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결혼식 준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재벌가의 일원으로서 상류 사회 결혼식에 수도 없이 많이 참석했지만 이렇게까지 성대한 결혼식은 처음이었다.전동하가 준비한 결혼식은 웅장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였고 그녀가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지인들만 초대된 이 결혼식에는 기자나 언론사도 부르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영상촬영 금지라는 말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이 거대한 파티를 즐겼다.그들의 결혼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그래서 소은정은 식을 올린 뒤에도 평소와 다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결혼생활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편하게 즐겼다.이날도 소은정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갑자기 쳐들어온 한유라는 괜찮은 경매회가 있다면서 그녀를 부추겼다.사실 이 경매회는 조금 특별한 경매회였다.VIP회원들만 참석할 수 있었고 경매품들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다.매 년 있는 경매회는 아니었다.사실 재벌들 중에도 급전이 필요한데 은행에 대출 받기는 싫은 사람들이 주로 이런 경매회를 이용한다.애장품들을 경매에 내놓아 좋은 값에 팔면 필요한 자금이 마련되는 형식이었다.그만큼 아무거나 경매품으로 내놓지 않았고 주최측에서도 어지간한 경매품은 받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었다.소은정은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사실 난 딱히 필요한 게 없어.”“너 요즘 소비가 많이 줄었다? 돈을 안 쓰면 소은정이야?”한유라는 끈질기게 소은정을 설득했다.“그냥 가서 아이쇼핑이나 해도 좋잖아. 이번에 희귀한 에메랄드원석이 매물로 나온다는데 너 이런 거 수집하는 게 취미 아니야?”“정말?”소은정이 눈을 반짝이자 한유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별볼일 없으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니?”그렇게 소은정은 친구를 따라 경매장에 가게 되었다.두 사람은 미리 예약했던 좌석에 가서 앉았다.경매장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참가자들은 태블릿을 보며 오늘 나올 경매품들을 열람하고 있었다.소은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내 돈인데?”이에 깜짝 놀란 한유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럼 왜 동하 씨 돈은 안 쓰는 거야? 두 사람 결혼까지 한 사이잖아.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인 거지 뭐.”이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쪽으론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였다.“누구 돈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당연히 중요하지. 동하 씨 재산 상황은 알아? 어떤 곳에 돈을 쓰는지는 아냐고. 번 돈 너한테 말고 엄한 여자한테 쓰면 어쩌려고? 경제권부터 확실히 가지고 와. 너 돈 많은 건 알겠는데 이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어이없다는 표정의 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상당히 충격을 먹은 표정이었다.한숨을 푹 내쉰 한유라가 팔짱을 꼈다.“그래서 난 요즘 뭐든 내 돈 말고 깡 돈으로 사고 있어. 내가 많이 쓸수록 아마 더 열심히 벌겠지? 대충 돈 몇 푼 던져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만족하는 그런 쉬운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이런 것도 밀당이 필요하다고.”겨우 몇 달 전 결혼한 한유라는 이미 결혼생활에 달관한 듯 초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게다가 요즘 주변에서 남편이 바람을 폈다더라, 밖에서 애까지 만들어왔다더라 라는 말이 자꾸 들리다 보니 거의 피해망상까지 걸릴 지경이었다.‘지금은 내가 좋은 모양이지만... 언제 갑자기 다른 여자가 튀어나올지 몰라.’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여간 한유라 궤변 하나는 끝내주지.’“두 사람 아직 신혼 아니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그 정도밖에 안 돼?”이에 한유라가 소은정을 흘겨보았다.“우리 사이 되게 좋은데? 이런 걸 유비무환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네 결혼 선배야. 선배 말 들어서 나쁠 거 없어.”“...”이때 직원이 다가왔다.“고객님, 원석은 직접 가지고 가실 건가요? 아니면 저택으로 배송해 드릴까요?”“저희 본가 주소로 보내주세요.”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대답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 한유라가 그녀의 팔목을 잡더니 짐짓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전동하는 왠지 마음이 착잡해졌다.워낙 사치를 부리지 않는 성격이라 기업 대표 치곤 조금 검소하게 지낸 건 사실이지만 설마 와이프에, 그 친구까지 파산 위기로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전동하가 차가운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윤이한을 바라보았다.“부탁할 게 있는데...”그날 저녁.샤워를 마친 소은정은 새로 바꾼 임산부 전용 화장품을 바르며 케어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임산부라도 피부 망가지고 몸매 망가지는 건 싫어. 동하 씨는 아까부터 서재에서 안 나오고 있네... 많이 바쁜가...’이런 생각을 하며 스르륵 잠이 든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1분 뒤, 전동하가 두터운 파일 꾸러미를 침대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에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뭐야? 이 야밤에 갑자기 일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그녀의 표정을 눈치챈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내가 선물 하나 줄까요?”선물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든 소은정이 손을 내밀었다.‘내가 선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하지만 전동하가 말한 선물은 방금 전 가지고 들어온 파일 꾸러미였다.“이게 뭐예요?”소은정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열어봐요.”전동하가 곱게 잠근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며 어깨를 으쓱했다.평소 점잖은 모습과 달리 어딘가 건방져 보이기도 했다.두꺼운 파일 첫 페이지를 넘긴 소은정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이건...”“윤 비서님한테 부탁해서 정리한 내 전 재산 리스트예요. 부동산, 주식, 현금 등 전부 여기 들어있어요. 이젠 우리도 부부니까 재산 상황은 서로 오픈해야 할 것 같아서요.”소은정의 손이 살짝 떨리며 파일을 놓치자 전동하가 여유롭게 그것을 받아들었다.그리곤 놀란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한편, 소은정은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콩닥댔다.‘아니, 하필 오늘 유라랑 동하 씨 재산에 관한 얘기를 했었는데 바로 이걸 준다고? 꼭 직접 들은 것처럼 말이야...’하지만 내용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은 점점 더 커다래
이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정말요? 다 나 줘도 괜찮겠어요? 안 아까워요?”“내가 뭐가 아깝겠어요.”전동하가 피식 웃었다.“앞으로 내 돈은 다 은정 씨 거예요. 아, 그래도 용돈은 줘야 해요? 그거 모아서 우리 은정 씨 선물 사줘야지?”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전동하는 바로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 한 장을 제외한 모든 카드까지 소은정의 손에 안겨주었다.갑작스레 자산 규모가 몇 배는 불어난 소은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발 앞으로 다가선 전동하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지금 기분 좋아요?”“그럼요.”“내 덕분인 거 같으니까... 상은 줘야겠죠?”그녀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 전동하는 바로 소은정을 번쩍 안아들어 안방으로 향했다.하지만 그의 뜨거운 키스를 요리조리 피한 소은정이 두 팔로 전동하의 어깨를 밀어냈다.“나 지금 임신 중이잖아요.”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은 전동하는 바로 소은정의 하얀 목덜미를 공략하기 시작했다.“그거 말고 다른 방법도 많아요.”그렇게 한참이 되어서야 소은정을 풀어준 전동하가 손으로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다.“조금만 늦게 오지... 우리 예쁜 와이프 내가 안고 싶을 때 마음껏 안지도 못하고.”“이 아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직 연애 중이었을걸요? 얘 때문에 동하 씨 내 남편 된 거예요. 일종의 승진이죠.”그녀의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손길이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그러네요. 그럼 우리 아기한테 고마워해야겠다.”갑자기 쏟아지는 잠에 눈을 스르륵 감았던 소은정이 다시 벌떡 일어났다.“마이크 이제 곧 캠프도 끝나지 않아요?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불쌍한 마이크, 결혼식에 살짝 얼굴을 비춘 뒤로 바로 전동하가 신청한 여름 캠프로 가버렸었지. 보고 싶다...’하지만 전동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스페인어가 좀 부족해서 학원 더 보내려고요. 기숙 학원으로...”“애 번역관 시킬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마이크 이제 열 살도 안 된 어린 애예요. 그 어린 게 얼마
다음 날, 여름 캠프를 마친 마이크가 비행기에 탑승하고...금방 잠에서 깨 부스스한 표정으로 공항을 나서는 마이크를 향해 수잔이 활짝 웃어 보였다.“대표님께서 도련님더러 집으로 돌아오시래요.”이에 방금 전까지 눈을 반쯤 감고 있던 마이크의 눈이 번뜩였다.“정말? 나 그럼 예쁜 누나 만날 수 있는 거야? 아, 그런데 선물을 준비 못했네. 어떡하지?”“에이, 도련님. 지금 선물이 중요한가요? 일단 얼굴부터 보셔야죠.”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차에 탄 마이크는 내내 소은정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차량이 소은정의 본가 앞에 멈춰서고...한편, 집사를 비롯한 직원들은 마이크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치고 있었다.소은정의 본가에서 지내며 집사는 물론 소찬식의 마음까지 꽉 잡은 마이크는 어찌 보면 전동하보다 훨씬 더 인기가 좋은 존재였다.식탁에 가득 차려진 마이크가 좋아하는 음식들, 다른 불편한 점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전동하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밀려왔다.‘애 하나 맞이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게다가 소은정과 소은해는 직접 마이크를 위한 쿠키까지 굽고 있으니 이상하게 소외감마저 느껴졌다.임신 20주차를 넘어서 배가 봉긋하게 나온 한시연은 소파에 앉아 이 화목한 난장판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이때 소찬식이 서재에서 나오고 한시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은찬 도련님이랑 통화하신 거예요?”“그래. 내가 저번에 몸이 좀 안 좋았잖냐. 그때 못 온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더라고. 이젠 나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 그래서 그냥 오지 말라고 했어.”그의 말에 싱긋 웃던 한시연이 물었다.“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은찬 도련님 보고 싶으시잖아요. 오랜만에 시간 나신 것 같은데 며칠 집에서 푹 쉬다 가면 좋을 텐데요.”하지만 소찬식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아니야. 이제 프로젝트 다 끝내고 나리랑 결혼식 올리면 몇 달은 푹 쉴 텐데 뭘. 그때 얼굴 실컷 보지 뭐.”“어, 그러고 보니까 나리 씨도 요즘 발
캠프와 학교에서 있은 재밌는 일을 말할 때마다 가족들 역시 빵빵 터지고 화기애애한 식사가 이어졌지만 전동하는 왠지 아들이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식사를 마친 마이크는 바로 2층으로 달려가 절친인 소호랑과도 뜨거운 재회를 마쳤다.한편, 소은정은 왠지 마이크에게 내외하는 듯한 전동하의 모습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소찬식을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이야 어쩌다 한번 보는 거기도 하고 마이크가 워낙 이미지 관리만큼은 완벽하니 귀엽고 착한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요즘 머리 좀 컸다고 전동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등 말썽을 부리는 면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요즘 애들은 사춘기도 일찍 온다던데. 아니지. 나도 저 나이 땐 사고 꽤나 쳤으니까. 우리 마이크 정도면 준수하지!’가족들이 소파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소은정은 책을 찾는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서고 전동하도 자연스레 그 뒤를 따랐다.그런 그를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었다.“오랜만에 아들 얼굴 본 건데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요.”“내가요? 아닌데요?”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전동하는 입을 삐죽해 보였다.갓난 아기 때부터 키워온 아이,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마이크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마이크라 할지라도 소은정의 관심을 빼앗아 가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은정 씨만큼은 온전히 내 거였으면 좋겠단 말이에요.’“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못 속여요. 계속 시큰둥한 표정으로 있었잖아요.”서재의 책들을 둘러보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오랜만에 집에 오는 거잖아요. 아빠가 그렇게 뚱해 있으면 애 마음이 어떻겠어요. 아빠가 날 사랑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동하 씨 마음 알아요. 그래도 아직 어린 애니까 그런 의심이 들 수도 있다고요. 우리 두 사람, 갑자기 결혼까지 해버려서 가뜩이나 심란하고 혼란스러울 텐데... 좀 더 살
“소은정, 소은정이 가장 예뻐!”소호랑이 귀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우리 호랑이라니까.’전동하도 소호랑의 아부 스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여기까진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것, 소은정이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그럼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은정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는 누구야?”순간 소은정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지났다.한때 신나리의 기본 설정에 따라 이 질문에 박수혁이라고 대답했던 소호랑이다.‘설마 또...’괜히 박수혁의 이름이 튀어나와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어쩌나 싶어 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하지만 소호랑은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했다.“전동하! 우리 엄마랑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동하 아빠지!”살짝 불안하던 소은정의 눈에 미소가 담기고 전동하도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소은정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친 전동하가 진심으로 감탄했다.“역시 최고의 AI 펫 로봇답네요. 똑똑해.”소은정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휴, 다행히 정보가 업데이트 되었나 보네.’하지만 그 대답에 마이크만큼은 기뻐할 수 없었다.‘아니. AI 로봇이 거짓말을 하면 어떡해! 이 세상에 멋진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아빠인 거냐고!’“소호랑, 거짓말은 나쁜 거야...”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자 소호랑이 꼬리를 살랑이며 대답했다.“거짓말 아닌데...”‘이 자식이...’이에 전동하는 소은정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여기 로봇보다 철이 덜 든 어린이가 한 명 있네?”‘이크, 마이크... 큰일났다...’소은정이 눈을 질끈 감았다.“그냥 물어본 거예요... 예쁜 누나, 혹시 화난 건 아니죠?”“그럴 리가. 아주 완벽한 질문이었고 완벽한 대답이었어.”“글쎄요... 완벽한 대답이었던 건 인정하지만....”말끝을 흐린 전동하가 고개를 홱 돌려 마이크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호칭은 뭐야? 예쁜... 뭐?”“예쁜 누나
이에 전동하는 참았던 모든 말들을 억지로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엄하게 굴려다가도 아이의 귀여운 얼굴만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으면 아무 데도 안 보내고 내 옆에 꼭 잡아두고 있었을 텐데...’하지만 곧 전동하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아니야. 정신차려. 애교 공세에 넘어가지 말자.’아이의 엉덩이를 톡 때린 전동하가 물었다.“정말 보고 싶었던 거 맞아?”“그럼요.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마이크가 전동하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아빠도 너 보고 싶었어... 하지만...’한편, 마이크는 전동하의 엄한 눈동자가 풀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애교를 부려댔다.아들의 얄팍한 수작이라는 걸 전동하가 눈치 못 챌 리가 없었지만 오랜만에 보내는 부자만의 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여기서 지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하지만 말썽 피우면 바로 해외로 보내 버릴 거야. 은정 씨, 임신까지 했단 말이야. 화 나게 하면 안 돼. 알겠지?”“뭐... 뭐라고요?”마이크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충격으로 일렁였다.이에 전동하가 아이의 밤톨 같은 머리를 쓰다듬었다.“너 동생 생겼다고. 안 좋아?”한참을 생각하던 마이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좋... 좋아요.”“그래. 마이크가 축하해 줘서 아빠도 기쁘네? 걱정하지 마. 동생 생겨도 마이크에 대한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마이크는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었다.마이크에게 소은정은 나름 첫사랑이나 다름 없었다.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지만 그 첫사랑을 빼앗아간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니!게다가... 임신이라니!하지만 똑똑한 마이크는 곧 이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였다.아니, 첫사랑을 잃은 슬픔보단 소은정을 닮은 동생이 생길 거란 즐거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나 여신님한테 축하 인사 하고 올게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마이크가 쪼르르 방을 나섰다.‘역시 애는 애라니까...’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잠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