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린 심강열은 미간을 마사지하며 말했다.“기분 좀 나아졌어?”한유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공들여서 피부관리를 했더니 아까보다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하지만 굳이 야심한 밤에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그녀가 뒤돌아서는데 심강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한유라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당신은 피곤하지도 않아?”심강열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턱을 살짝 치켜올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질 자신 없으면 자극하지 마.”한유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물었다.“나랑 무슨 대화를 하고 싶은 거야?”심강열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그녀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오늘 기분 나쁜 일 있었어?”한유라는 눈을 깜빡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아니. 그런 거 없는데?”“거짓말하지 마. 우리 사이에 숨기는 거 없기로 했잖아. 할 얘기 있으면 솔직하게 얘기해.”말은 그렇게 했지만 화가 난 말투는 아니었다.많이 피곤하지만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한유라는 시선을 떨구고 잠시 침묵하다가 진지한 눈빛으로 그와 시선을 맞췄다.“조희찬 씨도 본사를 떠났는데 나는 언제 본사에서 내보내 줄 거야?”그 말에 심강열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디로 가고 싶은데?”한유라는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심해그룹 안주인이 평생 당신 비서로 살 수는 없잖아? 본사에 출근하기로 결정한 것도 일개 비서에 만족하려고 온 게 아니야. 어떻게 생각해?”심강열은 잠시 침묵하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생각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비서 일이 지겨워?”“지겨운 건 아니야. 그냥 지금 위치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서 배운 경험으로 내가 유한그룹을 물려받기에는 부족해. 당
심강열은 턱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은 뒤, 어깨를 으쓱했다.“뭐라 반박할 수가 없네. 알았어. 내가 좀 소홀했네. 당신이 그렇게까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 당신이 나보다 낫네.”한유라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심강열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어떤 위치가 당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해?”가장 중요한 문제였다.한유라는 잠시 주저하다가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기획본부장이나 이사장 정도?”그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심강열은 별로 놀라거나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침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렵게 용기를 냈던 한유라에게는 다행이었다.그가 그녀의 요구를 너무 지나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프로젝트를 직접 맡아서 진행하고 싶어?”별로 내키지 않은 말투였다.그녀가 과거 유한그룹에서 맡았던 프로젝트는 부모님 도움을 받았거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게 더 많았다. 실질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했다.하지만 한유라는 억울했다.남자가 자신을 얕보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도 했다.한유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안 돼?”심강열은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자. 마침 기획실에 꼴 보기 싫은 놈 한 명이 있었는데 나도 참을 만큼 참았거든. 당신은 기획실장으로 취임해. 내일 임원회의에서 발표하도록 할게.”한유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렇게 쉬운 일이었다고?이렇게 쉽게 동의한다고?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냥 찔러본 말이었는데 바로 기획실장으로 취임하라고?”사실 그녀도 자신의 능력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부러 과장해서 말한 부분이 있었다.유한그룹에서 기획실장을 맡으라고 했다면 어차피 부모님
심강열은 의아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평소에는 몇 번이나 불러도 일어나지 않던 한유라가 이 시간에 어디로 간 걸까?놀란 그는 재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거실로 나갔지만 집 안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이상하네?’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그녀는 뭔가 바쁜 일이 있는지 말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오늘은 나 혼자 출근할게. 당신은 천천히 와. 지각하지 말고.”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심강열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온 그는 평소처럼 꾸물거리던 그녀가 없으니 약간 허전함을 느꼈다.그래도 평소와 같은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지나가던 직원들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 했다.심강열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사무실로 올라가자 서류를 정리하던 남자 비서가 그를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심강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해.”오늘따라 꾸물거리는 비서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어제 한유라를 대하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남자 비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에게 말했다.“대표님, 한유라 씨… 그러니까 사모님께서 아침부터 오셔서 짐을 챙겨서 나가더라고요. 여기서 더는 일 안 한다면서요.”한유라가 여기 입사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서실 직원들과는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처음에는 약간 갈등도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오해가 잘 해결되었고 한유라도 그들에게 종종 밥을 사주거나 간식을 사주는 일이 있었기에 대부분 비서들이 그녀를 좋게 바라보고 있었다.돈도 많고 직원들에게 통이 큰 사모님을 누가 싫어할까?그래서 한유라가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짐을 싸는 것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사전에 인사이동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없었고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웠다.심강열은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조금 전보다는
질문세례를 받은 이 비서는 아까 사무실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고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저도 몰라요!”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회의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회의도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로 회의를 소집했는지 궁금했다.심강열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한유라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은 대부분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했었기에 한유라의 신분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녀가 임원회의에 참석한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다.하지만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한유라가 경영에 직접 개입하게 될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그들의 생각을 모르는 심강열은 자리에 앉자 마자 입을 열었다.“유 실장님, 저번에 보니까 장부에 돈이 좀 비던데 다 채워 넣었어요?”그 말을 들은 모두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유 실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저기… 대표님….”옆에 있던 다른 임원이 책상을 치며 추궁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돈이 빈다니요?”심강열이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거론했다는 건 액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회사에 그만큼 큰 손실을 안겼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러니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게다가 기획실 유 실장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도 꽤 있었다.“장부에서 돈이 새어 나갔다는 건가요?”“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한유라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사람들이 이 사건에 분노할수록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던 위치로 갈 수 있었다.그녀는 심강열을 못내 감탄했다. 만약 그녀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조르지 않았다면 유 실장이라는 사람을 그가 얼마나 더 지켜볼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가 너그러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여우 목을 자를 적당한 때를 노리고 있다는 게 정확했다.이렇게 갑자기 공개해 버리면 유 실장에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유 실장의
유 실장은 흙빛이 된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이미 가진 돈은 다 잃었고 더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쪽 담당자가 저한테 괜찮은 투자 항목이 있다면서 10일 이내로 두 배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고 했어요.”한 주주가 어이가 없어 한마디 했다.“유 실장 이미 2주가 지났어. 애도 아니고 그런 말에 속아? 당신 합격시킨 면접관이 누구야? 도대체 이런 멍청한 자식이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왔지? 쓰레기 같은 놈!”유 실장은 여전히 간절한 표정으로 심강열에게 애원했다.“대표님, 제발 경찰에 신고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돈을 돌려놓을 테니 선처해 주세요.”심강열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유 실장님 정말 순진하시네요. 400억이라는 돈이 도박장에 흘러 들어갔는데 무슨 수로 돌려받아요? 아, 물론 돌려받을 수는 있죠. 하지만 유 실장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겁니다.”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차가운 표정으로 유 실장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이따가 형사들이 올 거예요. 조사에 협조하길 바라죠. 돈을 순조롭게 돌려받으면 유 실장님이 회사를 위해 2년이나 일한 정을 봐서 손해배상은 청구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질문이었다. 차갑고 단호한 표정과 말투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그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많이 봐준 셈이었다.유 실장이 벌인 짓에 비하면 굉장한 은혜를 베풀었다고 볼 수 있었다.회사에서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라도 진행한다면 고작 몇 억으로 합의를 볼 수 없는 사건임은 분명했다.이미 빈털터리가 된 유 실장이 무슨 돈으로 합의금을 지불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이미 아내와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만약 그가 빚을 떠안은 상태로 이혼 소송까지 진행한다면 유 실장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심강열이 조금 단호해 보여도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꽤 관대하게 처리한 거라 볼 수 있었다.한유라는 턱을 괴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유 실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심강
그러자 또 다른 주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다.“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젊은 직원들 중에서 일 잘하는 한 명을 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진 부장은 최근에 뚜렷한 성과도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기획실장 자리에 올리면 회사 망하는 건 시간문제예요!”“저는 그 의견에 반대예요. 어떻게 경력도 길지 않은 젊은 사람을 기획실장 자리에 앉힐 수 있죠? 안전하게 가는 게 좋아요. 진 부장은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안 될 게 뭐가 있어요?”“저는 주 과장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젊고 능력도 출중하고요.”“주 과장은 당신 사위니까 대놓고 밀어주는 거겠지!”심강열은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주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오히려 한유라는 전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영감들의 싸움을 지켜봤다.심강열이 차가운 표정으로 책상을 두드렸다.“그만하시죠?”그의 말 한마디에 얼굴 붉혀가며 싸우던 사람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심강열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유 실장 뒤를 이을 사람은 이미 결정했어요. 한유라 씨가 그 일을 맡아서 할 거예요. 오늘 부로 한유라 씨를 새로운 기획실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이의 있나요?”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한유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한유라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서서 꾸벅 인사했다.“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대부분 사람들은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심강열이 결정한 일인데 괜히 토를 달았다가 불똥이 튈까 봐서였다.그런데 나이 지긋한 한 주주가 나이를 믿고 입을 열었다.“아무리 사모님이라지만 기획실 경험도 없는데 좀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사모님은 유한그룹 사람이잖아요.”심강열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내 집사람이니까 일을 믿고 맡기는 거죠. 그렇게 보면 하 이사님은 제 외삼촌이잖아요. 인사발령에 이의 있으면 사표 던지고 나가시면 됩니다.”심강열은 한 번도 임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하 이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
하 이사는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하시율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렇게 하자. 내가 나중에 강열이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잘 얘기할게. 나 지금 급하게 볼일 보러 나온 거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재수 없어!”그녀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세 친구에게 다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카드게임이나 계속하죠.”하시율의 맞은편에는 한유라의 모친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하시율에게 물었다.“정말 괜찮아? 근데 우리 사위가 뭘 어쨌다고 너한테 일러바친대?”하시율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니까. 아직도 강열이를 어린애로 본다니까. 나는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는데 말이야. 이렇게 일러바친다고 자기한테 좋을 게 전혀 없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인 거지.”한유라의 모친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혹시 우리 유라 또 사고친 거 아니야?”하시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말 하지마!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착한데. 회사에서 일을 제일 열심히 해. 오늘 아침에 아침 챙겨주려고 갔는데 애가 그 새벽에 출근을 하더라고. 우리 아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거 같아!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애를 만나?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강열이에 비하면 유라가 아깝지!”한유라 모친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혹시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사람 우리 딸 맞아?”그러자 하시율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내가 설마 며느리도 못 알아보겠어? 사실 여자가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맞지! 나는 며느리가 아주 자랑스럽단다!”한유라 모친은 약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시율과 맞장구를 쳤다.“유라가 똑똑하고 활발하기는 하죠. 너무 애한테 엄격하게 하지 말아요. 유라만한 애 없어요.”“그러니까요. 요즘 재벌 2세들이
한유라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 난처해질까 봐 그래.”걱정하는 말투였다.심강열은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난처해질 일 없어. 당신은 내 아내야. 당신을 어떤 직책에 올리든 그건 내 자유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한유라는 그 말에 웃고 싶지는 않았지만 심강열의 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따뜻해졌다.여자의 마음을 너무 잘 배려한 답변이었다.‘그래. 내 남편이 심강열인데 뭐든 못하겠어?’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럼 나 이제 회사에서 종횡무진하는 거야?”심강열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한유라는 활짝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 여보!”심강열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주었다.‘정말 방심할 수 없다니까.’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밖에서 누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대표님, 형사가 도착했습니다.”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는 그들을 보고 얼굴을 확 붉히며 다급히 문을 나섰다.“저…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정말이에요!”남자 비서는 당장이라도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사무실 안에도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심강열은 굳은 표정으로 한유라를 풀어주었다.“조희찬을 내보냈더니 비서실 애들이 군기가 없어.”오히려 한유라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포옹했을 뿐이잖아.”심강열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소파 옆에 놓인 그녀의 짐 박스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따가 기획실장 사무실 비워지면 사람 불러서 청소할 테니까 당신은 조금 늦게 들어가.”한유라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대표님의 배려에 감동했습니다!”심강열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밖으로 나갔다.한유라는 얼굴에 열기가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갔다.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