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오후내내 심강열은 일에 집중했다.저녁에 근사한 레스토랑까지 예약해 둔 터라 그전에 어떻게든 밀린 업무를 끝내야 했기 때문이었다.한번 기지개를 켠 뒤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사무실을 나선 심강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대표 사무실을 제외하고 텅텅 빈 사무실.단 한 명의 직원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이런 적은 처음인데...’심강열이 미간을 찌푸렸다.솔직히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고 게다가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비서실 직원들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먼저 퇴근을?‘이상해... 뭔가 이상해...’심강열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한유라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딱딱한 연결음만이 울려퍼질 뿐.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심강열이 다른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다들 어디 간 겁니까?”“아, 그게...”당황한 듯한 비서가 대답했다.“한 비서님이 오늘은 회식이라고 하셔서... 지금 노래방인데요?”‘하, 기가 막혀서.’심강열이 코웃음을 쳤다.“그래서... 지금 다들 노래나 부르고 있다 이 말입니까? 거기가 어딥니까?”“여기가...”통화를 마친 심강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비서가 알려준 곳은 한유라가 평소 자주 가는 곳.럭셔리한 시설에 방음 시설까지 완벽한 룸 덕분에 재벌 2세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곳이었다.‘직원들 다 끌고 거길 갔단 말이지.’물론 심해그룹도 회식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프로젝트 하나를 무사히 끝낼 때면 식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지만 그때마다 심강열은 그저 잠깐 얼굴만 비추고 계산만 하고 사라지곤 했었는데...동료들과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직원들 다 불렀으면서 난 쏙 빼놓고 가셨다? 도대체 무슨 일로 골이 났길래 이렇게 엇나가는 걸까?’깊은 한숨을 내쉰 심강열이 비서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대표님, 혹시 예약하셨나요?”그의 얼굴을 알아본 매니저가 바로 다가왔다.“아, 아닙니다. 일행 있어요. 저 혼자 올라가겠습니다.”대답
“달칵!”이때 형광등 불빛이 룸의 어둠을 찢어삼켰다.“...”숨 막힐 듯한 정적, 환해진 세상에 다들 순식간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직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입구 쪽을 바라보던 직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굳고... 모두들 로봇처럼 어색한 무빙으로 한유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게 다 꿈이었으면...’방금 전 대표를 향한 화려한 디스랩을 펼쳤는데 그 주인공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다니.이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 있을까?‘내가 미쳤지. 술 몇 잔 마셨다고 그런 랩에 좋다고 호응을 하냐...’노래방이라곤 믿기지 않는 적막, 모두들 머리가 백지장처럼 변해버리고 한유라 역시 목석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미처 머리를 굴리기도 전에 얼굴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더니 심강열이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아,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으려나...’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등을 살짝 밀고 한유라는 뭐에 홀린 듯 심강열의 손에 이끌려 노래방을 나섰다.지하주차장.먼저 차에 탄 심강열이 어딘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지금 이 차를 타는 게 맞나 짧은 고민을 하던 그때, 심강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타.”‘타라는 걸 보니까 화 많이 안 났나 보다.’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유라가 쪼르르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평소 안락함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심강열의 차.그런데 오늘만큼은 시트에 바늘이라도 꽂아둔 듯 엉덩이가 욱신거렸다.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심강열의 눈치를 살피는 한유라는 누가 봐도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의 모습이었다.그렇게 대화 한 마디 없는 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어느새 아파트 지하주차장.시동을 끈 심강열이 꿈쩍도 하지 않자 한유라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뒷담화를 하다 걸리면 이런 기분일까?‘시트콤에서 일어날만한 일이 왜 나한테...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운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있나...’한편, 안
또 뭘 잘못한 게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 한유라가 골치가 아플 무렵.심강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늘 퇴근할 때 뭐 까먹은 거 없어?”까먹은 거?한유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에 심강열이 작은 힌트를 주었다.“퇴근할 때 말이야...”“회식 나오기 전에 급한 일은 다 처리했는데?”눈을 깜박이던 그녀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톡톡.”“회식에 왜 난 안 불렀어? 회사 직원들 다 초대했으면서 왜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했냐고. 게다가 내 카드로 계산한 거잖아.”결국 스스로 삐친 이유를 말한 심강열은 순간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아, 내가 생각해도 진짜 치사하다.’심강열의 대답에 한유라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왜 직원들 회식에 끼려고 해. 대표가 끼면 제대로 흉도 못 볼 거 아니야. 그럼 그게 회식이냐. 그냥 일이지...’하지만 대놓고 널 까려고 자리를 만든 거다라고 말할 순 없으니 좀 더 유연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당신은 매일 야근하느라 바쁘잖아. 직원들 여가 활동까지 신경 쓸 여유 없는 거 내가 아니까 특별히 신경 쓴 거지.”은근슬쩍 책임을 심강열에게로 미는 게 느껴지자 심강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핸들을 잡고 있던 큰 손이 한유라의 두 볼을 꾹 눌렀다.“그래서? 야근하느라 너랑 제대로 안 놀아줬다고 시위하는 거야?”차라리 그런 거라면 오늘 하루 이상하리만치 틱틱대던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제멋대로 한유라의 반항을 너무 바쁜 남편을 향한 투정으로 이해한 심강열은 어느새 화가 다 풀리고 말았다.‘나랑 그렇게 같이 있고 싶었어?’한편, 얼굴을 꾹 잡힌 한유라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아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고! 난 차라리 당신이 매일매일 야근했으면 좋겠어! 돈을 많이 벌어야 내가 더 펑펑 쓸 거 아니야!’하지만 한유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는 눈치 정도는 있었기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한유라의 얼
뜨거운 키스가 조금 더 깊은 스킨십으로 이어지려던 그때, 한유라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여기 주차장이야.”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잡은 심강열의 입술은 한유라의 얼굴과 목선을 가볍게 훑어지났다.“괜찮아...”뜨거운 욕망을 꾹꾹 참는 듯한 무겁게 잠긴 목소리에 한유라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그래... 가끔은 색다른 것도... 나쁘진 않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피곤함과 취기의 더블 콤보에 한유라가 시트에 축 늘어졌다.아슬아슬 잠이 들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고 잠시 후, 따뜻한 물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아, 따뜻하다.’눈앞에 휴가지의 바다가 펼쳐지는 듯해 한유라의 다리가 물장구를 치기 시작하고...이때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으이그, 좀 가만히 있지?”그리고 또 누군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몸을 깨끗하게 닦아준 뒤 산뜻함이 느껴지는 폭신한 곳에 뉘였다.‘음, 기분 좋아. 여긴 어디지? 모래사장인가?’이미 비몽사몽인 한유라가 제멋대로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심강열의 탄탄한 팔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려는 한유라의 허리를 덥썩 잡았다.그리고 곧 따뜻한 품에 안긴 한유라가 따뜻한 느낌의 바디워시 향을 만끽했다.‘하, 그냥 재우려고 했는데. 자꾸 유혹을 해온다 이거지?’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심강열이 반격을 시작했다.뜨거운 입술이 한유라의 몸 곳곳을 누비고 한유라가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었다.‘아, 누구지? 아... 깡이구나. 아, 맞다. 나 이 사람이랑 결혼했었지...’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심강열의 눈동자는 이미 거친 욕망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한유라가 손을 뻗어 심강열의 탄탄한 가슴을 만졌다.‘마음에 들어...’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고...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깼어? 네가 먼저 나 건드린 거야. 내일 뭐라고 하기 없기다?”그리고 한유라의 대답 따윈 필요없다는 듯 숨 막힐 듯한 키스가 이어졌다....잠시 후, 땀범벅이 된 두 사람이 침대에 축 늘어지고
한유라는 그런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심강열의 체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게 문제였다. 남자는 자극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자정 전에는 잠에 들었을 텐데 오늘 밤 그녀는 눈을 감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들은 새벽이 올 때까지 서로의 거칠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한편, 소은정은 꽤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전동하와 소찬식이 번갈아 가면서 그녀를 케어했고 출장이나 긴 회의 같은 일은 전부 소은해가 부담하게 되었다.집에서 너무 갑갑하다고 그녀가 항의해서 매일 3시간은 회사에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소은해에게는 거절할 자유가 없었다. 임시로 회사 운영을 맡게 되었지만 너무 많은 업무와 일정이 쌓여서 감당이 안 될 때도 많았다.어느 날, 그는 초대장 한 장을 들고 소은정의 사무실을 찾았다.“오후에 와인바에서 미팅이 하나 잡혔어. 새 프로젝트 관련 기업들이 모여서 하는 미팅인데 회사 고위 인원 중 한 명은 무조건 참석해야 해. 이런 일에는 네가 나서야지! 은정아, 부탁할게!”소은정은 미팅 장소를 확인하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한유라도 오늘 이 와인바에 간다고 했는데 마침 그녀를 만날 기회였다.“알았어. 내가 가지 뭐.”소은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분방한 귀공자에서 요즘 따라 무척 진지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은정은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었다.오늘 따라 그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오후가 되자 소은정은 준비를 마치고 우연준과 함께 약속장소로 향했다.사실 소은정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미팅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기에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은 거의 소은호 몫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너무 낯선 곳이 아니라 다행이었다.미팅 장소인 더블레인 와인바는 오늘 미팅 인원 외에 다른 손님을 받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외제차들이 주차장에 육속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서자 호화로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와인바에 들어섰다. 좌석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전부
소은정은 재치 있게 곤란한 질문을 피해갔다.물론 사람들도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개인 스케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전동하는 그녀의 외투를 받아 들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이런 배려가 고마웠지만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가 말했다.“동하 씨가 여기 나오는 줄은 몰랐어요.”전동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미리 얘기 안 했으니 내 잘못이죠.”소은정은 웃으면서 좌석으로 다가갔고 전동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위해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한유라 씨는 저쪽에 있어요.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돼요.”그가 가리키는 쪽에 한유라가 여자들과 함께 포카를 치고 있었다. 들어오는 것을 봤을 텐데 포카에 정신이 팔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자 소은정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요. 이쪽은 동하 씨한테 맡길게요. 난 유라한테 좀 가볼게요.”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들 중에 유부남이면서 아내 대신 다른 여자를 파트너로 데려온 사람도 많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이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었다.어차피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는 관심도 없고 기자도 아닌데 그런 일에 관심 가질 필요도 없었다.전동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그쪽으로 갔다. 한유라의 옆에 앉았던 여자가 일어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은정 씨 빨리 와서 앉아요. 한유라 씨가 여기서 돈을 쓸어담고 있어요. 저는 감당이 안 되니까 은정 씨가 여기서 대신 게임 좀 해요. 저는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올게요.”소은정에게 자리를 비켜준 여자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머릿수나 채우려고 참석한 자리였고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벌 사모님들과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어차피 소은정이 도착했으니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빨리 자리를 내주는 게 그녀에게는 옳은 선택이었다.소은정은 웃으며 대범하게 자리에 앉았다.“좋아요. 돈 따면 우리 반반씩 나눠가져요.”여자는 생긋 웃으며 자리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고 소은정은 한유라와 눈빛을 교환했다. 사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여자가 역겹다고 하는 대상이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여자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꽤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공식석상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업계에서는 꽤 유명인이었다.손재은은 중견기업의 2세로 어릴 때부터 그리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지금 자리에 있는 재벌 사모님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이었다.그녀는 소꿉친구와 결혼했는데 꽤 성공한 경영인인 구태정이었다.구태정은 뛰어난 경영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그의 회사는 IT업계에서 꽤 탄탄한 입지를 가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능력은 나무랄 것 없었는데 그에게는 꽤 골치 아픈 고질병이 있었다.그는 사생활이 문란한 것으로 유명했다. 손재은과 결혼 당시에는 유별난 순애보라며 순정남 이미지를 굳히고 아내와 함께 회사를 경영했다. 하지만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그는 아내에게 경영진에서 물러나 육아에 전념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손재은은 그런 남편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그들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안 좋은 스캔들이 터졌다. 누군가가 구태정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 사진을 손재은에게 보낸 것이다.그 뒤로 이 가정에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더 이상한 건 그러면서 이혼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공식석상이나 중요한 미팅 자리에서 구태정은 더 이상 여자 파트너를 대동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참석하기 시작했다. 손재은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기에 사정을 모르는 대중은 예전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물론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당사자인 손재은과 구태정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그런데 갑작스러운 손재은의 발언에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어떤 여자는 그녀를 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소은정 씨는 카드 운도 좋네요! 포카드라니!”“아까 자리 비켜줬던 여자분 배 좀 아프겠는데요?”사람들은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싸해진 분위기를 무마했다.소은정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에게 미소 짓고는 아까 자리를 비켜줬던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운은 내가 끌어왔으니까 잠깐만 치고 있어요. 난 전 대표님한테 좀 갔다 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유라도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나도 갈래. 여기만 있으면 우리 집 쪼잔한 남자가 삐질 것 같아.”그녀는 다가가서 소은정의 팔짱을 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기분 나빠?”‘손재은 저 여자는 자기가 좀 불행하다고 쓸데없는 얘기나 꺼내고!’한유라는 다음에 다시 이런 자리가 있으면 손재은을 초대하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소은정은 그런 친구를 힐끗 보고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꾸했다.“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아닌 척하지 마. 손재은 그 여자는 은근 자기 남편 디스하면서 박수혁 그 자식을 치켜세우잖아. 자기가 박수혁이랑 결혼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딴 쓰레기 걱정이나 하다니. 정말 웃겨.”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자기가 선택한 결혼이니 책임도 자기가 지는 거지.”“그건 맞아.”두 사람은 남자들이 모여 카드게임 하는 곳으로 갔다. 여자들 테이블보다는 이쪽 분위기가 더 유쾌했다.심강열과 전동하는 와인으로 수시로 목을 축이면서 뭔가 의논하고 있었다. 아마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전동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은정을 보자마자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소은정은 다가가서 그의 옆에 앉았다.전동하가 웃으며 물었다.“돈 좀 땄어요?”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가 가진 패를 들여다 보았다.전동하는 그녀가 보기 쉽게 살짝 몸을 비틀어 자리를 내주었다.맞은편에 앉은 임춘식은 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