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세례를 받은 이 비서는 아까 사무실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고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저도 몰라요!”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회의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회의도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로 회의를 소집했는지 궁금했다.심강열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한유라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은 대부분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했었기에 한유라의 신분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녀가 임원회의에 참석한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다.하지만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한유라가 경영에 직접 개입하게 될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그들의 생각을 모르는 심강열은 자리에 앉자 마자 입을 열었다.“유 실장님, 저번에 보니까 장부에 돈이 좀 비던데 다 채워 넣었어요?”그 말을 들은 모두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유 실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저기… 대표님….”옆에 있던 다른 임원이 책상을 치며 추궁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돈이 빈다니요?”심강열이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거론했다는 건 액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회사에 그만큼 큰 손실을 안겼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러니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게다가 기획실 유 실장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도 꽤 있었다.“장부에서 돈이 새어 나갔다는 건가요?”“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한유라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사람들이 이 사건에 분노할수록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던 위치로 갈 수 있었다.그녀는 심강열을 못내 감탄했다. 만약 그녀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조르지 않았다면 유 실장이라는 사람을 그가 얼마나 더 지켜볼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가 너그러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여우 목을 자를 적당한 때를 노리고 있다는 게 정확했다.이렇게 갑자기 공개해 버리면 유 실장에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유 실장의
유 실장은 흙빛이 된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이미 가진 돈은 다 잃었고 더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쪽 담당자가 저한테 괜찮은 투자 항목이 있다면서 10일 이내로 두 배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고 했어요.”한 주주가 어이가 없어 한마디 했다.“유 실장 이미 2주가 지났어. 애도 아니고 그런 말에 속아? 당신 합격시킨 면접관이 누구야? 도대체 이런 멍청한 자식이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왔지? 쓰레기 같은 놈!”유 실장은 여전히 간절한 표정으로 심강열에게 애원했다.“대표님, 제발 경찰에 신고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돈을 돌려놓을 테니 선처해 주세요.”심강열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유 실장님 정말 순진하시네요. 400억이라는 돈이 도박장에 흘러 들어갔는데 무슨 수로 돌려받아요? 아, 물론 돌려받을 수는 있죠. 하지만 유 실장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겁니다.”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차가운 표정으로 유 실장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이따가 형사들이 올 거예요. 조사에 협조하길 바라죠. 돈을 순조롭게 돌려받으면 유 실장님이 회사를 위해 2년이나 일한 정을 봐서 손해배상은 청구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질문이었다. 차갑고 단호한 표정과 말투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그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많이 봐준 셈이었다.유 실장이 벌인 짓에 비하면 굉장한 은혜를 베풀었다고 볼 수 있었다.회사에서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라도 진행한다면 고작 몇 억으로 합의를 볼 수 없는 사건임은 분명했다.이미 빈털터리가 된 유 실장이 무슨 돈으로 합의금을 지불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이미 아내와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만약 그가 빚을 떠안은 상태로 이혼 소송까지 진행한다면 유 실장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심강열이 조금 단호해 보여도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꽤 관대하게 처리한 거라 볼 수 있었다.한유라는 턱을 괴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유 실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심강
그러자 또 다른 주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다.“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젊은 직원들 중에서 일 잘하는 한 명을 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진 부장은 최근에 뚜렷한 성과도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기획실장 자리에 올리면 회사 망하는 건 시간문제예요!”“저는 그 의견에 반대예요. 어떻게 경력도 길지 않은 젊은 사람을 기획실장 자리에 앉힐 수 있죠? 안전하게 가는 게 좋아요. 진 부장은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안 될 게 뭐가 있어요?”“저는 주 과장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젊고 능력도 출중하고요.”“주 과장은 당신 사위니까 대놓고 밀어주는 거겠지!”심강열은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주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오히려 한유라는 전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영감들의 싸움을 지켜봤다.심강열이 차가운 표정으로 책상을 두드렸다.“그만하시죠?”그의 말 한마디에 얼굴 붉혀가며 싸우던 사람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심강열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유 실장 뒤를 이을 사람은 이미 결정했어요. 한유라 씨가 그 일을 맡아서 할 거예요. 오늘 부로 한유라 씨를 새로운 기획실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이의 있나요?”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한유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한유라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서서 꾸벅 인사했다.“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대부분 사람들은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심강열이 결정한 일인데 괜히 토를 달았다가 불똥이 튈까 봐서였다.그런데 나이 지긋한 한 주주가 나이를 믿고 입을 열었다.“아무리 사모님이라지만 기획실 경험도 없는데 좀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사모님은 유한그룹 사람이잖아요.”심강열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내 집사람이니까 일을 믿고 맡기는 거죠. 그렇게 보면 하 이사님은 제 외삼촌이잖아요. 인사발령에 이의 있으면 사표 던지고 나가시면 됩니다.”심강열은 한 번도 임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하 이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
하 이사는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하시율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렇게 하자. 내가 나중에 강열이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잘 얘기할게. 나 지금 급하게 볼일 보러 나온 거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재수 없어!”그녀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세 친구에게 다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카드게임이나 계속하죠.”하시율의 맞은편에는 한유라의 모친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하시율에게 물었다.“정말 괜찮아? 근데 우리 사위가 뭘 어쨌다고 너한테 일러바친대?”하시율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니까. 아직도 강열이를 어린애로 본다니까. 나는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는데 말이야. 이렇게 일러바친다고 자기한테 좋을 게 전혀 없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인 거지.”한유라의 모친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혹시 우리 유라 또 사고친 거 아니야?”하시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말 하지마!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착한데. 회사에서 일을 제일 열심히 해. 오늘 아침에 아침 챙겨주려고 갔는데 애가 그 새벽에 출근을 하더라고. 우리 아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거 같아!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애를 만나?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강열이에 비하면 유라가 아깝지!”한유라 모친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혹시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사람 우리 딸 맞아?”그러자 하시율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내가 설마 며느리도 못 알아보겠어? 사실 여자가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맞지! 나는 며느리가 아주 자랑스럽단다!”한유라 모친은 약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시율과 맞장구를 쳤다.“유라가 똑똑하고 활발하기는 하죠. 너무 애한테 엄격하게 하지 말아요. 유라만한 애 없어요.”“그러니까요. 요즘 재벌 2세들이
한유라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 난처해질까 봐 그래.”걱정하는 말투였다.심강열은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난처해질 일 없어. 당신은 내 아내야. 당신을 어떤 직책에 올리든 그건 내 자유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한유라는 그 말에 웃고 싶지는 않았지만 심강열의 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따뜻해졌다.여자의 마음을 너무 잘 배려한 답변이었다.‘그래. 내 남편이 심강열인데 뭐든 못하겠어?’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럼 나 이제 회사에서 종횡무진하는 거야?”심강열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한유라는 활짝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 여보!”심강열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주었다.‘정말 방심할 수 없다니까.’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밖에서 누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대표님, 형사가 도착했습니다.”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는 그들을 보고 얼굴을 확 붉히며 다급히 문을 나섰다.“저…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정말이에요!”남자 비서는 당장이라도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사무실 안에도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심강열은 굳은 표정으로 한유라를 풀어주었다.“조희찬을 내보냈더니 비서실 애들이 군기가 없어.”오히려 한유라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포옹했을 뿐이잖아.”심강열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소파 옆에 놓인 그녀의 짐 박스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따가 기획실장 사무실 비워지면 사람 불러서 청소할 테니까 당신은 조금 늦게 들어가.”한유라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대표님의 배려에 감동했습니다!”심강열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밖으로 나갔다.한유라는 얼굴에 열기가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갔다.문을
한유라는 굳은 표정으로 여직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여직원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얼굴까지 붉히며 말했다.“아까 사무실에서 그거….”그녀는 씩 웃고는 한유라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심 대표님이 참 엄격한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런 개방적인 면도 있는 줄 몰랐네요. 그런데 문 잠그고 하지 그랬어요. 회사에 소문이 다 났어요.”한유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결혼 전, 연애고수로 불리던 그녀는 어딜 가나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짖꿎은 장난에 응대했었다.그런데 같은 회사 동료 직원의 이 한 마디에는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당황스러웠다.“우리…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포옹 한 번 한 거죠!”그녀는 이를 악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여직원은 이해하니까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뭘 그렇게 쑥스러워해요? 어차피 두 분 결혼한 사이고 뭘 하든 나무랄 사람이 없어요. 부부가 짜릿함을 즐기는 거 우리도 이해해요!”한유라는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뭘 이해한다는 거지? 내가 심강열을 유혹한 것처럼 얘기하네? 그것도 사무실에서?’그녀는 벽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이상한 짓을 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아무리 설명해도 이미 쌓인 오해는 풀릴 것 같지 않았다.마치 일을 저지르고 변명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이었나 회의감이 들었다.업무 능력으로 인정받고자 한 회사에서 이런 스캔들이 나버렸으니 앞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그녀를 바라볼까?더 황당한 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사실이었다.여직원은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유 실장님 쫓겨나고 유라 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던데 그게 사실이에요?”한유라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여직원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났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듣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승진과 조금 전 자기들이 오해한 일을 연관 지어 생각한다는 건가?여직원은 그녀의 손
유 실장의 상태는 아까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변명도 포기했는지 물어보는 대로 털어놓고 있었다.형사의 질문은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유정한 씨, 불법도박시설 사장과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입니까? 거기 처음 갔을 때, 혼자 갔나요? 아니면 누군가를 따라 갔나요?”유 실장은 모든 걸 체념한 눈빛으로 심강열을 바라보았다. 처음 기획실장이라는 자리에 승진했을 때 다졌던 각오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짓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게 그 각오와 상반된 것들이었다.그리고 이제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혼자 갔습니다. 기획실장으로 승진하고 고객사와의 미팅이나 접대가 많았어요. 모두가 떠받들어 주니까 조금 들떴던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그날도 술에 취해 머리도 좀 식힐 겸 거리를 걷다가 한 건물 지하에 들어갔어요. 아마 화장실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고 거기가 불법 도박시설이라는 것을 알았죠.”유 실장은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말을 이었다.“그 뒤로는 뭐… 통제가 되지 않았죠. 처음에 돈을 많이 땄거든요. 그래서 거기 직원 추천으로 큰판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액수가 크니까 재미 있었어요. 그런데….”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건 함정이었고 그는 함정에 스스로 뛰어들었을 뿐이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여태 말이 없던 심경열이 입을 열었다.“그 사람들은 유 실장이 어디 출근하는지 알아요? 공금 횡령은 유 실장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거예요? 아니면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유도했어요?”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유 실장을 바라보았다.아마 형사들은 유정한이라는 남자가 단순히 도박에 빠져 공금을 횡령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심경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동종업계가 일부러 유 실장에게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심해그룹은 송화시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큰 자본으로 운영되고 있었기에 군침을 흘
형사들은 별거 아닌 것처럼 간단하게 이야기했지만 유 실장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돈을 추적해서 돌려받는다고 해서 그의 죄명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심강열이 그에게 관대한 것도 아직 돈을 돌려받지 못해서 그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유정한도 그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요구에 전적으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형사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사람들이 나가자 한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400억이라….”심강열은 못내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회사 운영에 신경 쓰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그가 어떤 말로 칭찬해 줄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저 돈이면 명품백을 몇 개나 살 수 있지?”심강열은 다시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가방 살 돈은 충분해.”한유라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가가서 그의 팔짱을 끼고 흔들었다.“우리 남편 부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고!”심강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유 실장 횡령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어?”심강열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난 이 사건 배후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유 실장을 조종했다고 생각했어. 유 실장이 맡은 이번 프로젝트는 아주 중요하거든. 투자금을 유 실장이 빼돌리고 누군가가 그 기회를 악용해서 우리 회사에 불리한 짓을 한다면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아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한유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착잡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그러니까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거네? 그런데 왜 나를 위해….”그녀가 갑자기 승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그가 계획을 바꿔 유 실장을 내쳤다는 얘기였다.‘모든 게 나를 위해서였다고?’한유라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하지만 심강열은 그녀를 위해 원래 계획을 수정했다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