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려면 프러포즈를 해야 한다.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호적에 올리려면 결혼해야 한다.전동하는 이런 보수적인 절차가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일단 당사자인 소은정에게서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소찬식의 분노에도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 마음을 읽은 소은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아빠만 반대하지 않으면 난 당연히 좋죠!”하지만 난제는 다시 전동하에게 돌아갔다.그는 못 말린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내가 긴장한 걸 알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두 사람이 병실 앞에서 머뭇거릴 때, 복도에서 소은해의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문 앞에서 뭐 해? 뭐 사고라도 쳤어?”두 사람은 어깨를 움찔했고 전동하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형님.”소은해는 어깨를 쭉 펴고는 전동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인사를 받았다.“그래, 매제.”소은정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저 둘은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걸까?소은해는 이번에는 동생에게 태클을 걸었다.“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은 있고 회사에 출근할 시간은 없어? 연봉 내려버릴까?”‘그래! 이게 오빠지!’소은정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안에서 듣고 있던 소찬식이 빽 하고 소리쳤다.“소은해, 밖에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당장 안으로 기어들어와!”소은해는 한숨을 내쉬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바쁜 와중에 아버지 보러 왔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점심은 드셨어요?”옆에 있던 한 원장은 껄껄 웃으며 소찬식에게 말했다.“자네는 참 효자를 뒀네 그려. 난 먼저 돌아가지. 오후에 시간 나면 장기나 한판 두자고.”소찬식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소은해는 예의 바르게 한 원장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한 원장님은 요새 살이 좀 빠졌네요. 점심에 보양식이라도 좀 드세요.”“그래.”소은정과 전동하도 입구에서 한 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으로 들어갔다.소찬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타박했다.“회사 너 때문에
전동하는 여기 발을 들일 때부터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어렵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다 꺼내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백만 불짜리 계약건을 따내기 위해 고객사에 접근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장감이었다.사실 그는 평소에 행실을 바르게 했다고 생각했고 소찬식이 자신을 좋게 본다고 확신했다.하지만 이 순간이 닥치자 그런 걸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성급했나?그는 소은정의 배속에서 자라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기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순조롭게 세상에 태어날 수는 있는 거겠지?미소가 사라진 소찬식은 섬뜩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노려보고 있었다.전동하는 어깨에 큰 바위를 얹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항상 까불거리던 소은해도 오늘따라 참견하지 않았다.소은정은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는 전동하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일단 목청을 가다듬고 소찬식에게 말했다.“아빠, 이거 기쁜 소식이잖아요.”소찬식은 그런 딸을 바라보고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기쁜 소식?”그러고는 다시 전동하에게 고개를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장소, 시간대, 준비성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기쁜 소식이라고?”그 말에 병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전동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소은정이 말했다.“아빠,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소찬식은 그런 딸을 힐끗 보고는 더 냉랭하게 말했다.“그럼 뭐가 중요한데?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소은정은 원래 이런 것에 둔감하고 전동하는 실수였겠지만 소은정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소중했다.소찬식은 딸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랐다.이런 방식은 너무 경솔했다.소은정이 뭐라고 하려 했지만 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며 겸손하게 말했다.“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소홀했네요. 제가 더 완벽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제 실수예요. 은정 씨가 이 날을 나중에 추억해도 행복할 수 있게 돌
전동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소은정도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한 말인데 더 악화시킬 줄은 몰랐다.“아빠….”“닥쳐!”소찬식은 고함을 지르며 소은해에게 삿대질했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당장 이놈을 끌어내!”소은해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고는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일단은 나가죠.”전동하는 자신이 너무 쉽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소은정에 대한 소씨 가문의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소찬식 눈에 그는 그저 개자식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어렵게 따냈던 좋은 점수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전동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소찬식을 바라보다가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만약 이번 사건으로 그녀가 마음의 상처라도 입게 된다면 그건 모두 자신의 탓일 것이다.소은정은 괜찮다는 의미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하지만 전동하는 그게 더 미안했다.그는 방에 남아서 소찬식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찬식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미래의 장인어른에게 하나라도 잘 보여야 하는데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버린 상황이었다.소은해는 밖으로 나오며 문을 닫았다.소은정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아버지에게 물었다.“아빠, 화났어요?”소찬식 역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소은정은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는 울먹이며 말했다.“아빠, 수술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화를 내면 어떡해요. 아빠가 싫다고 하면 당장 아이 포기할게요.”소찬식은 안쓰러운 눈으로 딸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길게 심호흡했다. 분노를 가라앉힌 그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저놈이 그렇게 좋아?”소은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찬식은 그런 딸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면 아이 포기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마. 비록 우리가 너를 시집 보낼 준비가 덜 된 건 맞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 전동하 저놈도 사
소은정은 그 말을 듣고 사실 소찬식이 전동하에게 큰 불만을 가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계획에도 없던 임신소식이 그리 반갑지 않았을 뿐이다.결국 그는 딸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소은정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아빠,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에요. 이건 그냥 사고였어요. 병원에서 나올 때까지 내가 아이를 거부한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힘들면서도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내 의사를 존중해요. 어차피 결혼할 거, 지금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소찬식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그게 사실이야?”소은정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소찬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난 네가 더 아까워! 전동하 그 자식 운이 좋았어!”“아빠, 전동하 씨는 가족이 없잖아요. 어차피 우리 결혼은 아빠에게 달렸어요. 저는 아빠 말이면 무조건 따르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기 죽이지는 마세요. 불쌍한 사람이에요.”소찬식은 어깨를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은정의 말대로 전동하는 뛰어난 인재이고 한 그룹의 수장이지만 그의 가문 사람들은 그를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소은정 때문에 그는 가족에게서까지 등을 돌렸으니 기댈 곳도 없었다.소은정의 가족들까지 합세해서 그를 괴롭힌다면 그는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그는 소은정을 위해 국내에 남기로 했고 미국에 있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포기했다. 그만큼 소은정을 사랑한다는 의미였다.소찬식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반대해서 뭐하겠어. 하지만 결혼식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겠군. 집사한테 따로 연락해야겠어.”소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아빠.”소찬식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딸이 조금 더 자유롭고 편하게 살았으면 했지만 사랑하는 딸이 선택한 길이니 축복해 줄 수밖에 없었다.가다가 실패하면 가족들이
전동하가 그의 분노를 못 느꼈을 리 없었다.그는 약간 서글픈 표정으로 대답했다.“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고요. 그냥… 정말 사고였어요.”소은해가 냉소를 지었다.“이봐, 전 대표. 우리 집은 보수적인 집안이 아니야. 둘이 동거하는 걸 허락한 것만 봐도 그래. 우린 혈기왕성한 두 젊은이의 사랑을 너그럽게 이해했어. 하지만 아이가 생겨도 지금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냥 사고였다고? 지금 누굴 똥멍청이로 알아?”소은해는 의도한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같은 남자로서 남자의 본능을 가장 잘 알았다.아이로 한 여자를 곁에 묶어두는 것, 그건 그도 예전에 상상해 본 적 있는 그림이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지만.그는 아이는 두 사람이 미치게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라고 믿었다. 갑자기 생긴 아이한테 책임감을 느껴서 끌려가듯이 하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전동하한테 큰 실망감을 느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될 줄 몰랐던 전동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리고 이때, 소은정이 문을 열고 나왔다.조금 전까지 잔뜩 기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전동하가 그녀를 본 순간 거짓말처럼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소은정은 웃으며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아빠가 들어오래요.”전동하는 어깨를 움찔하며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은 처음이었다.처음 그녀의 가족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심했다.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옷매무시를 정리했다.그 모습을 본 소은정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긴장 풀어요. 우리 아빠 너그러운 사람이에요.”전동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소은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뭘 잘못 들었나?전동하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소은정은 문을 닫은 뒤, 소은해와 마주 섰다.“오빠가 저 사람 괴롭혔어?”“내가?””아까까지도 저 정도로 긴장하지 않았어. 오빠가 뭐라
솔직히 소찬식을 상대할 때 부담감이 컸던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정중하게 진심을 전달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소찬식도 결국엔 딸을 너무 사랑해서 그에게 조금 까칠하게 대한 것뿐이었고 그건 아버지로서 당연한 일이었다.소은해는 기분 좋게 한 원장 사무실로 향하는 그들을 쳐다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버지가 갑자기 성격이 좋아지셨다고?병원을 나선 소은정은 친구들에게 임신소식을 전했다.아직은 좀 이를지 모르지만 그녀는 배속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운전 중인 전동하에게 말했다.“우리 결혼해요. 혼인신고부터 할까요?”전동하는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요동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정도 놀라서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았고 전동하는 갑자기 몸을 비틀더니 그녀를 와락 품에 안았다.소은정이 숨 막힌다고 그의 어깨를 밀쳐서야 그는 팔을 풀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급할 건 없어요.”그가 말했다.소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그를 쏘아보았다.이 사람이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나랑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났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지?조급하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물었다.“갑자기 결혼하기 싫어졌어요? 아빠가 뭐라고 하던가요?”소찬식이 과격한 말은 안 했을 거라 믿지만 혹시라도 전동하의 자존심을 긁는 말이라도 한 걸까?그에 반해 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국적이 아직 미국이라 귀화하려면 귀찮은 절차가 필요해요. 물론 당장 해결하라고 비서실에 연락할 거예요.”소은정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생긋 웃었다.‘당연히 이래야지.’어제까지만 해도 결혼에 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조금 기대가 됐다.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우연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와 있었는데 급한 일인 것 같았다.“회사로 좀 데려다줘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소은정은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기분 좋게 회사로 향했다.전동하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가 신고 있는 화려한 디자인의 하이힐을 보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조급하면 안 되지만 이럴 때는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소은정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우연준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환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왔다.“대표님, 본부장님께 연락이 되지 않아요. 오후에 참석해야 할 회의가 몇 개나 되는데….”소은정은 커피잔을 힐끗 바라만 보며 말했다.“회의는 내가 대신 참석할게요. 본부장님은 지금 병원에서 아빠를 돌보고 계시거든요.”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회장님께서 퇴원하신 거 아니었어요?”소은정이 웃으며 대답했다.“퇴원했는데 정기 검진 때문에 또 들렀죠. 수술 뒤 후유증도 걱정되고… 좀 할 게 많아서 하루 더 입원해 있으라고 했어요.”우연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건 비서실 직원들이 사 온 디저트인데 대표님 좋아하시는 커피 케이크도 있더라고요. 가지고 올까요?”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그러던 그녀가 손짓하자 우연준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나 이제 임신해서 이런 거 못 먹어요. 이건 절대 비밀이에요.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요.”우연준이 어깨를 움찔하더니 자세를 바로했다.마치 들어서는 안 될 비밀을 들은 것 같았다.사실 소은정도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는 우연준이었기에 알고 있는 게 서로 편하다고 판단했다.우연준은 정중하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다.소은정은 회의 내용에 관해 보고를 들은 뒤, 우연준을 내보냈다.사무실을 나가기 전, 우연준은 그녀의 앞에 놓인 커피잔을 도로 가져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잠시 후, 회의 시간이 다가왔다.소은정은 회의실로 가려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오는데 비서실 직원의
전동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깔끔하게 동작을 마무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바쁠 텐데 얼른 가봐요. 퇴근하면 데리러 올게요.”소은정은 그 부드러운 미소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회사 내부에 그들에 관한 스캔들이 넘쳐난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망치듯 회의실로 향했다.이미 도착해 있던 임원들은 그녀가 들어서자 일제히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고 뒤를 따라 들어오는 우연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우연준이 회의 시작을 알렸다.소은정은 그제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의에 집중했다.회의가 끝나 사무실로 돌아오니 핸드폰이 난리가 났다.한유라 -“내가 임신이라고 했잖아. 딱 봐도 임신반응이었는데 뭘.”김하늘 -“축하해. 임신초기에는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한유라 -“그래서 전동하 씨는 언제 프러포즈한대? 너희 결혼식 언제야? 배 잔뜩 불러서 식 올리지 마. 그러면 안 예쁘잖아!”김하늘 -“맞아!”성강희도 대화에 끼어들었다.“뭐라고? 내가 뭘 놓친 거야? 너희는 만나면서 왜 날 안 불렀어? 너희 내 친구 맞아? 왜 나를 빼놓고 놀아? 누가 임신했다고? 은정이? 그게 정말이야?”성강희는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냈다. 이 소식이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소은정, 빨리 나와서 해명해!”“난 너희 헤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결혼하면 내 계획이 다 틀어지잖아!”“지금 당장 그 자식을 내쳐도 늦지 않았어!”한유라 -“쟤를 그냥 톡방에서 내보낼까?”김하늘 -“따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성강희 -“너희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소은정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단톡방을 바라보다가 한마디 보냈다.“일단 진정들 좀 해.”핸드폰을 내려놓은 그녀는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그녀가 평소 신고 다니는 하이힐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