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는 전혀 기뻐하지 않는 소은정의 표정을 보고 끓어오르던 희열이 점차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그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지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예약하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래도 확실히 할 건 해야죠.”소은정도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전동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전동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지인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찾았다.당연히 믿을만한 실력을 갖춘 병원이어야 하고 개인 프라이버시가 엄격하게 보장되는 병원이어야 한다.그는 약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만약 임신이 맞다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녀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온다면 그걸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입맛을 잃은 그는 밥술을 뜨지 않았고 소은정도 입맛이 없었기에 바로 병원에 가기로 했다.전동하는 인근에 있는 개인병원으로 소은정을 데리고 갔다.다행히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했고 의사들도 환자의 신분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순조롭게 검사가 진행되었다.“축하드립니다. 임신 3주 차네요.”의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정적이 찾아왔다.의사는 두 사람이 전혀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말하면 소은정은 싫다기보다는 놀란 표정이었고 전동하는 미친 듯이 기뻤지만 그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눈치 빠른 의사가 고개를 떨구며 담담하게 말했다.“낙태 수술을 할 거면 빨리 결정해야 할 겁니다. 주기가 오래될수록 수술이 힘들어지니까요.”남자는 순간 굳은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병원에서 나온 뒤, 두 사람은 바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소은정은 약간 넋이 나간 상태였고 전동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갑갑했다.기쁨으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점점 차분해졌다. 소은정이 아이를 바랬던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마 그와 결혼까지 고민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차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따뜻한 햇살과 맑은 구름이 조화를 이룬 푸른 하늘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소은정은 햇빛을 받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예쁜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그래도 그의 말에 짜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기로 했다.자신이 왜 아이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동하 씨가 책임진다고 했잖아요.”이번에는 전동하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잠시 후, 그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희열이 차오르고 그는 허겁지겁 차에서 내려 그녀의 앞에 마주 섰다.“다시 한번 말해줄래요?”소은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까 내가 말했잖아요. 아빠랑 이야기해 보고 아빠도 동의하면 나도 뭐….”전동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쁨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려서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그는 길게 심호흡한 뒤,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었다.마치 몰래 카메라를 당하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조금 전까지 모든 걸 잃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렇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었다.“자기,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그는 금방 말을 배운 어린아이처럼 횡설수설했다.소은정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그의 팔을 다독였다.“설마 낙태 수술하려고 병원에 오자고 한 줄 알았어요?”전동하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소은정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계획에 없던 아이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싫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준비가 안 돼서 당황했을 뿐이에요. 동하 씨는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잖아요. 동하 씨가 있는데 뭔 걱정이에요? 그냥 때가 되면 일단 낳고 보는 거죠.”어차피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진 건 아니었으니.그녀는 전동하가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될 거라는
결혼하려면 프러포즈를 해야 한다.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리려면 결혼해야 한다.전동하는 이런 보수적인 절차가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일단 당사자인 소은정에게서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소찬식의 분노에도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 마음을 읽은 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아빠만 반대하지 않으면 난 당연히 좋죠!”하지만 난제는 다시 전동하에게 돌아갔다.그는 못 말린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내가 긴장한 걸 알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두 사람이 병실 앞에서 머뭇거릴 때, 복도에서 소은해의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문 앞에서 뭐 해? 뭐 사고라도 쳤어?”두 사람은 어깨를 움찔했고 전동하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형님.”소은해는 어깨를 쭉 펴고는 전동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인사를 받았다.“그래, 매제.”소은정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저 둘은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걸까?소은해는 이번에는 동생에게 태클을 걸었다.“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은 있고 회사에 출근할 시간은 없어? 연봉 내려버릴까?”‘그래! 이게 오빠지!’소은정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안에서 듣고 있던 소찬식이 빽 하고 소리쳤다.“소은해, 밖에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당장 안으로 기어들어와!”소은해는 한숨을 내쉬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바쁜 와중에 아버지 보러 왔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점심은 드셨어요?”옆에 있던 한 원장은 껄껄 웃으며 소찬식에게 말했다.“자네는 참 효자를 뒀네 그려. 난 먼저 돌아가지. 오후에 시간 나면 장기나 한판 두자고.”소찬식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소은해는 예의 바르게 한 원장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한 원장님은 요새 살이 좀 빠졌네요. 점심에 보양식이라도 좀 드세요.”“그래.”소은정과 전동하도 입구에서 한 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으로 들어갔다.소찬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타박했다.“회사 너 때문에
전동하는 여기 발을 들일 때부터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어렵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다 꺼내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백만 불짜리 계약건을 따내기 위해 고객사에 접근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장감이었다.사실 그는 평소에 행실을 바르게 했다고 생각했고 소찬식이 자신을 좋게 본다고 확신했다.하지만 이 순간이 닥치자 그런 걸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성급했나?그는 소은정의 배속에서 자라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기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순조롭게 세상에 태어날 수는 있는 거겠지?미소가 사라진 소찬식은 섬뜩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노려보고 있었다.전동하는 어깨에 큰 바위를 얹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항상 까불거리던 소은해도 오늘따라 참견하지 않았다.소은정은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는 전동하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일단 목청을 가다듬고 소찬식에게 말했다.“아빠, 이거 기쁜 소식이잖아요.”소찬식은 그런 딸을 바라보고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기쁜 소식?”그러고는 다시 전동하에게 고개를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장소, 시간대, 준비성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기쁜 소식이라고?”그 말에 병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전동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소은정이 말했다.“아빠,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소찬식은 그런 딸을 힐끗 보고는 더 냉랭하게 말했다.“그럼 뭐가 중요한데?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소은정은 원래 이런 것에 둔감하고 전동하는 실수였겠지만 소은정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소중했다.소찬식은 딸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랐다.이런 방식은 너무 경솔했다.소은정이 뭐라고 하려 했지만 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며 겸손하게 말했다.“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소홀했네요. 제가 더 완벽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제 실수예요. 은정 씨가 이 날을 나중에 추억해도 행복할 수 있게 돌
전동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소은정도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한 말인데 더 악화시킬 줄은 몰랐다.“아빠….”“닥쳐!”소찬식은 고함을 지르며 소은해에게 삿대질했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당장 이놈을 끌어내!”소은해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고는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일단은 나가죠.”전동하는 자신이 너무 쉽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소은정에 대한 소씨 가문의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소찬식 눈에 그는 그저 개자식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어렵게 따냈던 좋은 점수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전동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소찬식을 바라보다가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만약 이번 사건으로 그녀가 마음의 상처라도 입게 된다면 그건 모두 자신의 탓일 것이다.소은정은 괜찮다는 의미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하지만 전동하는 그게 더 미안했다.그는 방에 남아서 소찬식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찬식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미래의 장인어른에게 하나라도 잘 보여야 하는데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버린 상황이었다.소은해는 밖으로 나오며 문을 닫았다.소은정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아버지에게 물었다.“아빠, 화났어요?”소찬식 역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소은정은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는 울먹이며 말했다.“아빠, 수술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화를 내면 어떡해요. 아빠가 싫다고 하면 당장 아이 포기할게요.”소찬식은 안쓰러운 눈으로 딸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심호흡했다. 분노를 가라앉힌 그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저놈이 그렇게 좋아?”소은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찬식은 그런 딸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면 아이 포기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마. 비록 우리가 너를 시집 보낼 준비가 덜 된 건 맞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 전동하 저놈도 사
소은정은 그 말을 듣고 사실 소찬식이 전동하에게 큰 불만을 가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계획에도 없던 임신소식이 그리 반갑지 않았을 뿐이다.결국 그는 딸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소은정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아빠,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에요. 이건 그냥 사고였어요. 병원에서 나올 때까지 내가 아이를 거부한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힘들면서도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내 의사를 존중해요. 어차피 결혼할 거, 지금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소찬식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그게 사실이야?”소은정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소찬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난 네가 더 아까워! 전동하 그 자식 운이 좋았어!”“아빠, 전동하 씨는 가족이 없잖아요. 어차피 우리 결혼은 아빠에게 달렸어요. 저는 아빠 말이면 무조건 따르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기 죽이지는 마세요. 불쌍한 사람이에요.”소찬식은 어깨를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은정의 말대로 전동하는 뛰어난 인재이고 한 그룹의 수장이지만 그의 가문 사람들은 그를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소은정 때문에 그는 가족에게서까지 등을 돌렸으니 기댈 곳도 없었다.소은정의 가족들까지 합세해서 그를 괴롭힌다면 그는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그는 소은정을 위해 국내에 남기로 했고 미국에 있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포기했다. 그만큼 소은정을 사랑한다는 의미였다.소찬식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반대해서 뭐하겠어. 하지만 결혼식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겠군. 집사한테 따로 연락해야겠어.”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아빠.”소찬식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딸이 조금 더 자유롭고 편하게 살았으면 했지만 사랑하는 딸이 선택한 길이니 축복해 줄 수밖에 없었다.가다가 실패하면 가족들이
전동하가 그의 분노를 못 느꼈을 리 없었다.그는 약간 서글픈 표정으로 대답했다.“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고요. 그냥… 정말 사고였어요.”소은해가 냉소를 지었다.“이봐, 전 대표. 우리 집은 보수적인 집안이 아니야. 둘이 동거하는 걸 허락한 것만 봐도 그래. 우린 혈기왕성한 두 젊은이의 사랑을 너그럽게 이해했어. 하지만 아이가 생겨도 지금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냥 사고였다고? 지금 누굴 똥멍청이로 알아?”소은해는 의도한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같은 남자로서 남자의 본능을 가장 잘 알았다.아이로 한 여자를 곁에 묶어두는 것, 그건 그도 예전에 상상해 본 적 있는 그림이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지만.그는 아이는 두 사람이 미치게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라고 믿었다. 갑자기 생긴 아이한테 책임감을 느껴서 끌려가듯이 하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전동하한테 큰 실망감을 느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될 줄 몰랐던 전동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리고 이때, 소은정이 문을 열고 나왔다.조금 전까지 잔뜩 기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전동하가 그녀를 본 순간 거짓말처럼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소은정은 웃으며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아빠가 들어오래요.”전동하는 어깨를 움찔하며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은 처음이었다.처음 그녀의 가족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심했다.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옷매무시를 정리했다.그 모습을 본 소은정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긴장 풀어요. 우리 아빠 너그러운 사람이에요.”전동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소은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뭘 잘못 들었나?전동하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소은정은 문을 닫은 뒤, 소은해와 마주 섰다.“오빠가 저 사람 괴롭혔어?”“내가?””아까까지도 저 정도로 긴장하지 않았어. 오빠가 뭐라
솔직히 소찬식을 상대할 때 부담감이 컸던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정중하게 진심을 전달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소찬식도 결국엔 딸을 너무 사랑해서 그에게 조금 까칠하게 대한 것뿐이었고 그건 아버지로서 당연한 일이었다.소은해는 기분 좋게 한 원장 사무실로 향하는 그들을 쳐다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버지가 갑자기 성격이 좋아지셨다고?병원을 나선 소은정은 친구들에게 임신소식을 전했다.아직은 좀 이를지 모르지만 그녀는 배속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운전 중인 전동하에게 말했다.“우리 결혼해요. 혼인신고부터 할까요?”전동하는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요동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정도 놀라서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았고 전동하는 갑자기 몸을 비틀더니 그녀를 와락 품에 안았다.소은정이 숨 막힌다고 그의 어깨를 밀쳐서야 그는 팔을 풀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급할 건 없어요.”그가 말했다.소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그를 쏘아보았다.이 사람이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나랑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났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지?조급하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물었다.“갑자기 결혼하기 싫어졌어요? 아빠가 뭐라고 하던가요?”소찬식이 과격한 말은 안 했을 거라 믿지만 혹시라도 전동하의 자존심을 긁는 말이라도 한 걸까?그에 반해 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국적이 아직 미국이라 귀화하려면 귀찮은 절차가 필요해요. 물론 당장 해결하라고 비서실에 연락할 거예요.”소은정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생긋 웃었다.‘당연히 이래야지.’어제까지만 해도 결혼에 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기대가 됐다.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우연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와 있었는데 급한 일인 것 같았다.“회사로 좀 데려다줘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