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사람들은 소은정이 건강을 회복했으며 곧 회사로 돌아올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소은해는 점차 자신의 업무를 정리해서 소은호와 소은정에게 인계했다.그는 드디어 쉴 수 있겠다고 한숨을 쉬었다.회사를 떠나던 날, 그는 펄쩍펄쩍 뛰며 다시 자유를 얻은 것을 자축했다.소은정은 날을 잡아 회사로 가서 서류를 정리했다.아침부터 나가서 세 번의 회의에 참석했다.듣기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정작 회의 들어가니 그렇게 할 수 없었다.이제 기억을 되찾은 그녀는 과거 고민없이 뛰놀던 10대의 기억을 뒤로 하고 업무에 열중했다.그녀는 저녁 때가 되어서야 퇴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어쩐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시감도 들었다.중간에 전동하에게서 전화가 몇 번 왔는데 회사에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서 새봄이와 놀아준다고 했다. 새봄이는 아빠를 무척 따랐는데 한순간도 아빠랑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소은정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밖에서 대기하던 우연준이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우연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거성그룹 임춘식 대표가 방문하셨습니다. 대표님이랑 다음 시즌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소은정은 약간 인상을 썼다.임춘식이 왜 이 시간에 온 거지?게다가 오기 전에 연락도 없었다.“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해요. 급한 일이면 큰오빠랑 이야기해도 되고요.”그녀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빨리 퇴근하고 싶었다.한유라랑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늦으면 또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게 분명했다.우연준이 뭐라고 하려는데 맞은편 회의실에서 훤칠한 키에 검은 정장을 입은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임춘식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소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요즘 얼굴 보기 참 어렵네요? 그래도 옛친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얼굴 한번 보기 이렇게 어려워서야 되겠어요?”소은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연준을
비록 지금은 거성과의 협력으로 거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앞을 내다보면 SC에서 가져갈 이익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거성의 핵심기술에만 기대게 되면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느려지기 마련이다.그래서 소은정은 양측의 협업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자신만의 계획이 있었고 독자적으로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싶었다.임춘식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차피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시죠. 그 시간에 이야기도 좀 더 나눌 수 있고요. 설마 이 정도 시간까지 아깝다고 하실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 제가 접대에 소홀했네요. 다음에 오시면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가시죠.”소은정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임춘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먼저 타시죠, 소 대표님.”소은정은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우연준은 그들과 함께 타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안.임춘식은 시끄럽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소 대표님께서는 일시적인 사고로 기억을 잃으셨다고 들었는데 저를 기억하고 계셨네요? 정말 영광입니다.”소은정은 임춘식을 힐끗 보고는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굴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두 회사의 협업에는 영향이 없을 겁니다.”임춘식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우리가 처음 사업 파트너로 만났을 때 우리 측에 요구한 사항을 아직 기억하십니까?”“제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아시면서 과거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가 뭘까요?”“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기분 나쁘실 줄 알았으면 얘기도 안 꺼냈을 텐데, 이해해 주세요.”소은정은 굳이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임춘식은 그녀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단 소식을 누구한테 들었을까?지금 염탐하러 온 건가?하지만 임춘식은 그녀가 이제 기억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그럼 계속 모르는 척해야지 뭐.’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두 사람은 같이 밖으로 나갔다.임춘식은 낯선 차량 한대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제 차는 저기 있어요. 오랜
임춘식은 소은정을 박수혁의 앞에 데려온 것으로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오랜만에 방문한 SC그룹 직원들은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그를 경계했다.소은정 신변을 지키는 우연준 역시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았다.과거는 역시 과거일 뿐.박수혁은 핏발이 선 눈으로 슬픈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담담하고 평온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격하게 다가갈 수 없었다.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잊어도 괜찮아. 다시 알아가면 되니까.”그는 손을 내밀고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침묵이 흐른 뒤, 소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이야기하죠. 그쪽이 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나는 모르잖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지나쳐 등 뒤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임춘식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뒤돌아섰다.박수혁은 경직된 자세로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뜨거웠던 마음이 찬물을 맞은 것 같았다.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모른다니?그녀의 말투에서 그를 알아본 건가 싶기도 했지만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그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임춘식이 천천히 다가왔다. 소은정은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나버렸지만 박수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임춘식은 문득 그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송화시에서 발만 구르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박수혁에게 이런 날이 있다니.임춘식은 가볍게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박 대표, 최선을 다했으면 됐잖아. 저녁 비행기라며? 늦겠어.”박수혁은 말없이 차로 돌아가서 시동을 걸고 공항으로 향했다.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 한번 보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만약 소은정이 그에게 동아줄이라도 내려준다면 망설이지 않고 잡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러
라이터가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 피러 나온 것 같았다.한유라는 잠시 고민했다. 그와 대화를 길게 하다가는 모든 게 들통날 것 같았다.“은정이랑 오늘 약속 있다고 했잖아.”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던 그녀는 무리수를 두었다.“설마 나 믿지 못해서 확인 차 전화한 거야?”잠시 침묵이 흐르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은정 씨라고 했어?”“맞아!”그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했다.심강열은 긴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자고 되뇌었다.한유라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녀가 뭐라고 변명하기 전에 심강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잠깐만 기다려. 은정 씨 지금 바꿔줄게.”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넸다.“미안한테 우리 집사람이랑 말 몇 마디만 해줄 수 있어요?”한유라는 순간 어깨를 움찔하며 온몸이 경직되었다.뭔가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잠시 후, 수화기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 유라야. 조금 전에 심 대표님이 우리 오빠랑 같이 집에 오셨더라고. 안 그래도 너한테 같이 올 거냐고 물어보려 했었는데. 너도 올래?”한유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거짓말이 이렇게 빨리 들통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아… 아니야.”다시 전화를 바꾼 심강열이 웃으며 물었다.“한유라, 이따가 돌아가서 어떻게 이 일을 해명할지 잘 고민해 봐.”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얼른 핸드폰으로 한유라에게 톡을 보냈다.소은정-“너 혹시 거짓말했어?”한유라- “나도 그 사람이 너희 집에 갔을 줄은 몰랐지!”소은정-“심 대표님 표정 장난 아니던데.”한유라- “나도 알아.”소은정- “집에 돌아가서 싹싹 빌어!”한유라- “죽기 전에 실컷 놀다가 가야겠어!”한유라는 길게 심호흡한 뒤, 룸으로 돌아갔다.어차피 들통난 거 일단 신나게 놀고 보자는 마음이었다.그녀가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람들은 노는
한유라는 멈칫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다른 여직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전 여자친구는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요즘 회사에 알짱거리면서 두 분 사이를 알아보고 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맞아요. 저희는 실장님 편이에요! 그런 여자를 어떻게 한 실장님과 비교하겠어요? 한 실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실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 여자가 우리 회사에 온 뒤로 대표님은 그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저희가 잘 감시하고 있을게요!”한유라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그러니까 지금 심강열 전 여자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출근한다는 말이지? 나만 모르고 있었고?’그것뿐이 아니었다. 그 전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이 룸에 있다는 게 더 분노를 유발했다.한유라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직원들은 대부분 그녀가 아는 얼굴이었다.그러던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 굳었다.노래를 부르는 쪽에 남직원과 여직원이 앉아 있었는데 여자는 미소만 지을 뿐, 무리에 끼지 못하는 모습이고 남자는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안주를 권하고 있었다.그 남자도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이시준이라는 신입이었는데 평소에 말도 예쁘게 해서 선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이번에도 그를 챙겨주던 선임이 그를 데리고 왔는데 한유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하지만 그 남자 직원 옆에 있는 여자직원은 좀 낯설었다.처음에는 그냥 이시준이 데려온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이시준이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상황이었다.그리고 이때, 여자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고 마침 한유라와 시선이 마주쳤다.그 순간, 한유라는 이 여자가 심강열의 전여자친구라고 확신했다.돈을 가지고 해외로 떠났던 여자.‘하! 그러니까 다시 잘해보고 싶어서 돌아온 건가?’그녀는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옆에 앉은 여직원이 그녀를 위로했다.“한 실장님, 저 여자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한 실장님이 나타나시기 전에 저 여자 대표님 이름만 대
한유라와 그 여자를 제외하고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마시고 떠들었다.기분이 잡친 한유라는 핸드폰을 꺼내 심강열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데리러 와.”그녀는 지금의 심강열이 얼마나 행복하게 웃는지 그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그런데 심강열의 답장은 실망스러웠다.“일 얘기 중이야. 운전기사 보낼게.”한유라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안 돼! 직접 와!”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그녀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평소에 한유라가 성질 부릴 때면 심강열은 웬만하면 맞춰주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도 그걸 알아주었다.하지만 오늘의 한유라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심강열은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고 소은호와 대화를 이어갔다.소은정은 한시연과 함께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고 전동하는 혼자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소은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시연이 그녀에게 귀띔해 주었다.“핸드폰이 울렸어요.”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유라네요. 술을 좀 많이 마신 것 같아요.”한유라- “심강열 지금도 거기 있어?”소은정- “응. 너도 와. 집사 아저씨가 새로운 쉐프를 초대했는데 솜씨가 장난 아니야.”평소였다면 한유라는 당장 달려왔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한유라- “나 안 가. 심강열한테 데리러 안 오면 여기서 안 나간다고 전해줘.”소은정은 웃으며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한유라가 좀 유별나긴 해도 평소에 이유 없이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녀는 심강열에게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유라 좀 데리러 가셔야겠는데요? 대표님이 안 오면 안 간대요.”소은호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성격하고는….”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심강열 앞이라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한유라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심강열은 미간을 문지르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요. 기사 보냈어요. 술 마시면 원래 애교에 억지부
한유라는 다가가서 상사의 신분으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이시준 씨가 술을 좀 많이 마셨네요. 돌아가서 푹 쉬어요.”이시준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억지를 부렸다.“저 더 마실 수 있어요. 실장님, 저랑 한잔만 더해요!”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시준 씨, 다음에 또 마셔요. 혼자만 마시고 여자친구 너무 안 챙긴 거 아니에요?”술 취한 이시준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곁눈질로 옆의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런데 그 여자는 갑자기 그를 뿌리치더니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저희 사귀는 사이 아닙니다.”이시준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어렵게 똑바로 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한유라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여자친구가 아닌데 이런 집회에 같이 나왔다고요? 이번 회식 가족만 데리고 오라고 말했는데. 이봐요, 아무리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너무 무시하면 안 돼요. 그쪽이 먼저 오고 싶다고 어필했으니까 이시준 씨가 당신을 데려왔겠죠.”여자는 적의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한유라를 쏘아보았다.한유라는 자기가 이겼다는 생각에 어깨가 올라갔다.뒤돌아서려던 순간에 핸드폰이 울렸다.심강열일 것이다.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이시준 씨 집까지 좀 부탁할게요. 난 남편이 데리러 와서 어쩔 수 없네요. 우리 남편이 그렇게 집착이 심하거든요!”말을 마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도 안 하고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저 도착했는데요. 입구에 있어요.”운전기사의 목소리였다.한유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심강열은 데리러 오지 않았다.그들이 통화하는 소리를 옆에 있던 여자도 들었다.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한유라를 바라보았다.한유라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저녁내내 화를 참고 있었는데 심강열이 거기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이다.차가 이미 도착했고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대기했다.한유라는 곧장 걸어가서 차에 올랐다.운전기사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눈치를 살피다가 멀지 않은 곳에
하지만 너무 달콤함에 취해 어느새 다가온 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심강열은 그녀에게 자상하게 대해주고 그녀의 말괄량이 같은 성격을 포용해 주었기에 한유라는 자신이 그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한유라 역시 결혼하기 전까지는 잘 놀았고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했다.그래서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방해하는 게 싫었고 전 여자친구에게 지는 건 더 싫었다.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운전기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소 대표님네 본가로 가실까요?”사실 심강열은 그녀가 멀쩡하면 그쪽으로 데려오고 술을 많이 마셨으면 바로 집으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하지만 운전기사는 한유라가 술 취한 건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의 말을 들은 한유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가요. 바로 집으로 가죠!”운전기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심강열은 소은정네 본가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한유라가 오지 않자 운전기사에게 연락했다. 그제야 그는 한유라가 이미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한유라에게서는 도착했다는 문자조차 오지 않았다.그는 갑자기 입맛이 없어졌다.다행히 눈치 빠른 소은정이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유라 많이 취했나 봐요. 그래도 유라한테 화 내시면 안 돼요. 어차피 싸워도 못 이겨요. 짜증만 나죠.”심강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음에 같이 올게요. 오늘 실례 많았어요. 이만 돌아가 볼게요.”어차피 일적인 얘기는 이미 끝났고 소은호도 더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심강열이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소은호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심 대표니까 한유라 성격 다 받아주지 다른 사람이었으면….”그러자 한유라의 절친인 소은정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유라 성격 좋거든? 얼마나 온화하고 배려심 넘치는데! 유라랑 결혼한 심강열 씨가 복받은 거라고!”소은호는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웃을 뿐, 반박하지 않았다.하지만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