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졌던 소은정은 기척을 느끼고 몽롱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왔어요?”전동하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쇼핑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많이 피곤해요? 아까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유라 씨한테 전화하니까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면서요. 쇼핑 끝나고 내가 데리러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소은정은 두 팔을 활짝 벌렸고 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 소파에 앉혔다.“네. 그냥 좀 일찍 들어왔어요.”왜 일찍 돌아왔는지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전동하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배 안 고파요? 뭐 좀 만들어 줄까요?”소은정은 주린 배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를 한 뒤, 침실로 돌아가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소은정은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가는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화장실에 버리고 나온 것이 떠올라서 가슴이 철렁했다.전동하는 손을 씻은 뒤, 냅킨에 손을 닦고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쓰레기통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눈을 가늘게 떴다.5분이 지나고 그 뒤로도 10분이 더 지났다.기다리다 못한 소은정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전동하가 평온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실망도, 흥분도 없었다.소은정은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임신이 아니니 이 상황에서 당연히 그가 해줄 말은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왜 이렇게 늦게 나와요?”전동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물었다.“맛있는 거 뭐 해줄까 생각하다가 늦었어요.”소은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아무거나 다 좋아요. 난 뭐든 잘 먹잖아요.”전동하는 뒤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주방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티비를 틀어 채널을 돌렸지만 내용이 귀에 들어오
소은정은 조용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과 핏기 없이 마른 입술, 어딘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그녀는 자신이 탈이 났다고 생각하며 이마를 만져봤지만 열은 없었다.전동하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휴지를 꺼내 입술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어때요?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요?”소은정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흔들며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기운이 좀 없긴 한데 배는 고프네요.”전동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죽 끓여줄게요. 속 좀 편해질 거예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전동하는 그녀를 들어안아 소파에 내려놓은 뒤 아랫배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뺐다.하지만 예민한 소은정은 그의 그런 동작을 빠르게 눈치챘지만 눈을 감은 채, 다리를 소파에 올리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잠시 후, 전동하는 야채죽을 끓여왔고 소은정은 억지로 한 사발을 들이켰다. 뭐라도 좀 들어가니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그녀는 간단하게 씻은 뒤, 침실에 들어가서 누웠다. 전동하는 서재에서 한참 멍하니 고민하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안방으로 들어갔다.그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소은정은 이미 달게 자고 있었다.하지만 누군가 곁에 다가오는 걸 느낀 그녀는 뒤척이며 팔로 그의 허리를 감았다. 그인 것을 재확인이라도 하는듯 실눈을 뜨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점점 꿈나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전동하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은정 씨.”소은정은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응대해 주었다.전동하는 조심스럽게 손을 그녀의 배에 올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혹시 아이 낳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말하지 않는 거예요?”침실에 적막한 정적이 흘렀다.소은정은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전동하와 눈을 마주했다.소은
소은정은 입술을 깨물고 그를 바라보며 정색해서 말했다.“이거 불량품인가 봐요. 약국에서 이거 살 때 주인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몇 번 해봐야 정확도가 높다고요. 내가 테스트했을 때는 분명 한 줄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두 줄이 됐다는 건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전동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려던 희열을 간신히 억제하고 약간 못 믿겠다는 말투로 물었다.“그런 경우도 있어요?”소은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가 시선을 떨구며 물었다.“그럼 지금이라도 나가서 몇 개 더 사 올까요?”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이미 많이 사 왔거든요. 내일 아침에 다시 테스트하면 돼요.”그 말을 들은 전동하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말을 마친 그는 불량품으로 의심되는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손을 씻고 다시 돌아왔다.전등을 끄자 침실에 어둠이 가라앉았다.그녀의 옆에 가서 누운 그는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은정 씨.”거의 잠들려다가 깬 그녀는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이 사람 오늘따라 왜 이러지?’전동하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은 뒤,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소은정의 몸이 달아오르려고 할 때, 그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소은정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계속할까요?”전동하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그냥 자는 게 좋겠네요.”그냥 끌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정말 그녀가 임신이라도 했다면 임신초기에 위험할 수도 있었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침대를 데굴데굴 굴러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더니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썼다.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를 다시 품에 안고는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그렇게 힘들면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까요?”소은정은 그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는 새침하게 말했다.“치워요.”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소은정
전동하는 전혀 기뻐하지 않는 소은정의 표정을 보고 끓어오르던 희열이 점차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그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지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예약하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래도 확실히 할 건 해야죠.”소은정도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전동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전동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지인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찾았다.당연히 믿을만한 실력을 갖춘 병원이어야 하고 개인 프라이버시가 엄격하게 보장되는 병원이어야 한다.그는 약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만약 임신이 맞다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녀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온다면 그걸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입맛을 잃은 그는 밥술을 뜨지 않았고 소은정도 입맛이 없었기에 바로 병원에 가기로 했다.전동하는 인근에 있는 개인병원으로 소은정을 데리고 갔다.다행히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했고 의사들도 환자의 신분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순조롭게 검사가 진행되었다.“축하드립니다. 임신 3주 차네요.”의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정적이 찾아왔다.의사는 두 사람이 전혀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말하면 소은정은 싫다기보다는 놀란 표정이었고 전동하는 미친 듯이 기뻤지만 그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눈치 빠른 의사가 고개를 떨구며 담담하게 말했다.“낙태 수술을 할 거면 빨리 결정해야 할 겁니다. 주기가 오래될수록 수술이 힘들어지니까요.”남자는 순간 굳은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병원에서 나온 뒤, 두 사람은 바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소은정은 약간 넋이 나간 상태였고 전동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갑갑했다.기쁨으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점점 차분해졌다. 소은정이 아이를 바랬던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마 그와 결혼까지 고민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차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따뜻한 햇살과 맑은 구름이 조화를 이룬 푸른 하늘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소은정은 햇빛을 받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예쁜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그래도 그의 말에 짜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기로 했다.자신이 왜 아이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동하 씨가 책임진다고 했잖아요.”이번에는 전동하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잠시 후, 그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희열이 차오르고 그는 허겁지겁 차에서 내려 그녀의 앞에 마주 섰다.“다시 한번 말해줄래요?”소은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까 내가 말했잖아요. 아빠랑 이야기해 보고 아빠도 동의하면 나도 뭐….”전동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쁨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려서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그는 길게 심호흡한 뒤,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었다.마치 몰래 카메라를 당하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조금 전까지 모든 걸 잃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렇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었다.“자기,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그는 금방 말을 배운 어린아이처럼 횡설수설했다.소은정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그의 팔을 다독였다.“설마 낙태 수술하려고 병원에 오자고 한 줄 알았어요?”전동하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소은정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계획에 없던 아이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싫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준비가 안 돼서 당황했을 뿐이에요. 동하 씨는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잖아요. 동하 씨가 있는데 뭔 걱정이에요? 그냥 때가 되면 일단 낳고 보는 거죠.”어차피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진 건 아니었으니.그녀는 전동하가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될 거라는
결혼하려면 프러포즈를 해야 한다.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리려면 결혼해야 한다.전동하는 이런 보수적인 절차가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일단 당사자인 소은정에게서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소찬식의 분노에도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 마음을 읽은 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아빠만 반대하지 않으면 난 당연히 좋죠!”하지만 난제는 다시 전동하에게 돌아갔다.그는 못 말린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내가 긴장한 걸 알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두 사람이 병실 앞에서 머뭇거릴 때, 복도에서 소은해의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문 앞에서 뭐 해? 뭐 사고라도 쳤어?”두 사람은 어깨를 움찔했고 전동하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형님.”소은해는 어깨를 쭉 펴고는 전동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인사를 받았다.“그래, 매제.”소은정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저 둘은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걸까?소은해는 이번에는 동생에게 태클을 걸었다.“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은 있고 회사에 출근할 시간은 없어? 연봉 내려버릴까?”‘그래! 이게 오빠지!’소은정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안에서 듣고 있던 소찬식이 빽 하고 소리쳤다.“소은해, 밖에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당장 안으로 기어들어와!”소은해는 한숨을 내쉬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바쁜 와중에 아버지 보러 왔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점심은 드셨어요?”옆에 있던 한 원장은 껄껄 웃으며 소찬식에게 말했다.“자네는 참 효자를 뒀네 그려. 난 먼저 돌아가지. 오후에 시간 나면 장기나 한판 두자고.”소찬식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소은해는 예의 바르게 한 원장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한 원장님은 요새 살이 좀 빠졌네요. 점심에 보양식이라도 좀 드세요.”“그래.”소은정과 전동하도 입구에서 한 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으로 들어갔다.소찬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타박했다.“회사 너 때문에
전동하는 여기 발을 들일 때부터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어렵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다 꺼내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백만 불짜리 계약건을 따내기 위해 고객사에 접근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장감이었다.사실 그는 평소에 행실을 바르게 했다고 생각했고 소찬식이 자신을 좋게 본다고 확신했다.하지만 이 순간이 닥치자 그런 걸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성급했나?그는 소은정의 배속에서 자라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기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순조롭게 세상에 태어날 수는 있는 거겠지?미소가 사라진 소찬식은 섬뜩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노려보고 있었다.전동하는 어깨에 큰 바위를 얹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항상 까불거리던 소은해도 오늘따라 참견하지 않았다.소은정은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는 전동하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일단 목청을 가다듬고 소찬식에게 말했다.“아빠, 이거 기쁜 소식이잖아요.”소찬식은 그런 딸을 바라보고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기쁜 소식?”그러고는 다시 전동하에게 고개를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장소, 시간대, 준비성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기쁜 소식이라고?”그 말에 병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전동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소은정이 말했다.“아빠,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소찬식은 그런 딸을 힐끗 보고는 더 냉랭하게 말했다.“그럼 뭐가 중요한데?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소은정은 원래 이런 것에 둔감하고 전동하는 실수였겠지만 소은정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소중했다.소찬식은 딸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랐다.이런 방식은 너무 경솔했다.소은정이 뭐라고 하려 했지만 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며 겸손하게 말했다.“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소홀했네요. 제가 더 완벽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제 실수예요. 은정 씨가 이 날을 나중에 추억해도 행복할 수 있게 돌
전동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소은정도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한 말인데 더 악화시킬 줄은 몰랐다.“아빠….”“닥쳐!”소찬식은 고함을 지르며 소은해에게 삿대질했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당장 이놈을 끌어내!”소은해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고는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일단은 나가죠.”전동하는 자신이 너무 쉽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소은정에 대한 소씨 가문의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소찬식 눈에 그는 그저 개자식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어렵게 따냈던 좋은 점수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전동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소찬식을 바라보다가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만약 이번 사건으로 그녀가 마음의 상처라도 입게 된다면 그건 모두 자신의 탓일 것이다.소은정은 괜찮다는 의미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하지만 전동하는 그게 더 미안했다.그는 방에 남아서 소찬식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찬식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미래의 장인어른에게 하나라도 잘 보여야 하는데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버린 상황이었다.소은해는 밖으로 나오며 문을 닫았다.소은정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아버지에게 물었다.“아빠, 화났어요?”소찬식 역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소은정은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는 울먹이며 말했다.“아빠, 수술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화를 내면 어떡해요. 아빠가 싫다고 하면 당장 아이 포기할게요.”소찬식은 안쓰러운 눈으로 딸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심호흡했다. 분노를 가라앉힌 그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저놈이 그렇게 좋아?”소은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찬식은 그런 딸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면 아이 포기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마. 비록 우리가 너를 시집 보낼 준비가 덜 된 건 맞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 전동하 저놈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