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뭘 잘못한 게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 한유라가 골치가 아플 무렵.심강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늘 퇴근할 때 뭐 까먹은 거 없어?”까먹은 거?한유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에 심강열이 작은 힌트를 주었다.“퇴근할 때 말이야...”“회식 나오기 전에 급한 일은 다 처리했는데?”눈을 깜박이던 그녀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톡톡.”“회식에 왜 난 안 불렀어? 회사 직원들 다 초대했으면서 왜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했냐고. 게다가 내 카드로 계산한 거잖아.”결국 스스로 삐친 이유를 말한 심강열은 순간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아, 내가 생각해도 진짜 치사하다.’심강열의 대답에 한유라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왜 직원들 회식에 끼려고 해. 대표가 끼면 제대로 흉도 못 볼 거 아니야. 그럼 그게 회식이냐. 그냥 일이지...’하지만 대놓고 널 까려고 자리를 만든 거다라고 말할 순 없으니 좀 더 유연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당신은 매일 야근하느라 바쁘잖아. 직원들 여가 활동까지 신경 쓸 여유 없는 거 내가 아니까 특별히 신경 쓴 거지.”은근슬쩍 책임을 심강열에게로 미는 게 느껴지자 심강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핸들을 잡고 있던 큰 손이 한유라의 두 볼을 꾹 눌렀다.“그래서? 야근하느라 너랑 제대로 안 놀아줬다고 시위하는 거야?”차라리 그런 거라면 오늘 하루 이상하리만치 틱틱대던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제멋대로 한유라의 반항을 너무 바쁜 남편을 향한 투정으로 이해한 심강열은 어느새 화가 다 풀리고 말았다.‘나랑 그렇게 같이 있고 싶었어?’한편, 얼굴을 꾹 잡힌 한유라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아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고! 난 차라리 당신이 매일매일 야근했으면 좋겠어! 돈을 많이 벌어야 내가 더 펑펑 쓸 거 아니야!’하지만 한유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는 눈치 정도는 있었기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한유라의 얼
뜨거운 키스가 조금 더 깊은 스킨십으로 이어지려던 그때, 한유라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여기 주차장이야.”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잡은 심강열의 입술은 한유라의 얼굴과 목선을 가볍게 훑어지났다.“괜찮아...”뜨거운 욕망을 꾹꾹 참는 듯한 무겁게 잠긴 목소리에 한유라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그래... 가끔은 색다른 것도... 나쁘진 않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피곤함과 취기의 더블 콤보에 한유라가 시트에 축 늘어졌다.아슬아슬 잠이 들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고 잠시 후, 따뜻한 물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아, 따뜻하다.’눈앞에 휴가지의 바다가 펼쳐지는 듯해 한유라의 다리가 물장구를 치기 시작하고...이때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으이그, 좀 가만히 있지?”그리고 또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몸을 깨끗하게 닦아준 뒤 산뜻함이 느껴지는 폭신한 곳에 뉘였다.‘음, 기분 좋아. 여긴 어디지? 모래사장인가?’이미 비몽사몽인 한유라가 제멋대로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심강열의 탄탄한 팔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려는 한유라의 허리를 덥썩 잡았다.그리고 곧 따뜻한 품에 안긴 한유라가 따뜻한 느낌의 바디워시 향을 만끽했다.‘하, 그냥 재우려고 했는데. 자꾸 유혹을 해온다 이거지?’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심강열이 반격을 시작했다.뜨거운 입술이 한유라의 몸 곳곳을 누비고 한유라가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었다.‘아, 누구지? 아... 깡이구나. 아, 맞다. 나 이 사람이랑 결혼했었지...’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심강열의 눈동자는 이미 거친 욕망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한유라가 손을 뻗어 심강열의 탄탄한 가슴을 만졌다.‘마음에 들어...’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고...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깼어? 네가 먼저 나 건드린 거야. 내일 뭐라고 하기 없기다?”그리고 한유라의 대답 따윈 필요없다는 듯 숨 막힐 듯한 키스가 이어졌다....잠시 후, 땀범벅이 된 두 사람이 침대에 축 늘어지고
한유라는 그런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심강열의 체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게 문제였다. 남자는 자극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자정 전에는 잠에 들었을 텐데 오늘 밤 그녀는 눈을 감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들은 새벽이 올 때까지 서로의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한편, 소은정은 꽤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전동하와 소찬식이 번갈아 가면서 그녀를 케어했고 출장이나 긴 회의 같은 일은 전부 소은해가 부담하게 되었다.집에서 너무 갑갑하다고 그녀가 항의해서 매일 3시간은 회사에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소은해에게는 거절할 자유가 없었다. 임시로 회사 운영을 맡게 되었지만 너무 많은 업무와 일정이 쌓여서 감당이 안 될 때도 많았다.어느 날, 그는 초대장 한 장을 들고 소은정의 사무실을 찾았다.“오후에 와인바에서 미팅이 하나 잡혔어. 새 프로젝트 관련 기업들이 모여서 하는 미팅인데 회사 고위 인원 중 한 명은 무조건 참석해야 해. 이런 일에는 네가 나서야지! 은정아, 부탁할게!”소은정은 미팅 장소를 확인하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한유라도 오늘 이 와인바에 간다고 했는데 마침 그녀를 만날 기회였다.“알았어. 내가 가지 뭐.”소은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분방한 귀공자에서 요즘 따라 무척 진지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은정은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었다.오늘 따라 그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오후가 되자 소은정은 준비를 마치고 우연준과 함께 약속장소로 향했다.사실 소은정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미팅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기에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은 거의 소은호 몫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너무 낯선 곳이 아니라 다행이었다.미팅 장소인 더블레인 와인바는 오늘 미팅 인원 외에 다른 손님을 받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외제차들이 주차장에 육속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서자 호화로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와인바에 들어섰다. 좌석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전부
소은정은 재치 있게 곤란한 질문을 피해갔다.물론 사람들도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개인 스케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전동하는 그녀의 외투를 받아 들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이런 배려가 고마웠지만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가 말했다.“동하 씨가 여기 나오는 줄은 몰랐어요.”전동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미리 얘기 안 했으니 내 잘못이죠.”소은정은 웃으면서 좌석으로 다가갔고 전동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위해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한유라 씨는 저쪽에 있어요.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돼요.”그가 가리키는 쪽에 한유라가 여자들과 함께 포카를 치고 있었다. 들어오는 것을 봤을 텐데 포카에 정신이 팔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자 소은정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요. 이쪽은 동하 씨한테 맡길게요. 난 유라한테 좀 가볼게요.”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들 중에 유부남이면서 아내 대신 다른 여자를 파트너로 데려온 사람도 많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이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었다.어차피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는 관심도 없고 기자도 아닌데 그런 일에 관심 가질 필요도 없었다.전동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그쪽으로 갔다. 한유라의 옆에 앉았던 여자가 일어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은정 씨 빨리 와서 앉아요. 한유라 씨가 여기서 돈을 쓸어담고 있어요. 저는 감당이 안 되니까 은정 씨가 여기서 대신 게임 좀 해요. 저는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올게요.”소은정에게 자리를 비켜준 여자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머릿수나 채우려고 참석한 자리였고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벌 사모님들과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어차피 소은정이 도착했으니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빨리 자리를 내주는 게 그녀에게는 옳은 선택이었다.소은정은 웃으며 대범하게 자리에 앉았다.“좋아요. 돈 따면 우리 반반씩 나눠가져요.”여자는 생긋 웃으며 자리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고 소은정은 한유라와 눈빛을 교환했다. 사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여자가 역겹다고 하는 대상이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여자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꽤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공식석상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업계에서는 꽤 유명인이었다.손재은은 중견기업의 2세로 어릴 때부터 그리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지금 자리에 있는 재벌 사모님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이었다.그녀는 소꿉친구와 결혼했는데 꽤 성공한 경영인인 구태정이었다.구태정은 뛰어난 경영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그의 회사는 IT업계에서 꽤 탄탄한 입지를 가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능력은 나무랄 것 없었는데 그에게는 꽤 골치 아픈 고질병이 있었다.그는 사생활이 문란한 것으로 유명했다. 손재은과 결혼 당시에는 유별난 순애보라며 순정남 이미지를 굳히고 아내와 함께 회사를 경영했다. 하지만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그는 아내에게 경영진에서 물러나 육아에 전념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손재은은 그런 남편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그들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안 좋은 스캔들이 터졌다. 누군가가 구태정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 사진을 손재은에게 보낸 것이다.그 뒤로 이 가정에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더 이상한 건 그러면서 이혼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공식석상이나 중요한 미팅 자리에서 구태정은 더 이상 여자 파트너를 대동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참석하기 시작했다. 손재은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기에 사정을 모르는 대중은 예전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물론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당사자인 손재은과 구태정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그런데 갑작스러운 손재은의 발언에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어떤 여자는 그녀를 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소은정 씨는 카드 운도 좋네요! 포카드라니!”“아까 자리 비켜줬던 여자분 배 좀 아프겠는데요?”사람들은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싸해진 분위기를 무마했다.소은정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에게 미소 짓고는 아까 자리를 비켜줬던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운은 내가 끌어왔으니까 잠깐만 치고 있어요. 난 전 대표님한테 좀 갔다 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유라도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나도 갈래. 여기만 있으면 우리 집 쪼잔한 남자가 삐질 것 같아.”그녀는 다가가서 소은정의 팔짱을 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기분 나빠?”‘손재은 저 여자는 자기가 좀 불행하다고 쓸데없는 얘기나 꺼내고!’한유라는 다음에 다시 이런 자리가 있으면 손재은을 초대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소은정은 그런 친구를 힐끗 보고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꾸했다.“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아닌 척하지 마. 손재은 그 여자는 은근 자기 남편 디스하면서 박수혁 그 자식을 치켜세우잖아. 자기가 박수혁이랑 결혼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딴 쓰레기 걱정이나 하다니. 정말 웃겨.”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자기가 선택한 결혼이니 책임도 자기가 지는 거지.”“그건 맞아.”두 사람은 남자들이 모여 카드게임 하는 곳으로 갔다. 여자들 테이블보다는 이쪽 분위기가 더 유쾌했다.심강열과 전동하는 와인으로 수시로 목을 축이면서 뭔가 의논하고 있었다. 아마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전동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은정을 보자마자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소은정은 다가가서 그의 옆에 앉았다.전동하가 웃으며 물었다.“돈 좀 땄어요?”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가 가진 패를 들여다 보았다.전동하는 그녀가 보기 쉽게 살짝 몸을 비틀어 자리를 내주었다.맞은편에 앉은 임춘식은 화기
사람들도 이한석의 위치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기에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그를 맞아주었다.이한석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전보다는 확연히 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그는 대범하게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소은정과 전동하에게 인사할 차례가 되자 그는 부담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소은정과 전동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임춘식이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이 대표, 요즘 회사가 많이 바빠요? 몇 번이나 만나자고 문자했는데 매몰차게 거절했잖아요.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이한석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대답했다.“임 대표님,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워낙 바쁘기도 했고 임 대표님이 밥 먹자고 부르면 당연히 나가야죠. 그런데 솔직히 해외 여행을 같이 가자는 건 좀 아니잖아요.”말문이 막힌 임춘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이렇게 박수혁에 관한 주제는 자연스럽게 묻히게 되었다.심강열 옆에 앉은 한유라는 원래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 엉덩이를 움찔거렸지만 그럴 때마다 심강열이 힘으로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경고 섞인 말투였다.그는 한유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너무 진지한 자리가 아니었기에 누군가를 골려 주기에는 이만한 자리가 없었다.한유라는 몇 번이나 시도해도 소용이 없자 얌전히 그의 옆을 지켰다.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가 그녀는 짜증이 치밀었다.다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려는데 심강열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겼다.‘옆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나?’한유라는 이를 갈며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사고 안 칠 테니까 이거 좀 놔주면 안 돼? 은정이랑 대화 좀 하고 올게.”심강열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은정 씨는 지금 전 대표랑 같이 있잖아. 은정 씨가 당신처럼 장난꾸러기인 줄 알아? 이상한 핑계 대지 마.”한유라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소은정은 그녀의 불만을 눈치채고 입을 다물었다.한유라가 심강열의 비서로 취직한 건 업무적인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심해그룹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한유라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하지만 심강열이 적당한 인사발령을 내주지 않으니 다시 가문으로 돌아가 가업을 물려받을 수도 없었다.심해그룹에서 한동안 비서로 근무하다가 가문에서 운영하는 유한그룹으로 돌아가서 대표가 된다?유한그룹 직원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문제였다.그리고 한유라의 부모님을 설득하기엔 설득력도 부족했다.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러면 강열 씨한테 너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어때?”어차피 업계에서는 잘나가는 회사의 대표가 여자친구를 띄워주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뒤에서 도와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한유라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돌아가서 다시 잘 얘기해 보지 뭐!”그녀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잔을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그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한유라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더 기다리다가 자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조금 전 심강열이 임신 얘기를 꺼냈을 때도 불편했다.그와 아이를 가지는 게 불편한 건 아니었다.그녀는 소은정과 상황이 조금 달랐다. 회사에서 그녀의 발언권은 별로 많지 않았다.김현숙과 심강열은 그녀가 임신하면 바로 직장생활 그만하라고 할 것이 뻔했다.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소은정은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가서 전화를 받고 화장실로 향했다.그들이 대여한 대형 룸을 나와 화장실을 찾는데 옆방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소은정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걸음을 재촉해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인데?’소은정이 지나간 뒤,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이한석은 공손한 자세로 자신을 등지고 선 남자의 눈치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