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전인국이 물었다.“그럼, 지금 갈 데까지 가겠다는 거야?”전동하가 말했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이 일이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된 것에는 당신들이 죽어도 욕심을 끊어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돈에 대한 미련만 끊는다면 다 해결되었을텐데... 지금은...”그가 웃었다. 현재 그들의 국면은 뚜렷했다. 전인그룹은 다가오는 한번 또 한 번의 타격에 정치계의 사람을 앞세운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전세를 역전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무수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번 주식시장의 요동에 대해 시위했고 무수한 사람들이 전인그룹에 비판의 손가락을 내밀었다. 전인그룹은 제때 대응하지도 않았거니와 조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욱더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회피했다. 전인그룹은 돈방석에 앉아 한 푼도 돌려주려 하지 않았고 주식 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현재 전인그룹 앞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전인그룹 아래에 있는 회사들마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젠 비아냥 밖에 할 말이 없는 게냐?”전인국은 무겁고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전동하가 피식 웃더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전인국의 얼굴을 보았다. 전인국의 긴장한 모습만 보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돈을 뱉어내 그들한테 주세요. 그래야지 당신을 놓아줄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돈일 뿐이에요.”전인국의 얼굴이 변했다. “절대 그렇게는 못 한다. 그 돈이 내 손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위아래에 많은 사람이 관여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그 돈들은 이미 윗선에 뇌물로 다 바쳤고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어.”전동하가 덤덤하게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럼 나스닥 시장에서 거래 정지하고 상장 폐지하세요.”전인국의 얼굴이 삽시에 변하더니 죽일 듯이 전동하를 노려보았다.“동하야, 너는 아예 나를 도와줄 마음이 없구나?”“제가 당신을 만나준다고 하여 도와줄 것이라는 마음은
전인국이 떠난 사무실은 조용했다. 전동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바닥에 널브러진 찻잔을 들어 올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찻잔은 깨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대표실에 들어와 전동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대표님, 전인국 회장의 돌아가는 표정이 보기 안 좋던데요.”“보기 안 좋아야 맞는 거겠죠.”전동하는 덤덤하게 말했다. 전동하가 말하고 싶었던 말은 이미 전인국에게 다 뱉어냈다. 평생 전인국과 나눴던 대화 중 제일 많이 한 대화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선택에는 변함이 없었다. 비서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말했다.“사실 전인그룹이 상장을 폐지한다면 모든 일은 해결될 텐데요. 아직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면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하지 않나 봐요.”전동하가 차갑게 비웃으면서 일어서며 말했다.“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부사장이 전인그룹을 깔끔하게 팔아넘긴 걸 모르는 것 같던데, 만약 이 일이 알려지면 어떤 반응일까요?”“대표님, 은정씨 일은 어떻게 처리할 예정인가요?”전동하가 머뭇거리더니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어쩔줄 모르겠다는 웃음을 지었다.“그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요. 어쩌면 갑자기 여기로 올 수도 있고요.”“그럼 여쭤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표님이 은정씨를 위해 해준 게 얼만데... 은정씨가 모르는 것은 아니겠죠?”전동하가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만약 알게 된다면 반드시 저를 막을 거예요.”“막다니요? 왜죠?”비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녀도 전인그룹을 싫어하지만 제가 복수를 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비서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전동하의 태도를 보고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전동하가 소은정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한 여자가 전동하를 이렇게 바뀌게 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너무 놀랍다!“은정 아가씨는 정말 진심으로 대할 가치가 있는 사람 같
소은찬은 소은해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소은해와 소은정은 서로 마주 보면서 소은찬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소은해는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으면서 말했다.“형, 무슨 문젠데 그래.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일 문제야, 아니면 애정 문제야? 연구원에 형보다 더 천재가 나타났어? 아니면 돈이 모잘라?”소은찬은 어이없다는 듯 건방진 태도의 소은해를 노려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절반쯤 계단을 오르던 소은찬이 멈추더니 말했다.“은정아, 올라와.”순간 자기 이름을 들은 소은정이 멈칫하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응!”소은해가 질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나는? 나는 무슨 일인지 알 권리도 없어?”소은정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어쩌면 다들 오빠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뭐?”소은해는 소파에 있던 쿠션을 소은정에게 던졌다. 소은정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쿠션을 피하고 웃으면서 소은찬을 따라 올라갔다. 소은찬의 방은 3층에 있었다. 인테리어는 소은찬이 좋아하는 그레이 톤의 깔끔한 분위기였다. 소은정도 오랜만에 올라오는 소은찬의 방에 한 바퀴 빙 둘러보면서 말했다.“대체 무슨 일이야? 나리 언니랑 싸웠어?”소은정의 말에 소은찬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점잖고 조용하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어쩌면... 나 파혼당할지도 몰라.”소은정이 당황하더니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뭐? 왜?”“오늘 웨딩드레스 고르는 날이라 예약도 다 해놨는데 내가 까먹고 연구실에 있었어.휴대 전화도 갖고 가지 않아 연락도 하지 못했어. 나리씨와 장모님이 웨딩드레스 샵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대...”소은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나리씨 부모님들이 화가 엄청 많이 나셨어, 나리씨도 그렇고... 무슨 얘기든지 안들어.”소은찬의 얘기를 들은 소은정도 소찬식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까다
소은찬의 가장 큰 문제가 드러났다.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소은찬은 하늘이 내려준 매력적인 외모 이외에는 정말 일 밖에 할 줄 몰랐다. 소찬식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소은찬이 경영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일에는 모든 것을 바치지만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했다. “항상 내가 시간이 날 때 그녀에게 연락하는 편이야. 다른 때에는 나한테 연락해도 내가 받지 않는 것을 나리도 알고 있어.”소은찬은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고독한 소은찬의 모습을 본 소은정도 가슴이 아파졌다. 잠시 멈칫하던 소은정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그를 보면서 말했다. “나리 언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나리 언니한테 찾아가면 되잖아.”소은찬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찾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를 만나줄까?”소은정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진심으로 사과해야지!”소은찬이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항상 나리한테 진심이었어!”소은정이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오빠가 항상 진심이건 아니건 상관없어. 나리 언니한테 그 진심을 전달해 줘야 되는 거야. 오빠의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위에서 뛰어내려야 해, 아니면 나리 언니한테는 오빠가 올려다보지 못하는 존재가 될 거야! 예를 들면 팬이 덕질하는 아이돌을 바꾸는 건 흔한 일이야. 어느 날 나리 언니가 오빠를 좋아하지 않고 다른 상대로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거야!”그저 겁을 주려고 한 소은정의 말에 소은찬의 얼굴이 점점 변했다. 소은정이 하는 말을 소은찬이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소은정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내일 소호랑을 팔아 나리 언니를 불러낼 테니 가서 진심으로 사과해. 선물 준비하고!”소은찬이 멀뚱멀뚱 그녀를 쳐다보더니 말했다.“정말 그거면 돼? 하지만 어머님 아버님도 엄청 화나신 것 같은데...”“오빠, 먼저 나리 언니 달래고 나서 다른 사람한테도 사과하면 돼, 만약 나리 언니 화가 풀린다면 어머님
한씨 아주머니가 일을 하며 대충 대답했다.“알지. 알지. 그런데 호랑이가 단 건 먹나?”“호랑이는 맹수라서 다른 동물을 사냥하죠. 보통 식물이나 동물에게서 필요한 탄수화물을 섭취한답니다...”소호랑이 잔뜩 신난 얼굴로 한씨 아주머니에게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참다 못한 그녀가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호랑아, 아줌마한테 노래라도 좀 틀어줄래? 아줌마는 노래 들으면서 일하는 게 좋더라.”뭐야. 난 인간이랑 대화하는 게 더 좋단 말이야!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소호랑이 입을 삐죽 내밀 무렵, 밖에서 보다 못한 소은정이 웃음을 참으며 문을 두드렸다.“소호랑, 새 취미를 찾은 거야?”소은정의 목소리에 잔뜩 흥분한 소호랑이 의자에서 풀쩍 뛰어내리더니 소은정의 품에 쏙 안겨 애교를 부렸다.“엄마!”소호랑의 폭신한 털을 만지고 있자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은정이었다.소은정의 등장에 직원들은 부랴부랴 일어서며 말했다.“아가씨께서 여긴 무슨 일로...”“아, 호랑이 데리러 왔어요. 볼일 보세요...”말을 마친 그녀가 소호랑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직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가씨는 성격이 참 좋으신 것 같아요. 제가 부잣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지만 몇년 째인데 대부분 돈 좀 있다고 잘난 척하거나 갑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은정 아가씨는 직접 주방에까지 오시고. 뭔가 다르신 것 같아요!”이에 한씨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나도 여기서 5년째 일하고 있는데 아가씨가 심한 말씀하시는 건 한번도 못 봤어. 항상 얼굴 찡그리고 있는 집사 양반도 아가씨한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니까.”“아, 그런데요. 그 태한그룹 대표님이랑은 헤어지셨다던데 그게 사실이에요?”신입 직원이 넌지시 던진 질문에 한씨 아주머니가 경고의 눈빛을 날렸다.“집사한테서 못 들었어? 그런 질문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바로 눈치를 살피던 신입이 고개를 숙였다.“그... 그냥 생각나서 물은 거예요. 조심할게요.”...한
풉... 귀엽긴.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래. 같이 가자. 두 사람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 나리 씨도 너 많이 보고 싶어 할 거야.”하지만 소은정의 타이름에도 고개를 홱 돌린 소호랑은 소찬식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깊은 밤.가끔씩 들리는 매미소리가 어두운 밤에 운치 한 스푼을 더해 주었다.잠시 후,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소은정이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내려왔다.방금 S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소은호가 거실에 앉아있었지만 소은정의 눈길을 끈 건 다름 아닌 집사 손에 들린 쇼핑백이었다.“설마 특산품이야?”눈동자를 반짝이는 소은정을 보며 픽 웃던 소은호가 대답했다.“응. 너 호두과자 좋아하잖아.”“오, 역시 오빠... 컴백 축하해. 고생 많았지.”별 영혼 없는 아부의 목소리에 소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책상 위에 파일을 휙 던져두었다.“S시 현황이야. 내 생각엔 처음부터 다 엎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공사도 일단 중단시켰어. 원자재 구매에 특별히 더 신경 쓰라고 했고... 아무튼 파일 한 번 봐봐. 샤워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겨우 호두과자 포장을 뜯은 소은정이 오빠를 노려 보았다.뭐야... 오자마자 나 야근시키는 거야?투닥거리는 남매를 바라보는 집사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피어올랐다.“도련님이 아가씨 약점을 아주 꽉 잡았네요. 맛있는 거 좋아하시잖아요.”그러게... 먹을 거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억울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들은 밥 먹었어요?”“은찬 도련님은... 2층이 계신데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저녁 드시라는 말씀을 못 드렸네요. 은해 도련님은 술 마시러 나가셨습니다.”정직하게 각자의 동향을 보고하던 집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회장님은 서재에 계시고요.”그래요. 소파에 앉은 그녀가 담요로 다리를 덮은 뒤 호두과자를 한입 베어물었다.맛있다...S시에 갈 때마다 먹고 싶었는데 워낙 바쁘게 오고 가느라 호두과자 한 번을 못 먹었
소은해가 혀를 끌끌 찼다.“뭘 하든 너보단 더 재미있었겠지. 그런데... 두 사람이 너무 열심히 사니까 내가 너무 양아치 같네.”그제야 고개를 든 소은호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양아치 맞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래?”머쓱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작거리던 소은해가 돌아섰다.“됐어. 나 잘 거야.”계단을 몇 개쯤 올라가던 그가 흠칫하더니 소은정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왜 저래?하지만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소은정은 계속 소은호와 업무적인 대화를 나누었다.잠시 후, 책상 위에 올려둔 소은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와이프”발신인을 확인한 그가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여보세요?”그 뒤로 이어지는 통화에서 소은호는 거의 대답만 하는 수준이었지만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와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행복감이 소은정의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들었다.오빠가 저런 표정을 짓게 될 거란 걸 어떻게 알았겠어...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통화를 마친 소은호는 바로 소은정과 회의를 계속하고 약 10분 뒤.시계를 힐끗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네 새언니가 나더러 밤 새지 말고 일찍 자라더라. 얼른 나가.”서재를 나서던 소은호가 한 마디 덧붙였다.“아, 파일 정리하고 나가라.”묘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서는 소은호의 모습에 소은정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새언니 말은 더럽게 잘 듣네... 워커홀릭인 오빠가 이렇게 쉽게 일을 내려놓는다고? 사랑이 무섭긴 무섭다...소은호의 그림자가 복도를 사라질 때에야 정신을 차린 소은정은 파일을 정리하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컨디션으로 서재를 나섰다.방으로 걸어가던 그녀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몇 분 전 소은해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내가 바로 지원군 보내줄게.”그리고 한시연에게 전화를 건 통화기록 캡처까지...오빠가 새언니한테 연락한 거였어? 소은해... 간만에 좋은 일 했네.다음 날.소은정에게서 약속 장소를 문자로
싱긋 웃던 소은정이 가방에서 소호랑을 꺼내며 말했다.“호랑이가 나리 씨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데요.”하지만 그녀의 설명과 달리 소호랑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다리를 버둥대고 있었다.“아니거든요! 이거 놔요! 신나리... 잡아먹어버릴 거야!”방금 전까지 시무룩하던 신나리의 눈에 드디어 빛이 들어오고 그녀는 소호랑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하, 얘가 정말 자기가 맹수인 줄 아나 봐? 야, 배신자. 네가 날 잡아먹겠다고? 그러다 배 터진다, 너?”신나리의 손에 잡혔지만 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한참을 또 발버둥치던 소호랑은 잠시 후 결국 “신나리가 가장 예쁘다” 라는 말을 세 번이나 외친 뒤에야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기분이 좋아진 듯한 그녀의 모습에 소은정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나리 씨, 우리 나가서 쇼핑 좀 할까요?”소은정의 시선을 따라가던 신나리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그녀가 보고 있는 곳은 고급 웨딩드레스 샵, 심지어 엄격하게 회원제로 운영되어 모든 게 프리미엄으로 운영되는 브랜드 매장이었다.돈만 있다고 입을 수 있는 드레스가 아니었으므로 신나리도 착용해 보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던 차였다.나름 유복하게 컸지만 재벌인 소씨 일가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고... 소은찬은 겉치레에 별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두 사람의 웨딩드레스는 이미 대충 알 만한 브랜드로 정한 뒤였다.하지만 결혼이란 멀쩡한 커플도 미치게 만드는 참 이상한 의식, 사귀며 한 번도 서로 언성을 높인 적 없었던 신나리, 소은찬 커플도 현실속 문제에 싸우고 말았다.신나리의 표정이 또 다시 어두워지자 소은정이 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리 씨, 들어가요. 두 사람 결혼하는 데 난 선물도 못 했잖아요.”하지만 망설이며 꿈쩍도 하지 않던 신나리가 결국 입을 열었다.“언니, 저... 오빠랑 결혼 안 할지도 몰라요.”대충 눈치를 채긴 했지만 신나리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느껴졌다.“저번에 웨딩드레스 피팅하기로 했는데...