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라는 민하준을 만날 때 자신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매일 걱정하고 집착하는 자신이 싫었던 것 같다.오늘이 오기 전까지 심강열과의 관계가 너무 편하고 좋아서 계속 이대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 여자가 나타나면서 그녀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심강열은 그녀의 과거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만 그녀는 그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이건 너무 불공평해!’물론 그녀는 그들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고 그들이 어떻게 사귀고 어떻게 데이트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하지만 머리는 저도 모르게 자꾸 이상한 추측을 해댔다.심강열이 그녀에게 더 자상하게 대해주지 않았을지. 사랑을 나눌 때 그 여자에게 더 뜨겁지 않았을지 하는 쓸데없는 상상.한유라는 자신이 심강열을 꽉 잡고 있다고 믿었고 그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그냥 여자를 대하는 그의 습관이 아니었을까?‘내가 바람둥이였던 것처럼 심강열도 바람둥이가 아니었을까?’의심의 씨앗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자라났다.너무 고통스러웠다.한유라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꿈에서 다른 여자를 안고 그녀를 향해 웃고 있는 심강열을 만났다.그녀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가자 심강열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너무 집착이 많아. 그냥 이혼하자. 난 이 여자랑 함께할 거야!”그 순간 그녀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렸다.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쳐 들어왔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했다.정신이 조금 들자 잡생각을 떨쳐 버리기로 했다.하지만 한번 생긴 위기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들은 법적인 부부였고 두 사람이 서로를 원하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 두 가문의 이익이 합쳐진 운명의 공동체였다.한유라는 기지개를 켜며 미소를 지었다. 심강열과 단둘이 보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 남자에게 빠진 걸까?그녀가 잠옷을 입은 채로 방 문을 열고 나오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거실로 나와 보니 식탁에는 그녀가 좋아하
어제 직접 데리러 안 갔다고 지금도 삐져 있나?심강열은 웃으며 입을 삐죽였다.“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해?”한유라는 그를 힐끗 보고는 샌드위치를 집으며 말했다.“할 얘기가 없으니까.”심강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에게 해명했다.“어제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었어. SC에서 전에 도움을 많이 줬잖아. 그리고 앞으로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고. 그래서 먼저 일어나겠다고 할 수 없었어. 내가 다른데 놀러간 것도 아니고 은정 씨는 당신 친구잖아. 이해해 줘.”한유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해하지.”심강열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한유라가 말했다.“어제 나도 술을 좀 많이 마셨어. 억지 부리면서 일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해. 안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 때문에 프로젝트를 날렸으면 내가 그걸 무슨 수로 갚아?”심강열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도대체 뭐가 불만이야?”한유라는 명백하게 그를 비꼬고 있었다.“나한테 거짓말하고 술 마시러 갔는데 내가 그걸 까발려서 기분 나빠?”그는 그녀가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했다.한유라가 살짝 움찔했다. 그가 얘기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먼저 잘못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하지만 전 여자친구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래 놓고 지금 나한테 술 마시러 갔다고 뭐라 한 거야? 내가 회식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으면 그 여자가 회사에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그녀는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하지만 이 일로 그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그래. 내가 잘못했어. 이제 됐지?”평소와 같은 애교 섞인 말투였다.심강열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그는 피식 웃고는 발로 그녀의 발끝을 건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잘못을 아는 사람이 내가 못 들어가게 방 문도 잠갔어?”한유라가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술 취했으니까….”심강열은 싸한 미소를 지으며 경고의 의미를 담아 말했다.“
한유라는 어차피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워도 잠들지 못할 것 같아서 화장대에 마주 앉았다.평소에는 꾸미는 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회사에 남편의 전 여자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심강열이야 출근을 하든 말든 일단 옷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예전에는 간단한 오피스룩만 입고 다녔는데 명품 브랜드였지만 한유라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그녀는 옷방에서 하얀색 끈나시 원피스를 꺼냈다. 섹시함을 강조한 이 원피스는 그녀의 굴곡진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냈다.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장대로 가서 간단한 화장을 하고 자신의 몸매를 감상했다.그녀가 립스틱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방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안으로 들어온 심강열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으며 몸을 밀착해 왔다. 과감한 손놀림에 당황한 한유라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거울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약간 놀라웠지만 손길을 쳐내는 대신 립스틱 뚜껑을 열고 입술에 발랐다.“아직 안 나갔었어?”그녀가 무심한듯 물었다.“당신 기다렸지.”남자는 살짝 거칠어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대놓고 감상했다.한유라는 그가 뭘 하려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아는 심강열은 정해진 시간에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직원이 빨리 회사로 오라고 재촉하는 상황에 그녀와 집에서 밀회를 즐길 만큼 나태한 성격은 아니었다.그러니 어차피 만지작거리다가 멈출 게 분명했다.한유라는 자신을 보며 욕정에 취한 그의 모습을 좋아했다.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이 남자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다.한유라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그러고는 뒤돌아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다리를 그의 허리에 걸쳤다.“정말 기다릴 거야? 나 바로 못 나가는데.”남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욕구를 억제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옷차림을 감상하더니 살짝 짜증 난 말투로 물
남자는 무척 화가 난 듯, 길게 심호흡했다.그러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한유라는 집중해서 립스틱을 바르다가 뭐가 불만족스러운지 다시 지우고 덧발랐다.등 뒤에 있던 남자가 다시 다가오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으르렁거렸다.“기획 실장도 안 되는 건 안 돼. 혼나고 싶어?”한유라가 인상을 쓰며 뭐라고 하려는데 남자가 허리띠를 풀었다.그녀는 불길한 느낌이 들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심강열 씨! 회사 출근해야지!”하지만 심강열은 그녀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가 거침없이 몸을 부딪쳐 왔고 어느새 입술이 겹쳐졌다.한유라가 바둥거렸지만 그는 한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거칠게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조금 전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이 남자 진심이야!’그녀는 그가 자신을 보고 이성을 잃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이건 그녀의 통제를 벗어났다.남자는 두 팔로 그녀를 돌려세운 뒤, 등 뒤에서 그녀와 몸을 밀착했다.한유라가 예쁘다고 했던 원피스는 어느새 구깃구깃해졌고 아슬아슬하게 몸에 걸쳐져 있었다.‘내 원피스!’하지만 그런 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남자가 다시 몸을 부딪쳐 왔다.‘어제 힘을 아꼈다가 오늘 사용하는 거 아니야?’그녀도 어느새 그를 느끼기 시작했다.심강열은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거칠게 몸을 움직였다.핸드폰이 밖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그가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귓가에 대고 토할 때, 한유라는 전신의 전율을 느꼈다.힘들지만 꽤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둘이 절정에 치닫기 전, 그녀는 달뜬 표정으로 불만을 토했다.“밖에 아줌마 있어! 소리 듣고 올라오실지도 몰라!”남자는 피식 웃고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럴 리 없어.”절정에 도달한 순간, 한유라는 힘없이 그의 몸에 축 늘어졌다.심강열은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하지만 남자는 이미 옷을 입은 상태였고 머리도 전혀 흐트러지지
남자는 피식 웃고는 아쉬움이 그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뒤돌아섰다.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조금 전의 뜨거웠던 화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한유라는 얼굴을 확 붉히며 이불에 머리를 파묻었다.열기가 식자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 편안해졌다.전 여자친구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쉬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야 일어났다.온몸에 남은 그의 흔적을 바라보며 욕을 해준 뒤, 화장실로 가서 씻었다.개운한 몸으로 밖으로 나온 그녀는 아까 입었던 원피스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미 찢기고 찢겨서 다시 입을 수는 없었다.그녀는 심강열이 고의로 옷을 찢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증거가 없었다.옷방으로 가서 섹시한 옷을 찾았지만 몸의 흔적을 가릴 수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평소에 입던 오피스룩을 골랐다.깔끔하고 단정하지만 생기를 잃지 않는 모습, 이 상태로도 심강열의 전 여자친구보다는 백배 나아 보였다.‘심강열 예전에는 여자 보는 눈이 없었네. 얼굴도 몸매도 그냥 수수하고 개성이 없던데.’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침대머리에 놓인 피임도구를 보자 조금 전에 조치도 없이 일을 치른 것이 생각났다.‘한 번인데… 괜찮겠지?’아직은 아이 문제를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전 여자친구가 나타난 상황에는 더욱 그랬다.한유라는 배란기 날짜를 계산하다가 별문제 없을 거라 판단하고 안심했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가정부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사모님, 이리 와서 식사하세요. 대표님이 나가시기 전에 사모님은 오늘 푹 쉴 거라고 말씀하셨어요!”한유라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아니예요. 회사 나갈 거예요.”홀로 운전해서 회사로 가던 중, 그녀는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아까 괜찮았으니까 이건 선물.’그녀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지어졌다.소은정에게서 나가 놀자고 연락이 왔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회사에 도착하자 안내데스크 여직원이 반갑게 그녀를 맞아
한유라가 등 뒤로 시선을 보내자 그 직원은 서둘러 그녀를 소개했다.“소개가 늦었네요. 우리 팀 신입 유은진 씨예요. 해외에서 금방 귀국했다고 하네요. 대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 능력이 출중한 친구에요.”“유은진 씨, 이쪽은 기획팀 한 실장님이셔. 심 대표님이랑은 부부 사이야.”‘저 여자 이름이 유은진이였구나.’유은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절대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거지?’한유라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외국 회사가 대우가 더 좋았을 텐데 유은진 씨는 어떻게 우리 회사로 왔어요?”유은진은 그녀와 말을 섞기 싫었지만 직속 상사가 옆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국내가 더 좋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고요.”유은진의 직속 상사는 면접 볼 때 그녀의 스펙만 보고 바로 합격을 주었다.한유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내가 알기로는 해외 대기업 근무 이력이 있는 친구들이 다 인재는 아니더라고요. 그쪽에서 도태돼서 오는 경우도 많고요. 진 팀장님, 사람 잘 보고 뽑으셔야 해요!”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그녀는 우월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남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유은진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본 진 팀장은 다급히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아. 한 실장님이 좀 직설적이긴 해도 악의는 없을 거야. 내가 은진 씨를 뽑은 건 은진 씨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야. 나중에 성과를 내서 보여주면 실장님도 은진 씨를 다르게 보실 거야!”진 팀장은 속으로 진땀을 뺐다. 평소에 직원들과 친근하게 지내던 그녀가 왜 오늘따라 까다롭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은진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기고만장한 한유라의 뒷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기분이 잡쳤던 한유라는 인사도 없이 바로 심강열의 사무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뒤따라온 비서가 말했다.“실장님,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그래요.”한유
비서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어디 가셨지? 사무실에 가보니 거기도 없으셨어요…”한유라의 어색한 웃음이 마음에 걸렸던 비서는 사실대로 그녀에게 전달했다. 한유라의 눈동자가 어두워지고 불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니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대표님께 전화해 보겠습니다.”“괜찮아요, 비서님은 가서 일 보세요. 제가 연락해 볼게요.”비서님은 한유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화난 얼굴도 아닌 듯했다. 한유라의 말에 짧게 답을 한 비서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유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회의실에도, 대표실에도 심강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찬 커피를 꽉 쥔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직원들은 마실을 나온 그녀의 모습이 익숙한 듯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비상계단의 구석진 곳에 다가갔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귀신에 홀린 듯 다가갔다. 비상계단에는 쓸모없는 물건들이 쌓여있었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내디뎠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고 역시나 심강열의 전 여친 유은진 그 여자였다.“둘이 결혼한 거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일부러 어머니의 돈을 받은 게 아니야. 어머니가 내가 외국으로 2년만 갔다 오면 너와 결혼 허락해 준다고 하셨어. 근데 내가 떠나자마자 결혼이라니?”유은진은 울먹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한유라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한유라는 온몸이 저리고 차갑게 굳어갔다. 배신인가?아니면 실망? 유은진의 원맨쇼이길 바랐다. 심강열과 그의 집안은 엮여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전까지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는 반나절 사이에 확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되든 간에 이미 되돌릴 수 없어. 이 일이 끝나면 빨리 다시 떠나.”유은진은
한유라는 사과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졌다.지금까지의 결혼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졌다.심강열이 아직도 이 여자를 숨기려고 하다니! 회사의 모든 직원이 알아도 나한테만 숨기려고 했어…미리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바보처럼 새로 입사한 동료와 함께 웃으면서 지냈을 것이다.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비참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그녀의 모든 비밀에 대해 심강열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비밀은 한 번도 한유라에게 얘기했던 적이 없었다. 일 년이라는 결혼생활 동안 한유라는 이 사람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오늘 그의 태도를 보니 더 이상 결혼생활은 그저 마지못해하는 생활이 될 것이다.한유라와 심강열 두 사람 사이에 문을 두고 큰 벽이 생겨버렸다.한유라는 심강열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유은진은 본처라도 되는 것처럼 심강열에게 물었다.“ 오해? 그럼 나는 어떡해? 어머니가 주신 돈 나 한 푼도 안 쓰고 있었어. 전부 돌려줄 테니 나한테 다시 와줘.”심강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은진은 더욱더 소리 내며 울었다.“정말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당신한테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일이야. 어떻게 그 정도의 시간도 못 기다려 줘?”얼마 지난 후 심강열은 굳게 닫았던 그의 입을 열었다.“미안해.”심강열은 유은진에게 한 유감의 표시였지만 문밖에 있는 한유라의 귀에는 결혼을 후회하는 것처럼 들렸다. 후회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두 사람의 결혼은 정당한 것이다. 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지?처음으로 한유라는 무력함을 느꼈다. 한유라는 손에 힘을 풀며 이 현실을 직시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영혼이 털린 사람처럼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원래는 두 연놈에게 뺨이라도 갈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정작 자기 귀로 들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과는 모두 좋은 결과가 없었다. 한 남자에게 사기도 당했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