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은정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아빠가 눈 뜬 순간 내가 곁에 있어야 해요. 소은해 그 인간한테 밀릴 순 없죠.”잠을 깨려는 듯 손바닥으로 볼을 톡톡 두드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다 큰 어른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유치한 짓도 서슴치 않는 모습이 웃겨서였다.소찬식이 의식을 회복하고 이석구는 향후 치료 솔루션을 내린 뒤 소리 소문없이 출국했다.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뒤에야 소식을 접한 소은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직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렸는데...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 하는 게 도리인데...”“걱정하지 말아요. 감사 인사는 투자금으로 대신했고... 이 교수님은 워낙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떠나는 홍길동 같은 분이시라...”이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긴 잠 끝에 눈을 뜬 소찬식은 살았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옆에서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소은해 때문에 다시 정신을 잃고 싶은 마음이었다.“이놈의 자식! 너 정말 네 아버지 제 명에 못 살고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제발 좀 앉아. 정신 사나우니까!”그제야 조용히 의자에 앉은 소은해가 가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아빠,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옆에서 지켜보던 소은정은 오빠를 향해 눈을 흘겨준 뒤 소찬식의 손을 꼭 잡았다.“아빠,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한 원장님 모셔올까요?”빨갛게 부은 소은정의 눈을 바라보던 소찬식이 감탄했다.“역시 우리 딸이 최고라니까.”“당연한 말씀을 하세요.”이에 억지로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소은해가 손가락으로 역시 붉어진 눈시울을 가리켰다.“아빠, 저도 울었어요. 아빠가 의식 회복하시는 동안 제가 병수발까지 다 들었다고요!”하지만 소찬식은 괜히 코웃음을 쳤다.“너 배우잖아. 진짜로 운 건지 가짜로 운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차가운 아버지의 말에 소은해가 오버스럽게 입을 틀어막았다.“아빠 미워요!”이때 한 원장과 얘기를 마치고 들어온 소은호가 짜증스레 소은
잠시 후, 회진을 온 한 원장이 환자 좀 쉬게 내버려두라고 모두를 병실에서 쫓아내기 전까지 가족들은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기본적인 상황을 확인하던 한 원장이 감탄했다.“이럴 때 보면 자네가 참 부러워. 우리 나이에 가장 자랑스러운 게 자식 농사 잘 지은 거잖아. 네 남매 다 잘 컸지. 며느리도 예쁘고 참한데다 예비 사위까지 어쩜 그렇게 완벽한지. 자네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건가?”한 원장의 농담에 소찬식이 피식 웃었다.“내가 복이 많아서 그래. 자네는 이번 생엔 틀렸으니 다음 생을 노려. 나처럼 살려면 아픈 환자들 더 많이 살리고.”“하하, 자네 이번에 예비 사위 덕분에 산 건 알아?”“그게 무슨 소리야?”소찬식이 흠칫하자 한 원장이 이석구 교수에 관한 일을 전부 얘기해 주었다.물론 이번 사건과 상관없는 이석구 교수의 휘황찬란한 이력에 대해 홍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그 얘기들은 더 이상 소찬식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나름 생명의 은인이니 자랑할만도 한데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진중하게 구는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소찬식은 남자 함부로 믿지 말라고 당부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다른 재벌가와 달리 정략결혼으로 그룹 세력을 키울 생각도 없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귀한 딸 평생 옆에 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러자니 언젠가 그가 먼저 세상을 뜰 테고 오빠들도 다 자기 짝 만나 살아갈 텐데 그때 가서 옆에 배우자 한 명, 자식 하나 없이 쓸쓸하게 늙어갈 소은정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그래서 누구보다 소은정이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했었다.게다가 소은정은 한번의 아픔을 겪은 상황이라 전동하에게 유난히 더 엄격하게 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조금이라도 나쁜 모습이 보이면 소찬식이 나서서 두 사람을 떼어놓을 생각도 해봤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진국인 전동하는 어느새 소찬식의 마음속에 예비 사위로 자리잡은 지 오래였다.“소 회장, 행복한 이번 생, 누릴 거 다 누리고 살아. 저렇게 훌륭한 아들, 딸들 두고 어떻게 눈
전동하가 요새 부쩍 핼쓱해진 소은정의 볼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레 말했다.“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재밌게 놀다 와요.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은정 씨 예쁜 얼굴 다 상하겠다. 다 놀면 전화해요.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전동하를 꼭 안아준 뒤 돌아섰다.오랜만에 만난 한유라는 얼굴에 나 새댁이요라고 적어놓은 듯 행복함이 듬뿍 담긴 모습이었다.며칠 사이에 살이 오른 건지 더 글래머러스하게 변한 그녀를 바라보던 소은정, 김하늘이 서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재벌집 사모님 되더니 좋아 보인다? 아주 얼굴에 빛이 나는데?”“그러니까. 너 요즘 진짜 행복하긴 한가 보다. 행복하면 살 찐다잖아.”김하늘의 팩폭에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다급하게 만지던 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 살찐 거 맞지? 글쎄 깡은 죽어도 안 쪘다잖아. 하여간... 남자들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니까.”“또 괜히 저런다. 야, 그런데 부케 말이야. 살면서 친구 손에 부케 쑤셔넣는 신부는 처음 본다. 어쩜 넌 결혼식 날에도 그렇게 막무가내니?”피식 웃던 김하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 시집 못 갈까 봐 내가 특별히 배려한 거잖아.”“큭큭, 은해 오빠한테 던져주지 그랬어. 되게 좋아했을 것 같은데.”이에 김하늘이 소은정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하이고, 결혼식에 참석도 안 하신 분들은 입 다무시죠?”여고생처럼 꺄르륵 대며 세 사람은 대학가 근처 분식집에 도착했다.평소에 가던 미슐랭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그녀들의 학창시절 추억이 담겨있는 의미있는 곳이었다.떡볶이며 쫄면이며 먹을 걸 잔뜩 주문한 한유라가 자신의 신혼 생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결혼식 하니까 직원들 태도가 아주 싹 바뀐 거 있지? 대놓고 나 왕따시키던 사람들이 커피를 타주질 않나. 디저트를 사주질 않나. 사람이 너무 확 바뀌니까 좀... 소름 돋더라.”“회사 사모님이 비서로 있는 것도 갑질인 거 알지? 차라리 다른 직책으로 옮기는 게 어때?”
“그것도 다 우리 은정이가 홍해그룹을 처리해 준 덕분이잖아.”한유라가 어깨를 으쓱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었더라도 심강열은 언젠가 이뤄냈을 거야. 홍해그룹은 이미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상태였으니까. 뭐,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 시간은 좀 오래 걸렸겠지?”“아, 머리 아파. 일 얘기 그만하면 안 돼? 우리 엄마는 진짜 어떻게 일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있는 걸까? 난 잠깐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진짜 내가 우리 회사 말아먹는 건 아니겠지?”“너라면 그럴지도?”...한참을 수다를 떨던 그녀들은 때마침 서빙된 음식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얼른 먹자. 나 요즘 촬영 현장에서 맨날 도시락만 먹었잖아.”김하늘이 한숨을 푹 내쉬며 젓가락을 뜯었다.“은해 오빠가 커피차, 밥차 같은 거 안 보내줬어? 그 성격에 분명 자기가 직접 배식까지 한다고 난리쳤을 것 같은데.”한유라가 김하늘을 놀려댔다.“왜 안 그랬겠어. 그래도 내가 절대 오지 말라고 했지. 오빠가 오면 그날 아예 촬영 못할지도 몰라. 감독님도 제발 직접 오는 것만큼은 막아달라고 부탁하시더라.”“그 인간 지금 아빠 병간호 하느라 바빠. 제 딴엔 점수 따겠다고 애를 쓰는데... 왠지 더 깎아먹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어제도 아빠한테 슬리퍼로 맞았잖아.”소은정의 말에 김하늘이 소리를 내 웃엇다.“나도 얘기 들었어. 입이 댓발은 나왔더라.”한편 물 한모금으로 입가심을 한 소은정이 떡볶이를 집으려던 순간, 또 다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분명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인데...결국 입을 틀어막은 소은정이 부랴부랴 화장실로 달려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유라가 김하늘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뭐야. 나 이런 거 드라마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 봐. 쟤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한유라의 질문에 김하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눈빛은 의심으로 빛나고 있었다.잠시 후, 한참 동안 헛구역질을 하던 소은정이 가글을 마친 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왜
그들은 지금 서로 좋아서 만나고 있지만 언젠가 마음이 바뀌면 헤어질 수도 있는 관계였다.결혼을 한다면 서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약간 어두워진 소은정의 표정을 보며 김하늘과 한유라는 그런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았다.한유라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그 사람이랑 결혼하기 싫어? 그럼 이용만 하고 버릴 생각이야?”김하늘은 그런 한유라에게 눈을 부릅떴다.“넌 좀 닥치고 있어.”한유라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며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인 소은정이 말했다.“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마음이 복잡해.”김하늘은 입술을 깨물며 수저를 내려놓았다.“됐어. 오늘은 쇼핑하지 말자.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주저할 수 있어. 일단 검사부터 해보자.”한유라도 찬성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가 병원에 같이 가줄까?”김하늘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그건 안 돼. 은정이 신분을 생각해. 병원에 가자마자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날걸?”한유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김하늘이 물었다.“약국에서 테스트기 사면 되지 않아?”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두 친구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저기… 내가 집가면서 사면 돼. 너희는 그냥 너희 하려던 거 해.”말을 마친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김하늘과 한유라는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한유라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쟤 지금 우리한테도 결과 알려주기 싫어서 도망간 거 맞지?”김하늘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많이 혼란스러울 거야. 우리가 이해해야지.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특히 은정이라면 결혼이 두려울 수도 있어.”“그건 그래. 이게 다 박수혁 그 자식 때문이야.”한유라는 이 모든 불안감의 원인을 박수혁에게 돌렸다.소은정은 운전기사를 부르는 대신 홀로 골목 모퉁이를 돌아 구석진 곳에 있는 약국을 찾았다.약국에 들어선 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처음 사보는 것이기도 하기에 입을 열기조차 민망했다.약
깊은 잠에 빠졌던 소은정은 기척을 느끼고 몽롱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왔어요?”전동하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쇼핑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많이 피곤해요? 아까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유라 씨한테 전화하니까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면서요. 쇼핑 끝나고 내가 데리러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소은정은 두 팔을 활짝 벌렸고 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 소파에 앉혔다.“네. 그냥 좀 일찍 들어왔어요.”왜 일찍 돌아왔는지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전동하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배 안 고파요? 뭐 좀 만들어 줄까요?”소은정은 주린 배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를 한 뒤, 침실로 돌아가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소은정은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가는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화장실에 버리고 나온 것이 떠올라서 가슴이 철렁했다.전동하는 손을 씻은 뒤, 냅킨에 손을 닦고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쓰레기통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눈을 가늘게 떴다.5분이 지나고 그 뒤로도 10분이 더 지났다.기다리다 못한 소은정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전동하가 평온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실망도, 흥분도 없었다.소은정은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임신이 아니니 이 상황에서 당연히 그가 해줄 말은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왜 이렇게 늦게 나와요?”전동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물었다.“맛있는 거 뭐 해줄까 생각하다가 늦었어요.”소은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아무거나 다 좋아요. 난 뭐든 잘 먹잖아요.”전동하는 뒤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주방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티비를 틀어 채널을 돌렸지만 내용이 귀에 들어오
소은정은 조용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과 핏기 없이 마른 입술, 어딘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그녀는 자신이 탈이 났다고 생각하며 이마를 만져봤지만 열은 없었다.전동하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휴지를 꺼내 입술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어때요?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요?”소은정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흔들며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기운이 좀 없긴 한데 배는 고프네요.”전동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죽 끓여줄게요. 속 좀 편해질 거예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전동하는 그녀를 들어안아 소파에 내려놓은 뒤 아랫배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뺐다.하지만 예민한 소은정은 그의 그런 동작을 빠르게 눈치챘지만 눈을 감은 채, 다리를 소파에 올리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잠시 후, 전동하는 야채죽을 끓여왔고 소은정은 억지로 한 사발을 들이켰다. 뭐라도 좀 들어가니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그녀는 간단하게 씻은 뒤, 침실에 들어가서 누웠다. 전동하는 서재에서 한참 멍하니 고민하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안방으로 들어갔다.그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소은정은 이미 달게 자고 있었다.하지만 누군가 곁에 다가오는 걸 느낀 그녀는 뒤척이며 팔로 그의 허리를 감았다. 그인 것을 재확인이라도 하는듯 실눈을 뜨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점점 꿈나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전동하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은정 씨.”소은정은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응대해 주었다.전동하는 조심스럽게 손을 그녀의 배에 올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혹시 아이 낳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말하지 않는 거예요?”침실에 적막한 정적이 흘렀다.소은정은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전동하와 눈을 마주했다.소은
소은정은 입술을 깨물고 그를 바라보며 정색해서 말했다.“이거 불량품인가 봐요. 약국에서 이거 살 때 주인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몇 번 해봐야 정확도가 높다고요. 내가 테스트했을 때는 분명 한 줄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두 줄이 됐다는 건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전동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려던 희열을 간신히 억제하고 약간 못 믿겠다는 말투로 물었다.“그런 경우도 있어요?”소은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가 시선을 떨구며 물었다.“그럼 지금이라도 나가서 몇 개 더 사 올까요?”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이미 많이 사 왔거든요. 내일 아침에 다시 테스트하면 돼요.”그 말을 들은 전동하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말을 마친 그는 불량품으로 의심되는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손을 씻고 다시 돌아왔다.전등을 끄자 침실에 어둠이 가라앉았다.그녀의 옆에 가서 누운 그는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은정 씨.”거의 잠들려다가 깬 그녀는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이 사람 오늘따라 왜 이러지?’전동하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은 뒤,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소은정의 몸이 달아오르려고 할 때, 그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소은정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계속할까요?”전동하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그냥 자는 게 좋겠네요.”그냥 끌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정말 그녀가 임신이라도 했다면 임신초기에 위험할 수도 있었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침대를 데굴데굴 굴러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더니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썼다.전동하는 다가가서 그녀를 다시 품에 안고는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그렇게 힘들면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까요?”소은정은 그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는 새침하게 말했다.“치워요.”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