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유라는 피곤해하는 민하준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두 사람의 감정을 보살피는 것도 피곤해했다.그동안 쌓인 실망 때문이 아니었다면 한유라는 갑자기 나타난 한 여자아이 때문에 그곳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그때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제일 잘 한 일이었다.그때의 결정이 지금 한유라에게 퇴로를 만들어줬다.한유라는 고개를 들고 민하준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충동적으로 이러는 거 아니야, 민하준,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 너도 우리 사이가 달라졌다는 거 느꼈잖아. 감정 낭비, 시간 낭비하기보다 빨리 끝내는 게 좋아.""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응,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이혼을 했다고 하지만 당신 여전히 전처랑 만남을 가지고 있잖아. 그 집안에서 주는 도움이 필요해서 양쪽으로 불쌍한 척 연기를 하잖아. 나는 그거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민하준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빨개진 눈으로 한유라를 바라보는 그는 그녀가 미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는 자신을 향한 한유라의 뜨거운 사랑을 탐내며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그것도 이렇게 단호하게,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었다.한유라는 말이 없는 민하준을 보며 그도 허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드디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된 거 좋게 헤어지자, 너는 전처 찾아가서 다시 살고 이제 더 이상 나 찾아오지 마, 우리 그냥 모르는 척하자."한유라가 말을 하며 민하준의 손을 놓고 몸을 돌려 떠났다.그녀는 민하준이 이익을 위해서라도 전처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두 사람이 이혼을 할 때에도 재산을 나누지 않았으니.그저 이혼서류에 사인만 했지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이익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이는 앞으로의 수십 년 동
시간이 꽤 많이 흘렀지만 소은정은 조금의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어쨌든 서로 사랑했던 시간이 있으니까 끝내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유라야 오래전부터 이별을 준비해 왔겠지만 민하준 그 사람한테는 갑작스러울 수도 있으니까...’이때 한유라가 걸어나오고 소은정이 차창을 열어 손을 흔들었다.곧바로 차에 탄 한유라는 뒤를 힐끗 바라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안 따라나오네. 다행이다... 이젠 더 이상 이 감정에 엮이고 싶지 않아.”한유라가 소은정에게 방금전 상황을 쏟아내려던 그때 운전석에 앉은 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동하 씨? 은정 씨 운전기사 해주려고 오신 거예요?”“제 영광이죠.”싱긋 웃은 전동하가 차 시동을 걸었다.이때 소은정이 한유라 옆으로 찰싹 다가갔다.‘안 울었네. 다행이다. 이젠 정말 내려놨나 봐.’그럼에도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 번 더 물어보는 소은정이었다.“얘기는 다 끝났어?”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준비했던 말은 다 했어.”앞좌석에서 눈치를 살피던 전동하도 한 마디 거들었다.“아, 유라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이에 눈썹을 치켜세운 한유라가 옆에 앉은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았다.“하, 소은정. 은근 입 싸다 너?”“동하 씨가 입 무거우니까. 아무데나 가서 막 떠벌릴 사람 아니야.”소은정의 미소에 한유라도 피식 웃었다.“말로만 축하요? 아직 은정이랑 결혼한 건 아니니까 축의금은 따로 하셔야 해요.”“하하. 그럼요.”한유라의 농담에 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흘겨보았다.“그 와중에 축의금? 은근 속물이라니까.”입으로는 핀잔을 주면서도 빨리 기운을 차린 한유라의 모습에 소은정도 흐뭇했다.‘갑자기 한 결혼이라 죽을 상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잖아. 아니지. 왠지 모를 기대감까지?”휴대폰을 꺼낸 한유라는 심강열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밥 먹었어요? 내가 데리러갈까요?”“짐은 어디에 둘까요? 옷방은 어디로 쓸래요?”“하, 지금 무시하는 거예
소은정은 눈치없이 비아냥대는 성강희의 팔뚝을 살짝 꼬집으며 복화술로 말했다.“좀 닥쳐. 우리 유라님 하실 말씀 있으시다잖아.”평소답지 않게 한유라를 띄워주는 소은정의 모습에 김하늘의 눈빛도 묘하게 변했다.하지만 두 사람의 의심스러운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소은정은 두 손으로 한유라를 가리켰다.“자, 유라님. 현장 정리됐으니까 계속하세요.”“큼큼.”목소리를 가다듬은 한유라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나 결혼했다?”...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소은정을 제외하고 성강희, 김하늘 두 사람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은 채 한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이에 미간을 찌푸리던 한유라는 백에서 혼인관계증명서까지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아, 진짜라고. 나 이제 유부녀야.”겨우 정신을 차린 김하늘이 증명서를 낚아채 자세히 훑어보았다.‘가짜 같진 않은데... 엥? 민하준 그 사람이 아니라 심강열?’“야, 나도 봐봐.”역시 머리를 들이민 성강희의 눈도 휘둥그레졌다.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고...김하늘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유라야, 너...”하지만 어딘가 걱정스러운 표정의 김하늘과 달리 성강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 민하준 그 자식만 아니면 됐다. 난 네가 진짜 사고라도 친 줄 알았잖아.”손을 내저은 한유라가 환하게 웃었다.“그 사람이랑 이제 완전히 끝냈어. 이제부터는 심해그룹 사모님 한유라라고.”하지만 김하늘의 표정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했다.한유라, 소은정 두 사람의 눈치만 살피는 그녀의 모습에 소은정이 웃으며 해명했다.“걱정하지 마. 억지로 한 결혼 아니고. 유라랑 민하준 완전히 끝낸 거 맞으니까.”“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유라가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유부가 되다니. 나 지금 꿈 꾸는 거 아니지?”쪼르르 무대에서 내려온 한유라가 샴페인을 오픈했다.“꿈인지 아닌지 헷갈리면 볼이라도 꼬집어 보든지. 자, 다들 잔 들어. 나 브라이덜 샤워도 못했잖아.
발걸음을 멈춘 지채영이 고개를 돌렸다.“아, 지금 상간녀인 거 인정하는 건가요?”한유라는 술기운으로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기 위해 세면대를 꽉 부여잡았다.“인정? 난 민하준 그 사람이 유부남인 거 모르고 만났고 알고 나선 바로 정리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이혼하고 나서 그 자식이 죽자살자 매달려서 다시 받아준 거고요. 그런데 내가 왜 상간녀예요? 그쪽도 그렇고 그쪽 여동생도 그렇고... 그렇게 나오면 내가 죄책감이라도 느낄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요. 난 피해자였어요. 그런데 왜 내가 그딴 걸 느껴야 하는 건데요?”지채영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지만 이미 취한 한유라의 눈에 그게 보일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워진 것만은 확연히 느껴졌다.“당신만 아니었으면 내 결혼생활...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지 않았어요. 한유라 씨, 그쪽이 고의로 민하준 그 자식 만난 거 아니라고 쳐요. 그렇다고 당신이 아무 잘못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민하준 그 자식...반년 전부터 묘하게 우리 가문과의 관계를 끊어내기 시작하더라고요? 우리 집안 인맥으로 얻은 고객들, 인맥들 다 버려가면서까지요.”한유라에게 한발 다가선 지채영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한유라 씨, 도대체 민하준 그 자식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무슨 짓을 했길래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거냐고요.”한편, 한유라는 넘어지기 않기 위해 세면대를 더 꽉 잡았다.눈앞에 서 있는 여자가 지채영이라는 건 어렴풋이 인지되는 상황이었지만 머리가 웅웅 울려대는 통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술을 조금이라도 깨기 위해 한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았지만 지채영의 그림자는 여전히 두 개로 겹쳐보였다.‘시끄러워... 머리가 터질 것 같아...’참다 못한 한유라가 발걸음을 옮겼다.“됐고. 난 이제 그 사람이랑 헤어졌으니까 더 이상 나한테 이러지 마요. 그쪽이 원하는대로 됐잖아요? 버림받은 비참한 조강지처 코스프레... 언제까지 할 건데요? 내가 왜 민하준 그
겨우 다시 중심을 잡은 한유라는 그저 길 가는 사람에게 도움이라도 받은 듯 무심하게 밀어냈다.“고맙습니다...”하지만 아무리 발걸음을 옮겨봐도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기분에 한유라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누가 봐도 인사불성으로 취한 그녀의 모습에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몇 번 룸이에요?”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한유라가 한숨을 내쉬었다.“은정이한테 전화 좀 해줄래요? 나 좀 데리러 와달라고. 내가 폰을 룸에 두고 와서어...”한유라는 웅얼대며 말끝을 흐렸다.하지만 진상으로 느껴질 법한 이 상황이 심강열은 딱히 싫지 않았다.오히려 평소 진중하다 못해 무뚝뚝한 그의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로 가득했다.“업무용 휴대폰 번호 밖에 없는데요? 지금 제 전화를 받을까요?”심강열과 소은정은 그저 오며가며 회의나 파티에서 만난 것뿐, 사적으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소은정 대표 비서 번호는 있는데... 이런 사적인 자리에 비서를 대동할 일은 없을 테고...’한편 한유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럼 왜 왔어요?”“휴...”심강열은 깊은 한숨과 함께 한유라의 가는 손목을 잡았다.반대쪽으로 움직이던 그가 말했다.“어느 방인지 기억 안 나면... 바람이라도 좀 쐬죠? 술 좀 깨면 생각날지도 모르잖아요.”복도 끝 창문 앞에 도착한 심강열은 한 번도 걸지 않은 번호를 눌렀다.“아, 우 비서님 되시죠? 심해그룹 심강열입니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만... 소은정 대표님한테 잠깐 복도로 나와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한유라 씨가 많이 취했는지 룸이 어딘지를 못 찾고 있네요? 저랑 같이 있다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통화를 마친 심강열이 다시 고개를 돌리니 한유라는 창문 앞에 선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아직 찬 밤바람에 정신이 반쯤 돌아온 한유라는 심강열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강열...? 그래. 결혼까지 한
한유라에게 심강열은 나이보다 더 진중하고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으며 세상만사에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진짜 저 사람 모습이 맞을까?’갑작스럽지만 한유라는 눈앞의 이 남자에게 참지 못할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다.‘사귀던 여자가 돈 받고 떠났다는데... 그 말을 할 때도 전혀 슬퍼보이지 않았어. 꼭 남 일 말하는 것처럼... 화는커녕 실망한 기색도 전혀 없던데... 왜지? 저 사람도 당황하거나 화를 낼 때가 있을까?’진심으로 묻고 싶었지만 지금 두 사람의 애매한 관계를 생각해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한편, 한유라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심강열은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숙련된 손놀림으로 담뱃재를 털어낸 한유라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건네려던 그때, 넓은 등이 휙 다가오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막아버렸다.한유라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심강열이 허리를 숙이고 조금 차가운 입술과 한유라의 말랑한 입술이 맞닿는다. 그리고 한유라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심강열을 받아들였다.심강열의 숨결에 입안에 조금 남은 담배향이 사라지고 심강열은 그렇게 천천히 한유라의 입술을 음미했다.키스의 달달함에 담배 연기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쯤에야 심강열은 다시 그녀를 놓아주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한유라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찬바람에 겨우 되찾은 정신이 다시 몽롱해지고 시끌벅적한 복도가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뿐인 듯 조용하게만 느껴졌다.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건 심강열이었다.“쓰네요.”“아, 네.”한유라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엄마가 피우던 건 이런 향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심강열의 표정과 목소리는 마치 담배 전문가처럼 진지했다.방금 전 그 뜨거운 키스가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과 오일의 비율에 대해 연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어느새 끝까지 타버리는 담배가 뜨겁게 느껴질 때에야 다시 정신을
적극적인 한유라의 모습에 심강열은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그의 어깨를 감싸안은 한유라의 따뜻한 손마저 치명적이게 느껴졌다.스킨십의 주동권을 완전히 빼앗긴 상황에서도 심강열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달콤하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달콤해.’담배의 달콤한 향을 느끼게 된 건지. 그저 이 순간이 달콤한 건지 헷갈렸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잡고 있던 이성의 줄을 놓칠 것만 같을 정도로 치명적으로 달콤했다.본능적인 욕망에 심강열이 더 다가가려던 그때, 한유라가 그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윽...”마법 같은 시간이 끝나고 한유라는 심강열의 가슴팍에 기댄 채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하지만 심강열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방금 전 스킨십에서 한유라의 경험이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는 걸 느꼈음에도 여기서 더 나가면 한유라가 놀랄까 조심스러웠다. 주제 맞게도 그의 품에 안긴 이 발칙한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심강열 씨.”“네.”밤하늘처럼 어두운 그의 목소리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이번에는 느꼈어요? 달콤함?”한유라의 나른한 목소리에 심강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네.”“큭큭...”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는지 한유라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어두운 복도의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두 사람과 10m 쯤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춘 소은정이 물었다.“유라야? 심 대표님? 두 사람 맞아요?”익숙한 목소리에 한유라는 본능적으로 일어서려 했지만 이미 풀려버린 다리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그런 그녀의 허리를 잡은 심강열이 대답했다.“네, 저 맞습니다.”서로를 꼭 안은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투샷에 살짝 흠칫하던 소은정이 이내 자연스럽게 웃었다.“아, 이제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유라는 심 대표님이 맡으시겠어요? 아니면 저랑 같이 가는 게 나을까요?”“아, 유라 씨는 제가 집까지 데려다주겠습니다.”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선 소은정이
그 모습에 소은정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그렇게 피곤하면 오지 말지. 기사님 부르면 되는데. 그거 알아요? 동하 씨랑 사귀고 나서 우리 집 기사님 거의 매일 휴가나 마찬가지인 거? 일할 틈을 안 주네요, 아주.”그 말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안 피곤해요. 솔직히 여기 안 왔으면 아직 일하고 있었을 걸요? 일보단 은정 씨 얼굴 보는 게 훨씬 더 즐거우니까.”한편, 뒷좌석에 앉아 창문에 고개를 기대고 있던 성강희는 애써 눈을 감았다.‘이것들아, 뒤에 사람 있다고... 애인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잠시 후, 오피스텔로 돌아온 소은정은 침실이 아닌 서재로 향했다.큰 모니터로 주식 시장 동태를 살피던 소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이상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단 말이지.’우연준이 메일로 전송한 자료를 참고하며 이것저것 살펴보던 소은정은 한참 뒤에야 뻐근한 목을 풀기 위해 팔을 쭉 뻗었다.그제야 서재 문 앞에 서 있는 전동하를 발견한 소은정의 눈이 동그래졌다.터벅터벅 다가온 전동하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안 피곤해요?”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의 눈이 더 커다래졌다.‘벌써 새벽 1시네? 설마 나 기다리느라 아직까지 안 자고 있는 거야?’“아, 미안요. 자료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예요? 그냥 나 부르지.”“아니에요. 나 기다리는 거 좋아해요. 은정 씨를 기다리는 거라면 더더욱.”워낙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전동하의 낮은 목소리가 왠지 울리는 듯했다.자연스럽게 소은정의 허리를 감싸안은 전동하의 입술이 소은정에게 닿았다.슬슬 올라오는 손을 턱 막은 소은정이 싱긋 웃어보였다.“너무 늦었어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순간 전동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난 이대로 못 물러나요, 은정 씨.’팔에 살짝 힘을 주어 소은정을 확 끌어당긴 전동하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속전속결로 끝낼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하, 속전속결? 이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