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분위기가 깨지고 많은 사람이 자리를 떠났고 일부만 남아있었다. 성강희는 전동하와 함께 소은정이 서 있던 자리에 섰다. 고개를 숙여 바닥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이율을 경멸의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율이 전에 치근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여자도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율은 바닥에서 계속해서 엉엉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얼굴의 화장마저 눈물에 지워져 버렸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멍청하고 큰 실수를 했는지 알았나 보다. 소은정의 집안은 임진호의 집안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임진호조차 소은정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무슨 용기로 소은정을 다치게 한 거지? 눈앞이 깜깜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성강희는 차가운 표정으로 이율에게 다가가서 말했다.“미친 거야?”이율은 울음을 뚝 멈추고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성강희의 앞에 달려갔다.“강희야, 나 좀 도와줘, 제발! 은정 씨한테 한 번만 봐달라고 부탁해 줘!”성강희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봐달라고?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잘못했어, 순간 정신이 나갔나봐... 강희야, 정말 잘못했어!”이율이 울면서 말했다. 잘못한 것을 안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울부짖는 것이다. 성강희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죽일 듯이 차가운 침묵이 흐르고 이율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표정으로 말했다. “강희야, 은정이랑 친하잖아. 제발 부탁 좀 할게. 아까는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됐나봐, 고의는 아니었다고 제발 전해줘. 이번만 넘어가 주면 다시는 찾아갈 일도 없고 네 발목도 잡지 않을게.”성강희는 차가운 웃음을 짧게 내뱉더니 말했다. “무슨 자격으로 지금 협상하는 거야? 너정도 없어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니야. 단지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을 뿐이지.”말을 마친 성강희는 붙잡는 이율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돌아갔다. 이율은 그 자리에 앉아 더 소리치면서 울부짖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
소찬식은 전동하가 내려가 그 여자에게 손을 쓰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전동하가 무슨 일을 하든지 소찬식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자기 딸의 행복을 깨버리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손님들의 배웅을 끝낸 소은해는 올라가지 않고 소은호와 함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미친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 여자를 본 호텔 직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텔 앞에서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텔에서 그는 찰스라고 불렸다. 찰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황급히 옆에서 설명했다.“소대표님, 저의 불찰입니다. 파티 준비에 일손이 부족해 급하게 알바를 구했는데 이런 미친 여자가 들어와 은정아가씨를 해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소은호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소은해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미안하다면 다예요? 파티 처음 준비해요? 여기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요? 알바도 신원조사 똑바로 했어야죠!”이런 파티 준비 직원은 적어도 삼 년 이상 경력의 검증된 직원들로 파티 준비를 해야 했다. 전문 트레이닝을 받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해야하는 게 맞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삼 일 전에 모집해 온 여자라니? 찰스는 이마의 땀을 닦더니 연신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인사과에서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할 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SC그룹 분들이 오신다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더는 이런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은정 씨의 병원비는 저희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소은해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풉, 우리가 병원비 받자고 이래요? 누가 보면 우리 집안이 망하기라도 한 줄 알겠어요.”찰스의 얼굴이 더욱더 하얗게 질리고 어찌할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렸다. 만약 소은정한테 정말 무슨일이라도 생긴다면 호텔 측에서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찰스는 증오의
이율은 서럽게 흐느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뒤의 경호원이 그녀의 팔을 힘껏 잡았다.그녀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끝내 입을 열었다.“소은정 씨가 저와 강희 씨의 관계를 임진호한테 알렸어요. 임진호가 저를 찾아왔고 저는 임진호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게 너무 끔찍해서 은정 씨한테 복수하려고 마음먹었어요!”아래층으로 달려온 한유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은정이한테 덤빌 용기는 있고 임진호를 상대하기는 무서워? 너 바보야?”겁에 질린 이율이 흐느끼며 대꾸했다.“그냥 한순간 충동이었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전동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정말 그게 다야?”이율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시선을 거둔 전동하는 이 매니저에게 손짓하고는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이 매니저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착잡한 눈빛으로 이율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는 의견을 제기할 여유가 없었다.이 매니저 자신도 난감한 상황인데 당연히 소씨 가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다급히 뒤쪽으로 달려갔다.그가 뭘 하려는지 모르는 이율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애원했다.“이제 저 좀 풀어주세요. 제가… 은정 씨한테 가서 사과할게요!”소은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꿈 깨! 평생 은정이랑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너 같은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내 동생을 만나?”그리고 3분 뒤.이 매니저는 밖에서 커다란 박스를 들고 왔다. 박스 안에는 빈 병이 잔뜩 들어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뒤에는 또 누군가가 박스 하나를 더 들고 들어왔는데 무게가 좀 있어 보였다.이율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리고 눈빛은 공포로 가득 찼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화가 난 사람은 가장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매너 좋고 자상하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하지만 이율은 겉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전동하는 오싹한 눈빛으로 이율을 노려보
그렇게 1분이 또 지났다.인내심을 상실한 남자는 고개를 들고 그녀는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선택하기 싫다면 내가 대신 선택해 주지.”이율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선택할게요!”그녀는 절망한 목소리로 절규하듯 소리쳤다.“술… 술 마실게요!”이 박스에 든 술을 다 마시면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었다.하지만 다른 박스에 든 빈 병으로 머리를 친다면 완전히 죽은 목숨이었다.두렵고 혼란스러웠지만 이율은 조금은 쉬운 길을 택했다.더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그녀는 다가가서 양주 뚜껑을 따고 입에 털어 넣었다.알코올의 자극적인 향기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왔다.하지만 냉랭한 시선을 마주하자 토해낼 용기가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한 모금, 또 한 모금 술을 삼켰다.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가엾게 느껴졌다.양주 두 병이 비워졌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배가 불러서 더 마시기 힘들었다.행동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그녀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아서 울음을 터뜨렸다.전동하는 옆에 있는 이 매니저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사람 불러서 좀 도와줘. 오늘 밤 안에 다 마실 수 있도록.”그 말을 들은 이 매니저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렸지만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다 이 여자가 자처한 거야.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려서 우리까지 고생시키네!’그들은 이제 이율에게 그 어떤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겁에 질린 이율이 입술을 움찔거리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사람이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잡고 양주를 그녀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었다.소은호와 소은해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섰다.그들은 전동하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그리고 이때, 밖에서 차량이 들어왔다.소리를 들은 소은호는 전동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은정이 안고 내려와.”전동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나머지 사람들도 전동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거의 의
소은호는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난 전혀 놀랍지 않던데? 전씨 가문 같은 지옥에서 역전승을 이뤄낸 사람이야. 처음부터 보통내기가 아니었다고. 만약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나약하고 무능한 인간이었으면 아무리 은정이를 잘 챙긴다고 해도 나랑 아버지가 결혼까지 동의하지는 않았을 거야.”그 말을 들은 소은해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그는 약간 짜증난 말투로 말했다.“그러니까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다는 거네? 그 자식 여태 연기했던 거였어?”소은해는 담담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연기했다고 볼 수는 없지. 그냥 사람을 편하게 대해줘야 막내가 좋아하니까.”소은해는 약간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로 전동하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어 버렸다.‘나만 이게 충격 받았다니!’그 뒤로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이걸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사실 전동하가 좀 달라 보이긴 했다.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소은정이 사람들의 괴롭힘을 당할 일은 없어졌으니.병원에 도착한 전동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깨었다가 다시 잠드는 상태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그날 밤, 아무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김하늘은 새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갓난아기는 한참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소은정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이틀이 지난 뒤의 오후였다.자극적인 소독약 냄새에 그녀는 눈을 떴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이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색 커튼이었다.밝은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서늘한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잠을 자는 동안 긴 꿈을 꾸었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유럽 거리를 걷다가 총격사건에 휘말린 일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그녀는 중간에 길을 여러 번 잘못 들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아름다웠고 만족스러웠다.처음에 마이크를 구해서 맺어진 인연이
병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들은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녀는 시선을 살짝 떨구고 고개를 끄덕였다.의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외부적인 충격으로 기억을 회복한 케이스로군요. 가벼운 뇌진탕이 있긴 하지만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전동하를 제외한 병실의 모두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이 혼수상태에 빠진 이틀은 의료진에게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전동하를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동자는 고요해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안쓰러운 걸까, 아니면 아쉬워하는 걸까?사실 소은정에게는 다소 잔인한 기억들도 있었다. 그는 그녀가 기억을 잃은 채로 살아갈지라도 그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가 기억을 회복했다고 했을 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기억을 되찾은 지금도 예전처럼 아무 고민도 없이 웃을 수 있을까?의사들이 나가고 소은정은 그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좀 괜찮아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기억났어요.”전동하는 어두워진 눈빛으로 말했다.“사실 영원히 기억을 되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소은정은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당신과의 추억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잖아요.”전동하는 흠칫하며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소은정의 눈시울이 빨개졌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봐봐요. 난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을 사랑하게 됐잖아요. 사실 속으로 자랑스럽죠?”전동하가 움찔하더니 더 힘주어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녀가 지금처럼 명확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가 줄곧 기대하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그 한마디 말은 봄바람처럼 초조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은정 씨, 영원히 내 옆에 있어요. 알았죠?”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며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조심스러운 행동에 소은정은 울컥했다.그녀
소은해는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집에 전화해서 가지고 오라고 할게. 기쁜 소식도 알릴겸.”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되돌아온 그는 전동하를 바라보며 말했다.“매제도 나가서 뭐라도 좀 먹어. 근처에 싱가폴 레스토랑 생겼던데 맛있다더라!”전동하는 고개를 흔들었다.“저는 배 안 고파요.”소은해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이틀을 굶었는데 배가 안 고프다니?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소은정이 전동하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그 옆에 죽집이 있는데 거기 죽 맛있어요.”전동하는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먹고 싶어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사러 갔다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전동하는 그녀에게 이불을 여며준 뒤, 안심하고 밖으로 나갔다.소은해는 건들거리며 동생의 곁에 다가와서 앉았다.그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소은해는 표정을 잘 숨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전동하가 배 안 고프다고 했을 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소은정이 눈을 감으며 물었다.“오빠, 나한테 할 얘기 있어?”소은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마주 비볐다.“막내야, 내가 이간질하는 건 아닌데 말하지 않고 못 참겠어. 네 남편, 그러니까 내 매제는 보이는 것처럼 자상한 사람이 아니야! 너한테 술병 던진 여자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아마 그 여자는 지금쯤 죽는 게 낫다 싶을 거야.”소은정은 눈을 깜빡이며 살짝 인상을 썼다. 알바생 옷을 입고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그리고 이율의 얼굴도 떠올랐다.사실 소은정은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소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런 여자를 상대로 다쳤다니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그 여자 지금 어디 있어?”소은정은 몸이 다 나으면 한바탕 복수해야겠다고 다짐했다.소은해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병원에 있어. 바로 이 병원이야.”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소은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번 사건을 계
소은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생의 반응을 살폈다.이럴 리 없는데!“넌 놀랍지도 않아? 평소의 전동하가 했을 법한 일이 아니잖아!”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놀라운데? 원래 이래야 하는 거잖아!”소은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나만 이게 놀라운 거야?’소은정은 오빠를 흘기며 말했다.“오빠는 연예계 생활하면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어. 사람이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내가 내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결혼한 줄 알아? 나한테 전동하 씨는 누가 뭐래도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야. 그가 다른 사람에 어떻게 했는지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사실 결혼하기 전, 소찬식과 소은호는 소은정과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전동하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가 어떤 사람이든 소은정이 사랑할만한 사람인 건 확실했다.소은해가 입술을 깨물며 백기를 들었다.사실 전동하의 행보가 조금 놀라웠을 뿐이다.소은정은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과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물었다.소은해는 상세하게 대답했다. 회사 상황을 들은 소은정은 인상을 쓰며 잔소리를 퍼부으려다가 그만두었다.소은해가 회사를 말아먹지 않고 이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은호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고 전동하가 안으로 들려왔다.그녀는 다시 전화를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전동하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많이 배고플까 봐 빨리 해달라고 했어요. 따듯할 때 먹어봐요.”그가 조심스럽게 도시락통을 열자 해물죽의 향긋한 향기가 병실에 풍겼다. 소은정은 배고픈 나머지 군침을 꿀꺽 삼켰다.하지만 금방 의식을 회복한 뒤라 몇 숟가락 먹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다음 날, 그들은 퇴원하기로 했다.소찬식은 새봄이와 함께 그녀를 데리러 병원에 왔다.소은정은 자신의 아이를 자세히 살폈다. 가슴이 뭉클했다.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잊을 수 있었을까?그들은 소은정의 본가로 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