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과 명령을 가장한 박수혁의 부탁 덕분에 박상훈은 마지 못해 이번 수술 주치의를 맡기로 동의한 상태였기에 박수혁은 확신에 잠긴 표정이었다.‘적어도 오늘만큼은 은정이는 내 거야. 그러니까 눈치껏 빠져...’역시나 그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에 난처함이 실렸다.지금 당장 전동하의 손을 잡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소찬식의 핼쓱한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고민으로 살짝 떨리는 소은정의 손을 더 꼭 잡은 전동하가 물었다.“위기에 빠진 사람 협박하는 거 비겁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긴장감에 사람들은 다시 숨을 죽였다.전동하의 말에 박수혁이 코웃음을 쳤다.“협박? 협박도 가진 카드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 그 감정 얼마나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인 거 알죠?”거의 체념한 상태에서 주어진 마지막 기회, 있는 힘을 다해 잡아야 했다.‘비겁하다고 욕해도 좋아. 날 더 경멸하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냥... 내 곁에만 있어줘.’하지만 전동하도 밀리지 않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소은정의 손을 잡은 채 전동하가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그럼 두고 보시죠. 누가 끝까지 웃을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하니까요.”한편, 두 사람의 기싸움을 지켜보는 소은정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지금 이 자리에서 박수혁의 손을 뿌리치면 소찬식의 목숨이 위험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매정하게 전동하를 버릴 수도 없었다. 상처받은 그녀의 영혼을 아무런 대가없이 품었던 사람이 바로 전동하, 최소한 인간으로서 이런 배신감을 안겨줄 순 없었다.그리고 꼭 잡은 전동하의 손을 통해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설마...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막연한 기대감을 안은 채 소은정은 결국 전동하와 함께 공항을 떴다.정처없이 주차장으로 향하는 소은정의 머릿속에 수많은 광경이 펼쳐졌다.손만 뻗으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잡힐 것만 같은데 뒤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심연이 자꾸만 그녀의
차 앞을 막은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박수혁이었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만 함께하길 원했었는데.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는데.전동하는 또다시 중간에 끼어들어 그의 소은정을 빼앗아가버렸다.그런 박수혁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전동하가 창문을 살짝 내렸다.짙게 된 선팅, 하지만 뒷좌석을 들여다 보기엔 너무나 작은 틈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박 대표님. 더 이상 비겁하게 굴지 마세요. 제 여자한테 찝적대지 마시라고요.”경멸로 가득찬 전동하의 표정보다 박수혁을 더 거슬리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뭐? 네 여자? 누구 마음대로.”‘누구 마음대로 은정이가 네 여자야. 내 거였어. 내 여자였다고.’“박수혁 씨,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지금의 은정 씨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네, 맞아요. 한때는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었죠. 그런 은정 씨의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한없이 밀어내기만 한 것도 당신이었어요. 은정 씨는 당신한테 잘못한 게 없어요. 은정 씨가 평생 그 자리에서 당신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나요? 무슨 자신감이죠?”전동하의 말을 듣고 있던 박수혁이 이를 악물었다.‘뭐야. 그 표정... 네까짓 게 뭔데 날 그딴 눈으로 바라봐. 네가 뭔데 날 동정하냐고!’“너 때문이잖아. 네가 끼어들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박수혁이 울부짖었다.이마를 뚫고나올 듯한 핏줄이 그의 분노를, 질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평생 이기기만 했던 박수혁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굴러온 돌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도, 그를 위해 모든 걸 바치던 소은정이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도...박수혁에게는 생경한 좌절감으로 다가왔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를 더 미치게 만드는 건, 분명 뒷좌석에서 모든 걸 듣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소은정이었다.“네, 맞습니다. 제가 끼어들었고 제가 빼앗았죠. 박수혁 당신한테 조금의 염치라는 게 남아있다면 다신... 은정 씨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이
공항 사건이 벌어진 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SNS는 다음과 같은 태그로 도배되었다.#소은정 박수혁 재결합#소은정 박수혁 재결합 무산#새 남친 전동하#비련의 남주인공 박수혁현실판 막장드라마에 사람들은 열광했다.“은정 언니, 전 남편이랑은 다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예쁜 사랑하세요!”“와, 저렇게까지 매달리는데 안 받아주냐?”“뭐야. 꼭 드라마 같아. 은정 언니 앞으로 꽃길만 걸으세요!”“전동하라는 사람, 인상만 봐도 좋은 사람 같아.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요!”“우리 은정 언니한테 잘해 주세요!”“은정 누나 괴롭히면 죽는다!”한편, 세 사람의 스토리에 묻힌 채태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채태현... 알바까지 풀면서 생쇼를 하더니 묻혀버렸죠?”“연예인 화제성이 이렇게 밀릴 수가 있나?”한편, 구경꾼들에게 밀려 진작 저 뒤편으로 나떨어진 채태현은 몰래 택시를 잡아 공항을 떴다.선글라스와 마스크 뒤에 숨은 그의 얼굴은 불안함으로 가득했다.나름 거금을 들여 알바들까지 푼 건데 화제성 몰이는 이미 물 건너 간데다 괜히 소은정까지 끌어들여 또 미운 털이 박히게 되었다.‘이번에도 잘못되면 난 정말 연예계 퇴출이야... 제발... 제발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은정님.’이렇게 애원하며 휴대폰을 확인한 채태현은 다시 절망감에 잠겼다.역시나, 그의 이름은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저 멀리 밀려난 상태.게다가 팬 알바로 고용되었다는 네티즌의 자백글까지 올라오면서 자작극을 벌였다는 사실까지 전부 까밝혀지고 말았다.‘으악,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한편, 전동하의 차 안.공항과 멀어지자 무거운 추라도 달아놓은 듯하던 소은정의 마음은 점점 더 홀가분해졌다.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푼 건 역시나 전동하였다.“이 교수님은 15년 전, 25살에 레지던트로 수술실에 함께 들어갔을 정도로 천재 의사셨어요. 은정 씨는 기억 못 하려나?”하지만 지금 소은정의 귀에는 전동하의 설명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솔... 솔직히 너무 오래전 일인
별거 아니라는 듯한 이석구의 말투에 소은정은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리고 이석구의 자신감은 실질적인 실력에서 오는 것이었다.심장질환 최고 전문가인 기 교수의 직속 제자로서 이석구는 오랫 동안 함께 연구를 이어왔었고 15년 전, 소찬식의 수술에도 레지던트로서 참여했었기에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도 세상을 뜬 기 교수 다음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소은정은 이석구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길가에서 봤다면 그저 그런 행인 1로 지나쳤을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를 구해 줄 은인이라니.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병원에 도착한 이석구는 바로 소찬식의 차트부터 확인했다.한편,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 원장을 발견한 전동하가 이석구를 소개했다.“아, 이 분은 기 교수님 직속 후배, 이석구 교수님이십니다.”전동하의 말에 한 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석구 교수님?”큰 충격을 먹은 한 원장과 달리 이석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차트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원장은 다시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어갔다.“정... 정말 이석구 교수님이십니까?”나름 의학계에선 실력자라고 불리는 한 원장이 이토록 조심스럽게 말을 걸 정도라니.“네. 선배님이신데 말 편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지금은 일단 환자 상태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아서요. 대화는 잠시 뒤에 나누시죠.”이석구의 말에 여전히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한 원장이 조심스레 병실을 나섰다.그리고 바로 소은정을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은정아, 어떻게 이 교수님을 모셔왔어. 대단하네...”한 원장의 반응에 소은정이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했다.“저 분이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이에요?”“그걸 말이라고? 서울 의대 최연소 수석 입학, 수석 졸업, 대한민국 최연소 교수까지 단 분이셔.”단순히 기 교수의 후배라는 말에 놀랐었던 소은정의 눈이 동그래지고 한 원장은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특히 심장외과에선 이 교수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 세계적
별거 아니라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지만 한 원장은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어쨌든 은정아.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 소 회장... 운 하나는 참 좋은 사람이라니까. 자식 복에 이어서 사위 복까지...”한 원장의 말에 소은정도, 전동하도 쑥스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난 이 교수님이랑 대화 좀 나눠야겠다. 은정아, 어쨌든 이제 안심하고 일단 집에 가서 한숨 푹 자고 와. 알겠지?”말을 마친 한 원장이 후다닥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이 교수님한텐... 언제 연락한 거예요?”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물었다.“미안,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속인 꼴이 됐네요. 솔직히 그날 한 원장님이 박상훈 교수를 언급할 때부터 뭔가 이상했어요.”“뭐가요?”“그게... 몇 년 전에 기 교수님이 이끄는 의로팀에 투자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이석구, 박상훈 교수 모두 의료팀 멤버였죠. 그런데... 기 교수님이 세상을 뜨시고 연구팀 팀장 자리를 두고 묘한 권력 다툼이 있었다는 걸 들은 생각이 나서 알아봤더니... 역시나. 박상훈 그 사람, 태한그룹 일가 친척이라는 백을 이용해 이석구 교수님을 밀어내고 팀장 자리를 차지한 거였어요.”전동하의 설명을 듣던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세상에... 그런 다툼은 그룹 내부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더니... 학술계도 별 다르지 않구만.’“그럼 이 교수님은...”“이석구 교수는 그 뒤로 따로 연구팀을 구성했고 그쪽에도 제가 직접 투자를 했었어요. 솔직히 기 교수님도 대단하지만 이석구 교수는 천재들만 모인다는 의대에서도 화타의 환생이라 불릴 정도로 실력자였어요. 그 분의 실력을 믿으니까 언젠가 성과를 이뤄낼 거라 믿고 투자를 한 거기도 하고요.”“좀 더 일찍 말해 주지. 그럼 박수혁한테 부탁할 필요도 없었잖아요...”소은정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났다.“미안해요. 솔직히... 잊고 있던 프로젝트였어요. 의료 분야는 워낙 수익이 잘 안 나는 쪽이라... 윤 비서님이 확실한 정보를 주기 전엔 은정 씨한테
‘이렇게... 이렇게 은정이를 놓아줄 수밖에 없는 걸까?’박수혁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왜? 왜 잠깐의 희망만 주고 이렇게 다시 잔인하게 그 기회를 앗아가 버리는 걸까?운명의 장난질 같은 이 상황에 박수혁은 신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약 8시간 뒤.굳게 닫혀있던 수술실이 드디어 열리고 이석구 교수가 가족들 앞에 섰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쳤습니다. 이제 예후만 지켜보면 될 것 같아요.”그의 말에 소은정 일행은 물론이고 박수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김 빠진 풍선인형처럼 스르륵 벽을 따라 주저앉은 박수혁은 소은정과 가족들이 나누는 기쁨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냈다.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박수혁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없이 자리를 떴다.‘내가...무슨 자격으로 다시 은정이를 마주하겠어. 전동하 그 자식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병원을 나서니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에 걸린 달이 그를 맞이했다.유난히 밝은 달빛이 그의 비겁하고 옹졸한 마음을 비추는 듯해 박수혁은 비틀거렸다.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한석이 부랴부랴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역시 여덟시간 동안 차에서 박수혁을 기다리던 이한석은 박수혁이 안쓰러우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렇게까지 못 잊으실 거면 애초에 좀 잘해 주시지...’한편, 이한석의 부축을 받은 박수혁은 괜찮다는 말 한 마디 할 기운 조차 없는 듯 고개만 젓고는 차에 몸을 실었다.눈을 질끈 감은 박수혁의 눈치를 살피던 이한석이 물었다.“회사로 들어가시겠습니까?”“거기로 가.”“거기”그 어떠한 곳도 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단어였지만 이한석은 바로 그곳이 어딘지 알아챌 수 있었다.박수혁과 소은정의 신혼집. 그곳으로 가고 싶으신 거겠지...동남아에서 돌아오고 소은정이 죽은 줄만 알았던 그 며칠 동안에도 박수혁은 그곳에서 눈을 뜨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잠드는 폐인의 삶을 이어갔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뒤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박수혁을 보며
“대표님의 선택은 항상 이성적이고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소은정 대표님이 원하는 건... 이성이 아니었을 겁니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사람. 앞뒤 가리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런 사랑 아닐까요?”이한석의 말이 가시처럼 목구멍에 박혀 박수혁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대표님, 다른 사람들은 대표님더러 냉정하다 감정이 없다고 말하지만 전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사랑하시는 게 너무 많아요. 대표님이 일군 이 회사, 대표님의 명예, 대표님 본인에 대한 모든 걸 아끼고 사랑하시죠. 대표님 인생에서 본인이 1순위가 아니었던 적이 단 한 순간이라도 있나요? 솔직히 전... 대표님이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한번 물꼬를 트니 그 동안 참았던 말이 분수처럼 터져나왔다.‘이러다 잘리는 거 아니야?’이한석이 이를 악물었다.솔직히 이한석은 이번 기회에 소은정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박수혁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차라리 무조건적으로 박 교수를 설득했다면 소은정 인격에 인간적으로라도 박수혁에게 고마움을 느꼈을지 모른다.그렇게... 박수혁은 또다시 눈앞까지 다가온 기회를 저버린 것이었다.울음이 터져나오지 않도록 참는 건지 박수혁의 목 근육에 핏줄이 불끈거렸다.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 앞에선 절대 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이렇게까지 무너지는 건 처음 봐서인지 이한석도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그냥... 억울해. 서진인... 그래, 서진이는 다시 재결합했잖아. 왜 난... 왜 난 안 되는 건데?”“추하나 씨는 선택지가 단 한 곳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소은정 대표님은 다릅니다.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아 남자에게 목을 맬 필요가 없어요. 설령 같은 일이 소은정 대표님께 일어난다 해도...”이한석이 말끝을 흐렸지만 그럴 가능성은 0이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그날 이후로
다음 날, 간단하게 인수인계를 마친 박수혁이 사무실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솔직히 이한석보다 뛰어난 인재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본사를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직원은 이한석이 유일했다.그리고... 이한석이라면 SC그룹과의 관계도 잘 운영해 나갈 거라고 믿었고 이한석이 한국에 남아있는다면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나마 소은정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 했다.‘그러고 보면 은정이는 나보다 이 비서한테 훨씬 더 친절했었지... 질투나네.’이제 하다하다 비서한테까지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해 박수혁은 실소를 내뱉었다.잠시 후, 공항.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낸 박수혁은 바로 휴대폰을 꺼버렸다.한편, 병원.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소찬식은 회복실로 옮겨졌다.임산부인 한시연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가족들은 아직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병원 근처 식당.전동하가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다.소찬식이 쓰러지고 나서 잠 한 숨, 밥 한 톨 삼키지 못한 소은정은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이 교수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미칠 듯한 배고픔에 휩싸였고 바로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미친 듯이 음식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평소 항상 우아한 식사 예절을 고수하던 소은정이 이렇게 허겁지겁 먹는 건 처음 보는 전동하는 놀라우면서도 안쓰러움이 밀려왔다.“천천히 좀 먹어요. 누가 안 뺏으니까.”거의 그릇에 고개를 파묻었던 소은정이 머쓱하게 웃었다.“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네요. 나 물 한 잔만 줄래요.”전동하가 컵에 물을 따르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이제 그만 놓아줄게. 앞으로 무조건적인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 진심으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온 문자였지만 누가 보낸 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에 왠지 눈물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소은정은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자를 삭제했다.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