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내 돈인데?”이에 깜짝 놀란 한유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럼 왜 동하 씨 돈은 안 쓰는 거야? 두 사람 결혼까지 한 사이잖아.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인 거지 뭐.”이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쪽으론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였다.“누구 돈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당연히 중요하지. 동하 씨 재산 상황은 알아? 어떤 곳에 돈을 쓰는지는 아냐고. 번 돈 너한테 말고 엄한 여자한테 쓰면 어쩌려고? 경제권부터 확실히 가지고 와. 너 돈 많은 건 알겠는데 이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어이없다는 표정의 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상당히 충격을 먹은 표정이었다.한숨을 푹 내쉰 한유라가 팔짱을 꼈다.“그래서 난 요즘 뭐든 내 돈 말고 깡 돈으로 사고 있어. 내가 많이 쓸수록 아마 더 열심히 벌겠지? 대충 돈 몇 푼 던져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만족하는 그런 쉬운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이런 것도 밀당이 필요하다고.”겨우 몇 달 전 결혼한 한유라는 이미 결혼생활에 달관한 듯 초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게다가 요즘 주변에서 남편이 바람을 폈다더라, 밖에서 애까지 만들어왔다더라 라는 말이 자꾸 들리다 보니 거의 피해망상까지 걸릴 지경이었다.‘지금은 내가 좋은 모양이지만... 언제 갑자기 다른 여자가 튀어나올지 몰라.’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여간 한유라 궤변 하나는 끝내주지.’“두 사람 아직 신혼 아니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그 정도밖에 안 돼?”이에 한유라가 소은정을 흘겨보았다.“우리 사이 되게 좋은데? 이런 걸 유비무환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네 결혼 선배야. 선배 말 들어서 나쁠 거 없어.”“...”이때 직원이 다가왔다.“고객님, 원석은 직접 가지고 가실 건가요? 아니면 저택으로 배송해 드릴까요?”“저희 본가 주소로 보내주세요.”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대답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 한유라가 그녀의 팔목을 잡더니 짐짓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전동하는 왠지 마음이 착잡해졌다.워낙 사치를 부리지 않는 성격이라 기업 대표 치곤 조금 검소하게 지낸 건 사실이지만 설마 와이프에, 그 친구까지 파산 위기로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전동하가 차가운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윤이한을 바라보았다.“부탁할 게 있는데...”그날 저녁.샤워를 마친 소은정은 새로 바꾼 임산부 전용 화장품을 바르며 케어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임산부라도 피부 망가지고 몸매 망가지는 건 싫어. 동하 씨는 아까부터 서재에서 안 나오고 있네... 많이 바쁜가...’이런 생각을 하며 스르륵 잠이 든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1분 뒤, 전동하가 두터운 파일 꾸러미를 침대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에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뭐야? 이 야밤에 갑자기 일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그녀의 표정을 눈치챈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내가 선물 하나 줄까요?”선물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든 소은정이 손을 내밀었다.‘내가 선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하지만 전동하가 말한 선물은 방금 전 가지고 들어온 파일 꾸러미였다.“이게 뭐예요?”소은정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열어봐요.”전동하가 곱게 잠근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며 어깨를 으쓱했다.평소 점잖은 모습과 달리 어딘가 건방져 보이기도 했다.두꺼운 파일 첫 페이지를 넘긴 소은정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이건...”“윤 비서님한테 부탁해서 정리한 내 전 재산 리스트예요. 부동산, 주식, 현금 등 전부 여기 들어있어요. 이젠 우리도 부부니까 재산 상황은 서로 오픈해야 할 것 같아서요.”소은정의 손이 살짝 떨리며 파일을 놓치자 전동하가 여유롭게 그것을 받아들었다.그리곤 놀란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한편, 소은정은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콩닥댔다.‘아니, 하필 오늘 유라랑 동하 씨 재산에 관한 얘기를 했었는데 바로 이걸 준다고? 꼭 직접 들은 것처럼 말이야...’하지만 내용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은 점점 더 커다래
이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정말요? 다 나 줘도 괜찮겠어요? 안 아까워요?”“내가 뭐가 아깝겠어요.”전동하가 피식 웃었다.“앞으로 내 돈은 다 은정 씨 거예요. 아, 그래도 용돈은 줘야 해요? 그거 모아서 우리 은정 씨 선물 사줘야지?”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전동하는 바로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 한 장을 제외한 모든 카드까지 소은정의 손에 안겨주었다.갑작스레 자산 규모가 몇 배는 불어난 소은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발 앞으로 다가선 전동하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지금 기분 좋아요?”“그럼요.”“내 덕분인 거 같으니까... 상은 줘야겠죠?”그녀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 전동하는 바로 소은정을 번쩍 안아들어 안방으로 향했다.하지만 그의 뜨거운 키스를 요리조리 피한 소은정이 두 팔로 전동하의 어깨를 밀어냈다.“나 지금 임신 중이잖아요.”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은 전동하는 바로 소은정의 하얀 목덜미를 공략하기 시작했다.“그거 말고 다른 방법도 많아요.”그렇게 한참이 되어서야 소은정을 풀어준 전동하가 손으로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다.“조금만 늦게 오지... 우리 예쁜 와이프 내가 안고 싶을 때 마음껏 안지도 못하고.”“이 아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직 연애 중이었을걸요? 얘 때문에 동하 씨 내 남편 된 거예요. 일종의 승진이죠.”그녀의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손길이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그러네요. 그럼 우리 아기한테 고마워해야겠다.”갑자기 쏟아지는 잠에 눈을 스르륵 감았던 소은정이 다시 벌떡 일어났다.“마이크 이제 곧 캠프도 끝나지 않아요?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불쌍한 마이크, 결혼식에 살짝 얼굴을 비춘 뒤로 바로 전동하가 신청한 여름 캠프로 가버렸었지. 보고 싶다...’하지만 전동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스페인어가 좀 부족해서 학원 더 보내려고요. 기숙 학원으로...”“애 번역관 시킬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마이크 이제 열 살도 안 된 어린 애예요. 그 어린 게 얼마
다음 날, 여름 캠프를 마친 마이크가 비행기에 탑승하고...금방 잠에서 깨 부스스한 표정으로 공항을 나서는 마이크를 향해 수잔이 활짝 웃어 보였다.“대표님께서 도련님더러 집으로 돌아오시래요.”이에 방금 전까지 눈을 반쯤 감고 있던 마이크의 눈이 번뜩였다.“정말? 나 그럼 예쁜 누나 만날 수 있는 거야? 아, 그런데 선물을 준비 못했네. 어떡하지?”“에이, 도련님. 지금 선물이 중요한가요? 일단 얼굴부터 보셔야죠.”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차에 탄 마이크는 내내 소은정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차량이 소은정의 본가 앞에 멈춰서고...한편, 집사를 비롯한 직원들은 마이크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치고 있었다.소은정의 본가에서 지내며 집사는 물론 소찬식의 마음까지 꽉 잡은 마이크는 어찌 보면 전동하보다 훨씬 더 인기가 좋은 존재였다.식탁에 가득 차려진 마이크가 좋아하는 음식들, 다른 불편한 점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전동하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밀려왔다.‘애 하나 맞이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게다가 소은정과 소은해는 직접 마이크를 위한 쿠키까지 굽고 있으니 이상하게 소외감마저 느껴졌다.임신 20주차를 넘어서 배가 봉긋하게 나온 한시연은 소파에 앉아 이 화목한 난장판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이때 소찬식이 서재에서 나오고 한시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은찬 도련님이랑 통화하신 거예요?”“그래. 내가 저번에 몸이 좀 안 좋았잖냐. 그때 못 온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더라고. 이젠 나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 그래서 그냥 오지 말라고 했어.”그의 말에 싱긋 웃던 한시연이 물었다.“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은찬 도련님 보고 싶으시잖아요. 오랜만에 시간 나신 것 같은데 며칠 집에서 푹 쉬다 가면 좋을 텐데요.”하지만 소찬식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아니야. 이제 프로젝트 다 끝내고 나리랑 결혼식 올리면 몇 달은 푹 쉴 텐데 뭘. 그때 얼굴 실컷 보지 뭐.”“어, 그러고 보니까 나리 씨도 요즘 발
캠프와 학교에서 있은 재밌는 일을 말할 때마다 가족들 역시 빵빵 터지고 화기애애한 식사가 이어졌지만 전동하는 왠지 아들이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식사를 마친 마이크는 바로 2층으로 달려가 절친인 소호랑과도 뜨거운 재회를 마쳤다.한편, 소은정은 왠지 마이크에게 내외하는 듯한 전동하의 모습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소찬식을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이야 어쩌다 한번 보는 거기도 하고 마이크가 워낙 이미지 관리만큼은 완벽하니 귀엽고 착한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요즘 머리 좀 컸다고 전동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등 말썽을 부리는 면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요즘 애들은 사춘기도 일찍 온다던데. 아니지. 나도 저 나이 땐 사고 꽤나 쳤으니까. 우리 마이크 정도면 준수하지!’가족들이 소파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소은정은 책을 찾는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서고 전동하도 자연스레 그 뒤를 따랐다.그런 그를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었다.“오랜만에 아들 얼굴 본 건데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요.”“내가요? 아닌데요?”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전동하는 입을 삐죽해 보였다.갓난 아기 때부터 키워온 아이,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마이크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마이크라 할지라도 소은정의 관심을 빼앗아 가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은정 씨만큼은 온전히 내 거였으면 좋겠단 말이에요.’“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못 속여요. 계속 시큰둥한 표정으로 있었잖아요.”서재의 책들을 둘러보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오랜만에 집에 오는 거잖아요. 아빠가 그렇게 뚱해 있으면 애 마음이 어떻겠어요. 아빠가 날 사랑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동하 씨 마음 알아요. 그래도 아직 어린 애니까 그런 의심이 들 수도 있다고요. 우리 두 사람, 갑자기 결혼까지 해버려서 가뜩이나 심란하고 혼란스러울 텐데... 좀 더 살
“소은정, 소은정이 가장 예뻐!”소호랑이 귀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우리 호랑이라니까.’전동하도 소호랑의 아부 스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여기까진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것, 소은정이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그럼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은정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는 누구야?”순간 소은정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지났다.한때 신나리의 기본 설정에 따라 이 질문에 박수혁이라고 대답했던 소호랑이다.‘설마 또...’괜히 박수혁의 이름이 튀어나와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어쩌나 싶어 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하지만 소호랑은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했다.“전동하! 우리 엄마랑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동하 아빠지!”살짝 불안하던 소은정의 눈에 미소가 담기고 전동하도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소은정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친 전동하가 진심으로 감탄했다.“역시 최고의 AI 펫 로봇답네요. 똑똑해.”소은정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휴, 다행히 정보가 업데이트 되었나 보네.’하지만 그 대답에 마이크만큼은 기뻐할 수 없었다.‘아니. AI 로봇이 거짓말을 하면 어떡해! 이 세상에 멋진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아빠인 거냐고!’“소호랑, 거짓말은 나쁜 거야...”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자 소호랑이 꼬리를 살랑이며 대답했다.“거짓말 아닌데...”‘이 자식이...’이에 전동하는 소은정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여기 로봇보다 철이 덜 든 어린이가 한 명 있네?”‘이크, 마이크... 큰일났다...’소은정이 눈을 질끈 감았다.“그냥 물어본 거예요... 예쁜 누나, 혹시 화난 건 아니죠?”“그럴 리가. 아주 완벽한 질문이었고 완벽한 대답이었어.”“글쎄요... 완벽한 대답이었던 건 인정하지만....”말끝을 흐린 전동하가 고개를 홱 돌려 마이크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호칭은 뭐야? 예쁜... 뭐?”“예쁜 누나
이에 전동하는 참았던 모든 말들을 억지로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엄하게 굴려다가도 아이의 귀여운 얼굴만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으면 아무 데도 안 보내고 내 옆에 꼭 잡아두고 있었을 텐데...’하지만 곧 전동하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아니야. 정신차려. 애교 공세에 넘어가지 말자.’아이의 엉덩이를 톡 때린 전동하가 물었다.“정말 보고 싶었던 거 맞아?”“그럼요.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마이크가 전동하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아빠도 너 보고 싶었어... 하지만...’한편, 마이크는 전동하의 엄한 눈동자가 풀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애교를 부려댔다.아들의 얄팍한 수작이라는 걸 전동하가 눈치 못 챌 리가 없었지만 오랜만에 보내는 부자만의 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여기서 지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하지만 말썽 피우면 바로 해외로 보내 버릴 거야. 은정 씨, 임신까지 했단 말이야. 화 나게 하면 안 돼. 알겠지?”“뭐... 뭐라고요?”마이크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충격으로 일렁였다.이에 전동하가 아이의 밤톨 같은 머리를 쓰다듬었다.“너 동생 생겼다고. 안 좋아?”한참을 생각하던 마이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좋... 좋아요.”“그래. 마이크가 축하해 줘서 아빠도 기쁘네? 걱정하지 마. 동생 생겨도 마이크에 대한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마이크는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었다.마이크에게 소은정은 나름 첫사랑이나 다름 없었다.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지만 그 첫사랑을 빼앗아간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니!게다가... 임신이라니!하지만 똑똑한 마이크는 곧 이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였다.아니, 첫사랑을 잃은 슬픔보단 소은정을 닮은 동생이 생길 거란 즐거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나 여신님한테 축하 인사 하고 올게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마이크가 쪼르르 방을 나섰다.‘역시 애는 애라니까...’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잠
전동하의 말을 곰곰히 되새기던 소은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우리가 시간 내서 자주 만나러 가요. 아, 휴가 내서 여행 가는 건 어때요? 요즘 애들 맨날 공부 공부, 오랜만에 방학인데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아야죠.”다음 날.전동하가 회사로 출근하자 소은정은 바로 기사에게 부탁해 마이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깔끔한 멜빵바지를 입은 마이크는 꼭 동화책에서 나오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예쁜 누나, 오늘은 우리 두 사람만 노는 거예요?”아이의 통통한 볼을 살짝 건드린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그럼. 우리 오늘 놀이동산 갈까?”놀이동산.마이크 또래 아이들 중에 놀이동산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네!”마이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출발합시다...”그 모습에 기사마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가는 내내 옆에서 재잘대는 마이크를 보고 있자니 소은정의 기분도 덩달아 붕 떠올랐다.‘다행이야. 동하 씨랑 결혼한 것도 내가 임신한 것도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줘서.’잠시 후, 놀이동산에 도착한 마이크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한참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다시 돌아온 마이크가 손가락으로 바이킹을 가리켰다.“나 저거 타고 싶어요!”고개를 든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손이 저도 모르게 배로 향했다.평소라면 온갖 스릴있는 놀이기구들을 놀아제꼈겠지만 지금은...그녀의 망설임을 눈치 챈 건지 마이크가 말을 이어갔다.“나 혼자 가서 놀 테니까 예쁜 누나는 여기서 기다려요!”“조심해야 해. 누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 타면 바로 여기로 오는 거야?”“네!”고개를 끄덕인 마이크가 다시 눈앞에서 홱 사라지고 소은정은 바이킹이 보이는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이때 여자 한 명이 스르륵 소은정의 곁으로 다가왔다.만삭의 임산부, 몸은 좀 불어난 모습이었지만 이목구비만큼은 청순함이 넘치는 여자의 정체는 바로 추하나였다.“소은정 대표님?”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추하나가 조심스레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