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생의 반응을 살폈다.이럴 리 없는데!“넌 놀랍지도 않아? 평소의 전동하가 했을 법한 일이 아니잖아!”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놀라운데? 원래 이래야 하는 거잖아!”소은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나만 이게 놀라운 거야?’소은정은 오빠를 흘기며 말했다.“오빠는 연예계 생활하면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어. 사람이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내가 내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결혼한 줄 알아? 나한테 전동하 씨는 누가 뭐래도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야. 그가 다른 사람에 어떻게 했는지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사실 결혼하기 전, 소찬식과 소은호는 소은정과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전동하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가 어떤 사람이든 소은정이 사랑할만한 사람인 건 확실했다.소은해가 입술을 깨물며 백기를 들었다.사실 전동하의 행보가 조금 놀라웠을 뿐이다.소은정은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과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물었다.소은해는 상세하게 대답했다. 회사 상황을 들은 소은정은 인상을 쓰며 잔소리를 퍼부으려다가 그만두었다.소은해가 회사를 말아먹지 않고 이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은호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고 전동하가 안으로 들려왔다.그녀는 다시 전화를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전동하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많이 배고플까 봐 빨리 해달라고 했어요. 따듯할 때 먹어봐요.”그가 조심스럽게 도시락통을 열자 해물죽의 향긋한 향기가 병실에 풍겼다. 소은정은 배고픈 나머지 군침을 꿀꺽 삼켰다.하지만 금방 의식을 회복한 뒤라 몇 숟가락 먹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다음 날, 그들은 퇴원하기로 했다.소찬식은 새봄이와 함께 그녀를 데리러 병원에 왔다.소은정은 자신의 아이를 자세히 살폈다. 가슴이 뭉클했다.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잊을 수 있었을까?그들은 소은정의 본가로 돌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사람들은 소은정이 건강을 회복했으며 곧 회사로 돌아올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소은해는 점차 자신의 업무를 정리해서 소은호와 소은정에게 인계했다.그는 드디어 쉴 수 있겠다고 한숨을 쉬었다.회사를 떠나던 날, 그는 펄쩍펄쩍 뛰며 다시 자유를 얻은 것을 자축했다.소은정은 날을 잡아 회사로 가서 서류를 정리했다.아침부터 나가서 세 번의 회의에 참석했다.듣기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정작 회의 들어가니 그렇게 할 수 없었다.이제 기억을 되찾은 그녀는 과거 고민없이 뛰놀던 10대의 기억을 뒤로 하고 업무에 열중했다.그녀는 저녁 때가 되어서야 퇴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어쩐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시감도 들었다.중간에 전동하에게서 전화가 몇 번 왔는데 회사에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서 새봄이와 놀아준다고 했다. 새봄이는 아빠를 무척 따랐는데 한순간도 아빠랑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소은정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밖에서 대기하던 우연준이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우연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거성그룹 임춘식 대표가 방문하셨습니다. 대표님이랑 다음 시즌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소은정은 약간 인상을 썼다.임춘식이 왜 이 시간에 온 거지?게다가 오기 전에 연락도 없었다.“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해요. 급한 일이면 큰오빠랑 이야기해도 되고요.”그녀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빨리 퇴근하고 싶었다.한유라랑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늦으면 또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게 분명했다.우연준이 뭐라고 하려는데 맞은편 회의실에서 훤칠한 키에 검은 정장을 입은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임춘식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소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요즘 얼굴 보기 참 어렵네요? 그래도 옛친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얼굴 한번 보기 이렇게 어려워서야 되겠어요?”소은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연준을
비록 지금은 거성과의 협력으로 거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앞을 내다보면 SC에서 가져갈 이익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거성의 핵심기술에만 기대게 되면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느려지기 마련이다.그래서 소은정은 양측의 협업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자신만의 계획이 있었고 독자적으로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싶었다.임춘식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차피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시죠. 그 시간에 이야기도 좀 더 나눌 수 있고요. 설마 이 정도 시간까지 아깝다고 하실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 제가 접대에 소홀했네요. 다음에 오시면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가시죠.”소은정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임춘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먼저 타시죠, 소 대표님.”소은정은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우연준은 그들과 함께 타지 않았다.엘리베이터 안.임춘식은 시끄럽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소 대표님께서는 일시적인 사고로 기억을 잃으셨다고 들었는데 저를 기억하고 계셨네요? 정말 영광입니다.”소은정은 임춘식을 힐끗 보고는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굴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두 회사의 협업에는 영향이 없을 겁니다.”임춘식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우리가 처음 사업 파트너로 만났을 때 우리 측에 요구한 사항을 아직 기억하십니까?”“제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아시면서 과거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가 뭘까요?”“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기분 나쁘실 줄 알았으면 얘기도 안 꺼냈을 텐데, 이해해 주세요.”소은정은 굳이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임춘식은 그녀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단 소식을 누구한테 들었을까?지금 염탐하러 온 건가?하지만 임춘식은 그녀가 이제 기억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그럼 계속 모르는 척해야지 뭐.’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두 사람은 같이 밖으로 나갔다.임춘식은 낯선 차량 한대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제 차는 저기 있어요. 오랜
임춘식은 소은정을 박수혁의 앞에 데려온 것으로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오랜만에 방문한 SC그룹 직원들은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그를 경계했다.소은정 신변을 지키는 우연준 역시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았다.과거는 역시 과거일 뿐.박수혁은 핏발이 선 눈으로 슬픈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담담하고 평온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격하게 다가갈 수 없었다.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잊어도 괜찮아. 다시 알아가면 되니까.”그는 손을 내밀고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침묵이 흐른 뒤, 소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이야기하죠. 그쪽이 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나는 모르잖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지나쳐 등 뒤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임춘식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뒤돌아섰다.박수혁은 경직된 자세로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뜨거웠던 마음이 찬물을 맞은 것 같았다.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모른다니?그녀의 말투에서 그를 알아본 건가 싶기도 했지만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그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임춘식이 천천히 다가왔다. 소은정은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나버렸지만 박수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임춘식은 문득 그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송화시에서 발만 구르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박수혁에게 이런 날이 있다니.임춘식은 가볍게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박 대표, 최선을 다했으면 됐잖아. 저녁 비행기라며? 늦겠어.”박수혁은 말없이 차로 돌아가서 시동을 걸고 공항으로 향했다.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 한번 보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만약 소은정이 그에게 동아줄이라도 내려준다면 망설이지 않고 잡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러
라이터가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배 피러 나온 것 같았다.한유라는 잠시 고민했다. 그와 대화를 길게 하다가는 모든 게 들통날 것 같았다.“은정이랑 오늘 약속 있다고 했잖아.”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던 그녀는 무리수를 두었다.“설마 나 믿지 못해서 확인 차 전화한 거야?”잠시 침묵이 흐르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은정 씨라고 했어?”“맞아!”그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했다.심강열은 긴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자고 되뇌었다.한유라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녀가 뭐라고 변명하기 전에 심강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잠깐만 기다려. 은정 씨 지금 바꿔줄게.”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넸다.“미안한테 우리 집사람이랑 말 몇 마디만 해줄 수 있어요?”한유라는 순간 어깨를 움찔하며 온몸이 경직되었다.뭔가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잠시 후, 수화기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 유라야. 조금 전에 심 대표님이 우리 오빠랑 같이 집에 오셨더라고. 안 그래도 너한테 같이 올 거냐고 물어보려 했었는데. 너도 올래?”한유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거짓말이 이렇게 빨리 들통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아… 아니야.”다시 전화를 바꾼 심강열이 웃으며 물었다.“한유라, 이따가 돌아가서 어떻게 이 일을 해명할지 잘 고민해 봐.”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얼른 핸드폰으로 한유라에게 톡을 보냈다.소은정-“너 혹시 거짓말했어?”한유라- “나도 그 사람이 너희 집에 갔을 줄은 몰랐지!”소은정-“심 대표님 표정 장난 아니던데.”한유라- “나도 알아.”소은정- “집에 돌아가서 싹싹 빌어!”한유라- “죽기 전에 실컷 놀다가 가야겠어!”한유라는 길게 심호흡한 뒤, 룸으로 돌아갔다.어차피 들통난 거 일단 신나게 놀고 보자는 마음이었다.그녀가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람들은 노는
한유라는 멈칫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다른 여직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전 여자친구는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요즘 회사에 알짱거리면서 두 분 사이를 알아보고 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맞아요. 저희는 실장님 편이에요! 그런 여자를 어떻게 한 실장님과 비교하겠어요? 한 실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실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 여자가 우리 회사에 온 뒤로 대표님은 그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저희가 잘 감시하고 있을게요!”한유라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그러니까 지금 심강열 전 여자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출근한다는 말이지? 나만 모르고 있었고?’그것뿐이 아니었다. 그 전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이 룸에 있다는 게 더 분노를 유발했다.한유라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직원들은 대부분 그녀가 아는 얼굴이었다.그러던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 굳었다.노래를 부르는 쪽에 남직원과 여직원이 앉아 있었는데 여자는 미소만 지을 뿐, 무리에 끼지 못하는 모습이고 남자는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안주를 권하고 있었다.그 남자도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이시준이라는 신입이었는데 평소에 말도 예쁘게 해서 선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이번에도 그를 챙겨주던 선임이 그를 데리고 왔는데 한유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하지만 그 남자 직원 옆에 있는 여자직원은 좀 낯설었다.처음에는 그냥 이시준이 데려온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이시준이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상황이었다.그리고 이때, 여자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고 마침 한유라와 시선이 마주쳤다.그 순간, 한유라는 이 여자가 심강열의 전여자친구라고 확신했다.돈을 가지고 해외로 떠났던 여자.‘하! 그러니까 다시 잘해보고 싶어서 돌아온 건가?’그녀는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옆에 앉은 여직원이 그녀를 위로했다.“한 실장님, 저 여자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한 실장님이 나타나시기 전에 저 여자 대표님 이름만 대
한유라와 그 여자를 제외하고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마시고 떠들었다.기분이 잡친 한유라는 핸드폰을 꺼내 심강열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데리러 와.”그녀는 지금의 심강열이 얼마나 행복하게 웃는지 그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그런데 심강열의 답장은 실망스러웠다.“일 얘기 중이야. 운전기사 보낼게.”한유라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안 돼! 직접 와!”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그녀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평소에 한유라가 성질 부릴 때면 심강열은 웬만하면 맞춰주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도 그걸 알아주었다.하지만 오늘의 한유라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심강열은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고 소은호와 대화를 이어갔다.소은정은 한시연과 함께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고 전동하는 혼자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소은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시연이 그녀에게 귀띔해 주었다.“핸드폰이 울렸어요.”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유라네요. 술을 좀 많이 마신 것 같아요.”한유라- “심강열 지금도 거기 있어?”소은정- “응. 너도 와. 집사 아저씨가 새로운 쉐프를 초대했는데 솜씨가 장난 아니야.”평소였다면 한유라는 당장 달려왔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한유라- “나 안 가. 심강열한테 데리러 안 오면 여기서 안 나간다고 전해줘.”소은정은 웃으며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한유라가 좀 유별나긴 해도 평소에 이유 없이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녀는 심강열에게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유라 좀 데리러 가셔야겠는데요? 대표님이 안 오면 안 간대요.”소은호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성격하고는….”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심강열 앞이라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한유라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심강열은 미간을 문지르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요. 기사 보냈어요. 술 마시면 원래 애교에 억지부
한유라는 다가가서 상사의 신분으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이시준 씨가 술을 좀 많이 마셨네요. 돌아가서 푹 쉬어요.”이시준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억지를 부렸다.“저 더 마실 수 있어요. 실장님, 저랑 한잔만 더해요!”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시준 씨, 다음에 또 마셔요. 혼자만 마시고 여자친구 너무 안 챙긴 거 아니에요?”술 취한 이시준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곁눈질로 옆의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런데 그 여자는 갑자기 그를 뿌리치더니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저희 사귀는 사이 아닙니다.”이시준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어렵게 똑바로 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한유라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여자친구가 아닌데 이런 집회에 같이 나왔다고요? 이번 회식 가족만 데리고 오라고 말했는데. 이봐요, 아무리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너무 무시하면 안 돼요. 그쪽이 먼저 오고 싶다고 어필했으니까 이시준 씨가 당신을 데려왔겠죠.”여자는 적의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한유라를 쏘아보았다.한유라는 자기가 이겼다는 생각에 어깨가 올라갔다.뒤돌아서려던 순간에 핸드폰이 울렸다.심강열일 것이다.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이시준 씨 집까지 좀 부탁할게요. 난 남편이 데리러 와서 어쩔 수 없네요. 우리 남편이 그렇게 집착이 심하거든요!”말을 마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도 안 하고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저 도착했는데요. 입구에 있어요.”운전기사의 목소리였다.한유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심강열은 데리러 오지 않았다.그들이 통화하는 소리를 옆에 있던 여자도 들었다.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한유라를 바라보았다.한유라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저녁내내 화를 참고 있었는데 심강열이 거기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이다.차가 이미 도착했고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대기했다.한유라는 곧장 걸어가서 차에 올랐다.운전기사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눈치를 살피다가 멀지 않은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