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의 말을 들은 전동하의 눈 밑으로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형제의 우애가 깊다니?하긴, 밖으로 알려진 사실로는 전기섭이 전인국의 동생이었고 전동하의 삼촌이었다.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입에 올리기조차 역겨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나갈 생각은 안 하던가요?"그 말을 들은 원장님이 멈칫했다."당연히 했죠, 그런데 저희 경호원이 이렇게 많은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며칠에 한번씩 병실을 바꿔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원장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전동하는 그저 소리없이 웃었다."다른 외부인이 와본 적은 없나요?""네, 전부 못 만나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자꾸 사람을 보내 얘기를 나누려고 하던데 제가 발견하고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저번에는 간호사까지 위장시켜 들여보냈더라고요, 아쉽게도 그 간호사를 놓치긴 했지만..."그는 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전동하가 이미 물었으니 무언가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전동하가 내는 돈만으로도 그는 두 개의 요양원을 더 차릴 수 있었다.이곳은 요양원이었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도 오는 곳이었다. 그래도 일반 정신병원보다 잘 보살펴줬기에 평판이 그나마 괜찮았다.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벗어나기란 무척 어려웠다.전기섭과 전인국이 바로 그 부류의 인간들이었다.전동하는 침묵하며 그 어떤 반응이나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하소그룹에서 발생한 일이 그 간호사를 통하여 전해졌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제일 꼭대기에 도착했고 경호원들이 일반 병동보다는 3배나 더 많이 서있었다.원장님은 그 중의 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대표님, 사람은 저기에 계십니다, 지금 두 분께서 같이 계십니다."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가다 그를 바라봤다."앞으로 그 어떠한 낯선 사람도 두 사람 곁에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그게 간호사든 경호원이든."원장님은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제
전동하는 담담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웃었다."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어요."이곳에 금방 왔을 때만 해도 전인국의 몸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중년이 된 나이에 제일 사랑하던 아들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자랑으로 여기던 사업은 남의 것이 되었으니 그 누가 충격을 이길 수 있었을까?하지만 전인국은 일반인이 아니었다.그는 미국에서 한 건 해낸 사람이었다.전인국이 어두운 눈빛으로 전동하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너를 실망시켰구나, 내가 죽으려면 아직 멀었어."일이 이렇게 된 이상, 두 사람도 이익을 위하여 겉으로 부자의 정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전동하는 승자임이 틀림없었다.전동하도 그 모습을 보곤 소파에 앉았다. 소파의 절반을 차지한 두 다리는 순간 사람에게 위압감을 선사했다.전인국도 어렸을 때부터 얕잡아보던 아들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아니면 그의 능력으로 이 요양원을 벗어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하지만 현실은 그는 이 병실의 문도 나설 수 없었다.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전동하가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본부에서 연락했다는 거 알아요, 요즘 하소그룹에서 일어난 일, 다 아버지가 지시하신거죠?"전동하는 분명 묻고 있었지만 말투는 단호했다.그 말을 들은 전인국은 득의양양해졌다.전동하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나를 여기에 가둬두면 내가 손 놓고 죽기만을 기다릴 줄 알았나 보지? 전동하, 내가 네 아버지라는 거 잊지 마. 네목숨을준건나라고,네가그여자랑전씨집안을차지하면아무걱정도하지않을 수 있다고생각해?그여자가전씨집안을위해서너를이용하고있을거라는생각은안해봤어?나랑기섭이한테이렇게대하는거전씨집안한테미안하지도않아?"전인국이씩씩거리며 말했다.그는오래전부터전동하를욕하고싶었던듯했다.역시천한것이낳은자식이었다,그는처음부터전동하를땅에던져죽였어야했다고생각했다.무덤덤하게전인국의욕을듣고있던전동하가그를바라봤다."은정 씨가 절 이용한다해도 그이용가치에 영광스럽게생각할거예요."전동하가웃으며소은정
얼음장 같은 전동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다들 제 잘못이라고 하셨죠. 제가 엄마를 밀어버렸다고요. 절 지금까지 살려주신 것도 혈육의 정 때문이 아니라 그 추악한 진실을 덮기 위한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 아닙니까?”전씨 일가 사람들은 말끝마다 전동하를 배은망덕한 자식이라고 불렀다.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말이다.‘키워준 은혜? 당신들이 나한테 준 상처는? 그렇게 쉽게 잊혀질 줄 알았어?’낳아준 생모의 얼굴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지만 그날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게 전동하의 꿈에 나타나곤 했다.사실 엄마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책임한 여자였다.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은 것도 전동하를 방패삼아 전씨 일가 안방을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었다.하지만 사생아 따위 버려도 상관없다는 전인국의 태도에 받은 충격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졌고 죽는 날까지 그 그림자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느라 아들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 조차 없었다.그럼에도 그녀의 죽음에 전동하가 절망스러웠던 건 엄마가 죽은 뒤로 그의 앞에 더 끔찍한 지옥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약 20년 동안 전동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난 도대체 왜 태어난 걸까? 이리저리 치이고 버림받고 미움받을 바에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그런 그에게 동생인 전동준은 삶의 희망을, 마이크는 그에게 삶의 동력이 되어주었었다.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주 오래전 스스로 비루한 목숨을 끊어냈을 것이다.그런 그가 최근 처음 살아있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그의 앞에 나타난 소은정 덕분에 이 세상의 따뜻함이라는 걸 처음 느끼기 시작했고 그녀 옆에 있으면 틈 날 때마다 그를 심연으로 끌어당기던 우울감도 사라지는 듯했다.하지만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가 차분한 척, 친절한 척 하는 얼굴 뒤에 징그러운 악마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아들의 말에 방금 전까지 분노로 타오르던 전인국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네... 네가 그걸
“전동하!”전인국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목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그가 냉정을 되찾기 위해 한참 동안 심호흡을 이어갔다.‘어떻게 일군 회사인데. 이대로 다 잃을 순 없어.’“내가, 내가 도와줄게. 내가 대표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이사들 설득하마. 하지만 전인그룹을 네가 통째로 가지는 건 절대 안 돼!”이에 여유롭게 손목을 돌려 시간을 확인한 전동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소파에서 일어섰다.“아버지, 협상도 자격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세요? 이제 며칠 뒤면 이 세상에서 전인그룹을 사라지게 될 겁니다. SF그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거예요. 그리고 그 그룹에 당신들 자리는 없을 겁니다.”“뭐... 뭐라고?”전인국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전인그룹으로서 일궜던 모든 걸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니?다 키운 숲을 전부 불태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묘목을 심는 거나 다름없는 결정이었다.‘독한 놈...’하지만 전동하의 눈동자는 자신감으로 빛났다.“앞으로 또 허튼 짓 하시면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산소호흡기 떼어버릴 테니 알아서 하세요.”전기섭의 목숨으로 협박하자 전인국이 벌떡 일어섰다.“지... 지금 날 협박하는 거냐?”‘방금 전까지 그렇게 화를 내던 사람이 기가 팍 죽었네. 전기섭 목숨이 그렇게 소중한가 보지?’이런 생각에 전동하의 눈동자가 혐오감으로 물들었다.“네, 협박 맞습니다. 이보다 더 잘 통하는 협박이 있을까요? 신중하게 행동하세요. 당신한테 남은 마지막 아들입니다.”전인국의 얼굴이 추악하게 일그러졌다.협박? 애원? 구걸?‘내가 어떻게 해야 저 아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전인국은 왠지 전동하가 낯설게 느껴졌다.한때 전인국은 전동하의 소식을 전부 차단했었다. 아니, 그 이름 조차 귀에 담고 싶지 않았다.사생아이자, 살인의 목격자.전동하는 그에게 인생의 커다란 오점 같은 존재였고 무시하다 보면 언젠가 지워질 거라 생각했었는데...그의 방치로 인해 그
할 일을 마친 전동하는 조용히 귀국했다.사실 미국에서 일주일은 있으려고 했지만 소은정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전동하가 물고기라면 소은정은 물과도 같은 존재. 그녀에게 조금씩 멀어질수록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한편, 윤이한은 전인국과 대면한 전동하의 기분이 엉망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심지어 이대로 사직서라도 써야 하나 망설이던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전동하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기분이 나쁘긴커녕 굉장히 홀가분한 표정으로 모 브랜드의 가방 디자인이 별로라는둥, 소은정이 언젠가 입었던 코트도 별로였다는 등 시덥지 않은 얘기를 건넸다.“저번에 소 대표님이 입으셨을 땐 예쁘다고 칭찬하셨잖습니까? 설마 거짓말을...”의아한 표정의 윤이한이 말끝을 흐렸다.이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거짓말은 아니죠. 은정 씨는 이쁜 게 맞으니까.”소은정의 유일한 취미는 쇼핑, 게다가 피팅할 때마다 이건 어떠냐? 어느 게 더 낫냐는 등 질문 세례를 던지는 그녀에게 맞추기 위해 패션의 패자도 모르던 전동하도 언제부터인가 패션 잡지를 읽어보기 시작했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안목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고 예전엔 전부 똑같아 보이던 여성용 가방이나 의류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잠시 후, 오피스텔.차에서 내린 전동하가 쇼핑백들을 챙겨들었다.“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윤이한이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전동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오늘은 이만 퇴근하세요. 별일 없으면 연락하지 마시고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전동하는 미련없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소은정은 출근을 한 건지, 텅 빈 오피스텔이 그를 맞이했지만 그녀의 공간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양손 가득 든 쇼핑백을 옷방에 넣어둔 전동하는 그의 서프라이즈 선물에 환하게 웃을 소은정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다니. 나도 참 단단히 미쳤네.’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전동하가 오피스텔을 쭉 둘러보았다.전체적으
전동하의 목에 팔을 꼭 감은 채 대롱대롱 매달린 소은정의 모습은 얼핏 보면 아기 코알라 같기도 했다.생각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그녀의 스킨십에 전동하 마음 역시 달콤해졌다.“많이 보고 싶었나 봐요?”전동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한편,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끄덕이던 소은정은 놀랍게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헤어진 지 겨우 이틀인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걸까?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성인이 되고 나선 혼자 지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전동하가 떠난 그 이틀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평소엔 아늑하기만 하던 집이 왠지 공허했고 전동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은 너무나 쓸쓸하기만 했다.‘아, 이런 게 외로움이라는 건가?’어느새 그녀의 삶을 물들여버린 전동하, 이제 정말 이 남자를 벗어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 정도였다.‘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잠깐 포옹 끝에 전동하의 따뜻한 입술이 소은정의 달콤한 입술에 닿았다. 이틀 동안의 그리움을 풀어내기라도 하 듯 두 사람 사이의 불꽃은 빠르게 달아올랐다.소은정의 손이 슬슬 작전을 시작하려던 그때, 전동하가 그녀를 살짝 밀어낸 뒤 허리를 움켜쥐었다.“왜요?”소은정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키스 때문에 살짝 물든 뺨을 보고 있자니 그날 밤 너무나 매혹적이었던 소은정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전동하는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배고프죠? 일단 밥부터 먹어요.”전동하가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지만 소은정은 작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콩 때려버렸다.‘뭐야? 꼭 내가 밝히는 여자인 것 같잖아?’하지만 흥칫뿡을 외치며 총총총 식탁 앞으로 향한 소은정의 표정은 다시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웬만한 팬시 레스토랑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고급스러운 양식 코스 요리,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다.‘세상에나, 도
전동하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선물을 다 살펴본 소은정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옷방을 나섰다.마침 정리를 마친 전동하가 소은정을 꼭 안았다.“샤워해야죠?”왠지 에로틱하게 귀를 간질이는 그의 목소리에 소은정의 귓볼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부끄럽지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욕실문을 닫으려던 그때, 손 하나가 불쑥 문턱을 잡았다.깜짝 놀란 소은정이 고개를 돌려보니 문틈으로 들어온 전동하가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시간도 너무 늦었고 그냥 같이 씻어요.”‘하, 지금 그걸 핑계라고.’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안 돼요!”“될걸요?”하지만 전동하는 그녀에게 거절할 기회마저 주지 않겠다는 듯 뜨거운 키스를 이어갔다. 천천히 그녀를 욕실로 리드한 전동하가 더듬거리며 샤워부스 물을 틀었다.따뜻한 물줄기가 두 사람의 옷을 전부 적셨지만 그 누구도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전동하가 침대에 축 늘어진 소은정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자 소은정이 어딘가 겁 먹은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더는 안 돼요...”소은정은 알고 있을까? 그를 밀어내는 목소리가 얼마나 야릇한지.순간 전동하의 하체가 다시 뻐근하게 달아올랐지만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 또 시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큭, 알겠으니까 얼른 자요.”이미 잠든 소은정을 안은 전동하는 그제야 어딘가 텅 비었던 마음 한 구석이 꽉 채워지는 기분이었다.‘좋다, 이런 기분... 매일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 평생 해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고마워요, 은정 씨.’다음 날,동이 트기도 전에 다급한 벨소리가 소은정의 달콤한 꿈을 건드렸다.“으음...”역시 벨소리에 깬 전동하가 소은정을 가볍게 흔들었지만 받을 생각이 없는 듯한 모습에 결국 직접 수락 버튼을 눌렀다.“네, 은해 형님.”“전 대표?”남자 목소리에 당황한 소은해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은정이 자고
역시 굳은 표정의 전동하가 소은정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꽉 주었다.“괜찮을 거예요.”전동하는 방금 전 휴대폰을 챙기는 것도 잊은 채 혼이 나간 듯 허둥지둥 집을 나서는 소은정의 모습을 떠올렸다.아름다운 두 눈의 생기가 사라질 정도로 당황한 모습은 처음이라 전동하의 마음도 착잡해졌다.하지만 전동하의 따뜻한 위로에도 소은정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제발...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소은해가 이 새벽에 그녀에게 전화까지 했다는 건 정말 상황이 심각할 수 있다는 소리.방금 전 떨리는 손으로 소은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그쪽도 상황이 혼란스러운지 주위의 복잡한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이때 전동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은정 씨, 이제 곧 도착해요.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전동하가 빳빳하게 굳은 소은정의 손을 꼭 잡았다.이른 새벽 시간이라 길도 막히지 않았고 기사가 워낙 엑셀을 풀로 밟은 덕에 두 사람은 빠르게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굳은 표정으로 한 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은호, 소은해. 역시 착잡한 표정의 한시연.어딘가 무겁게 가라앉은 병원 분위기가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소은정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저번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셨으면서... 왜 갑자기...’종종걸음으로 걸어간 소은정이 물었다.“한 원장님, 저희 아빠 괜찮은 거 맞죠?”괜찮냐고 물었지만 한번도 틀린 적 없는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역시나 한숨을 푹 내쉰 한 원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은정아, 마음의 준비 해둬야겠다. 15년 전에 너희 아버지 심장 수술 받았던 거 기억하지? 수술은 성공적이었다만... 네 아버지 나이도 있고 최근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오늘 새벽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에 실려왔다. 응급처치로 지금은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이건 말 그대로 응급처치일 뿐이야. 지금 네 아버지는 시한폭탄을 가슴에 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란다.”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