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그녀는 그의 외모가 자신의 취향이라고 말했다. 전동하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그리고 그녀의 취향은 기억을 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첫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소찬식은 두 사람 사이에 변한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너 병상에 누워 있을 동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특히 동하는 계속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어. 잠도 제대로 안 자고. 힘든 때일수록 진심이 보인다고 하잖아. 너 기억을 잃었다고 우리 사위 모른 척하면 안 돼!”소찬식은 소은정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으며 말했다.소은정은 전동하와 소찬식을 번갈아보다가 입을 다물었다.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장인어른, 걱정하지 마세요. 은정 씨 곧 기억을 되찾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은정 씨 그런 사람 아니에요.”소찬식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긴 하지.”거실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아무도 소은정의 기억상실을 슬퍼하지 않았다.병상에 혼수상태로 누워 있을 때보다 그녀가 깨어났다는 사실이 기뻤다.소은정은 텅 빈 자신의 품을 바라보며 약간 아쉬움을 느꼈다.하지만 소찬식은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겼다.베이비시터가 웃으며 말했다.“아기가 울 때까지 분유를 기다렸다가 주면 안 돼요. 안 좋은 습관이거든요. 과학적인 수유 방법 때로 시간 정해서 수유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아기도 정서적으로 안정되거든요.”전동하는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마이크보다 더 사랑스러웠다.사실 조금 더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태어나자마자 관심을 주지 못하고 소찬식에게 모든 걸 맡겨버려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출산하기 전에 가기로 했던 산후조리원도 가지 못했다. 베이비시터 역시 소찬식이 직접 연락해서 고용했다.그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소은정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아이가 떠난 자리를 미련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어색해서 그런지 말은 하지 않았다.소찬식은
방은 소은정이 예전에 쓰던 방이었다. 전동하도 소은정을 따라 이곳에 자주 왔었기에 익숙했다.소은해는 미리 청소해둔 방에 짐을 옮겨놓았다. 소은정이 평소 좋아하는 디퓨저를 가져다 놓아 방 안에서는 청아한 향기가 풍겼다.전동하는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은 뒤,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배 안 고파요?”소은정은 고개를 흔들었다.“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소은정은 또 고개를 흔들었다.그는 약간 절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한테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요. 불안해서 미치겠어요.”그는 혹시라도 소은정이 자신을 떠날까 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항상 보이던 자신감은 그녀가 그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보일 수 있었다.소은정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우린 어떻게 만났어요?”전동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한숨을 쉬었다.“기억상실이 일시적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난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걸요. 좀 꿈만 같아요.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남편과 아이가 생겼어요. 너무 신기하잖아요!”전동하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부드럽게 말했다.“은정 씨가 불안감을 느끼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게 현실 맞아요. 비록 은정 씨는 나를 잊어서 조금 슬프지만 안 좋은 기억도 같이 잊었다면 나쁘지만은 않죠.”“안 좋은 기억이요?”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원하는 건 모두 가졌다. 그런 그녀에게 안 좋은 기억이라니?전동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고요.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고 했죠?”그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그녀에게 박수혁이라는 존재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가능하다면 그는 그녀가 그 사람을 완전히 잊기를 바랐다.안 그러면 그녀는 또 한번 아픈 기억을 더듬어야 할지도 모른다.이건 너무 잔인했다.소은정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만난 남자는 많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닿았다. 전동하의 진심 어린 미소를 보자 소은정은 가슴이 울컥했다.그녀는 재빨리 손을 거두고는 시선을 피했고 전동하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잠시 후, 고용인이 아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아가씨, 회장님께서 아이가 울지 않을 때는 엄마랑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게 좋다고 해서요.”말을 마친 고용인은 아이를 전동하에게 넘겼다.전동하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 아까보다는 확연히 절제된 동작이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러고는 자세를 숙여 소은정에게 아이를 보여주며 말했다.“애가 은정 씨를 많이 닮았어요.”소은정은 아이를 보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된 걸까?그녀는 손으로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이목구비는 정말 사랑스러웠다.하지만 얘가 정말 나를 닮았나?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았다.그녀는 입을 삐죽이며 그에게 말했다.“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얘보다는 훨씬 예쁘죠!”소찬식은 항상 그녀에게 엄마와 아빠의 예쁜 것만 빼다 닮았다며 최고 미녀라고 칭찬했다.하지만 지금 이 아기는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자신과 견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전동하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물론이죠. 은정 씨가 제일 예뻐요.”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다시 아기를 바라보았다.옆에 있던 고용인도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꼬마 공주님은 제가 봤던 갓난아기 중에 가장 예쁘게 생겼어요. 태어날 때 피부가 쭈글쭈글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하얗게 변하더라고요. 앞으로 남자 좀 울리겠어요.”소은정은 손으로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소리가 싫지 않았다.전동하는 그녀의 옆을 계속 지키려 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소은정은 어서 가서 쉬라고 그를 쫓아냈다.소찬식의 말대로 병원에서 그녀를 간호하느라 아기 얼굴도 못 봤다는 사실이 은근히
소은정의 질문에 두 친구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소은정은 자신을 대하는 전동하의 자상한 태도로 어느 정도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김하늘과 한유라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웃었다.“그건 의심하지 마. 천하의 소은정이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했겠어?”김하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러니까. 전동하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추억을 잊었으면 다시 연애느낌 가져보는 것도 괜찮아.”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소은정이 가지고 있던 약간의 불안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나 이 사람하고만 연애했어?”그러자 두 친구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들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침실에서 쉬고 있던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잠 자다가 일어났는지 전동하는 약간 몽롱한 상태였다.그는 거실에 모여 앉은 여자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가가서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안 피곤해요? 집사님한테 디저트 좀 부탁했어요. 난 회사에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하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요.”그 모습을 본 한유라는 하고 싶었던 말을 도로 삼켰다.소은정과 꽃미남들의 스캔들, 그리고 박수혁과 있었던 과거는 얘기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기억하지 못해도 나쁠 건 없었다. 다시 기억난다고 해도 달리지는 건 없으니 그녀가 기분이 좋은 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소은정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전동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두 친구한테 목례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그가 나가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친구들을 재촉했다.“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야지. 나 다른 남자친구는 안 사귀었어?”김하늘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한유라가 말했다.“정말 꿈도 야무지셔. 전동하 씨 한 명으로 부족해?”김하늘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아는 한, 전동하는 최고의 연인이었다.그는 비록 소은정 앞에서 약간 비굴할 정도로 그녀에게 약
소은정은 원래 미남이나 미녀를 좋아했다.하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친 상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복잡한 감정을 담은 눈빛이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거부반응을 느끼고 재빨리 뒤돌아섰다.어쩐 일인지 저 잘생긴 남자가 거슬리고 거북하게 느껴졌다.그런데 몇 걸음 가지도 못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소은정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고 뒤에는 아까 본 그 남자가 서 있었다.“은정이 너 맞구나. 저기….”소은정은 재빨리 손을 빼고는 차갑게 물었다.“당신 누구야?”그녀는 모르는 사람이 접근해 오자 더욱 큰 불쾌감을 느꼈다.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치 거대한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남자의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며 말했다.“대표님, 회의 곧 시작합니다. 아… 소은정 씨.”그 경호원은 두 사람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소은정은 인상을 쓰며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모르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이제 와서 혼자 나온 것을 조금 후회했다.그래서 인상을 쓰며 말없이 걸음을 돌렸다.남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은정아, 아직도 내가 미워?”그는 그녀가 바라던 대로 그녀의 세상에서 사라졌다.하지만 날이 거듭할수록 괴로움에 울부짖었고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했다.그리고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고 미련은 커져만 갔다.그녀를 놓아줬지만 잊는 것은 불가능했다.소은정은 그를 힐끗 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글쎄? 그쪽이 느끼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비록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에게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이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느낌이었다.소은정의 말투가 너무 차가웠던 건지,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소은정은 이 기회를 틈타 그곳을 빠져 나왔다. 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뒤따라가려고 했지만 이한석이 그를 말렸다.“대표님, 퇴원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더 자극하면 안 좋을 것 같아
이한석의 말이 끝나자 차 안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박수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눈빛은 혼란스러웠다.잠시 후, 그는 하얗게 질린 입술로 입을 열었다.“그 여자가 나를 잊었다고?”박수혁은 누군가가 둔기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고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하지만 가슴의 통증은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졌다.조금 전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보였던 차가운 눈빛과 태도가 떠올랐다.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 박수혁이라는 사람을 완전히 도려내고 새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그는 어떤가?그에게 남은 건 끝없는 후회와 절망뿐이었다. 이게 그녀를 저버린 벌일까?서로 사랑했던 기억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녀가 했던 네가 그렇게 느끼면 그런 거라던 말이 그를 못 견디게 만들었다.조금 전까지도 그는 그녀가 자신을 잊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그래서 그녀의 차가움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그런데 완전히 잊었다니!그는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으며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혔다.그녀의 말이 저주처럼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물론 그녀가 기억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겁하게도 용서를 바라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회사 일을 핑계로 멀리서 날아왔다.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느낀 허전함과 아픔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과거가 진짜 다 사라졌고 박수혁은 소은정의 인생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박수혁은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회도 안 주고 다 빼앗아갈 수 있나 싶었다.운전기사와 이한석은 서로 눈치만 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박수혁은 침묵 속에서 홀로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이한석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해외로 출국하면서 소은정과 전동하를 못 보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안타
소은호는 전동하만 들을 수 있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전동하는 눈썹만 살짝 치켜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물론 소은해 역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지만 소은호에 비하면 아직도 거리가 있었다.그러니 소은호가 이런 말을 해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게다가 그냥 지나가는 농담일 뿐이었다.소은해는 소은정과 가장 잘 놀아주는 오빠였다. 그와 같이 다니면 소은정도 즐거워했기에 전동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두 사람은 투자건에 대해 의견을 교류한 뒤, 사람들과 인사하러 다녔다.이 파티가 중요한 이유는 신도시 개발 추진 프로젝트에 공개 되지 않은 투자항목이 있기 때문이었다. 군수물자 관련 사업이었다.이윤이 꽤 남는 사업이었고 정계 인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정치인들이 힘을 실어주면 그 기업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소은호가 바쁜 일을 제쳐두고 직접 참석한 이유이기도 했다. 기회만 잘 잡으면 SC그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소은호는 중요인사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전동하를 바라보았다. 대범하면서도 예의 바른 몸짓과 말투,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그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에 만났던 누군가가 떠올랐다.그는 성격이 괴팍하고 차가워서 사람들에게 중압감을 주는 인물이었다.전동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하지만 그래서 소은정을 시름 놓고 그에게 시집 보낸 이유이기도 했다.소은호가 천천히 전동하에게 다가가자 사람들은 눈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전동하는 술은 별로 마시지 않았고 투자 항목에 큰 관심을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소은호는 술잔을 내려놓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흥미가 당기는 항목 있어?”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제가 관심을 가진 항목은 다른 사람들도 눈독들이고 있어서요.”관심이 있다고 했지 꼭 투자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닌 듯했다.“매제도 혹시 그 소문 듣고 왔어?”공개되지 않은 사업, 정계
소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동하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그러니까 태한그룹은 이번 경쟁에서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다.박수혁이 여기 나타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전동하는 사람들과 섞여 있는 박수혁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또 돌아왔다고?‘정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나? 아주 대범하게 귀국하셨네. 핑계거리가 있다고.’하지만 아무도 그가 저질렀던 짓을 잊지 않았다.소은호는 그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막내는 아직 옛날 일 기억하지 못하니까 사람들 입단속 잘 시켜야겠어.”전동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어차피 그 성격에 남이 뭐라고 해도 안 믿을 거예요.”소은정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이다.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에게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둘은 점점 사이가 좋아지고 있었다.그가 조심스럽게 스킨십을 시도했을 때도 거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박수혁에 관한 기억을 잃은 그녀는 전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그녀의 요즘 루틴은 그와 닭살행각을 벌이거나 아기와 놀아주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쇼핑하고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다.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전혀 영향이 없었다.병원에서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했고 한 달 정도 지나면 회복할 거라고 했는데 아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소찬식도 지금 이대로가 더 좋다고 말했다.예전의 소은정은 일을 너무 사랑해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낄 때까지 일하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안타까웠다.요즘은 집에서 아빠와 이거 사고 싶고 저거 사고 싶다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좋았고 소찬식은 무척 그런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어차피 딸이 원하는 건 다 사줄 수 있었으니까! 그는 그걸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전동하가 핸드폰을 꺼내자 소은정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언제 끝나냐는 문자였다.그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오늘은 어디 가서 놀았어요?”소은정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손에 술잔을 든 박수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