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근무시간이 끝나고 한유라와 심강열은 함께 하시율의 집으로 향했다.오늘따라 조용한 분위기에 운전기사도 가시 방식이었다.평소라면 한유라가 재잘거리며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심강열 역시 누구보다 그 얘기를 들으며 리액션을 해줄 텐데 모기소리 하나 들리지 않으니 요즘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사실인 건가 싶었다.그렇게 숨 막힐 듯한 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차량은 드디어 하시율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부지면적이 크진 않지만 정원이 유난히 아름다운 아기자기한 별장이었다.가장 먼저 두 사람을 맞이한 건 바로 별장에서 일하는 한씨 아주머니였다.“두 분 드디어 오셨네요. 사모님께서 하루 종일 얼마나 기다리셨는데요.”고개를 끄덕인 심강열과 한유라가 저택에 들어선다.역시 버선발로 마중나온 하시율이 한유라를 발견하고 화사하게 웃는다.“어머, 왔어?”한유라에게 뜨거운 포옹을 안긴 하시율이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물었다.“아니, 너 왜 이렇게 말랐어?”엄마의 따가운 눈총을 느낀 심강열이 어깨를 으쓱했다.“전 모르는 일입니다. 저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이에 한유라가 미소를 짓더니 하시율의 어깨를 끌어안았다.“어머님, 저 일부러 다이어트한 거예요. 아, 이건 선물이에요. 스카프랑 향수인데. 마음에 드세요?”하시율의 취향을 완벽히 반영한 선물에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어머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또 어떻게 알았대? 우리 무뚝뚝한 아들놈... 무슨 복에 겨워 이렇게 착하고 예쁜 와이프를 만났나 몰라.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오버스러운 하시율의 표정에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렸다....세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집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아주머니가 다가왔다.“식사 준비 거의 다 되어 가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알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이때 하시율이 한유라의 손목을 잡아끌어 소파에 앉혔다.“아참. 며칠 전에 내가 쇼핑하다 우리 유라한테 어울릴만한 백 몇 개 샀거든? 너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어머, 진
한유라의 가벼운 목소리에도 하시율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처음엔 하시율도 별일 아니겠거니 했는데 오늘 어딘가 소원해진 두 사람의 사이를 보아하니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하는 수밖에 없었다.‘유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열이를 보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오늘은 달라.’결혼생활에 있어선 선배였기에 하시율은 빛을 잃은 그 눈동자가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래. 유라 네 말이 맞긴 한데... 그 애 뭔가 노리고 나타난 것만은 사실이잖니? 미리미리 대비해 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너희 두 사람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사이이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 알콩달콩하게 살아가는 거 보면서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래서 그런 애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지는 건 절대 용납 못 해.”“엄마...”심강열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지만 하시율의 엄한 눈빛에 결국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엄마 말 끝까지 들어. 강열아, 네가 유은진 그 여자랑 사귈 때 내가 왜 그렇게까지 결혼을 반대했는 줄 알아? 집안 차이가 심해서?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었어. 솔직히 그때 우리 심해그룹도 위기였잖니? 그리고 이 엄마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 너희 두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 결혼... 허락했을 거야. 하지만... 걔가 너 모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긴 해? 네 인맥, 네 돈. 전부 다 이용하면서 뒤에선 회사 정보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있었어. 그때 프로젝트 입찰에서 왜 심해그룹이 번번히 실패했었는데... 정말 우리 그룹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니?”하시율의 말에 심강열의 표정이 점점 어둡게 굳고 하시율은 기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리고 나한테 들키고 나서 그 애가 한 짓은 더 가관이었지. 네 아버지랑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유지승 대표... 우리 그룹이 가장 위험할 때 우릴 배신했었잖아. 왜 그랬는지 알아?”하시율의 말을 듣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유라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졌다.‘이게 다 무슨 소리야... 뭔가 대단한 비밀을
한숨을 푹 내쉰 하시율은 진지한 얼굴로 한유라를 돌아보았다.“그 애가 갑자기 나타나서 유라 너도 당황스럽고 상처 많이 받았을 거야. 내가 대신 사과하마. 그 아이...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정말 뻔뻔하더구나. 유학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걸 처음엔 거절했었는데 강열이랑 깔끔하게 헤어지겠다고 해서 돈으로 이 악연을 끊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 싶어서 받아들였어. 다시 한국엔 안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 뻔뻔한 성격 어디 가겠니? 너희 두 사람이 알콩달콩 사는 걸 보니까 배가 아팠던 거겠지. 그래서 훼방이라도 놓으려고 나타난 것 같은데... 너희 두 사람이 또 그 여우 같은 애 손에 놀아나는 거 난 용납 못한다.”‘아, 어머님... 진짜 눈치채고 계셨구나...’한유라가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한참 뒤에야 감정을 추스른 심강열이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그래도... 저한테만큼은 말씀해 주셨어야죠.”“홍경그룹이 소은정 대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심해는 정말 무너졌을 거야. 네가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다 아는데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해... 그때 너 시간 날 때마다 회사 건물 옥상에 들락거린다는 얘기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아니?”그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기분이 다시 떠오르며 하시율은 눈시울을 붉혔다.‘강열 씨...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한유라가 고개를 돌려 심강열을 바라보았다.분노, 후회, 배신감. 지금 이 순간 치미는 감정을 꾹 참아내고 있는 고집스러운 입술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쓰러움이 밀려들었다.솔직히 심강열과 알고 지낸 시간을 결코 길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그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보아내는 건 충분한 시간이었다.그런데 그런 그가 옥상에 올라갈 지경이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궁지에 몰렸던 걸까?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아득한 옥상에 서서 그는 어쩌면 정말 이대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
“그래.”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대표 사무실.소파에 앉은 심강열의 표정은 중요한 담판을 앞둔 듯 어딘가 비장하기까지 했다.“앉아.”한유라가 소파에 앉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한편, 비서 역시 냉랭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그 죽일 놈의 호기심을 못 참고 결국 시키지도 않은 커피 두 잔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그러자 겨우 침착함을 지켜내던 심강열이 호통을 쳤다.“당장 나가요!”“아... 네, 네!”비서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서고 회사에서 이렇게 이성을 잃은 심강열의 모습은 처음 보는지라 한유라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왜 웃어?”“그냥. 사실 나한테 화내고 싶은 거면서 엄한 직원한테 성질 부리네 싶어서.”심강열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한유라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나 진심으로 가고 싶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 때문 아니야. 정말 내가 뭔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 당신이랑 엄마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나 혼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잠깐 침묵하던 심강열이 고개를 들었다.“누가 일하지 말래? 네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많고도 많아. 하지만 C시는 안 돼. 거긴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하지만 꾹 다문 한유라의 입술을 보고 있자니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에 콕 박힌 듯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지? 걔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절대... 절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두지 않았을 거야. 정말이야...”죄책감에 사로잡힌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유라가 자리에서 일어서 심강열을 꼭 안아주었다.따뜻한 위로에 심강열도 팔을 뻗어 그녀를 더 힘껏 끌어안았다.“유라야, 나한테 화난 거 있으면 차라리 날 때리고 욕해. 하지만... 날 떠나는 건... 그것만은 안 돼.”이대로 한유라를 잃을까 진심으로 두려워진 심강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더
“알아. 당신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내가 더 잘 알아.”한유라가 심강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와 똑같은 향기를 풍기는 부드러운 머리칼이 한유라의 손가락을 간질였다.익숙한 향기 때문일까? 그녀의 마음도 살짝 풀어졌다.“하지만... 내 마음도 좀 알아줘. 언제까지 당신 뒤에 숨어있을 순 없잖아. 남자 하나 잘 물어서 속 편하게 산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당신이랑 결혼한 거 내 최고의 행운이야. 그래서 그 행운에 걸맞는 사람이 되려고.”말을 마친 한유라의 손가락이 잘생긴 심강열의 이목구비를 야릇하게 훑었다.“당신도 내가 무능력하다는 소리 듣는 건 싫지?”괜찮다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제발 내 곁에만 있어달라고...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달콤한 한유라의 목소리에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이젠 무슨 말을 해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심강열은 직감했다.“정말... 기어이 가야겠어?”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심강열은 눈을 질끈 감았다.“세 달. 딱 세 달만 줄 거야. 그 안에 해결 하든 못 하든 무조건 돌아오는 걸로. 더는 양보 못 해.”그제야 한유라도 활짝 웃으며 심강열의 얼굴에 찐한 뽀뽀를 날렸다.“그래.”‘일단 가는 건 오케이했으니까 됐어. 세 달? 흥. 그때 가서 더 버티면 되지롱. 자기가 날 납치라도 할 거야 어쩔 거야.’그날 오후부터 한유라는 인수 인계 작업을 시작했지만 심강열은 일단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두라는 말만 했을 뿐, 정식 공문을 내리는 걸 이상하리만치 질질 끌었고 마음에 가득 찼던 기대감은 점차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심강열의 허락을 받아내고 며칠 뒤, SC그룹.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소은정은 자기 사무실인양 소파 상석에 앉은 한유라를 발견하고 헛웃음을 지었다.“왜 회사로 왔어! 새봄이부터 만나러 갔어야지! 네 얼굴 다 까먹겠다.”이에 한유라가 눈을 흘겼다.“걔 아직 돌도 안 지났어. 사람 얼굴 기억도 못 한다고
하지만 소은정의 조언에도 한유라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그래서 더 가고 싶어. 한순간 오기로 이러는 거 아니야. 내가 C시 지사 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해.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아니까.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해보고 싶어.”생각보다 단호한 목소리에 소은정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휴, 하여간 고집은. 알겠으니까 조심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고.”“응원은 고마운데 지금 가기 전부터 위기잖아.”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강열 씨가 보내줄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유라, 왜 이래? 너 이렇게 고분고분한 캐릭터 아니잖아?”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한유라가 반짝이는 눈으로 벌떡 일어섰다.“역시, 소은정. 잔머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말을 마친 한유라가 핸드백을 들고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고...마침 커피를 들고 들어오던 우연준이 사무실을 뛰쳐나오는 한유라를 피하려다 셔츠에 커피를 전부 다 쏟고 말았다.“아, 커피 고마워요, 우 비서님.”우연준의 어깨를 토닥이던 한유라가 다시 부리나케 달려나가고 우연준은 의아한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유라 씨 왜 저러세요?”“음... 전장으로 달려가는 장군의 마음? 이라고 생각해.”‘그게 뭔 소리야.’고개를 든 소은정이 말했다.“옷 다 버렸네요. 오후에는 쉬도록 해요.”“고맙습니다, 대표님!”‘못 알아들을 말 좀 하시면 어떠하리. 이렇게 휴가까지 내주시고... 고맙습니다, 대표님! 고맙습니다, 유라 씨!’다음 날, 소은정은 한유라가 몰래 C시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그 소식을 전한 전동하는 셔츠 단추를 풀며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왜 안 놀라요? 심 대표 화 많이 나셨다던데... 직접 운전까지 해서 쫓았다던데 결국 못 말렸다네요.”소은정이 태블릿으로 뉴스를 확인보며 말했다.“놀라긴요. 우리 한유라 씨 사고치는 게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그런데... 은정 씨 만나고 바로 도
전동하는 부드럽고 자상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촬영 현장까지 데려다주고 갈게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소은정은 다른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데려다주겠다는 그의 자상한 말투에 감동한 듯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가는 길에 데려다줘요!”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전동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가는 길에 소은정은 집에 있는 소찬식한테 영상통화를 걸었다.소찬식은 새봄이를 안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새봄이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쩍하면 일부러 앞에 놓인 물건들을 바닥에 던졌다.그러나 소찬식은 새봄이의 행동을 보고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할아버지 이야기 정말 잘하지? 새봄이가 정말 좋아하네? 자. 할아버지가 양자역학에 대해 읽어줄게……”소은정은 이마를 짚더니 말했다.“아빠, 새봄이 좀 냅둬요!”소찬식이 이내 대답했다.“교육은 어려서부터 잘해야 해. 옛날에는 내가 너무 바빠서 너흴 신경 쓸 틈이 없었어. 봐봐, 어떻게 됐는지! 지금은 내가 여유롭고 시간도 많으니까 새봄이한테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나한테 맡겨!”전동하는 무엇인가 대꾸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결국 운전에만 전념했다.소은정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전동하는 소은정을 보더니 말했다.“아버님, 계속 이러시진 않겠죠?”소은정이 가볍게 웃더니 대답했다.“새봄이가 어느 정도 크고 거절할 줄도 알게 되면, 그땐 아빠가 새봄이한테 손 떼시겠죠. 걱정 마요!”전동하의 고민을 눈치챈 소은정은 분명히 마음속으로는 무지 걱정이 되지만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전동하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럼 다행이구요.”소은정이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했다.요즘 소찬식은 자신의 모든 정력을 새봄이 키우는 데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소찬식은 그런 삶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주위사람들이 오히려 그보다 더 피곤해했다.전동하는 그 현실이 마음에 가시처럼 걸렸지만, 장인어른의 성의를 차마 뭐라고 할
소은정은 장윤에 대해 인상이 있었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전에 손호영이 화영상 후보에 올랐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장윤이 남우주연상을 받았었다.소은정이 장윤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이 사실이 유일했다.그는 인기도 많고 연기력도 뛰어나 연예계에서의 평판 또한 좋았다.김하늘이 여기까지 소은정을 오게 한 이유는 장윤을 이글 엔터와 계약시키고 싶어서였다.장윤은 최근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됐다.그의 원래 계획은 자기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이었다.하지만 장윤은 뜻밖에 이 바닥에서 잘 나가는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됐는데, 고의로 그의 앞길을 막는 바람에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에 그는 조심스럽게 김하늘한테 사정을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몇 년간 이글 엔터 소속으로 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자기 뜻대로 하고 싶었다.소은해는 장윤에게 흥미가 없었기에 김하늘과 소은정한테 이 일을 맡겼다.오늘 소은정이 촬영 현장을 온 것도 그저 먼 곳에서 보려고 온 것이었다.장윤이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장윤은 손을 흔들며 소은정한테 다가오려 했다.전동하는 운전석에서 내려 소은정의 뒤에 서더니 억지로 그녀에게 얇은 외투를 걸쳐줬다.소은정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안 추워요.”전동하는 장난스레 입을 삐죽 내밀며 소은정을 내려다보더니 낮은 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내가 추워요.”그녀는 찌릿한 전율을 느끼다가 전동하의 팔을 애교스럽게 치며 말했다.“장난치지 마요!”전동하는 그녀의 귀여운 반응에 꽤 만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맞은 편에 서 있던 장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왔으나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면서 다가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전동하는 소은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담쓰담하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오후에 데리러 올게요. 어디로 튀지 말고 있어요. 알았죠?”소은정은 그의 애정행각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빨개졌다.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