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은 기분을 형용할 수 없었지만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분노와 수치가 치밀어 올랐다. 더 이상의 사고를 멈춘 그녀는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눈앞의 남자에게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안진은 제법 실력을 가진 이었지만 남자의 실력은 그녀보다도 더 뛰어났다. 힘과 실력 모두 안진보다 뛰어났다.문 앞의 소란스러움에 사람들이 눈길을 돌렸다.안진의 신분이 특별했던 덕분에 시끄럽던 식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져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머지않아 두 사람의 주위에 그레이 슈트를 입은 남자와 비슷한 몸과 분위기를 가진 남자들이 둘러섰다.그들은 모두 방금 전, 하객들 사이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쿵!"안진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 그녀는 상상보다 추한 꼴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치마 밑에 숨겨져있던 은색의 총을 꺼내 차가운 얼굴을 한 남자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총소리가 울려 퍼진 뒤, 식장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식장을 벗어나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안진은 남자를 비웃으며 가소롭다는 듯한 눈빛을 했다.하지만 총을 맞은 남자는 그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마치 총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듯 안색만 살짝 창백해졌을 뿐 피를 흘리지 않았다.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진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살짝 떨었다.그리고 다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적을 보는 듯한 차가움이 서려있었다.방탄복을 입고 왔다는 것은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시끄러운 주위와 이곳의 정적은 마치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은 듯했다.이한석은 빠르게 사람들을 데리고 미리 준비해둔 통로로 향했다.이미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국내에서는 충분히 뉴스에 오를만한 일이었다.게다가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안진의 총에는 더 이상 총알이 없었다, 그 하나의 총알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이한석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안진은 금방 알아차렸다.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도혁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안진은 박수혁과 결혼을 하기 전, 그 좋은 점에 대해 일일이 얘기해 줬었다. 박수혁을 이용해 국내의 시장을 열어 앞으로 모든 세력들을 손에 거머쥘 생각이었다.도혁은 오래전부터 그런 그림을 꿈꿔온 사람이었기에 기회가 생긴 지금,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 직접 들를 것이 분명했다.더구나 안진은 무조건 문제없다고 장담하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휴대폰 신호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외부와 연락을 할 수 없었다.동남아에서 온 도혁은 딸과 연락이 되지 않자 당연히 박수혁을 찾아갔을 것이다.안진의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다 가짜라고? 다 박수혁 계획이라고? 우리 아빠를 여기에 오게 하는 것도 다 너희들 계획이었어? 우리 아빠 손에 죽을까 봐 걱정되지 않아?""제가 알기로는 당신 아버지 신분 위장해서 국내로 들어온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달고 왔겠어요."이한석이 웃으며 말했다.안진은 그런 이한석을 보니 화가 나 이를 악물고 말했다."신분 위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빠 도혁이야, 동남아에서 제일 큰 세력을 지닌 무기상이라고. 당신들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빠 옆에 있는지 알아? 너희들이 무슨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빠를 잡을 수 없어!"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적이 내려앉았다.그리고 안진의 등 뒤에 서있던 그레이 슈트를 입은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이한석은 웃으며 그녀의 등 뒤를 보며 말했다."이 국장님, 다 들으셨죠? 도혁이 신분을 위장해서 입국했을 뿐만 아니라 킬러까지 옆에 끼고 있다는 거. 그야말로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무기 거래에도 문제가 많으니 앞으로 저희 쪽에서 증거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국장님께 맡기겠습니다…"이한석의 말을 들은 안
이한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안진은 힘을 잃은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마치 얼음굴에 빠진 것 같았다.이한석이 담담한 말투로 내뱉은 몇 마디 말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절망을 안겨줬는지 이한석은 알지 못했다.도혁은 명성이 자자하고 다른 이들이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지만 무기상인 그는 깨끗한 인물이 아니었다.깨끗한 사람은 각국에서 그렇게 발을 디디고 설 수 없었다.그는 무기를 판매하고 마약도 도매했다.인신매매를 하기도 했고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모든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며 테러리스트와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그랬기에 각국에서 그를 잡아들이려고 했지만 증거가 없었고 그는 여전히 날뛸 수 있었다.그 누구도 도혁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본인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이번을 빼곤…도혁은 결국 박수혁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다.안진은 그야말로 바보처럼 덫에 걸려버렸다고 생각했다.정말이지 이보다 웃길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어두운 눈빛으로 이한석을 보던 그녀는 마치 다른 이를 보고 있는 것처럼 소리쳤다."내가 너희들 다 죽여버릴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하지만 이한석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안진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봤다.긴장되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지만 식장은 고요했다. 하객들이 사라진 식장은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방금 전과는 상반되었다.그때 경호원 차림을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이한석에게 말했다."이 비서님, 하객들은 모두 안전하게 떠났습니다. 하지만 한유라 씨가 아직 문 앞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이한석이 웃었다."상관하지 마세요, 유라 씨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두세요."어차피 이 소식은 언젠가는 소은정에게 전해질 것이 분명했다.박수혁은 소은정 이외의 여자와 약혼을 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소은정이 이것을 알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감동할까?공항으로 가는 길.어두운 날씨에 차가움이 섞여있었다.거리에는 사람
"손들어, 도혁!"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도혁이 주위를 살펴보니 모두 제복을 입은 무장경찰이었다.도혁은 그들을 보며 자신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리고 차 안을 한 번 바라봤다,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무엇을 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몇 초 뒤, 마치 결정했다는 듯 이를 악물고 총을 들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기 시작했다.그는 죽어도 다른 이를 잘 살게 할 수 없었다.그는 동남아의 왕 도혁이었기에 쉽게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탕! 탕!"연달아 울린 총소리를 들으며 명중한 것을 확인한 도혁이 여전히 빠른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머지않아 종아리에 총을 맞고 말았다.그리고 풀썩 쓰러졌다.무장경찰들이 도혁의 주위를 둘러싸고 창백한 얼굴을 한 그를 향해 무수히 많은 총을 겨누었고 죽음이 그와 가까워졌다.다시 차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차 뒤쪽의 어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잘 됐어…그리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머지않아 도혁은 경찰들에게 붙잡혀갔고 도로도 금방 정리되었다.평화로운 나라에서 방금 전의 장면은 영화에서만 일어날 상황 같았다.마치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깨끗한 도로는 금방 평소처럼 정리되었다. 방금 전, 도로를 봉쇄한 덕분에 차량이 통행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차 안.박수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방금 전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조수석에 있던 강서진이 뒤를 한 번 보더니 한시름 놓았다."형, 이번에는 잘 끝났겠지? 도혁도 잡히고 아저씨도 미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게 되었으니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우리 계획 정말 빈틈이 전혀 없었어."하지만 박수혁의 까만 눈동자에서 기쁜 감정을 보아낼 수 없었다."정말 도혁이랑 기사 두 사람만 왔다고 확신할 수 있어?"그 말을 들은 강서진이 멈칫했다."응, 내가 알기론 그래. 비행기 탑승자 리스트도 그렇고, 도혁이랑 기사밖에 없었어, 기사도 방금 경찰들이 데려갔잖아…"하지만 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소은정과 전동하는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영화관에 사람도 적었던 덕분에 두 사람은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전동하는 단호하게 공포영화를 선택하며 비현실적인 느낌을 즐겨보고 싶다는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사실을 털어놓았다."이 귀신 영화를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사람 많은 곳은 별로라."그 이유는 나름 정상적이었기에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오기 전에 디저트를 먹었던 두 사람은 팝콘을 사지 않았다. 그렇게 빈손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본 대학생 커플이 부러운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 남자 잘생기긴 했는데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그러자 여자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한 눈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저 얼굴이면 쪼잔해도 돼."남자는 자신의 여자친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영화가 시작되고 소은정이 영화에 집중하려던 찰나,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은정 씨 무서워할까 봐 그래요, 눈 감아도 돼요.""전혀 안 무서운데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손을 빼내지 않았다.전동하의 손은 부드럽고 고운 것이 꼭 예술작품 같았다.예술작품이 손을 감싸고 있으니 자신도 귀중해진 느낌이었다.머지않아, 소은정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휴대폰은 또다시 울렸다.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소은정이 대충 보니 한유라가 단톡방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99+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괜히 힘들 것 같아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았다.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화면 속을 가득 채워 시각적 충격을 안겨줬다. 전동하도 그 모습을 보곤 얼어버렸다.덩달아 표정도 조금 굳었다.하지만 한유라는 미친 것처럼 계속 메시지를 보내더니 이번에는 전화를 걸었다.소은정은 그런 한유라를
‘한유라, 이럴 때 보면 아직 애라니까.’소은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총성? 확실해?”소은정의 질문에 한유라가 싱긋 웃었다.“아니. 하지만 깡이 총성이라고 말했고 나한테 괜히 참견하지 말라고 말했어. 이민혁 비서도 갑자기 약혼식 취소라고 하객들 다 돌려보냈고. 그 군수물자 사업을 한다는 집안 딸이 홧김에 총을 쏜 것 같은데...”‘대한민국에서 총을 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구 다친 사람은 없었어?”곰곰히 생각하던 한유라가 대답했다.“없을걸? 구급차도 안 왔고 큰 소란도 없었으니까 다친 사람은 없을 가능성이 클 거야. 그런데... 양복 입은 사람들이 안나 그 여자를 연행해 갔어. 수갑까지 채워서.”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국정원 사람들이 안진을 연행해 갔단 말이지... 어쩌면 이번 약혼식 자체가 박수혁이 계획한 함정일지도 모르겠어. 무서운 자식. 국정원까지 동원된 이상 쉽게 풀려나진 못할 것 같은데 도혁 회장이 가만히 있을까? 자기 딸 구하려고 뭔 짓이든 할 텐데...’소은정은 고개를 저으며 꼬리를 무는 생각을 털어냈다.‘아니야. 상대는 박수혁이야. 그 사람이라면 이 정도 변수까지 다 생각해 둔 거겠지. 남 걱정은 그만하자.’“우리 유라 대단하네. 그걸 다 파악하고.”소은정의 말에 한유라가 깔깔 웃어댔다.“어쩌겠어. 이런 사건 사고 앞에서는 레이더가 막 돌아가는 것 같다니까.”소은정이 뭔가 한 마디 더 하려던 그때 그녀의 앞이 어딘가 어두워졌다.흠칫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큰 키에 깡마른 몸매, 어딘가 이상할 정도로 창백한 인상의 남자가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워낙 병적인 안색 때문에 그런 건지... 그 미소가 어딘가 기괴해 보였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자 남자가 먼저 물었다.“저기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생각 외로 젠틀한 목소리에 소은정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이에 고맙다는 말을 남긴 남자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한편 한유라는 여전히 재잘재잘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대고 있었고
축 늘어진 여자와 그런 여자를 부축하고 있는 남자.하지만 다들 그저 여자가 취했거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이때 방금 전 마주쳤던 커플 중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뭐야? 아까는 저 남자 아니었던 것 같은데?”여자도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남자가 더 나은데? 뭐야? 삼각관계 뭐 그런 거야?”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워낙 출중한 소은정의 외모가 오히려 이 의문을 지워주었다.‘저 정도로 예쁜 여자면 인기도 당연히 많겠지...’...소은정 실종 15분째.여전히 극장 안에 있는 전동하는 지루함에 하품을 내뱉었다.처음에는 나름 긴장감 있는 스토리로 끌고 나가는 듯했으나 후반으로 갈 수록 스토리가 망가지는 전형적인 삼류 영화였다.시간을 확인한 전동하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왜 안 오는 거지?’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전동하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일어섰다.‘유라 씨... 아마 박수혁 그 사람 약혼식에서 일어난 일로 전화한 거겠지...’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전동하는 애써 마음을 달래 보았다. 결국 소은정이 선택한 건 그였으니까.‘그래도 이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하지만 극장을 나가봐도 소은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때, 저 멀리서 한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 내 말 듣고있어? 아까부터 왠지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은데? 야, 내가 데이트 방해했다고 삐친 거야? 치사하게 친구보다 남자다 이거야?”바닥에 떨어진 소은정의 휴대폰을 발견한 전동하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떨리는 손을 애써 잠재우며 전동하가 휴대폰을 주웠다.“유라 씨?”“동하 씨? 은정이는요?”“은정 씨가 사라졌어요. 휴대폰은 바닥에 떨어져있고... 언제부터 유라 씨 혼자 말하기 시작한 거예요?”전동하의 시선이 자연스레 화장실 쪽으로 향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화장실에 간 거라면 휴대폰까지 떨어트렸을 리가 없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야.’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전동하가 영화관을 나섰다.프런트로
어색하게 눈치를 보던 남자가 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저기... 혹시 아까 함께 온 그 여자분 찾으시는 거예요?”전동하가 고개를 홱 돌렸다.“네, 혹시 보셨어요?”전동하의 다급한 목소리에 커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이때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떤 남자랑 같이 가던데요? 그리고 취했는지... 축 늘어진 모습이었어요.”순간 전동하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술은 안 마셨는데....”이에 여자도 미간을 찌푸렸다.“아닌데... 분명 취한 것 같...”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젠장, 도대체 누가...’전동하가 이를 악물었다.“그 남자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요?”커플 중 남자도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그 남자랑 아는 사이 아니었어요? 전 삼각관계 그런 건 줄 알고...”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남자가 전동하의 차가운 시선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전동하의 눈치를 살피던 남자가 드디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키가 컸고 아주 마른 체격이었어요. 아, 얼굴이 굉장히 창백한 남자였어요.”여자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남자가 그렇게까지 하얀 건 흔치 않은 경우라 기억에 남아요.”“얼굴은요? 얼굴은 확인하셨나요?”전동하의 다급한 질문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너무 빨리 사라져서 얼굴을 제대로 못 봤어요.”전동하의 얼굴에 비친 다급함이 짜증으로 바뀌려던 그때, 직원이 부랴부랴 달려왔다.“이분이 저희 매니저님이세요.”한편, 실종자가 SC그룹 소은정 대표라는 사실을 들은 매니저 역시 잔뜩 당황한 얼굴이었다.소은정과 함께 동행한 남자라면 그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닐 터, 게다가 기분이 나빠 보이긴 하지만 귀공자 같은 고급스러운 외모...‘분명 어느 회사 대표겠지?’“매니저분 되세요?”“네네네. 소은정 대표님이 오시는 걸 미리 알았으면 저희 측에서 전체 대관해 드렸을 텐데요...”전동하의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매니저가 몸을 움찔거렸다.‘소은정 대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