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으로 내려가자 눈에 확 띄는 전동하의 차가 보였다.그는 차에 기댄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이 웃으며 다가가자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고 차 문을 열었다.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은정은 그가 왜 갑자기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동하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이렇게 하면 가는 동안 손 잡을 수 있잖아요.”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지만 짐짓 그렇지 않은 척, 그를 흘겨보았다.“가는데 얼마나 걸린다고요.”전동하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그녀를 회사에 데려다준 뒤로 주차장을 떠난 적 없었다.처리해야 할 일정은 전부 차 안에서 비서랑 통화하며 해결했다. 힘들게 그녀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려온 그였다.차는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였다.소은정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평소보다 뻥 뚫린 차선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시속이 좀 느린 거 아니에요?”전동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그래요? 평소랑 비슷한 것 같은데요?”소은정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이 사람이 나를 바보로 아나?차는 시속 40km를 달리고 있었다. 뒤 따라오는 차는 아마 세계에 몇 대도 되지 않은 이 값비싼 차 때문에 짜증나도 꾹 참고 따라오는 게 분명하다.그런데 평소랑 같은 시속이라니.운전기사가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소 대표님, 이 구간에서 오늘 교통사고가 발생했었어요. 갑갑하겠지만 저도 찝찝하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전동하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들었죠? 짜증 나도 조금만 참아요. 우리 운전기사가 긴장했잖아요.”소은정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이 길은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일단 가서 밥부터 먹어요.”소은정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 소은정은 레스토
“조금 고집스러운 사람이긴 하지만 사정을 설명하니 해주던데요.”그녀 앞에서는 여유롭게 말했지만 주방장을 어떻게 구워삶았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소은정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식사가 끝난 뒤에도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물론 그와의 데이트가 불편한 건 아니지만 조금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운전기사는 이미 돌아가고 전동하가 운전석에 앉았다.10월의 날씨는 산책하기 딱 좋게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저녁이라 조금 쌀쌀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그들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집에도 그녀가 기다리던 이벤트는 없었다.‘내가 괜한 착각을 했네.’그녀는 핸드백을 소파에 던지고 외투를 벗었다.“서재로 갈 거예요.”전동하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불러세웠다.“은정 씨.”나른하고 애절한 목소리였다. 조금 긴장한 것 같기도 했다.소은정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은 다가가서 소파에 몸을 던지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아까부터 할 말 있어 보였는데 이제 편하게 얘기하지 그래요?”전동하는 평소에 차분한 성격이지만 그녀에 관한 일이면 항상 긴장한 티를 많이 냈다.오늘은 밥 먹을 때도 계속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건 분명했다.전동하는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비볐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궁금해요?”“궁금하지 않으면 아까 이미 서재로 들어갔겠죠?”‘언제까지 피할 거지?’그는 손을 들어 셔츠 단추를 두 개 풀었다. 건장하고 건강미 넘치는 가슴 근육이 살짝 드러났다.그러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야성미 넘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살짝 포개지더니 그녀를 안고 베란다로 나갔다.그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하늘 봐요.”소은정은 고개를 들었고 하늘을 본 순간 그대로 얼어 버렸다.어두운 밤하늘에 수백 대의 드론이 푸른빛을 반짝이며 날고 있었다. 밤하늘
그녀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준비할 시간이 급박하긴 했지만 줄곧 해왔던 고민이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은정 씨한테 어떻게 프러포즈하면 좋아할까 고민했거든요.”소은정은 짐짓 침착한 척, 담담하게 물었다.“그래서 결론이 이건가요?”전동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기다리기 싫었어요. 일단 받아주면 더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싶은데 어때요?”진솔하고 정중한 대답이었다.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바깥을 바라보았다.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빛나는 보석들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그녀는 자신이 꽤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는 이벤트에 감동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전동하는 그녀가 말이 없자 조바심이 났다.“사실 차에 꽃이랑 반지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어요. 아까 갔던 레스토랑에 촛불도 준비시키려고 했는데….”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전부 몰랐던 내용이었다.전동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런 식상한 이벤트로 프러포즈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했던 거 대충 구색 맞추기로 하는 거 같아서요. 조금 촌스러울 수 있어서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고….”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저걸 준비했어요. 좋아했으면 좋겠어요.”소은정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힐끗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너무 좋았어요.”꽃이 없어서 아쉽지는 않았다.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들이 그것을 대체해 주었다.그녀가 꿈에서 그렸던 프러포즈보다 아름다웠다.전동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은 반지를 바라보았다. 보석이 조금 큰 감이 있었지만 아주 정교하고 깔끔한 디자인이라 마음에 들었다.사실 그녀는 큰 다이아몬드를 선호하지 않았다. 좀 졸부 같기도 하고 돈 많은 거 자랑하는 거 같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렇다고 보석이 너무 작으면 유치해 보여서 싫었다.이 반
전동하는 웃으며 대답했다.“그건 특수한 응고제를 사용했어요. 습기가 한 순간에 사라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작용이죠.”말을 마친 그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끌어안았다.“나 지금 프러포즈하고 있어요. 기술적인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요. 이제 나한테 좀 집중해 줄래요?”소은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사실 반지만 있으면 이벤트는 아무래도 좋아요. 다이아몬드 크기만큼 당신 마음이 증명되었으니까요!”사실 오늘밤은 그녀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로 기억될 것이다. 하늘을 수놓은 유성우만 봐도 그랬다.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방식으로 프러포즈했는데 다른 게 더 필요할까?전동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말했다.“그럴 줄 알았으면 더 큰 거로 준비할 거 그랬어요.”“이 정도면 됐어요. 더 크면 무거워서 서랍에 처박았을 거예요.”두 사람은 짧은 키스를 나눈 뒤,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는 장미꽃송이들이 널려 있었다.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코끝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그래도 프러포즈인데 꽃이 빠지면 섭섭하죠.”소은정은 침대 위를 꽉 채운 꽃송이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충분하네요.”신선한 생화였고 얼핏 봐도 999송이는 넘었을 것이다.전동하는 얼굴을 붉히며 꽃들을 치운 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소은정은 이미 욕실에 들어가 씻고 있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긴장감 넘치면서도 행복했던 밤이었다.그녀가 만족스러워해서 다행이었다.소찬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자네는 조급할지 몰라도 나는 내 딸이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거 다 누렸으면 해.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프러포즈 못 받아서 자랑할 거리가 없으면 곤란하다고.”그는 전동하의 성급함을 용서하는 대신에 다른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져다 주라고 명령했다.프러포즈, 약혼, 그리고 결혼.이 모든 절차가 짧은 시간 안에 준비되어야 한다. 그녀가 배가 부른 상태로 웨딩드레
소은정은 손에 끼워진 반지를 힐끗 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거 알아. 빔프로젝터나 드론은 아니고 공기 중에 특수 재료를 쏘아 올려서 화학반응을 유도한 거라던데. 습기가 증발하면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고….”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한유라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유라야?”한유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설마 그 주인공이 너야? 전동하 씨가 한 거야?”소은정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응, 맞아!”한유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젠장! 네가 이 재미난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아서 전화했는데 네가 주인공이었다니! 그 사람 준비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 네가 임신하자마자 바로 작전에 들어간 거야? 대단하네!”소은정은 짧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쓸어올렸다.“어차피 언젠가는 결혼할 거였잖아. 뜻밖이긴 했지만 나도 좋았어.”“당연히 만족해야지! 더 큰 걸 바랐어?”한유라가 웃으며 말했다.“어제는 재밌게 보냈어? 감동적이었지?”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소은정은 얼굴이 화끈거렸다.“됐어. 너 때문에 자다가 깼잖아. 이제 씻으러 가야겠어.”“둘이 같이 씻는 거야?”소은정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는 SNS에 접속했다.네티즌들은 어젯밤에 하늘을 불태웠던 유성우에 대해 찬양하고 있었다.사실 판타지 영화에서만 볼 수 있을 법했던 장면이기는 했다.그런데 그걸 현실에서 보다니 열광할 수밖에.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전동하가 문구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름까지 써넣었으면 그녀는 오늘 하루종일 질문폭탄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그녀가 임신 사실을 알린 뒤, 소찬식은 소은정에게 컨디션이 괜찮은 날만 출근하라고 지시했다.어쩔 수 없이 그녀의 업무를 인계 받은 소은해는 동생과 전동하를 볼 때마다 썩은 표정을 지었다.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서 저 녀석들에게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소은정과 전동하는 조용히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 소찬식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는 극
소은정은 결혼식 준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재벌가의 일원으로서 상류 사회 결혼식에 수도 없이 많이 참석했지만 이렇게까지 성대한 결혼식은 처음이었다.전동하가 준비한 결혼식은 웅장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였고 그녀가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지인들만 초대된 이 결혼식에는 기자나 언론사도 부르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영상촬영 금지라는 말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이 거대한 파티를 즐겼다.그들의 결혼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그래서 소은정은 식을 올린 뒤에도 평소와 다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결혼생활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편하게 즐겼다.이날도 소은정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갑자기 쳐들어온 한유라는 괜찮은 경매회가 있다면서 그녀를 부추겼다.사실 이 경매회는 조금 특별한 경매회였다.VIP회원들만 참석할 수 있었고 경매품들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다.매 년 있는 경매회는 아니었다.사실 재벌들 중에도 급전이 필요한데 은행에 대출 받기는 싫은 사람들이 주로 이런 경매회를 이용한다.애장품들을 경매에 내놓아 좋은 값에 팔면 필요한 자금이 마련되는 형식이었다.그만큼 아무거나 경매품으로 내놓지 않았고 주최측에서도 어지간한 경매품은 받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었다.소은정은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사실 난 딱히 필요한 게 없어.”“너 요즘 소비가 많이 줄었다? 돈을 안 쓰면 소은정이야?”한유라는 끈질기게 소은정을 설득했다.“그냥 가서 아이쇼핑이나 해도 좋잖아. 이번에 희귀한 에메랄드원석이 매물로 나온다는데 너 이런 거 수집하는 게 취미 아니야?”“정말?”소은정이 눈을 반짝이자 한유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별볼일 없으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니?”그렇게 소은정은 친구를 따라 경매장에 가게 되었다.두 사람은 미리 예약했던 좌석에 가서 앉았다.경매장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참가자들은 태블릿을 보며 오늘 나올 경매품들을 열람하고 있었다.소은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내 돈인데?”이에 깜짝 놀란 한유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럼 왜 동하 씨 돈은 안 쓰는 거야? 두 사람 결혼까지 한 사이잖아.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인 거지 뭐.”이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쪽으론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였다.“누구 돈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당연히 중요하지. 동하 씨 재산 상황은 알아? 어떤 곳에 돈을 쓰는지는 아냐고. 번 돈 너한테 말고 엄한 여자한테 쓰면 어쩌려고? 경제권부터 확실히 가지고 와. 너 돈 많은 건 알겠는데 이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어이없다는 표정의 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상당히 충격을 먹은 표정이었다.한숨을 푹 내쉰 한유라가 팔짱을 꼈다.“그래서 난 요즘 뭐든 내 돈 말고 깡 돈으로 사고 있어. 내가 많이 쓸수록 아마 더 열심히 벌겠지? 대충 돈 몇 푼 던져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만족하는 그런 쉬운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이런 것도 밀당이 필요하다고.”겨우 몇 달 전 결혼한 한유라는 이미 결혼생활에 달관한 듯 초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게다가 요즘 주변에서 남편이 바람을 폈다더라, 밖에서 애까지 만들어왔다더라 라는 말이 자꾸 들리다 보니 거의 피해망상까지 걸릴 지경이었다.‘지금은 내가 좋은 모양이지만... 언제 갑자기 다른 여자가 튀어나올지 몰라.’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여간 한유라 궤변 하나는 끝내주지.’“두 사람 아직 신혼 아니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그 정도밖에 안 돼?”이에 한유라가 소은정을 흘겨보았다.“우리 사이 되게 좋은데? 이런 걸 유비무환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네 결혼 선배야. 선배 말 들어서 나쁠 거 없어.”“...”이때 직원이 다가왔다.“고객님, 원석은 직접 가지고 가실 건가요? 아니면 저택으로 배송해 드릴까요?”“저희 본가 주소로 보내주세요.”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대답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 한유라가 그녀의 팔목을 잡더니 짐짓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전동하는 왠지 마음이 착잡해졌다.워낙 사치를 부리지 않는 성격이라 기업 대표 치곤 조금 검소하게 지낸 건 사실이지만 설마 와이프에, 그 친구까지 파산 위기로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전동하가 차가운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윤이한을 바라보았다.“부탁할 게 있는데...”그날 저녁.샤워를 마친 소은정은 새로 바꾼 임산부 전용 화장품을 바르며 케어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임산부라도 피부 망가지고 몸매 망가지는 건 싫어. 동하 씨는 아까부터 서재에서 안 나오고 있네... 많이 바쁜가...’이런 생각을 하며 스르륵 잠이 든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1분 뒤, 전동하가 두터운 파일 꾸러미를 침대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에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뭐야? 이 야밤에 갑자기 일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그녀의 표정을 눈치챈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내가 선물 하나 줄까요?”선물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든 소은정이 손을 내밀었다.‘내가 선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하지만 전동하가 말한 선물은 방금 전 가지고 들어온 파일 꾸러미였다.“이게 뭐예요?”소은정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열어봐요.”전동하가 곱게 잠근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며 어깨를 으쓱했다.평소 점잖은 모습과 달리 어딘가 건방져 보이기도 했다.두꺼운 파일 첫 페이지를 넘긴 소은정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이건...”“윤 비서님한테 부탁해서 정리한 내 전 재산 리스트예요. 부동산, 주식, 현금 등 전부 여기 들어있어요. 이젠 우리도 부부니까 재산 상황은 서로 오픈해야 할 것 같아서요.”소은정의 손이 살짝 떨리며 파일을 놓치자 전동하가 여유롭게 그것을 받아들었다.그리곤 놀란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한편, 소은정은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콩닥댔다.‘아니, 하필 오늘 유라랑 동하 씨 재산에 관한 얘기를 했었는데 바로 이걸 준다고? 꼭 직접 들은 것처럼 말이야...’하지만 내용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은 점점 더 커다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