가서 불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여태 협력해 오면서 갑자기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건… 진실이 뭔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중간에서 일부러 이간질을 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그 말을 들은 지영준이 멈칫하더니 웃었다.“누가 아니래요? 하지만 왔다 갔다 물건을 납부하는 사람은 전동하 대표의 사람을 제외하면 전부 우리 사람인데요. 누가 중간에서 손을 썼을까요?”“전동하 씨가 이 일에 개입했다고 확신하시는 건가요?”소은정이 되물었다.지영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를 한모금 빨더니 소은정을 응시하며 말했다.“정부에서 전동하 씨의 실험기지를 빌리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전동하 씨는 더 든든한 지원군을 찾았으니 우리 같은 옛 친구를 버리고 더 큰 그림을 꿈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 과연 그쪽에서 얌전히 위약금을 지불할까요? 소은정 씨, 우린 사업하는 사람들이랑 달라요. 계약서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생기면 돈을 배상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고요.”날카로운 말투였지만 소은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충분히 주었다.“괜찮습니다. 전동하 씨가 와서 죽은 두 친구의 목숨 값을 배상한다면 이 일은 그냥 없던 거로 할 수도 있겠죠.”소은정은 가슴이 철렁했다.“목숨 값이요?”지영준은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고는 말했다.“내 죽은 두 형제의 목숨으로 전동하 1인의 목숨을 바꾸는 건 남는 장사 아닌가요?”소은정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이럴 거면 그냥 오지 말라고 해야지!’그녀는 갑자기 박예리가 떠올랐다.“박예리 씨가 왜 여기 있는 거죠?”지영준이 냉소를 터뜨리며 대답했다.“윤재수의 여자이니까요. 윤재수가 우리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거든요. 성의를 보이기 위해 자기 여자를 이쪽에 인질로 남긴다던데요? 하지만 그런 걸 보면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조금 손해본 느낌도 나고요.”소은정은 어깨를 움
박예리의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제대로 소독하고 치료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소은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이민혜는 못 말린다는 듯이 박예리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예리야,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윤재수 그 인간 딱 봐도 좋은 사람은 아니야. 네가 여기 남는 거, 네 오빠한테 해가 될 뿐이라고!”박예리는 짜증스럽게 이민혜를 밀쳤다.“엄마가 뭘 알아? 오빠는 윤재수와 손을 잡기로 했어. 당연히 일이 생기면 매제 편을 들겠지. 우리는 가족이니까. 외부인이 이 사업에 끼어들 기회는 없어. 윤재수가 어떤 사람인데? 모두가 연줄을 대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 오빠한테 이런 파트너가 생겼다는 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야. 내가 오빠를 위해 이렇게 큰 희생을 했으니 오빠도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박예리는 거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이민혜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박예리는 소은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저번에 죽었을 줄 알았는데 운 좋게 살아남았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거야. 내 손에 잡혔으니까. 조금 전에 나간 남자, 내 남자친구랑은 막역한 사이거든. 널 죽이고 살리는 일은 그 사람 한마디면 끝난다고. 소은정,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어보지 그래?”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박예리, 그런 사람들이랑은 관계를 빨리 정리하는 게 좋아. 네 체면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니까.”소은정은 동남아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겪었다.인신매매, 장기매매, 약품… 입만 열면 중범죄를 저지르는 게 그들의 일상이었다.무고한 사람들도 그들에게 잘못 걸리면 인생이 내리막길을 걷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박예리가 이를 갈며 냉소를 지었다.“훈계 필요 없거든? 네가 뭔데? 네가 그렇게 대단해?”소은정은 한숨을 쉬며 이민혜에게 시선을 돌렸다.“사모님은 잘 아시잖아요. 여기 남아 있는 거 박수혁한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이민혜는 미간을 찌푸렸지
소은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지영준이 말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난 사람을 둘이나 잃었는데 성의 표시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전동하는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물건은 그쪽에서 가져가고 사고가 생겼어. 물량 체크할 때 그쪽에서도 아무 문제없다고 했고. 상황이 다 정리된 뒤에 사람이 죽었다고 나한테 모든 걸 뒤집어씌우는 건 좀 아니지 않나?”지영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웃으며 말했다.“물량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하나씩 다 체크하겠어요? 죽은 애들이 좀 재수가 없었죠. 하필이면 가품을 건드렸으니 말이죠. 하지만 전동하 대표님, 우린 이 책임을 대표님께 돌릴 수밖에 없어요!”긴장감이 고조되었다.소은정의 손에도 땀이 났다.전동하가 말했다.“그래.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다면 어쩔 수 없지. 말해. 원하는 게 뭐야?”짜증이 잔뜩 담긴 말투였다.소은정의 안위를 두고 말장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리고 여기서 지영준과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소은정이 위험 속에서 열 시간이 넘게 지냈다는 것만 생각해도 미칠 것 같았다.지영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난 당신의 목숨을 원해요, 전 대표님. 한 사람의 목숨으로 두 사람의 목숨을 배상하는 것이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전 대표께서 자살을 택한다면 사모님은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게 제가 모시죠.”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변 공기마저 얼어붙었다.소은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동하 씨, 저 사람 말 믿지 말아요. 저 사람 이미 윤재수, 박수혁이랑 손을 잡고 당신을 처리하려고 한다고요!”소은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가 그녀를 묶고 있는 끈을 확 잡아당겼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상대가 많이 화가 났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그는 습관처럼 소은정의 목을 잡았고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소은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억지로 비명을 참아냈다.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팽팽하게 변했다.전동하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양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