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이상준은 손을 들어 문설아의 귓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문설아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다정한 행동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피했다.이상준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등 뒤를 살폈다.소은정과 김하늘이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랭한 시선, 마치 그의 가식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이상준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소은정 씨도 여기 계셨네요. 어쩐지 우리 집사람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니, 말동무를 해주셔서 감사해요.”소은정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설아는 동생 보러 왔어요. 우린 우연히 만났고요.”이때, 표정을 수습한 문상아가 웃으며 다가왔다.“역시 내 생각해 주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네. 나 응원해 주려고 온 거야?”그러고는 웃으며 감독에게 다가가서 인사했다.“감독님, 10분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언니가 저 응원하러 왔대요.”“그래, 알았어!”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각자 할 일을 하러 가고 현장에는 그들만 남았다.그들과 마주친 뒤로 문상아는 이상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일부러 피하는 듯한 태도가 더 의심스러웠다.하지만 둘의 사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문설아는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참아냈다.문상아와 이상준이 같이 차에서 내릴 때, 그녀는 뭔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머리가 복잡했다.문설아는 문상아를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이상준을 바라보며 물었다.“해외 출장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그 말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소은정과 김하늘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 해외에 있어야 할 사람이 처제와 함께 촬영현장에 나타난 것이다.어떤 이유를 대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다.이상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그는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지만 문설아가 비웃음 가득
문설아는 동생이 직접 이 상황을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문상아는 당황한 얼굴로 입술만 깨물 뿐,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옆에 있던 이상준이 다가가서 문설아의 팔목을 잡아끌었다.“내가 해명할게. 차로 가자.”그는 있는 힘껏 문설아를 밖으로 이끌었다.화가 치민 문설아는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요. 뭐가 그렇게 겁나요? 지금 이 상황이 창피해요?”문설아는 새빨갛게 부은 눈으로 김하늘과 소은정을 바라보더니 물었다.“너희는 진작 알고 있었지? 그래서 계속 나한테 귀띔해 주려고 한 거지?”김하늘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잠시 주저하던 소은정은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했다.“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건 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돼서였어. 하지만 계속 바보처럼 속기만 한다면 네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문설아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네가 직접 물어봐. 전부 오해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소은정 씨….”이상준은 이를 갈며 당황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지만 소은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저도 남의 집안일에 끼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설아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고 문상아 씨는 설아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죠. 너무하지 않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두 사람의 표정은 무시한 채, 김하늘에게 눈짓하고 현장을 떠나버렸다.이상준과 문상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랐다.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문설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충격 받은 표정을 하고 문상아와 이상준을 번갈아보았다.그러더니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지나치려 했다.그러다가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문상아가 나서려 했지만 이상준이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가만히 있어. 내가 해결할게.”문상아는 바닥에 쏟아진 디저트를 주으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제작진은 쉽사리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
문설아는 멍하니 서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소은정의 각도에서 보면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상준은 그녀가 반응이 없자 더 긴장한 표정으로 소은정과 김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분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소은정과 김하늘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문설아가 창백하게 질린 입술로 말했다.“자리를 비켜줄 필요가 뭐가 있어요? 당신이 지어낸 거짓말과 내 친구들이 말한 게 다를까 봐 두렵나요?”이상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오늘 문설아가 보인 반응은 그의 예상밖이었다.과거에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는 만약에 사실이 들통나면 문설아가 미친듯이 울며 물건을 부수고 난리를 칠 줄 알았다.그러면 자신은 용돈 몇 푼 쥐여주면 상황이 종료될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김하늘과 소은정은 옆방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방음효과가 좋지 않아 두 사람의 대화가 똑똑히 들렸다.“상아가 갓 데뷔했을 때 우리는 처음 만났어. 상아는 내가 키워준 거야. 그때 상아는 신분을 숨기고 연예계에서 활동했는데 띄워주는 소속사가 없어서 연예계 생활이 순탄치 않았어. 그때 당신과 나는 아직 모르는 사이였고 나도 그냥 논다는 생각으로 상아를 만났어.”이상준은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했다.그는 과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문설아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예전에 바람둥이였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나와 결혼하기 전에 연예인 스폰서를 했다는 사실도 알아요. 그런데 상대가 상아일 줄은 몰랐죠.”연예인과 스폰서의 관계, 그리고 형부와 처제의 관계.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 들어주기 힘든 추잡한 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이게 사실이었다.이상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쓰며 문설아를 바라보았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은 각자 필요에 따라 맺어진 관계였다.문설아는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나중에는 어떻게 됐어요
“내가 두 사람을 여기서 만나지 않았으면 계속 나를 속이고 뒤에서 만날 생각이었나요? 매번 출장 간다고 하면서 상아를 만났던 거예요? 매번 야근한다고 하면서 상아와 데이트를 즐겼나요?”문설아는 드디어 자신이 의심하는 것들을 전부 쏟아냈다.참아줄 필요가 없었다.예전에는 이상준을 조건 없이 믿었다.하지만 매번 자신과 함께 있을 때도 가끔 정신을 팔던 모습이 떠오르자 이 사람은 자신과 결혼한 것을 얼마나 후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상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그가 다급한 말투로 대답했다.“아니야.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난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야!”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뻗어 달래주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는 상심한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신혼 초에 상아를 찾아간 건 맞지만 나중에는 다시 연락하지 말자고 말했어. 그 뒤로는 만난 적도 없고. 요즘에 몇 번 만난 건 우연이었어. 상아가 연예계에서 입지가 안 좋아졌다고 했어. 누가 자꾸 상아가 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그래서 상아를 데리고 미팅에 나갔어. 상아의 입지를 조금 다져주려고. 호텔에서 만난 적은 없어. 내가 이곳에 온 건 갑자기 생긴 미팅 때문이야. 당신한테 돌아왔다고 말하면 또 오해할 것 같아서….”이상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오늘은 정말 일이 있어서 감독을 만나러 온 거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그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처음에는 문설아의 맹목적인 신임이 좋았다.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가 문상아와 연락을 끊고 결혼 생활에 충성하려고 했을 때 그는 점점 자신이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어릴 때부터 연예계에 데뷔한 문상아는 생기가 넘치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고 그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매력적이었다.하지만 문설아는 그녀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순수하고 착했으며 모든 사람을 착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세상은 백지장처럼 순수
문설아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그를 빤히 보며 차갑게 말했다.“기뻐할 줄 알았는데요. 이상준 씨, 어차피 둘 다 무영그룹의 딸이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면 앞으로 뒤에서 남들 눈치 보며 만날 필요도 없는데 바라던 바 아닌가요?”문설아의 말이 끝나자 이상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그는 갑자기 귀뺨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말을 마친 그녀는 차갑게 뒤돌아서며 옆방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녀는 옆방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두 사람을 떠올렸다.그래서 일부러 목청을 높여 말했다.“듣고 있는 거 다 알아. 날 위한다고 숨길 필요 없어. 잘못을 한 사람들도 수치심을 모르는데 내가 뭐가 두렵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이상준을 지나쳐 방을 나갔다.이상준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그는 마음이 복잡했다.한 번도 그녀와의 이혼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난 이혼하고 싶지 않아….”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상아랑 있었던 일은 이미 잊었어. 당신이랑 잘 살아보려고 했다고….”멀리 가지 않은 문설아도 그가 하는 말을 들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누군가가 심장을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이상준은 그녀가 돌아선 순간 자신이 매우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는 느낌이 들었다.소은정과 김하늘은 주변이 조용해진 뒤에 밖으로 나왔다.두 사람은 다 떠나고 없었다.김하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했어. 문설아 이번에는 조금 멋있었어! 안 그래?”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한숨을 쉬었다.“그래. 생각밖이네. 돈이랑 결혼했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더니 이 정도의 일 가지고 이혼을 말하다니. 정말 돈 보고 결혼했는지, 아니면 그 사람이 좋아서 결혼했는지는 문설아 본인만 알겠지!”“문설아가 이상준을 좋아한다는 얘기야?”김하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소은정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매번 이상준 씨 얘기할 때면 겉
방에는 네 사람만 남았다.매니저는 상자에서 약을 찾느라 바빠 보이니 매니저에게 한 얘기 같지는 않았다.소은정은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아니나 다를까, 문상아가 고개를 들더니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문상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가 두 분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했어요. 정말 부러워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언니처럼 스스럼없이 누군가와 친해질 수 없거든요.”옆에 있던 매니저는 그녀의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눈치 채고 다급히 의약품 상자를 가져왔다.“상아야, 나중에 다시 해명하고 일단 약부터 바르자.”문상아는 그녀를 제지하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일단 나가 있어요. 두 분이랑 할 얘기가 있어요.”매니저는 잠시 주저하더니 방을 나갔다.소은정은 팔짱을 끼며 문상아에게 물었다.“하고 싶은 얘기가 뭐예요? 이럴 시간에 언니한테 해명하는 게 낫지 않아요?”문상아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당연히 해명해야죠. 하지만 두 분이 전에 봤던 저랑 이상준 씨가 호텔에 출입한 장면은 정말 오해였어요. 우연히 만난 것뿐이라고요.”김하늘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우연이 여러 번 겹치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죠.”문상아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두 사람이 결혼한 뒤로는 저도 포기했어요. 억울한 적도 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죠. 왜 저는 언니가 될 수 없을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언니만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빠가 미웠죠. 둘이 결혼 얘기가 오갈 때 제가 몰랐을 것 같나요? 그때가 저한테는 일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상준에게 버림을 받았죠. 매일이 고역이었어요. 두 분은 제가 양심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집안에서 언니를 제외하고 양심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김하늘은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말했다.“우리한테 이런 얘기를 왜 하는 거죠? 그렇게 억울하면 설아한테 가서 해명해요. 우린 우리가 본 것만 믿어요. 문상아 씨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의 입장이 달라지
말을 마친 문상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일정대로면 오늘 다섯 시에 촬영이 끝나죠? 다른 연예인들 실수하는 건 모르겠고 어쨌든 저는 제 분량만 촬영하고 나갈 거예요. 감독님한테 잘 얘기해 줘요.”문상아는 기분이 좋을 때 다른 연예인들이 NG를 내고 반복해서 촬영해도 기다려 주었다.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자신의 분량만 촬영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그리고 오늘 그녀는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소은정과 함께 밖으로 나온 김하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문설아 이 바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소은정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달래주러 가야 하나?”김하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뻘쭘해하지 않을까? 이럴 때는 다들 혼자 있고 싶어하지 않나?”“전화 한번 해볼까?”소은정은 핸드폰을 꺼내 문설아의 번호로 전화를 걸며 말했다.“그냥 끊어버리면 가지 말자.”그런데 신호가 가고 얼마되지 않아 문설아가 전화를 받더니 다짜고짜 울며 말했다.“이쪽으로 오려고? 나 집에 있어! 바로 오면 돼!”말을 마친 문설아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김하늘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얘도 정상은 아니야.”소은정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동하 씨한테 부탁해서 좋은 투자항목을 소개해 줄 걸 그랬어. 지금쯤 돈이라도 많이 벌면 덜 속상해하지 않았을까 싶네!”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곧장 차로 갔다.소은정은 가는 길에 대략적인 상황을 전동하에게 문자로 보내고 데리러 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전동하에게서는 바로 답장이 왔다. 도착하면 주소를 보내라는 얘기였다.날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으로 보아 비가 내릴 징조였다.집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문설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다 아빠, 엄마 때문이야! 왜 굳이 나를 그런 사람에게 시집보낸 거야? 두 사람 사이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그럼 나는 뭐야?”문 앞까지 도착한 소은정
사업 때문에 만났을 때는 소 대표라고 부르며 극존칭을 썼겠지만 오늘 소은정은 일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었다.문기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유문정에게 눈짓했다.유문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부담 갖지 말고 앉아요. 설아 친구라고 들었어요. 편하게 있다가 가요.”소은정과 김하늘은 함께 소파에 앉았다.문설아는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그녀는 고집스럽게 부모님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빨리 가라고!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니까!”“설아야, 그만….”유문정은 담담한 목소리로 딸을 제지하려다가 퉁퉁 부은 딸의 얼굴을 보고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둘 사이가 어떤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때 이상준은 진심이 아니라고 했어. 이상준 측이 먼저 우리 가문과 정략결혼을 제안했다는 건 상아를 포기했다는 뜻이야! 이상준도 알고 있을 거야. 그놈이 널 속상하게 하면 우리도 절대 그놈을 용서치 않을 거라는거!”문기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아빠가 녀석을 혼내줄게!”문설아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상아도 문씨인데 왜 상아랑 결혼시키지 않았어?”유문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런 걸 살필 여유가 없었다.“넌 정말 너무 순진해!”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음침한 눈으로 문기훈을 쏘아보았다.문기훈은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낀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문정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걔가 너랑 정말 피를 나눈 동생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어! 어차피 우리 가문의 모든 건 너한테 돌아갈 거야. 걔랑은 아무 상관없다고. 정략결혼 같은 양가의 이득이 달린 일을 신분도 불분명한 여자가 낳은 애를 어떻게 그 집에 보내? 아무나 다 그런 자격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야!”유문정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 정적이 찾아왔다.문기훈은 한숨을 쉬며 문설아에게 말했다.“다 아빠 잘못이야. 네 엄마 말이 맞아. 널 이상준에게 시집보낸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