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대표 사무실.소파에 앉은 심강열의 표정은 중요한 담판을 앞둔 듯 어딘가 비장하기까지 했다.“앉아.”한유라가 소파에 앉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한편, 비서 역시 냉랭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그 죽일 놈의 호기심을 못 참고 결국 시키지도 않은 커피 두 잔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그러자 겨우 침착함을 지켜내던 심강열이 호통을 쳤다.“당장 나가요!”“아... 네, 네!”비서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서고 회사에서 이렇게 이성을 잃은 심강열의 모습은 처음 보는지라 한유라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왜 웃어?”“그냥. 사실 나한테 화내고 싶은 거면서 엄한 직원한테 성질 부리네 싶어서.”심강열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한유라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나 진심으로 가고 싶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 때문 아니야. 정말 내가 뭔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 당신이랑 엄마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나 혼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잠깐 침묵하던 심강열이 고개를 들었다.“누가 일하지 말래? 네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많고도 많아. 하지만 C시는 안 돼. 거긴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하지만 꾹 다문 한유라의 입술을 보고 있자니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에 콕 박힌 듯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지? 걔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절대... 절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두지 않았을 거야. 정말이야...”죄책감에 사로잡힌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유라가 자리에서 일어서 심강열을 꼭 안아주었다.따뜻한 위로에 심강열도 팔을 뻗어 그녀를 더 힘껏 끌어안았다.“유라야, 나한테 화난 거 있으면 차라리 날 때리고 욕해. 하지만... 날 떠나는 건... 그것만은 안 돼.”이대로 한유라를 잃을까 진심으로 두려워진 심강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더
“알아. 당신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내가 더 잘 알아.”한유라가 심강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와 똑같은 향기를 풍기는 부드러운 머리칼이 한유라의 손가락을 간질였다.익숙한 향기 때문일까? 그녀의 마음도 살짝 풀어졌다.“하지만... 내 마음도 좀 알아줘. 언제까지 당신 뒤에 숨어있을 순 없잖아. 남자 하나 잘 물어서 속 편하게 산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당신이랑 결혼한 거 내 최고의 행운이야. 그래서 그 행운에 걸맞는 사람이 되려고.”말을 마친 한유라의 손가락이 잘생긴 심강열의 이목구비를 야릇하게 훑었다.“당신도 내가 무능력하다는 소리 듣는 건 싫지?”괜찮다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제발 내 곁에만 있어달라고...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달콤한 한유라의 목소리에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이젠 무슨 말을 해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심강열은 직감했다.“정말... 기어이 가야겠어?”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심강열은 눈을 질끈 감았다.“세 달. 딱 세 달만 줄 거야. 그 안에 해결 하든 못 하든 무조건 돌아오는 걸로. 더는 양보 못 해.”그제야 한유라도 활짝 웃으며 심강열의 얼굴에 찐한 뽀뽀를 날렸다.“그래.”‘일단 가는 건 오케이했으니까 됐어. 세 달? 흥. 그때 가서 더 버티면 되지롱. 자기가 날 납치라도 할 거야 어쩔 거야.’그날 오후부터 한유라는 인수 인계 작업을 시작했지만 심강열은 일단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두라는 말만 했을 뿐, 정식 공문을 내리는 걸 이상하리만치 질질 끌었고 마음에 가득 찼던 기대감은 점차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심강열의 허락을 받아내고 며칠 뒤, SC그룹.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소은정은 자기 사무실인양 소파 상석에 앉은 한유라를 발견하고 헛웃음을 지었다.“왜 회사로 왔어! 새봄이부터 만나러 갔어야지! 네 얼굴 다 까먹겠다.”이에 한유라가 눈을 흘겼다.“걔 아직 돌도 안 지났어. 사람 얼굴 기억도 못 한다고
하지만 소은정의 조언에도 한유라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그래서 더 가고 싶어. 한순간 오기로 이러는 거 아니야. 내가 C시 지사 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해.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아니까.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해보고 싶어.”생각보다 단호한 목소리에 소은정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휴, 하여간 고집은. 알겠으니까 조심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고.”“응원은 고마운데 지금 가기 전부터 위기잖아.”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강열 씨가 보내줄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유라, 왜 이래? 너 이렇게 고분고분한 캐릭터 아니잖아?”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한유라가 반짝이는 눈으로 벌떡 일어섰다.“역시, 소은정. 잔머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말을 마친 한유라가 핸드백을 들고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고...마침 커피를 들고 들어오던 우연준이 사무실을 뛰쳐나오는 한유라를 피하려다 셔츠에 커피를 전부 다 쏟고 말았다.“아, 커피 고마워요, 우 비서님.”우연준의 어깨를 토닥이던 한유라가 다시 부리나케 달려나가고 우연준은 의아한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유라 씨 왜 저러세요?”“음... 전장으로 달려가는 장군의 마음? 이라고 생각해.”‘그게 뭔 소리야.’고개를 든 소은정이 말했다.“옷 다 버렸네요. 오후에는 쉬도록 해요.”“고맙습니다, 대표님!”‘못 알아들을 말 좀 하시면 어떠하리. 이렇게 휴가까지 내주시고... 고맙습니다, 대표님! 고맙습니다, 유라 씨!’다음 날, 소은정은 한유라가 몰래 C시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그 소식을 전한 전동하는 셔츠 단추를 풀며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왜 안 놀라요? 심 대표 화 많이 나셨다던데... 직접 운전까지 해서 쫓았다던데 결국 못 말렸다네요.”소은정이 태블릿으로 뉴스를 확인보며 말했다.“놀라긴요. 우리 한유라 씨 사고치는 게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그런데... 은정 씨 만나고 바로 도
전동하는 부드럽고 자상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촬영 현장까지 데려다주고 갈게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소은정은 다른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데려다주겠다는 그의 자상한 말투에 감동한 듯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가는 길에 데려다줘요!”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전동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가는 길에 소은정은 집에 있는 소찬식한테 영상통화를 걸었다.소찬식은 새봄이를 안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새봄이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쩍하면 일부러 앞에 놓인 물건들을 바닥에 던졌다.그러나 소찬식은 새봄이의 행동을 보고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할아버지 이야기 정말 잘하지? 새봄이가 정말 좋아하네? 자. 할아버지가 양자역학에 대해 읽어줄게……”소은정은 이마를 짚더니 말했다.“아빠, 새봄이 좀 냅둬요!”소찬식이 이내 대답했다.“교육은 어려서부터 잘해야 해. 옛날에는 내가 너무 바빠서 너흴 신경 쓸 틈이 없었어. 봐봐, 어떻게 됐는지! 지금은 내가 여유롭고 시간도 많으니까 새봄이한테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나한테 맡겨!”전동하는 무엇인가 대꾸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결국 운전에만 전념했다.소은정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전동하는 소은정을 보더니 말했다.“아버님, 계속 이러시진 않겠죠?”소은정이 가볍게 웃더니 대답했다.“새봄이가 어느 정도 크고 거절할 줄도 알게 되면, 그땐 아빠가 새봄이한테 손 떼시겠죠. 걱정 마요!”전동하의 고민을 눈치챈 소은정은 분명히 마음속으로는 무지 걱정이 되지만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전동하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럼 다행이구요.”소은정이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했다.요즘 소찬식은 자신의 모든 정력을 새봄이 키우는 데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소찬식은 그런 삶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주위사람들이 오히려 그보다 더 피곤해했다.전동하는 그 현실이 마음에 가시처럼 걸렸지만, 장인어른의 성의를 차마 뭐라고 할
소은정은 장윤에 대해 인상이 있었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전에 손호영이 화영상 후보에 올랐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장윤이 남우주연상을 받았었다.소은정이 장윤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이 사실이 유일했다.그는 인기도 많고 연기력도 뛰어나 연예계에서의 평판 또한 좋았다.김하늘이 여기까지 소은정을 오게 한 이유는 장윤을 이글 엔터와 계약시키고 싶어서였다.장윤은 최근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됐다.그의 원래 계획은 자기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이었다.하지만 장윤은 뜻밖에 이 바닥에서 잘 나가는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됐는데, 고의로 그의 앞길을 막는 바람에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에 그는 조심스럽게 김하늘한테 사정을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몇 년간 이글 엔터 소속으로 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자기 뜻대로 하고 싶었다.소은해는 장윤에게 흥미가 없었기에 김하늘과 소은정한테 이 일을 맡겼다.오늘 소은정이 촬영 현장을 온 것도 그저 먼 곳에서 보려고 온 것이었다.장윤이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장윤은 손을 흔들며 소은정한테 다가오려 했다.전동하는 운전석에서 내려 소은정의 뒤에 서더니 억지로 그녀에게 얇은 외투를 걸쳐줬다.소은정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안 추워요.”전동하는 장난스레 입을 삐죽 내밀며 소은정을 내려다보더니 낮은 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내가 추워요.”그녀는 찌릿한 전율을 느끼다가 전동하의 팔을 애교스럽게 치며 말했다.“장난치지 마요!”전동하는 그녀의 귀여운 반응에 꽤 만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맞은 편에 서 있던 장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왔으나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면서 다가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전동하는 소은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담쓰담하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오후에 데리러 올게요. 어디로 튀지 말고 있어요. 알았죠?”소은정은 그의 애정행각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빨개졌다.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
연예계에서 소은정의 영향력이 큰 것은 그녀가 전에 유준열과 손호영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질투에 눈이 멀었었는지 모른다.모퉁이를 돌자, 김하늘이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소은정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소은정은 원래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을 꺼리는데 이미 왔으니 지금 가는 것도 좀 그랬다.소은정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걸어갔다.감독은 여러 번 NG를 낸 서브 여주를 혼내고 있었다.“배우가 울 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몰라요? 대체 무슨 백으로 여길 들어왔는진 몰라도 전혀 쓸모가 없는 거 알죠? 성형한 지 얼마나 됐다고. 붓기도 안 빠졌는데 무슨 배짱으로 덤벼요? 우리 발목 잡을 일 있어요?”서브 여주는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스태프들은 그녀의 화장을 고치기 바빴다.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스태프들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고 서브 여주는 돌아서서 물건을 내던지며 화를 냈다.소은정은 그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속으로 역시 촬영 현장이 떠들썩하다고 생각했다.소은정은 회사에서 고생하는 직원들한테 욕 한번 하기도 미안해하는데, 회사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감독과 적지 않은 배우들은 소은정이 촬영 현장에 온 것을 알아챘다.감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은정 씨, 촬영하는 거 보러 오셨어요?”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네. 실례합니다.”“실례라뇨.”감독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자, 삼십 분 쉬었다 합시다!”김하늘도 같이 걸어갔다.5월의 날씨는 서늘한 편이었고 약간 덥기는 했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김하늘은 양산을 들고 오더니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장윤 씨.”장윤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소은정은 스튜디오를 쭉 둘러보더니 김하늘한테 가서 말했다.“내가 너 방해하는 건 아니지?”김하늘이 혀를 끌끌 차더니 대답했다.“방해는 무슨. 난 그냥 내가 투자한 영화가 대박일지 쪽박일지 궁금해서 오는 거 뿐인데?”소은정이
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아, 이번 작품 남주야. 작품에 많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투자도 했고.... 목적이 뚜렷한 친구기도 하지. 이글 엔터를 발판으로 삼아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하거든."소은정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네 성격에 알면서도 그냥 놔두는 거야?""당연히 아니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배우야. 그거 알아? 장윤이 제2의 소은해로 불리는 거? 장윤이 은해 오빠의 연기 스타일을 똑같이 따라 했어. 따라 한 그 많은 사람 중에 장윤이 제일 똑같고 제일 성공한 사람이야."김하늘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혹시 은해 오빠의 인기로 장윤까지 성공시키려는 거 아니지? 우리 오빠가 제일 싫어하는 게 오빠 팔아서 인기를 얻는 거야!""알고 있어. 근데 어쩔 수 없는걸.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장윤과 계약하고 이글 엔터에 넣으려고 하는데 어때?"소은정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네가 직접 키울 거야?"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그러면 잘 되더라도 계속 이글 엔터에 있을걸.""장윤이 그러려고 할까?""이 상황에 물불 가릴 때야?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아야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더 기다릴 수 있어!"김하늘의 말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자기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다짐이 엿보였다."일단 스캔들이나 찌라시 있는지 먼저 알아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았어. 후에 폭탄인 거 알면 버리기도 쉽지 않아.""알겠어."김하늘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 순간 멀리서 펑펑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소은정은 눈을 깜빡이었다. 김하늘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휴, 안 봐도 뻔해. 아까 그 서브 여주야.""자주 이래?""여주가 누군지 알아?""누군데?""문상아."김하늘의 대답에 소은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문상아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상아라는 이름을
김하늘의 말을 듣고 소은정은 한참 동안 멍해졌다.이 바닥이 더럽고 재벌들이 돈만 밝힌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김하늘은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그만 말하고 들어가자. 맛있는 디저트 준비해달라고 했어.”소은정은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너 나 돼지 만들 셈이냐?”김하늘이 웃으며 말을 돌렸다.“전 대표님이 데려다줬어? 아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결혼까지 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하대?”소은정이 뻔뻔스럽게 농담을 해댔다.“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잖아.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해. 그게 정상이지.”“작작 해! 내가 볼 땐 전 대표님 촬영할 때 잘생긴 연하남이 너 채갈까 봐 그러는 거 같은데? 아니야?”소은정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반박했다.“나 연하남한테 관심 없어진 지 오래됐거든?”아무튼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전동하를 뛰어넘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잘생긴 연하남은 널리고 널렸지만, 전동하는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긴 복도가 있는 곳을 지나니 뒤편에는 전망이 탁 트인 쉼터가 펼쳐졌고 미처 철거하지 않은 정자가 떡하니 있었다.김하늘은 소은정의 손을 이끌고 그곳으로 갔다.소은정은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와, 여기서 보니까 진짜 대박이다. 다른 촬영 팀도 많은 것 같은데?”“당연하지. 근데 다들 일하느라 정신없어서 여기서 차 마시고 디저트 먹고 여유 부릴 사람 우리밖에 없을걸? 여기서 보면 한 세 팀인가? 촬영하는 것도 볼 수 있어. 끝내주지?”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탁자에는 디저트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김하늘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유라는 거기 가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소은정이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본인 걱정이나 하시지? 걔한테 뭔 일이 생긴다고 그래? 강열 씨도 있고 가족들도 있는데 뭘. 걱정할 필요 없어.”김하늘은 들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